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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인도기행(2009년)

델리

by 연우아빠. 2008. 12. 16.

2008.12.11(목)

아 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하늘은 뿌옇다. 숙소 발코니에서 건너편을 보니 층층이 정원이 있고 그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물을 주고 있다. 놀랍게도 북한대사관 이란다. 평범한 가정집을 임대해 대사관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오늘 일정은 델리를 중심으로 북부지역에서 현지 석박사급 고급 기술인력을 발굴해 한국으로 보내는 회사를 방문해 면담하는 것. 델리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구르가온이라는 지역이라 가는 길에 바하이교 사원과 굽타 미나르 궁을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식사 후 업체를 방문해 면담을 하고 델리 공항으로 가서 첸나이로 가는 게 오늘 일정이다. 한국 같으면 속터질 느린 일정이지만 이 동네 교통사정은 방법이 없다.

 

바하이교 사원은 사람이 사는 모습이라고 봐 주기는 어려운 궁핍한 사람들 모습에서 진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평지에 잘 가꾼 정원과 나무가 상쾌한 기운을 전해준다. 가운데는 하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연꽃 같기도 하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같기도 하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 사람인 바압(1819~1850년), 바히올라(1817~1892년), 압둘 바하(1844~1921) 이렇게 세 사람이 기틀을 잡은 종교라고 한다. 모든 종교는 다 똑같이 하느님을 믿는 것이고 다만 그 이름만 지역마다 달리 부를 뿐, 세상 사람에게 계급,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모두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언어와 문자까지도 하나로 통일하려고 했단다. 이런 주장 때문에 바압은 무슬림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그 후계자들이 먼 여정을 거쳐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고 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사원 안에 들어가기 전에 주의사항을 바하이교 봉사자들에게 듣고 들어가야함. 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대리석으로 만든 의자가 대학 교양강좌 강의실처럼 배치되어 있음. 정면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고 천정에 8각형 별이 있는 바하이교 상징문양이 있음. 밖으로 나오니 힌두교 학교, 이슬람교 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왔는지 선생님인 듯한 사람의 인솔로 들어오고 있음. 신발을 찾아 신고 나오다가 정면에 있는 바하이교 박물관에 들어가 이 종교의 유래와 교리에 대해 구경함. 여자분이 있어서 이 소장이 말을 붙였는데 바하이교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음.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함.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놀랍게도 한국어로 된 팜플렛을 나누어 주었음(용산구 후암동에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고 함)

 

인도에는 또 시크교도(이름 끝에 싱(singh)이라는 말이 붙은 사람들)들이 유명한데 체격이 크고 콧수염을 기르고 머리에는 터번을 썼다. 이들은 카스트를 부정하는데 시크교도들은 거의 다 부자라고 한다. 시크교도가 부자가 된 이유는 그들은 터번과 칼 그리고 나머지 한가지(잊어버렸음)를 갖춰야 하는 종교적 의무가 있는데 그걸 갖추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인도 사람들과 달리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바하이교 사원을 나와 굽타 미나르 궁전으로 향했다. 무슬림들이 처음으로 인도를 점령하고 그 기념으로 세운 궁전이라고 하는데 가운데에 굽타 미나르 탑(높이 72.5m, 아래쪽 지름 15.5m, 꼭대기 지름 2m인 붉은 사암으로 된 탑)을 세웠음. 현재 델리의 시내 건축물 고도제한은 바로 굽타 미나르 탑 높이가 기준이라고 한다. 굽타 미나르 탑 앞에는 찬드라 굽타 2세 때 세운 순도 높은 철로 만든 기둥이 있다. 고대 문자를 새겨 놓았는데 원래 찬드라 굽타 2세 때 세운 불교왕국의 왕궁이 있던 곳이라는 증거이자 무슬림들이 인도문명의 파괴자임을 밝히는 증거가 되어 무슬림들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이 철기둥은 녹이 거의 슬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서기 4세기 인도의 제련기술이 순도 높은 철을 만들어 낼 정도로 수준이 높았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한다.

