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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러시아(2015년)

바이칼에 가다(4/8)

by 연우아빠. 2015. 9. 15.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4/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4) 2015.08.20.(목) : 벨라고르스크~체르니세브셰크(15개 역)

 

05:25 저절로 눈이 떨어졌다.

시속 50~60km로 달리는 느린 기차는 요람에서 자는 듯, 중간에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잠이 들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벨라고르스크 역 다음에 지나간 역은 스바보드니 역이다.

우리 항일전쟁사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될 자유시 참변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잠을 잔채로 지나갔지만 항일무장투쟁 중에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차창을 내다보니 여전히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시베리아 지평선 위로 태양이 뜬다.

아! 이런 지평선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군.

문득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조선 대표로 다녀왔다는 사신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비록 황량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땅이지만 이렇게 넓은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구나!"

 

차창 밖에 숲을 보며 조금 의아했다.

어제부터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죄다 10년생도 안돼 보이는 어린 나무들 뿐이다.

왜 그럴까?

 

옅은 구름이 낀 마그다가치 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음식을 파는 분은 할머니 한 분 뿐이었는데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자 “사지는 않으면서 말만 시킨다” 화를 내고는 전을 접어서 휙 하고 사라졌다.

영락없는 1970년대 우리나라 할머니다.

 

우리 객실 담당 차장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엘라(ЄЛА) 여사.

성도 가르쳐 주었는데 너무 길고 발음하기 어려워 메모를 하지 못했다.

말문을 트고 나서는 이때다 싶어 생존 러시아어에 있는

“엘라!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라는 말을 써 먹었다.

그 말에 어깨를 으쓱 하더니 아침 점호를 하느라 바쁘다며 차에서 내려 도열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칭찬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외모에 신경 쓰고 평가하는 나라가 좀 병적인 건 맞는 듯하다.

러시아 사람은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엘라 차장은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랬는지 부드럽게 받아 주었다.

그리고 우리 발음을 한번씩 교정해 주기도 했다.

반면 9호차 여자 차장은 엘라 여사와 비슷한 나이 같은데

‘도브러예 우뜨러(Доброе утро)!’라고 아침인사를 건넸지만

통나무처럼 무뚝뚝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대체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것을 예의라고 생각한단다.

9호차 여자 차장은 엘라 차장과 이야기할 때도 무뚝뚝한 표정이다.

 

반면 11호차의 젊은 여성 차장은 키도 크고 매우 상냥하고 친화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사진도 찍어주고 해서 호감을 주었다.

이 분은 우리 가이드 총각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매우 관심을 보여서 우리 일행 중에 연세드신 분들이 사귀어 보라고 부추겼다.

9호차의 남자 차장 역시 우리 일행들에게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여 주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마그다가치 역을 출발한 뒤 어제와 같이 아침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두 도시락의 배달 시차가 너무 길어서 그냥 뱃속에서 섞이기만을 바라야 했다.

그래도 음식은 위에 부담도 전혀 없고 맛있었다.

특히 채소와 과일은 인공적으로 손을 대지 않은 신선한 맛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러시아 여행에서 채소와 과일이 제일 인상에 남았다.

 

여행사에서 500cc 물병 하나를 매일 준다.

게다가 아침 식사에도 물이 딸려 나오니 마시지 않는 물병이 점점 쌓여간다.

나보다 한 살 위인 배 선생님은 내리는 날 이걸로 머리를 감을까? 하며 웃었다.

 

차창 밖에 보이는 자작나무 숲 하나는 나무가 모두 부러진 채 쓰러졌다.

습지가 지나가고 왼쪽에는 태양이 밝게 떠 있는데 오른쪽에는 세찬 비가 내리는 풍경도 보인다.

휙휙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은 군데군데 나무들이 쓰러졌다.

키는 10~15m 정도로 일정하고 굵기도 10년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고만고만한 나무들이다.

하얀 자작나무 사이 사이에 침엽수가 몇그루씩 서 있다.

게다고 잎이 모두 떨어진 채 죽은 듯이 서 있는 숲도 보였다.

 

무너진 집도 보이고 말이 달랑 한 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 목장도 보인다.

 

스꼬보르딘 역을 지나면서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할 일도 없고 몇 량이나 되는가 싶어 헤아려보았더니 82개나 된다.

일행 중에는 120칸을 달고 가는 화물열차도 보았다고 한다.

헤아리다가 그만두신 분들도 있다고 한마디씩 한다.

 

가끔씩 우리가 덥다고 하면 엘라 차장은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우리가 타고 가는 동안은 날씨가 흐려서 기차 안이 덜 더운 편이라고 한다.

