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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인도기행(2009년)

타지마할

by 연우아빠. 2008. 12. 16.
인도에 다녀온 3박6일간 이야기(2008.12.9~12.14)

인도 현지에 있는 협력업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해외출장을 기안했다. 금년 한해 각 지역본부에서 우수한 실적을 낸 사람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각 1명씩 선발하여 보내기로 하였으나 결재과정 중에 이사님 지시로 출장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원래 보내기로 했던 한 사람을 교체하라는 지시로 후순위 대상자에게 연락을 하였으나 모두들 갈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요즘 토,일요일에도 지역본부는 업체 지원을 위해 출근하고 있다. 해외 출장은 그만큼 자기 일이 쌓이게 되는 셈. 지역본부에서 갈 사람을 찾지 못하자 결국 실장님이 사업 담당 팀장인 나더러 총대를 매란다. 출장 일정은 하필 솔바람 첫번째 오프모임으로 하기로 한 날과 딱 겹쳤다. 지역본부 담당자 1명과 함께 내키지 않는 출장을 가게 되었고 결국 준비했던 솔바람 첫 번째 모임은 내년 봄으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닥친 원화의 심각한 약세, 불편한 사회 인프라, 게다가 출발 1주일 전에 뭄바이에서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 연말에 쏟아지는 시급을 다투는 업무 등등... 갈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원래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뭄바이는 비용 부족으로 뺀 것이 조금 위안거리라고 해야하나? 델리 사무소에서 전해 온 소식은 다음 테러 목표는 델리라는 예고가 있었다고 하고 CNN에서는 오보였지만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총격전도 있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암튼 찝찝한 출장이었지만 일단 결정된 일이라 할 수 없이 나갈 밖에...

 

델리에서 근무하는 현지 소장에게 세부일정을 현지 사정에 맞춰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밀려드는 업무처리에 지방출장 가는 것 이상으로 챙겨보지도 못한 채 날짜가 지나갑니다. 간신히 론리플래닛 인도편을 사서 긴 비행시간 동안 읽으면서 가기로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론리 플래닛은 명성에 비해 인도편은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다음엔 론니 플래닛은 사지 않을 생각입니다.

 

델리 주재 소장은 학교 후배라 들어갈 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라고 했더니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은 것을 받아서 가져와 달라고 합니다. 배달되 온 것으로 보니 아이들 과자, 라면, 호빵, 햄, 소시지 같은 생필품이 박스 2개 정도 됩니다. 군침을 흘리는 연우와 준기를 뒤로 하고 박스포장을 새로 해서 12월 9일 저녁 7시 40분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출발 전 기상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니 델리는 1℃ ~ 23℃ 수준으로 일교차가 큰 건조한 날씨이고, 첸나이 쪽은 기온은 25℃ ~ 30℃ 사이, 습도는 50% 정도로 생각보다는 습도가 낮았습니다. 짐을 25리터짜리 배낭 하나로 줄이려다 양복 때문에 할 수 없이 작은 핸드캐리어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공 항에 도착해 시계를 인도시간으로 맞추고 시차적응을 위한 자기최면을 걸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일정표를 보니 현지시간 새벽 1시에 도착하고 10일날은 일정이 없네요. 환율이 춤추는 바람에 출장계획이 워낙 왔다 갔다해서 현지 업체들과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듯, 그 대신 무갈 제국의 옛 수도인 아그라 여행을 넣어 놓았습니다. 인도에 왔다가면서 아그라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델리 소장의 말을 듣고 좀 내키지는 않았습니다만 인도를 왕래하는 비행기가 델리를 기점으로 화, 목, 토 심야에 있어서 하루는 빌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일단 현지에서 추천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예상 비행시간 9시간. 유럽 갈 때랑 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좀 놀랬습니다. 그렇게 먼나라였던가? 비행기 안에서 저녁과 수시로 주는 샌드위치로 긴 비행시간을 때웠는데 새벽부터 강행군하는 일정이라 잠을 청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결국 선잠 3시간 정도 자다깨다 하는 것으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을 따라 델리로 들어가는 비행코스인데 한밤중이라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비행기 운행시간이 모두 한밤중 뿐이더군요.