 

굽타 미나르 궁전은 사암으로 지었는데 조각하기 쉬운 바위를 잘 활용해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빈틈없이 새겨 놓았다. 여백없이 꽉 채우는 이슬람 문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음. 풍화되기 쉬운 사암으로 만든 건축물이라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도 틈만 나면 가이드를 하겠다는 현지인들이 직업을 불문하고 나서서 정나미 떨어지게 만든다.

 

인도 현지식을 먹으려면 호텔에 갈 수 밖에 없는데 나는 별로였지만 한국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호텔이 아닌 다른 식당을 한번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델리 외곽에 있는 다래(多來)라는 한식당인데 이 주변은 경비원들이 지키고 선 커다란 담장을 갖춘 구역이다. 높은 담장을 두른 “oo Farm” 이라는 이름이 집집마다 붙어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대 농장주들이 거주하던 농장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빌려 한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집이다. 대구 비슷한 생선으로 탕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매운탕을 그리워하는 한국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한다.

 

문을 들어서니 별천지다. 담장 밖에 있는 인도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방이 최소한 16개가 넘는 2층 건물인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뒤편으로 나갔더니 수영장이 있고, 산책로까지 있는 정원이 딴 세상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만 8명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인도라는 나라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극심한 빈부격차에도 나라가 유지된다는 게 가능한가? 음식 값도 한국 돈으로는 “음! 상당히 비싸군!” 하는 정도인데, 70%가 넘는 인도사람들 4인 가족이 10일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이다.

 

인 도에 사는 외국인은 호텔 밖에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려고 해도 집 아니면 호텔밖에 없단다. 이 소장이 처음 인도에 왔을 때 부인이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신랑이 외식 할 때마다 호텔에 가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호텔에서만 마시니까.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외국인은 호텔 말고는 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상해졌다고 얘기해서 웃었다.

 

구르가온에 있는 현지협력업체를 방문해 면담을 마치고 첸나이 행 비행기를 타러 델리 국내선 공항으로 갔다. 델리 공항은 국제공항과 국내선 공항이 자동차로 40여분 떨어진 곳에 있다. 인도 국내선은 늘 그렇듯이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고 2시간 40분정도 날아가서 첸나이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 식사는 먹을만했지만 그릇의 위생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때가 낀 그릇도 있었다. 해가 진 다음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지상에 불빛이 있는 곳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데칸 고원을 넘고 인도 동쪽 해안을 따라 첸나이로 날아가는 동안 내내 불빛이 있는 도시는 보이지 않는다. 첸나이 근처에 도착한 듯 한참동안 불빛 가득한 도시를 날아서 공항에 착륙했다.

 

인도 국내선 여객기는 탑승할 때 짐을 체킹해서 붙이고 나면 그 사람이 올 때까지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또 직접 들고 비행기에 타는 수하물은 반드시 보안검사를 해야 하고 보안검사를 했다는 확인 도장이 없으면 처음부터 다시 줄서서 보안검색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기내 서비스는 커피잔에 때가 낀 것이 보이는 것도 있어서 위생상태가 꺼림칙했지만 기내식으로 나온 인도 음식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카레였는데 인디카 쌀이라 그런지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인도 중북부는 벼를 2기작하고 겨울에는 밀을 심으며 남부지방은 벼를 3기작 한다고 한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서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 주어서 편하게 찾아갔다. 하필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개신교 신자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숙소였는데 8시에 도착한 우리에게 저녁식사 시간 끝났다고 저녁도 주지 않는다.

 

이 집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방이 30개는 넘는 것 같음)를 빌려 게스트 하우스 영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일하는 인도인들은 맨발이었다. 델리 쪽 보다 피부색이 검고 머리는 더 곱슬한 사람이 많다. 한 때 인더스 문명의 주인이자 세계 최초의 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랍파를 만든 드라비다 족이 아리안 족에게 쫓겨 이리로 이주해 왔는데 그 때문인지 남인도 지역은 카스트의 위치상 하위 카스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이렇게 다른 삶이 있다는 게 영 받아들이기 찝찝핟. 이 소장이 오토릭샤를 타고 가까운 호텔로 가서 요기를 하자고 해서 밤에 길을 나섰다. 공기는 델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신선하고 맑은 공기. 약간은 더운 느낌이 들었지만 우리나라 여름보다는 습도가 낮아서 그런지 훨씬 상쾌하다.

