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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외교적 승리(?) : 사실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재생산

by 연우아빠. 2006. 6. 8.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36703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서희의 외교적 성과는 강동 6주를 선물받은 점이 아니라 요나라의 침략을 외교적으로 물리쳤다는 점이다. 당대 동아시아 최강인 요나라의 침략을 군대가 아닌 외교로 물리쳤다는 점만으로도 서희는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일 것이다."

위에 기사를 읽다가 느낀 개인적인 생각을 썼습니다.

대도수, 유방, 이지백을 잊지 마세요

어떤 사실을 다룰 때 한 사람의 성과를 지나치게 부각하여 전후사정을 생략함으로써 종합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방식이 선점의 효과를 내고 그것이 계속 재생산 되는 사례가 왕왕 있습니다.

서희도 그런 사례입니다.

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고려를 침략하여 초반에 승리를 거듭하게 되자, 고려의 대신들 가운데 평양 이북을 내주고 항복하자는 세력이 대세를 이룹니다.

그러나 서희는 성종에게 그 부당함을 강력히 제기했고, 이지백은 성종이 송나라 풍습만 따르면서 고려의 고유풍습인 연등(燃燈), 팔관(八關), 선량(仙郞) 같은 것을 못하게 하여 국가의 힘을 잃었다며 왕의 정책을 비판하고 거란과 강력하게 전쟁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고려가 항복하지 않고 버티자 소손녕은 대군을 몰아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니 중랑장(中郞將) 대도수(大道秀 : 발해의 마지막 왕자로 고려에 귀부한 대광현의 아들)와 낭장(郞將) 유방(庾方)이 소손녕 군대를 대파합니다.

안융진 패전 후 소손녕은 태도를 바꿔 고려에 협상을 요구합니다.

성종이 합문사인(閤門舍人) 장영(張塋)을 파견하자 소손녕은 그의 직급이 낮음을 탓하여 대신의 파견을 요구합니다. 서희는 소손녕이 명분을 원하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기가 사절로 가겠다고 나섭니다.

고려가 거란의 연호를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을 한 이유는 바로 철수명분을 거란에게 주고자 한 것입니다.

거란이 태도를 바꾼 것은 바로 서희, 이지백, 대도수, 유방 같은 사람들이 보여준 의지와 안융진에서 승전한 것 때문이지 단순히 서희의 세치 혀와 협상능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서희의 협상력은 대신들의 강력한 전쟁의지, 안융진에서 거둔 고려군의 승전에서 나온 것입니다. 개전 초기에 강계에서 고려군이 대패하고 지휘관이 전사했을 때 소손녕은 고려의 협상 사절을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위에 기사를 쓴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강동6주를 획득한 것이 서희의 원맨쇼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서희의 협상능력으로 얻어낸 결과물도 아닙니다.

전후사정을 잘라내고 서희만 부각하는 교육만 하게 되면 말싸움으로 국가간 외교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리하자면 강동6주의 획득은
1. 서희, 이지백 같은 대신들의 강력한 항전의지가 조정을 대세를 장악했고
2. 대도수, 유방 같은 장수들이 적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3. 거란이 명분을 얻어 철수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 준 서희의 외교술

이렇게 3박자가 함께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2006.6.8 오마이뉴스 댓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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