한 여름에는 그냥 찜통이되고 6인실은 지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군데군데 오렌지색 야광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레일보수 공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 옆에 여객용 객차 2량만 단 기차가 서 있다.

가이드에게 들으니 인적이 드문 곳이라 철로 보수를 할 때 객차 1~2개만 단 기차를 타고 숙식을 해결하며 다닌다고 한다.

 

오후 1시 40분쯤 엘 파블로프 역에 도착했다.

점심과 세미나를 같이 하는 관계로 다른 승객을 위해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 먹기로 되어 있어서 배가 조금 고팠다.

할머니 한 분이 20여종 정도 되는 다양한 간식을 가지고 나와서 파셨는데

출출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샀다.

우리 객실의 김 선생은 삶은 감자, 고로케를 사서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역사 건물 색깔이 지나온 역과 비슷한 파스텔 톤이었다.

 

헝가리 스카우트 단원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철길 위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헝가리에서 이렇게 멀리 오다니, 대단하다.

우리 옆 호실에 있는 여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그 친구들인 모양이다.

20분쯤 머무르다 다음 역인 야마자르로 출발했다.

사람들은 이제 기차에 익숙해져서 차장이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출발 시간이 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가끔 차장이 "빨리 빨리"라고 한국말로 손짓을 한다.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A조와 B조로 나누어서 매일 점심과 저녁에 번갈아 식사 후 강연을 들었다.

식당 칸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자 조리사는 결국 힘든 일 때문에 울고 말았다고 한다.

73명이라는 대 식구가 아침을 포함해 하루 2끼식 주문해서 먹으니

혼자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돈에 환장(?)하는 자본주의가 여기는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나 보다.

 

점심 강의는 한겨레신문 박창식 논설위원이 ‘우리시대 말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했다.

질문시간에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좀 센 질문을 하고 말았다.

 

신문에서 전두환의 반란을 쿠데타라고 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에 대한 용어 사용도 엄정하게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두개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한겨레신문이 진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세금을 포탈하고 병역을 면탈하는 자들이 보수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고로 한겨레신문은 보수 신문이지 결코 진보신문이 될 수 없음을 얘기했다.

<말과 권력>을 주제로 하는 강의라 그만 평소의 생각을 드러내고 말았다.

 

여행을 몇일 같이하다 보니 사람들과 점점 친해졌다.

술은 단 한방울도 못마시는데 이 방 저 방에서 초대를 해 주셔서 마실을 다니게 되었다.

나보다 1~2살 위이거나 1~2살 아래의 사람들이 많아서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 졸업 이래 이렇게 끝없는 이야기를 하며 날밤을 지새우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배 선생님, 울산에서 오신 이 선생님, 박창식 논설위원, 김보근 이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

다양한 고수들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서로 호구조사를 하다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좁은 듯 하다.

 

2시간쯤 달려서 도착한 아마자르 역은 역사는 시골 간이역처럼 작았다.

객실에서 준기와 한결이는 해바라기 씨와 블랙베리를 한 봉지 꺼냈다.

일행 중에 여러분이 아이들 먹으라고 사 주신 것이라 한다.

 

기차 여행 중에 심심하니 해바라기 씨를 입안에 넣고 하나씩 까먹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데 아주 좋았다.

한참 먹고 있는데 한결이가 심각하게 얘기했다.

 

"아저씨!"

"왜?"

"사실 이 해바라기씨를 받았는데 바닥에 몽땅 쏟았다가 다시 주워 모은 거예요"

"응? 그래! 그럼 흙이 그냥 묻은 채였겠구나"

"네!"

"상관없다. 먹고 탈만 안나면 되지."

 

한결이는 나에게 장난을 친 것이었다. (이 녀석!)

 

밝은 구름이 낮게 낀 서늘한 공기는 기차 안보다 훨씬 상쾌했고 우리나라 초가을 공기 같은 느낌이다.

공기 속에 나쁜 냄새가 전혀 없어서 숨 쉬는 게 정말 편하고 좋다.

 

아마자르 역에서 잠시 쉰 기차는 다시 2시간을 더 달려 모고챠에 도착했다.

모고챠 역에는 긴 구름다리 하나와 작은 강, 그리고 그 강변과 나지막한 산을 끼고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마을이 있다.

마을은 우리나라 1960년대 같은 분위기였으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라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

비로소 시베리아의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딱 캠핑하고 싶은 날씨였따.

 

한결이는 엉뚱한 발상을 하며 잘 논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사준 블랙베리 한 봉지를 마냥 담아두고 있기에 ‘주스를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어떠니?’하고 얘기했다.