 

오토릭샤는 세발 원동기인데 문도 없고 손잡이만 있다. 미터기로 요금을 받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외국인이 타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고장났다고 우긴다고 한다.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데도 고장났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오토릭샤 운전사들이 어이가 없다. 타기 전에 반드시 흥정을 해야 하는데 4km정도라서 걸어가자고 했더니 이 소장이 “아직 인도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란다. 40루피로 흥정을 하고 셋이서 호텔까지 갔는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는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호텔은 우리나라 3성 호텔만도 못한데 여기는 5성 호텔이라고 한다. 식당은 문을 닫았고 맥주 바에 가서 요기가 될만한 안주를 시켜서 맥주를 마시고 나는 스프라이트 한잔. 10시에는 주방에 있는 사람들이 퇴근하기 때문에 9시 40분까지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11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10시 조금 넘어서 호텔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오토릭샤 운전사가 80루피를 달라고 해 50루피로 깎았다. 힌두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남부지역은 영어도 북인도와 발음이 달라 거의 알아듣지 못하겠다. 인도에서 27개월을 근무한 이 소장도 남부 인도 사람들 영어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다. 인도에는 알려진 언어만 6천개나 된다고 하고 공용어만 무려 18개다. 주마다 언어가 달라 사람들마다 대개 3~4개 언어는 한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무척 덥다. 천장에 팬이 달려 있는데 그걸 켜면 시원하고 끄면 덥고. 개미인지 모기인지 모를 벌레들이 밤새 살을 깨물었는지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2008.12.11

델리는 8개 왕국이 수도를 삼았던 곳인데 이전 왕국 터를 피해서 수도를 건설했기 때문에 8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올드 델리라고 부릅니다. 정부 청사가 있는 곳을 뉴델리라고 부르구요.

빈민굴과 먼지, 악취로 들끓는 델리에 이런 쾌적한 곳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여기는 바하이 교 본부입니다. 오늘날 이란에 살았던 바합 이라는 무슬림 신자가 세계 종교는 모두 한 하느님을 모시는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을 주창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도 된 팜플렛도 있더군요.
커다란 공원에 깨끗하고 깔금합니다. 사회적 편중 현상이 참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나라입니다.

 


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힌두교 계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랍니다. 여기 견학왔다고 합니다.




왼쪽 아래쪽에 신발을 벗어 맡기는 곳이 있고 맨발로 계단을 올라가 본부 건물로 들어갑니다.

 


본부 건물에서 입구쪽을 본 모습입니다. 끝에는 바하이 교 창시자들의 행적과 역사를 전시하는 전시관입니다.
이스라엘 처자가 열심히 설명을 해 주더군요.

 

 


델리 꾸탑 미나르(Qutab Minar)궁에 있는 꾸탑 미나르 탑입니다.
높이 72.5m, 아랫변 폭 16.5m, 꼭대기 폭은 2m입니다.
델리를 처음 점령한 이슬람 사람들이 13세기에 만든 궁전인데 지금은 저 탑이 델리의 고도제한 높이라고 하네요.

 


가까이에서 본 꾸탑 미나르 탑 하단부. 엄청난 규모, 수백년 지진에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대단한 건축물

 


꾸탑 미나르 궁전 중간 문

 


기원전 4세기, 찬란한 불교 왕국을 만든 찬드라 굽타 2세가 세운 철기둥에 새겨놓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
순도가 얼마나 높은지 녹이 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단한 제련기술에 현대인들도 감탄을 한다네요.
이 기둥은 여기가 굽타왕국의 비누슈 사원 정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굽타 미나르 궁은 그 찬란한 불교-힌두교 왕궁과 사원을 파괴하고 세운 건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합니다.

 


꾸탑 미나르 탑과 찬드라 굽타 왕의 쇠기둥 

 


점심을 먹은 델리 근교 Farm의 정원 수영장

 


이 정원에는 산책로가 있고 바깥 세상 인도와 다른 별천지 입니다.

 


담장 바깥에 있는 비참한 인도와 식민지 시절부터 상위 카스트와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Farm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인도는 사실은 세계 최고의 차별국가입니다.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방이 16개 가 넘는 저택. 인도인에게 빌려서 식당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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