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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2일째) 런던 : 킹스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과 대영박물관

by 연우아빠. 2010. 8. 3.

□ 2010.6.27(일)


어제는 10시 넘어 해가 지더니, 아침 5시도 되기 전에 해가 뜬다.
여행 내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첫날인데도 무척 일찍 깼다.
준기는 놀랍게도 바로 시차에 적응해 정상적으로 활동했다.
연우도 장염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곤 그런대로 첫 해외여행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아내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일부러 힘찬 목소리를 내며 준기를 데리고 샤워를 하러 갔다.
첫번째 외국여행인데도 준기는 긴장하지 않고 쾌활해서 다행이다.
4층 식당에서 아침을 파는데 스페셜 메뉴가 3파운드. 

나에겐 눈에 익은 메뉴였지만 처음 대하는 세 사람은 어땠을지.
외국영화에서 주로 감옥에서 죄수에게 주는 듯한 맛없어 뵈는 음식 한접시.
그게 스페셜 메뉴다.

현지 적응을 못할 경우를 대비해 햇반 4개를 사가지고 갔는데 다행히 이걸 쓰지 않고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연우가 장염이 낫지 않아서 걱정스럽다.
굶고 약을 먹은게 좋은데 열심히 천천히 아침을 다 먹는다.


첫 번째 방문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계획표대로 한다는 것은 상태를 봐서 택도없는 기대였기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꾸가고 결국 아내의 잔소리.
일단 영국에 온 첫 번째 목적을 해결하러 킹스크로스 역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 역 안내창구에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발급여부를 물었더니 4~5일만 머물 거라면 일일권(Daily Pass)을 끊어서 사용하는 게 나을 거라고 한다.
런던의 지하철 구역 개념이 익숙치 않아 1~4존을 끊었다. 5.6파운드.
사실 29일이 되어서야 내가 쓸데없이 조금 더 비싼 패스를 계속 끊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움직였던 1~2존은 5.3파운드면 충분했다

어린이용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어제 공항에서 들었던 얘기와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누가 당신 아이들을 10살이 넘었다고 보겠나? 영국 애들과 비교하면 8~9살 밖에 되보이지 않는다. 그냥 타라. 여기도 사람사는 동네다” 대충 이런 요지였다.
우리는 웃으며 어른 것만 끊어서 타고 다니기로 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급하다고 밀고 타는 사람이 없다.
안내 전광판에는 다음 지하철이 1분 뒤에 들어온다는 사인이 떴다.
억지로 타려는 사람이 없으니 지하철은 바로 출발하고 정말 1분 뒤에 다음 열차가 들어왔다.
크기도 작고 4량만 달고 다니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열차가 오고 무리한 승차가 없으니 평균적으로 붐비지 않으면서 이동속도가 매우 빠르다.
시스템과 사람의 훌륭한 조화.
비록 낡은 영국이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과 그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그들이 한때 세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작은 증거를 보여준다.
지하철 크기가 장난감 같은 느낌이 드는지 연우랑 준기는 모두 재미있어 했다.
지하철에 타자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는데 네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먼저 앉아 있던 중년 신사가 비켜주며 우리 네 사람에게 앉으라고 권한다.
역시 사람을 배려해 주는 마음씨. 감사 인사를 하니, 그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한국인인가?”
“(좀 놀래며) 그렇다.”
“어제 한국이 우루과이에게 아깝게 져서 정말 안됐다. 나는 한국의 서울과 울산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말을 끊으면 안될 것 같아 콩글리쉬로 이야기를 건넸다.
“잉글랜드는 언제 경기를 하는가?”
“오늘이다.”
“상대방은?”
“독일이다”

“오우, 결승전이나 준결승전 게임 정도되는데 너무 일찍 붙었다”
“그건 잉글랜드에 대한 과찬이다. 어쨌든 우리 잉글랜드가 독일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 축구 대단하더라”

“한국 대표팀 가운데 EPL에서 여러 선수가 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박지성, 볼턴 원더러스에 이청용이 뛰고 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리그에 기성용이 뛰고 있어 이들이 한국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 덕에 한국이 많이 강해졌다”


“아, 그런가. 미안하다. 내가 최근 5년동안 싱가폴에서 근무해 잉글랜드 축구사정을 잘 모른다. 런던은 처음인가?”
“처음이다”
"언제 왔는가?"
 "어제왔다"