그러자 비닐 봉지에 담은 채로 으깨버렸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가지고 다니기 곤란하니 먼저 블랙베리를 빈 물병에 넣어서 흔들어 으깨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해 주었지만 그냥 으깨버렸다. 한참을 주물럭거려서 결국 반 액체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빈병에다 담아보겠다고 했지만, 좁은 물병에 담기는 쉽지 않아서 그만 절반 가까이 주둥이 밖으로 흘러 나오고 말았다.

그걸 치우느라 물 티슈 팩 3개를 다 써버리고 말았다.

암튼 다음에 이런 일을 할 때는 병에 먼저 담은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을 체험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맛을 본 한결이는 ‘시큼해요’하면서 찡그린다.

‘설탕을 넣어야지?’라고 했더니 ‘설탕이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한다.

매일 아침 도시락에 나오는 차에 넣어서 먹으라고 주는 설탕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몽땅 모아서 병에 부어 넣은 다음 열심히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맛을 보니 제법 달콤한 주스가 되었다.

 

저녁은 B조가 강의를 듣는 차례라서 우리 A조는 속칭 전투식량이라고 부르는 행동식으로 짜장밥을 비벼먹었다.

CPX 때 먹어보고 오랜만에 다시 먹어보니 맛있었다.

사실 여행이 즐거우니 뭐든 다 맛있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마그다가치 역으로 기차가 들어가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해뜨는 모습은 빛나는 보석 같았다.

 

 

마그다가치역은 제법 컸다. 플랫폼 바닥은 갈라져서 풀이 자라고 있었다.

하늘에는 열차를 운행하는데 쓰는 전선들이 복잡하게 걸렸다.

TSR은 2003년에 전 구간이 전철화가 되었다고 한다.

 

 

마그다가치 역을 벗어나자 습지가 나타났다.

 

때로 철길 앞까지 이런 숲이 빽빽하다.

 

 

스꼬보로딘역. 정차는 하지만 4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 내리는 사람은 없다.

 

 

스꼬보로딘 역에는 전동차 차고가 있는 모양이다.

 

 

스꼬보로딘 역을 벗어날 무렵 철로보수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이 드문 지역이라 TSR 보수공사를 하는 사람들은 객차 1~2량을 달아서 다니면서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한다.

 

 

스꼬보로딘 외곽

 

엘 파블로프 역

 

엘 파블로프 역에는 할머니 한 분이 많은 간식거리를 들고 팔러 나오셨다.

이날 우리 조는 점심을 늦게 먹도록 예약이 되어 있어서 삶은 감자, 고로케, 러시아식 만두 등

많은 음식을 샀다. 러시아 음식은 강한 맛이 없어서 내 입에 잘 맛았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식당칸에서 먹은 우리 점심.

밥, 스테이크, 야채 샐러드, 호밀빵, 웨하스 등 맛있는 음식이 입맛을 돋운다.

 

 

야마자르 역에 도착하기 전 처음으로 큰 변전소 시설을 보았다.

 

야마자르역 매점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야마자르 역에 블랙베리와 고로케, 달걀을 팔러 나온 노점 아주머니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습지

 

어린 자작나무가 모두 죽은 채로 서 있다.

나중에 바이칼에 갔을 때 되짚어 생각해보니 아마도 자연발화로 불탄 듯 하다.

 

 

철로 주변에 어린 자작나무 군락이 많이 보였다.

 

 

강은 황토처럼 진한 물색을 띠며 흘러간다.

 

 

역사가 아주 작은 야마자르역. 역은 작은데 15분 이상 정차했다.

 

 

TSR을 타고 가면서 본 마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마을 풍경.

작은 강과 언덕 사이에 알록달록한 지붕을 이고 있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모고챠 라는 곳이다.

 

모고챠 역에는 이런 구름다리가 있다.

다들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했다.

상쾌하고 선선한 공기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기차 안에서 우리는 매일 1건씩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열강하고 있는 한겨레신문 박창식 논설위원님.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끄세니브스크 역. 1~2분간 짧게 정차하고 지나갔다. 해지기 전에 이날 마지막으로 통과한 역.

 

 

 

 

 

 

헝가리 스카우트 팀으로 여행 중인 청년들.

깃발을 보니 2015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잼버리 대회에 참가하고 헝가리로 돌아가는 중인 듯.

가운데 모자를 쓴 사람은 객실 차장(러시아의 젊은 여성 중에 키크고 잘 생긴 사람이 많더라는 말을 실감했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모고차 역과 끄세니브스크 사이 풍경(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모고차 역과 끄세니브스크 사이 풍경(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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