 

눈은 아프고 잠은 다 달아나버렸고 기장은 예상시간 보다 조금 빠른 현 지시간 새벽 00:45 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한다고 알려준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근처에 오자 지상에 불빛이 약간 보일뿐 지상은 캄캄한 세계다. 랜딩기어를 내리는 소리가 나면서부터 이상한 냄새가 기내에 퍼진다. 안개가 많이 낀 듯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은 뿌옇다. 국제공항이라 부르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 입국 심사대를 거쳐 수하물 찾는 곳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싶었는데 수하물 찾는 곳에 도착한 다음부터 ‘역시 인도구나!’ 하는 소리가 나온다. 하염없이 기다리길 40분쯤 했을까, 수하물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20분이 넘도록 느릿느릿 늘어진다. 뭄바이 테러 이후 마중객들은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단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지 소장을 생각해 짐을 찾자마자 밖으로 잰걸음으로 나가는데 보안 경찰이 부르더니 짐 가진 사람들은 모두 X-Ray 검사기를 통과시키라고 합니다. 델리 공항 입국심사장에 X-Ray 기계는 1대 뿐. 입국심사 끝나고 X-Ray검사 하는 나라는 처음이네요. 밖으로 나오니 새벽 3:00 현지 사무소장이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 옵니다.

 

담 배값이 엄청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온 담배 한보루를 현지 소장에게 전해 주고 그 친구가 오랜만에 피운다는 담배를 즐길 시간을 잠시 준 다음 타고 온 자동차의 기사를 불렀습니다. 하루동안에 아그라를 왕복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서둘러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가져온 짐 가운데 냉장고에 들어가야 할 것들이 있어서 집에 갔다놓고 가라고 권했습니다. 공항을 나와 이 소장의 집을 향해 가는데 도로는 평탄하지 않았고 안개는 무척 심하고 공기는 아주 탁했습니다. 무척 건조한 느낌이 듭니다. 집에 도착하니 맨발로 문을 열어주는 현지인이 있고 짐을 2층으로 올려 주는 현지인이 따로 있습니다. 이 소장 부인께서 새벽에 일어나 차와 과일을 내 줘서 무척 미안했는데 제가 배달해 준 물품들이 여기서는 너무 귀하다고 하네요. 화장지 같은 경우는 60루피 정도 하는데 우리 돈으로 2천원도 안되는 돈이지만 여기서는 인구의 70% 정도가 4인 가족 하루 생활비보다 크다고 합니다.

 

거 느리는 사람이 많아서 무척 부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현지사람을 심부름꾼으로 고용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건비가 워낙 싸기도 하지만 현지에서 안전을 위해서도 이런 고용은 주재원들에게는 불가피한 일이라 청소, 주방일, 운전, 식품가게 출입 등에 필요한 현지인을 고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도에 머물렀던 동안 그런 사회구조를 확인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긴 그래도 11억 인구 가운데 실업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할 말 없습니다. 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는기는 어려운 현지 상황이라 이래저래 힘들다고 하네요.

 

인 도는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는데 사정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은 무슨 호화저택에 사는 것으로 안다고 합니다. 인도는 집 바닥이 대부분 대리석인데 여기는 나무가 귀하고 무른데다가 흰개미 때문에 건축자재로 사용하지 못하여 대신 대리석을 쓴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무척이나 뜨거워 발을 디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차 한잔 하고 함께 나온 오렌지 비슷한 과일을 먹었는데 정말 맛 이 없더군요. 이탈리아 오렌지와는 천지 차이.

