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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내장산 야영, 그리고 샘골전국역사페스티벌

by 연우아빠. 2014. 7. 29.

가족이 함께 한 역사퀴즈 대회



지난 4월 중순,

연우가 다니는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에 "제6회 샘골역사퀴즈페스티벌"에 참가 안내 자료가 있었다.


5월10일~11일 1박2일간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을 답사하고

일요일에는 가족이 참가하는 역사퀴즈대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는 정읍. 주최는 전라북도 정읍교육지원청.


평소에 역사과목을 좋아하는 연우가 가보고 싶다고 하니, 아내가 신청을 하자고 했다.

문제는 숙소, 정읍에서 가까운 자연휴양림은 거리가 2시간 가까운 먼 거리에 있었고 그나마 모두 만석.

캠핑장을 알아보았지만, 국립내장산 캠핑장은 선착순이었다.


일단 신청을 해 놓고 안되면 모텔이나 여관에서 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행사는 7월 26일로 연기되었다.


국립공원 내장산 야영장에 숙소를 잡을 궁리를 하던 중

야영장이 7월1일부터 전면 예약제로 바뀌었다.

다른 캠퍼들의 후기에서 좀 시끄럽다는 정보를 얻었지만, 

정읍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이 곳보다 더 좋은 숙소는 없었다.


캠핑과 역사탐방, 그리고 퀴즈대회.

우리 가족 각자가 만족할 만한 좋은 요소를 모두 갖췄다.


무려 1시간 동안 국립야영장 예약사이트는 먹통이었지만 

긴 기다림 끝에 끝에 7.25~7.27 2박3일 야영 예약에 성공했다.



대회가 다가올 무렵, 

태풍이 서해 쪽으로 올라올 지 모른다는 소식과

장마전선이 북상해 우리가 사는 지역에 많은 비를 몇일간 뿌렸다.

출발 몇일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기상청 날씨 앱을 확인하는게 습관이 되었다.

정읍 지역은 금요일 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는 예보.


아내가 다른 숙소를 알아보면 안되겠냐고 걱정스레 말했지만

국립공원 야영의 기회를 날려버리기는 싫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예보에는

비바람이 금요일 밤 9시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로 단축되어 있었고

그 외에 시간은 흐리거나 해가 나온다는 소식.

바람이 초속 4m로 분다는 것과 중국 쪽에서 소멸한 태풍의 구름이 한반도로 들어오며

계속 비를 뿌릴 수 있다는 예보는 출발 직전까지 찝찝했다.


오전에 회사에서 큰 행사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가족과 함께 정읍으로 출발했다.

도착 시간을 고려해서 몇년전에 들렀던 산외면 한우마을에 있는 거북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늦은 도착으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는 것은 심신을 너무 지치게 했던 그간의 경험.

그리고 토요일에 생일을 맞는 연우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자는 생각도 작용했다.


6년만에 다시 찾은 거북식당의 소고기 모듬구이에 등심을 추가로 시켜 넷이서 1kg을 먹고,

내일 생일에 쓸 모듬구이용 고기 한팩을 샀다. 이 모든 비용이 고작 84,000원.


7시가 거의 다 되어서 이 집에 도착했는데 원래는 문을 닫는 시간이라고 한다.

다행히 우리 앞에 손님 한 팀이 있어서 그 분들이 다 드시면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그 분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우리가 도착한 것.

지방에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저녁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영업을 일찍 끝낸다고 한다.

지방 균형발전이 이래서 더 필요한데......



8시가 되어 캄캄한 시골길을 따라 내장산야영장으로 출발했다.

거리는 20km 좀 더 나오는데 시골길이라 40분쯤 걸린다는 네비양의 안내.


낯선 곳에 가서 밤에 텐트 치는 일을 걱정하며 길을 내달리는데

하얀 물체들이 길 가운데를 가로질러 펄쩍펄쩍 뛰어간다.

속도를 줄이고 보니 수많은 개구리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개구리들을 칠세라 조심조심 운전하는데

구간 구간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그치기도 하는데

불빛을 받은 나무들이 바람에 마구 휘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개구리보다 훨씬 큰 물체가 튀어 올랐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놀랍게도 어린 멧토끼였다.


토끼는 자동차 불빛에 놀랐는 지 반대쪽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건너편 차도를 향해 뛰어 갔다.

10여초를 그렇게 뛰어가던 토끼는 정신을 차렸는 지 건너편 숲으로 뛰어 들었다.


