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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제주도 절물휴양림 숙박기

by 연우아빠. 2007. 2. 2.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절물휴양림 숙박기

2007.1.30~31(1박2일)

뜻하지 않게 1월30일 1박2일 제주도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행사 준비에 손이 부족하니 미리 와서 도와달라는 지역본부의 요청에 저더러 직원한명 대동하고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얼떨결에 30일 아침에 일어나 대충대충 준비하고 집을 나서니 이게 웬일입니까?

온 천지가 하얗게 눈에 덮여 있고, 하늘에서는 눈이 펄펄~~~

자동차에서 우산을 꺼내 들고 김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행사 준비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 제주 지역본부 직원이 묻더라고요.

“숙박할 곳은 정했는지요?”

무심결에 "절물휴양림"에서 자면 안될까요? 했더니 지역본부에 혼자 내려와 있는 선배 직원이 저보다 더 좋아하는 겁니다.

자기도 절물에서 같이 자자고...

근데 생각해보니 화요일이라??? 휴양림 휴무일 아닙니까?

혹시나 싶어 검색해보니
빈방도 있고, 국립휴양림과 달리 화요일도 숙박을 할 수 있더군요.
다가 거의 반값!!!!!(주말 7만원짜리 방이 4만원 *^^*)

만세!

바로 숲속의 집을 예약하고 느긋하게 밤바다를 가로질러 맛있는 회를 먹고
내일 아침에 먹을 따뜻한 죽을 서비스로 받아서 9시 30분쯤 휴양림에 들어갔습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추위가 몰아닥치는 나무바닥 오솔길을 걸어

양복 입은 남자 3명이 휴양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은 구름 사이로 영롱한.. 그야말로 영롱한 북극성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절물휴양림에서 잔다고 전화했더니 너무나 부러워하더군요.

울창한 삼나무 숲을 가로지르니 사진보다 더 아름다운 숲속의 집이 줄맞추어 있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몇몇 집에서 환한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누워서 등을 지지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고

자연휴양림이란 곳을 처음 와 본 후배 직원은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내부도 정말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흠 한가지만 빼면...거실은 괜찮은데 방에 우풍이 엄청 심하더군요.

그 순간,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아침에 그 기분이 생각났습니다.

아이고! 등산화, 그리고 등산복.....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난 선배직원과 저는 너무나 곤하게 자는 후배직원을 깨우지 못하고 둘이서만 절물오름에 올라갔습니다. 눈과 얼음으로 잘 닦아놓은 길은 아이젠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양복과 코트를 걸친 채 구두를 신고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무모한 짓이었지만 장갑이 마침 스포츠전용 장갑이라 양쪽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오르내릴 생각으로 조금 걱정을 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30분쯤 올라가 전망대에 도착하니 성산 쪽 바다 위에서 붉은 태양이 얼굴을 내 밀었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너무나 상쾌했습니다. 그 맑은 하늘을 좌우로 가르며 떠오르는 붉은 태양... 그 장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못한 때에 그런 광경을 보니 붕어를 놓친 강태공이 한번 얘기할 때마다 붕어 길이가 늘어나 세상에 둘도 없는 월척을 놓친 이야기가 돼버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유격훈련때 통닭처럼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밧줄에 의지해 내려왔습니다. 아이젠 대신 장갑에 의지해 내려오니 늦게 일어난 후배직원이 죽을 데워놓았더군요.

이 경치 좋은 곳을 자기 깨우지 않고 그냥 올라갔다고 너무 아쉬워하는데 조만간 휴양림 매니아 가족이 하나 더 탄생할 것 같습니다. 지방 출장 때마다 도심에서 숙박하면 그 요란하고 현란한 조명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는데 제주도에서 그것도 절물휴양림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가을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은 제주도에 있는 절물과 서귀포 휴양림에서 보내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굳힌 출장이었습니다. 출장이었던 덕분에 사진은 한장도 없지만 아마 출장가서 휴양림에서 숙박을 하게 된 것도 아주 드문 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 앞으로 회사일로 출장갈때는 배낭매고 가기로 했습니다. 등산화와 카메라는 꼭 챙겨서 다녀야겠습니다.

* 절물휴양림에는 제주감귤을 먹을 수 있게 방마다 한소쿠리씩 담아 놓았습니다. 물론 공짜입니다.
* 서울 경기지역보다 8~9도 높은 기온에도 불구하고 외풍이 상당히 있어서 방바닥은 끓고 코끝은 시립니다.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