 

새 벽 3시 30분 아그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라는데 고속도로가 우리나라 지방도로 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안개가 갈수록 심해져서 델리를 벗어나자 1미터 옆에 있는 차선도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안개가 없어도 인도의 고속도로에서 시속 50km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작 230km 떨어진 아그라까지 가는데 6~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직접 체험해보니 이해가 갑니다. 뭄바이를 습격한 단체에서 다음은 델리를 공격할 것이라 경고했다지만 인도의 교통 사정상 내륙에 있는 델리를 테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말 실감했습니다. 그런 도로인데도 통행료는 받더군요. 그래도 이 도로는 최근에 놓은 8개 고속도로로 인도에서 최상급 도로라고 합니다. 게다가 모든 차들이 엄청나게 클랙션을 울려댑니다. 나 여기 있으니 피해라라는 뜻이라는데 인도에서는 모두 철학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안 개가 너무 심해서 아그라 가는 중간에 2번 쉬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수시로 느꼈습니다. 엄청나게 큰 트럭들이 덤비는데 여기서는 역주행도 예사로 한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 소가 와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신에게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길 가에 있는 맥도널드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이 소장 부인께서 싸 주신 김밥과 함께 먹었습니다. 인도의 햄버거 가격은 유럽과 비슷한데 닭고기나 양고기를 햄버거에 쓴다고 함. 가격 수준은 이 나라 국민 거의 대다수가 사먹을 수 없는 가격이라고 합니다. 빈부격차의 극심함을 느꼈습니다. 맥도날드 매장에는 화장실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곳을 제외하면 모두 노상방뇨합니다. 양복을 입었건 맨발로 다니는 현지인이건 관계없이...

 

렌 트카 기사는 아마 굶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인정상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은 이 곳 카스트 제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네요. 같이 먹자고 해도 인도인들이 절대 같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외국인을 두려워하며 접촉하길 꺼린다고 합니다. 외국인은 일단 불가촉천민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단지 한국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항상 Sir라는 경칭을 붙여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렌트카 기사가 밥도 안 먹고 잠도 못잔 것 같아 인정상 쉬어가자고 하고 챙겨먹으라고 편리도 봐 주자고 했는데 결국 이것이 나중에 사단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대접을 해 주면 현지인들은 자기가 중요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우리가 요구하는 내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 친구가 엉뚱한 짓을 계속해대는 바람에 결국 렌트카 회사 사장에게 클레임을 제기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동네마다 법이 다른데 현지 사무소장 얘기를 따라야 했는데 우리 잘못이 큽니다.

 

* 인도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 전자의 카스트 지위에 따라 상황이 결정나는 경우가 많으며 현지인들은 절대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고 함. 경찰에 신고하면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차량을 몰수한다고 함. 돈이 있는 사람이면 돈으로 서로 해결하고 돈이 없는 사람이면 운전자를 상대방이 몽둥이로 돈 값어치만큼 때린다는 이야기. 심지어 죽어도 우리돈 3백만원만 있으면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들만큼 이상한 풍습과 제도에서 사는 나라라고 함. 이런 이유로 절대 현지인이 아니면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고 함. 추월, 역주행은 다반사이고 주행선 추월선 개념도 없음. 클랙션은 내가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거의 매순간 클랙션을 울리면서 다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음. 현대 자동차가 잘 팔리는 이유가 클랙션이 절대 고장나지 않는다는 현지인의 입소문 때문이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있음 *

 

이 날 운전한 렌트카 기사는 40살 정도 되 보였는데 28살이라고 해서 놀랬습니다. 거의 6시간이 걸려 타지마할 동쪽 문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주차했는데 원래 관광객은 서쪽 문으로 간다고 하네요. 이 친구가 우리를 우습게 본 행동이라고 합니다. 친절함을 보이면 꼭 이런다는 군요. 아그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이 친구가 차를 세우더니 앞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방금 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러 갔다고 하네요. 그런 경우 그 고양이를 보지 못한 다른 운전자가 앞질러 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간답니다. 한번은 새벽 1시에 귀가하는데 집 근처에서 그런 일이 생겨서 걸어가면 10분 거리인 길을 2시간 동안 서 있었답니다. 고양이를 보고도 운전을 계속하면 사고가 나서 죽는다나요.