"여행 다니며 멧토끼를 본 건 처음이야!" 준기가 흥분해서 말했다.


9시가 거의 다 되어 야영장에 도착하니 예상과 달리 엄청 많은 사람들이 비바람에도 캠핑을 하고 있었다.

짐을 내리고, 우리 사이트를 찾았다.

땅은 흥건히 젖어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그쳤다.


34번째 하는 야영이었지만, 그동안 아빠 혼자 주도하던 텐트 설치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매달렸다.

바람은 심하게 불어 박아 놓은 미군용 강철 팩이 뽑힐 지경이었다.

안내방송은 밤 10시에 경내에 등을 모두 소등한다고 하니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쳐 놓은 텐트는 팩을 박을 새도 없이 바람에 날리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텐트 안에 들어가서 무거운 짐을 텐트에 옮겨 넣어 텐트가 날려가는 것을 막는 가운데

간신히 세팅을 마쳤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젖은 바닥을 대비해 아내와 딸을 위해 가져온 야전침대 조립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깥에서 할 수가 없어

좁은 텐트 안에서 해야 하는 탓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땀이 눈에 들어가서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나왔다.


야침을 설치하고 잠잘 준비를 마친 시간은 벌써 밤 11시가 넘었다.

아들과 함께 서둘러 샤워장으로 달려갔다.

재개장을 위해 정비했다는 야영장의 샤워장은 3꼭지 중 2개가 거치대가 망가진 상태였다.


땀 때문에 티셔츠와 런닝셔츠를 벗는데 옷이 짲어질 것 같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니 지옥은 바로 천국으로 바뀐 느낌이다.

차가운 물을 30분 정도 뒤짚어 쓰고 나니 야영장의 산바람이 너무 상쾌하다.


해발고도가 5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내장산이라는 큰 산을 끼고 있음에도 침낭없이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를 다녀간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차 소리가 매우 시끄럽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귀마개를 가져 갔는데 내장산 야영장에서 잘 자려면 꼭 필요한 물품이라고 생각한다.




새벽 1시쯤 잠들었지만 새벽에 눈이 절로 떨어졌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맑은 구슬 구르는 소리 같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져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했다.



우리가 자리잡은 21번 사이트 주변은 그늘이 잘 되어 있다.

사이트 앞에는 이렇게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한여름에 물 속에서 그냥 누워있기만 해도 피서는 저절로 될 듯하다. 



반면 관리사무소 바로 옆은 아직 나무가 크지 않아서 뙤약볕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





26일 아침, 오랜만에 야외에서 생일을 맞은 연우를 위해 쌀밥을 짓고

아침부터 소고기를 구웠다. 미역국을 끓여 나누어 먹고 오늘 정읍교육지원청에서 준비한 

농학농민혁명 유적지 탐방을 위해 길을 나섰다.


전국에서 미리 신청해 참여한 가족들이 버스 3대에 나누어 타고 탐방에 나섰다.

우리가 탄 차에는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이갑상 선생님이 이동 하는 동안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섞어

역사 유적에 대한 이야기와 농민혁명 전개 과정을 설명해 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셨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중간에 내리지 않고 지나가면서 설명한 유적들이 몇 개 있었는데 사진을 찍느라 메모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사발통문을 처음 만든 곳이 아니었나 ... 기억이 가물가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을 남긴 자의 것이다.

수 많은 동학농민군이 있었지만 이름이라도 남긴 사람은 수천에 불과하다.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그 분들의 영령을 기억해 주기 위해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을 세웠다고 한다.

유명 작가들은 너무 큰 금액을 불러서 무명에 가깝던 김은성 씨에게 조각을 맡겼다고 한다.

김은성 작가는 나중에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성노예 피해 소녀들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만든 작가이다.

글씨는 후암 김진동 선생님이 썼다고 한다.


시대의 패배자로 반역자로 죽음을 당했지만, 그들은 역사의 승자로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는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끈 전봉준 선생이 살던 옛 집 가운데 하나인 조소마을 입구에 있던 마을 우물이다.

조소마을은 새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이 지역 전체 마을 가운데 입구 쪽에 자리잡은 말하자면 "뜨내기"들이 모여 살던 곳인 셈이다.





우물에서 가까운 곳에 전봉준 선생의 고택이 있다.

"초가 삼간"이라는 말처럼 딱 초가 삼칸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촉발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과 그 폭정의 대표격인 만석보 사건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만석보 들판이다.