“얼마나 머물 것인가?”
“5일간이다”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고맙다”


진땀나는 콩글리쉬지만 의사소통을 하는데는 충분했고 유럽사람들이 축구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놀랜 것은 지금까지 경험상 유럽사람들은 좀 말쑥하면 “일본인이냐?” 이렇게 물어보고
좀 후줄근 하면 “중국인이냐?”고 물어보지 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이냐?”고 처음부터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다.
2002년 월드컵 때만 잠시 “한국인이냐?”고 물어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전세계 해리포터의 독자들이 성지순례하듯 다녀가는 곳, 킹스크로스 역 9와 3/4승강장


다음 정거장에서 그는 멋진 여행을 기원하는 인사를 남기고 내렸다.
잠시 후 우리도 목적지에 내렸다.
9번 플랫폼 방향표지를 보고 킹스크로스 역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역무원이 제지한다.
해리포터의 9와 3/4승강장은 뒤쪽에 있단다.
해리포터 팬이 많이 오긴 오나보다. 척보면 압니다하는 식이다.

뒤로 돌아가니 정작 8번 플랫폼 사이에 9와 3/4 승강장이 사진에 본 것처럼 있다.
여러나라에서 온 많은 해리포터 독자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같은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해리포터의 현장에 직접 왔다는 것만으로도 준기는 신이 났다.
약간 허접한 느낌을 가지며 다음 포인트인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킹스크로스역에서 대영박물관에 가려면 러셀스퀘어 역에서 내립니다.
러셀 스퀘어의 아름다운 꽃밭.


한 정거장 남쪽 러셀 스퀘어(공원)에 내려 아름다운 꽃을 보며 공원을 가로질러 가니 눈에 익은 건물이 보인다.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 대영박물관.
사실 이집트와 중동에서 처음 도둑질을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그를 견제하러 다니느라 영국이 뒤를 이었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에서 제일 자랑하는 로제타 스톤 역시 프랑스가 훔친 것을 영국이 다시 훔쳐 갔다 놓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뒤늦게 통일한 독일이 남은 물건들을 훔쳐와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이 3개 박물관은 공통적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인면수신상까지 한쌍씩 훔쳐서 폼나게 전시하고 있다.
누군가 설명을 붙여 놓지 않는다면 내부 사진만 봐서는 어느 박물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유럽이 자랑하는 3대 박물관 - 대영박물관, 루브르, 바티칸 - 가운데 유럽의 문화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은 고작 바티칸 뿐이라는 사실.
카톨릭을 받아들여 지나치게
신봉한 탓일까? 유럽의 문화는 단조로운 편이다.
어쩌면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볼 때도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주마간산격으로 훝고 지나가는 여행객의 짧은 생각이겠지만....


이런 유물 약탈은 같은 문화권인 그리스 지역에서도 성행하여 영국인들이 엘긴마블이라 자랑하던 엘긴의 약탈문화재에 대해
30여년전 그리스 문화부 장관(여자분)과 영국 외무부장관의 날카로운 설전이 기억에 남는다.



대영박물관 입구, 도리아식 기둥에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모습

어쨌건 반갑게도 입장료는 무료이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준다.
어린이용은 1개당 3파운드. 한국어 안내도록을 6파운드에 사고 아이들을 위해 오디오 가이드 2개를 빌렸다.
지난 3년간 열심히 책을 보며 익힌 때문인지 준기는 유물 이름과 내력을 제법 많이 안다. 준비시킨 보람이 있군.

박물관 구내 식당은 점심시간 12시~2시 사이에만 운영하는 것 같은데 가격에 비해 음식이 아주 좋아서 유물을 관람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 
다만, 원래 덥지 않는 나라라서 에어컨 시설이 전혀 없는데 이번에 이상 고온으로 내부가 상당히 더웠다.
다만 한국관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건조한 더운 날씨는 목이 답답하다.

큰 박물관이라 시간이 허락한다면 4~5일 계속 돌아보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다시 왔을 때를 기약해야 할 일.
몇 시간을 걸으며 박물관을 구경해서 그런지 아내가 힘들어 했다.
중요한 곳을 봤으니 그냥 숙소로 가기로 결정하고 길 건너편에 있는 Tesco 슈퍼마켓에서 저녁꺼리를 사서 러셀 스퀘어 역으로 갔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쥐다!" 라고 외치며 궤도쪽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쥐가 궤도 안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뭘 먹고 살까?