 

서 쪽문 쪽이 입장하는 길도 가깝고 숲도 많고 더 나은 듯합니다. 안개가 너무 심해 10미터 앞에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이 거의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는데 우리를 안내한 이 소장은 타지마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일부러 타지마할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일출이 유명하답니다. 안개 때문에 타지마할의 일출은 보지 못해 아쉽다고 하네요. 차에서 내리기 전, 이 소장이 주의사항을 알려주는데, 인도 사람이 말을 붙여도 절대 모르는 척 할 것. 아는 척 하거나 호감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계속 달라붙어 앞으로 걸어가지도 못하게 될 정도라고 합니다. 절대 동냥을 주지 말 것. 그건 오늘 여기 잡혀 있겠다라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합니다. 외국인의 주머니로 온 인도의 가난을 구제할 수 없으니 그 점 명심하랍니다. 마음을 다잡고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온갖 것들을 들고 사라고, 보라고, 동냥 달라고 사람들이 달라붙습니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계속 앞만 보고 걸어갔습니다. 동쪽문에 도착할 때까지 길 옆에서 계속 그런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개도 많고 소도 많고, 소는 주인이 있는데 그냥 풀어서 키운다고 합니다. 저녁이 되면 알아서 집으로 들어온다고 하고. 소 훔쳐가는 사람도 없답니다. 델리를 개발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델리시내에 있던 소 상당수를 트럭으로 실어 델리 외곽에 내려 놓았다고 합니다. 델리 시내에서도 소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아그라의 타지 마할(Taj Mahal)]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무갈제국 황제 샤 자한이 두 번째 부인 뭄타지 마할(Mumtaz Mahal) 을 위해 지은 무덤입니다. 마할은 집(또는 궁전)이라는 뜻이고 뭄타지는 덕성스러운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22년간 지은 건물로 하얀색 대리석을 이용해 지었는데 잘 알려진대로 전후좌우 사방팔방이 완벽한 대칭형입니다. 나무하나, 풀 한포기까지도 대칭을 만들어 놓았고 심지어 야무나 강(Yamuna River) 건너편에 자기 무덤으로 검은 타지마할을 지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타지마할과 완전히 똑같은 건물로. 샤 자한은 건축에 대단한 집념을 보인 왕이었는데 하얀 타지마할이 지금은 공해로 회색으로 변질되어간다고 합니다. 요즘 팩을 해서 조금 하얀모습을 되찾긴 했다고 합니다만. 타지마할 서쪽 2km쯤에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샤 자한을 폐위시켜 유폐했던 아그라 포트(Agra Fort)가 있습니다. 붉은 사암으로 건축해 Red Fort로 부르기도 합니다.

 

타 지마할에 안개가 너무 심해 건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10:30분이 거의 돼서야 간신히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타지마할 본체가 있는 하얀 대리석 기단부에 올라가려면 맨발로 가거나 관광객을 위한 덧신을 신발에 덧씌워야 갈 수 있습니다. 인도정부에 많은 관광수입을 안겨 주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관리상태는 역시 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전후좌우대칭으로 무갈제국 건축의 백미로 평가받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기술자를 불러들여 타지마할을 짓는 바람에 국가재정을 파탄 낼 정도였다고 하는데 검은 타지마할 축조 계획을 듣고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아그라 포트에 유폐시켰다고 합니다. 타지마할 옆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타지마할 터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인공위성 사진을 보니 터가 있습니다. 타지마할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제한합니다. 몰라서 후레쉬 없이 묘실을 하나 찍었습니다.

 

타 지마할 출입문에 글씨를 새긴 대리석 장식은 바위 한덩어리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부러뜨리지 않고 옮겨 붙인 기술이 참 대단합니다. 작은 꽃 장식은 모두 색깔이 있는 대리석을 섬세하게 따다 붙여 가까이서 후레쉬를 비추면 아름다운 빛이 납니다. 사방의 창은 대리석을 깎아서 벌집 같은 6각형 구조로 만들었는데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내부의 습도를 낮춰 건물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 돋보입니다.