만석보 비석에서 바라본 거대한 평야

지평선 한 가운데 조금 솟아 오른 삼각형은 120년전 동학농민군이 집결한 백산이다.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농민군은 대부분 죽창을 들고 흰옷을 입었기에 그렇다고 한다.





풍요롭지만 수탈이 그 만큼 심했던 고부 들녁은 바다 같이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혁명 당시 격전지였던 황토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기념관 안에는 농학농민군이 처음 거병했던 정읍 이평면 말목장터 근처에 서 있었던 감나무가 보전되어 있다.

여기 모인 농민군은 고부관아를 공격함으로써 농학농민혁명이 무장투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이평면 사무소 앞에는 이 감나무의 후손 감나무가 이식되어 있다.

감나무 수명이 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감나무를 이렇게 보전처리를 해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1894년 4월25일 무장기포 당시 처음으로 포고문을 발표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중반부터 빈발했던 일반 민란과 다르게 근대적인 혁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참여했던 각 지역 농민군은 깃발을 앞세우고 참석하였는데

이 깃대꽂이는 원래 집의 기둥을 받치던 돌이었다고 한다.

그 만큼 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이 대규모 였음을 알 수 있다.



때를 만나서는 하늘과 땅도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랴

/ 1895.3.30 전봉준 선생의 절명시




참석한 가족들은 삼삼오오 기념관을 돌아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혁명에 대해 배우고 있다.


우리나라와 동 아시아 역사에 엄청난 파장을 남긴 동학농민혁명.

그 혁명을 이끈 주요 인물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호구단자.

일제가 만든 호적과 다른 구조임을 알 수 있도록 옆에는 설명 자료가 붙어 있다.





답사를 마치고, 시내로 들어온 우리 가족은 연우 생일을 맞이하여 특식을 먹으로 25년 정도 된 맛있는 집을 찾아 왔다.

70년대스러운 내부가 타임머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온 듯 하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생일용 케익을 사서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야영장은 시원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주 작은 조각 케익을 사서 생일을 축하하며, 아내는 기습적인 뽀뽀를 선사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앞으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 기회가 얼마나 남았을까?



일요일 오전 9:30까지 퀴즈대회 장소까지 가야 하는데

텐트를 걷고 밥을 먹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해서 9시가 되기 전에 잠을 청했다.


그러나, 옆 사이트에 새로 들어온 가족이 온 동네 친인척을 다 불러모아 번갈아 회식을 하는 모양이다.

새벽까지 주변 사람들 아랑곳 없이 떠들고, 노래하고, 오디오 기기를 틀어 놓아 잠을 방해했다.

관리 사무소에 계속 방송을 하며 고성방가와 주변에 피해주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상당히 많은 가족들이 밤늦도록 이를 무시하며 자기들이 야영장을 전세낸 듯이 떠들며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밥을 짓는 동안 짐을 잽싸게 정리했다.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 열이 오르기도 했지만, 옛날보다는 조금씩 협업자세가 나아지고 있다.

캠핑 34번만에 처음으로 짐을 다 정리하는데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철수를 하면서 보니 텐트 폴대가 바람을 이기지 못했는지 중간 부분이 1cm쯤 찢어졌다.(두랄루민 폴대인데...)


짐을 싸고 5분동안 계곡에서 등목을 했다.

생각같아선 온 몸을 담그고 싶지만 대회장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불과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야영장을 떠나 눈썹을 휘날리며 대회장에 도착했다.


원래 5월24일에 계획되었던 행사가 7월26일로 밀리면서 신청했던 가족 가운데 절반만 참가를 했다,

대구 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가족들이 찾아왔고 멀리 캐나다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이만세 교수의 사회로 시작한 행사는 참가자들끼리 악수와 포옹을 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예선 20문제 중 18문제를 맞춰 12문제 이상을 맞춘 팀만 본선에 올라가는 조건을 맞췄다.

본선에서는 틀리면 바로 탈락하는 방식이라 많은 지식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공부를 전혀 안하고 가서 아이들 평소 실력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대상을 받은 가족은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는데

우리는 다행히 은상을 받아 정읍시장님의 상을 받게되었다.


여행도 하고 재미도 있고 경품도 받고 이만하면 됐지 뭐.


매년 5월 중순에 개최하는 이 대회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하는 역사행사라서 특색이 있고

가족과 함께 맛있고 아름다운 전북지역을 여행하며 퀴즈 풀이도 해 보는 재미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