로제타스톤, 프랑스의 천재적인 언어학자 샹폴리옹이 19살 때 해독에 성공하여 이집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구세계의 이해를 급속하게 높여준 단서가 된 비석. 이게 어째 프랑스에 있지 않고 영국에 있나?




열심히 오디오가이드 듣고 있는 우리 아이들.
이집트 관을 보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력기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이집트사람들이 이미 다 만들어서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집트의 전성시대를 연 람세스 2세 조상.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왼쪽 구멍은 영국인들이 이집트에서 운반해 올 때 줄을 꿰기 위해 뚫은 구멍이라고 한다.



파라오의 석관. 이 석관은 터키, 그리스, 그리고 로마까지 영향을 끼쳤다.
유럽사람들은 인정하기 싫어할 지 모르겠지만 고대 유럽의 문화는 이집트와 터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좋은 문명과 문화를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고대 중동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부조들.
저렇게 많은 유물을 어떻게 다 뜯어왔는지, 고급도둑질은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이 나왔다.
자연 채광을 잘 살린 박물관 설계가 돋보인다.



숙소로 돌아오니 온통 젊은이들 뿐.
호스텔 입구에서 키를 보여주면서 들어가는데 데이비드 베컴처럼 생긴 데스크의 청년이 준기에게 정색을 하며 장난을 건다.

“너 키를 어쨌니? 키 없으면 못들어 간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 당황해 하는 준기에게 그 알려 줬더니 주머니에 있는 키를 꺼내 보여준다.
그 청년은 웃으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즐거운 여행하라며 손을 흔든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했다. 숙소는 동향이라 그런지 낮의 열기가 식지않아 후끈했고 공기가 아주 건조했다.

저녁을 먹다가 연우는 이가 흔들린다고 푸념이다.
웬일로 4개나 한꺼번에 흔들린다고 해서 입안을 들여다 보니 2개는 벌써 밑에서 새 이가 보였다.
빼자고 했더니 안된다고 겁을 내며 혀로 조금씩 밀어서 나중에 빼겠다고 한다.




오리엔트 지역을 처음 통일했던 앗시리아 제국의 왕궁을 장식했던 인면수신상.
원래 두쌍이었는데 한쌍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 있다고 한다. 거의 같은 모습을 한 석상을
루브르에도 소장하고 있어서 내부 사진만 보면 대영박물관인지 루브르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
수영을 하는 앗시리아 병사의 모습을 보면서 앗시리아에 대한 문명적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로보트태권V 같은 모습의 팔.
신상에서 떨어져 나온 팔인듯.




이 유물을 이집트에서 훔쳐서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이 Prudhoe 경이라는 표시가 엉덩이에 찍혀있는 이집트 석사자상.
1835년에 기증했다는 연도가 찍혀 있음




프레스코 기법으로 무덤을 장식했던 벽화




저승으로 가는 길을 묘사한 사자의 서.
죽은 이는 아누비스(Anubis) 신의 인도에 따라 살아 있는 동안 한 일에 대해 측정을 받고 영원불멸의 길과 천벌의 길을 판정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신라의 유리에도 영향을 끼친 이집트 녹유리병
지중해 연안에서 성행했던 유리병의 역사가 이렇게 길다는게 신기하다.




이집트 문명의 절대적 지배자 파라오의 미이라와 관.
미이라를 담은 관과 부장품을 담은 관을 몇층씩 중첩해서 넣은 구조로 관을 만들었음
각 관마다 화려한 그림을 빈틈하나 없이 채워 놓은 모습에서 이집트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우주의 지배자였던 그들의 육신이 영원불멸의 안식 대신 이런 유배생활을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스 전시실의 토기. 고온으로 구운 경질토기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
이 전통이 후대에 도자기 제작으로 이어져 유럽의 도자기는 동양의 도자기와 달리 많은 그림을 포함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제2대 티베리우스 황제의 딸 클라우디아 올림피아스
조선시대 우리나라 여성처럼 가채를 얹은 모습이 특이해서 찍은 사진
뒤로 돌아가서 머리 뒤를 봤더니 조선시대 가채 얹은 모습과 너무 비슷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