 

타 지마할을 나오니 온갖 기념품, 사진을 들고 나와 사라고 하는 호객꾼과 오토릭샤를 타고 가라고 흥정을 붙여오는 사람들이 득시글 거립니다. 그 길을 걸어나와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로 갑니다. 고속도로에는 소들도 유유히 다니고 트럭, 오토릭샤, 승용차, 오토바이 심지어 자전거까지 다닙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고속도로 개념은 통행료 받는 것 외에는 없네요. 외국인이 먹을만한 식당이 없는 인도. 가까이 있는 호텔을 찾아 갔지만 뭄바이 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해 투숙객이 아닌 외부 식사 손님은 받지 않는 호텔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고속도로 옆에 있는 무갈호텔은 다행히 식사 손님을 받아줘서 보안검색을 받은 다음 들어갔다. 호텔 경내에 들어서니 완전히 다른 나라 같다. “인도의 모순이 한눈에 보이시죠?” 이 소장이 묻는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인도의 빈부격차와 사회모순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저 문 밖에는 더럽고 흙먼지 날리는 인도가 있고 이 안에는 아름다운 분수, 산뜻한 정원, 옛날 이슬람 제국의 화려한 복장을 한 안내원이 인도를 하고 사방에는 깨끗한 잔디밭과 연못이 있다. 건물 안에는 화려한 상들리에와 유럽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 그리고 가정집과 다른 고급스럽게 보이는 대리석 장식.

 

호 텔 지하 1층에 인도식 식당 페샤리(Feshawri)에는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한명도 없다. 양념에 재워 구운 양고기, 양파 무침, 인도식 화덕 탄두리에 구운 발효하지 않은 빵 “난”을 시켜서 먹었다. 다양한 소스와 향신료는 생각보다 먹을만 했고 이국적인 독특한 맛과 향기가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향신료 때문에 인도는 작은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800년간 지중해를 지배할 수 있게 했었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사벨라 여왕의 욕망을 자국해 유럽 침략자들을 불러들였다. 17세기 아시아의 2대 강국이었던 인도는 그 침략자들에게 역사도 영토도 갈갈이 찟겨 4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니 향신료 맛이 새롭다.

 

메 뉴판은 식물성(초록색)과 동물성(붉은색) 메뉴로 구분해 놓았는데 이 나라는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뚱뚱한 사람들 가운데 채식주의자가 많다고 한다. 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기름에 튀겨서 먹는 음식이 많아 뚱뚱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도인의 약 85%는 힌두교도라서 소고기를 먹지 않으며 무슬림이 10% 정도인데 이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상대방 입장을 존중해 인도인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닭고기이고 그 다음이 양고기라고 한다. 양고기는 원래 냄새가 많이 나지만 향료와 양념을 잘 버무려 2~3일간 재워놓은 다음 요리하기 때문에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양고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팍팍한 돼지고기 같다.

 

* 뭄타지 마할, 샤 자한 그리고 아우랑제브에 얽힌 전설*

샤 자한은 뭄타지 마할을 너무나 사랑해 전쟁 중에도 그녀를 꼭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둘째 왕비였던 뭄타지 마할은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그녀를 위해 영원한 무덤인 타지마할을 지었다. 샤 자한은 다음 생에 뭄타지 마할과 다시 맺어질 수 있는 지 알아 보려고 예언자를 찾아갔다. 예언자는 뭄타지 마할은 전생에서 공주였고 샤 자한은 가난한 건축가였다고 한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하려 했으나 그 지역의 유력한 부자의 방해로 실패했고 부자와 결혼하는 것을 피하려고 뭄타지 마할과 샤 자한은 다음 생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 생에서 왕과 왕비로 만난 두 사람은 오래 해로하지 못하고 다시 헤어지게 되는데 둘이 다음 생에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타지마할과 검은 타지마할이 필요했다고 한다. 샤 자한은 다음 생에서 뭄타지 마할과 맺어지지 위해 검은 타지마할과 타지마할 사이에 있는 야무나 강 아래로 지하 터널을 뚫어 두 건물을 연결하려고 했다고 한다. 예언자는 그 부자가 다음 생에서 이 두 사람이 부부로 맺어지지 못하게 또 방해할 것이라고 했다. 그 부자가 이 생에서 누구냐고 샤 자한이 묻자 예언자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단다. 다만 “그 사람은 아무도 넘지 못한 데칸고원을 넘어 남인도까지 정복하고 데칸고원의 지배자로 설 사람”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은 타지마할 건설 공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국가재정의 파탄을 막으려고 아버지를 아그라 포트에 유폐시켰다. 신하들의 지지를 업고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는 데칸 고원을 넘어 남인도를 정복했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부자는 바로 이생에서 샤 자한의 아들인 아우랑제브였다는 이야기*

 


2008.12.10 인도 타지마할


16~19세기 인도의 지배자 무갈제국. 초창기 수도였던 아그라에 타지마할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무굴(Mughul) 제국이라 배웠는데 현지에서는 무갈(Mughal) 제국이라고 하더군요.


아그라(Agra)입니다. 이 길을 따라 700미터를 가면 17~8세기 세계 최강국 반열에 있었던 무갈제국의 걸작
타지마할이 있습니다. 안개가 많이 걷혔는데도 이 모양입니다.

 
타지마할 동쪽문입니다. 인도는 대리석과 사암이 많아서 건물이 대리석 아니면 사암입니다.
입장료가 인도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4인가족 이틀치 생활비입니다.

 
타지마할 경내에 들어왔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벽면부터 더듬어 봅니다. 하얀 대리석을 파내고 그 안에 형형색색 대리석을 오려 붙였습니다.
손전등을 가까이 대고 비추면 정말 아름답게 빛납니다.
타지마할을 장식하는데 무려 42종이나 되는 보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훔쳐가버려서 이런
대리석 조각 작품만 남아 있지요.


샤 자한과 뭄타지 마할의 대리석 관이 들어 있는 울타리입니다. 여기가 타지마할의 가운데입니다.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아버지의 완벽한 대칭건물의 균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샤 자한의 관은 여기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11시가 넘으니 서서시 주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방 귀퉁이에 서 있는 탑입니다.


타지마할 본 건물 주변에 있는 궁궐같은 건물입니다.


각이 진 것처럼 보이시지요? 실은 평평한 대리석인데 착시현상이 일어나도록
제작한 타지마할의 외벽입니다.


타지마할 주 건물에서 입구쪽으로 본 모습.
샤 자한은 중심선을 따라 좌우 완벽한 대칭건물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렇지만 샤 자한이 처음 건축했을 때는
좌우의 나무 크기와 숫자, 타일 숫자, 바닥 잔디 장식 모양까지 완전하게 좌우대칭이었다고 합니다.
수학과 건축에 미친 사람인 모양입니다.


한 낮이 되자 드디어 타지마할 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장식품은 수많은 도둑들이 약탈해 갔다고 합니다.


부속 건물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사진 구도잡기 좋습니다. 중심선을 맞추면 어디건 좌우대칭입니다.


타지마할 본 건물 건체가 보이는 정원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의 완벽한 좌우대칭


타지마할 부속건물도 완벽하게 좌우대칭입니다. 바깥이건 건물 안쪽이건....


동문을 향해 나가는 방향의 모습입니다. 문 가운데 꼭대기에 종 11개가 보이는데 뒤에 11개가 더 있습니다.
22년간 타지마할을 건설한 것을 상징합니다.


문 아래 쪽에서 위를 보면 안쪽의 문양도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 기하학 무늬입니다.


이제 안개가 완전히 걷혔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왔었네요.


동문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좌우에는 방이 있는데 요즘 게스트 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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