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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최종병기 활(弓, 活)

by 연우아빠. 2011. 9. 14.

최종병기 활(2011.9.10)

광해군이 서인들 손에 왕위에서 끌려 내려오고 능양군이 인조로 등극하던 날, 주인공 남이의 아버지는 서인들이 보낸 군사들에게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는 개성에 살고 있는 절친인 김무선에게 달아나 그 집에 의탁하라는 명을 남기고 남이와 여동생 자인이 도망가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러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아버지의 최후를 목격한 남이는 동생을 데리고 개성으로 달아나 김무선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아버지가 남겨준 활에는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 : 앞은 태산처럼 무게를 두고 시위는 호랑이 꼬리처럼 말아 쏘라)라고 쓰여 있다.

남이의 아버지는 광해군 시절의 무장으로 북방에서 장수로 지내기도 했고 후금의 침략을 초래하지 않은 현명한 임금의 정책에 동조를 해 보수파 서인들의 미움을 받아 살해가 된 듯하다. 개성에 사는 그의 친구 김무선 역시 같은 무장으로 남이의 아버지와 뜻을 같이 했던 것 같다.

13년 동안 김무선의 집에 기거하며 남이는 곡사(휘어 쏘는 활)를 연마한다. 남들이 볼 때는 과녁을 전혀 맞히지 못하는 듯 했지만 사실은 과녁의 뒤에 숨어 있는 다른 과녁을 쏘아 맞추는 기술을 닦았던 것. 역적의 자손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살았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헛되지 않았던 듯. 어느날 김무선의 아들 김서군이 진심으로 자인을 위하는 것을 확인하고 자인과 김서군이 혼인을 하도록 허락한다. 혼인을 하던 날, 길을 떠나려던 남이는 개성을 함락시킨 청군의 침략을 목격하고 동생을 구하러 되돌아 가다가 쥬신타의 부대와 맞닥뜨린다. 개성을 함락시킨 청군은 김무선을 죽이고 김서군과 자인, 그리고 수많은 조선 사람을 포로로 잡아 심양으로 끌고간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쥬신타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치열한 두뇌 싸움, 활과 활이 부딪치는, 강력한 힘과 힘이 충돌하는 장면 그리고 숨 막히는 순간이 계속 이어지면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서야 숨을 쉴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정말 깔끔하게 잘 만든 영화다.
시간 가는 것을 모르다가 "어!? 벌써 끝났어?" 하는 영화.
좋다!

 



주인공 남이의 역을 맡은 박해일. 사진출처 : www.2011hoot.co.kr


 

 

<기억에 남는 대사>

 

*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인조반정에 가담한 서인의 군대들이 남이의 일가를 잡으려고 집으로 쳐들어온다. 남이의 아버지는 어린 남이에게 묻는다.

“두려우냐?”

“예, 아버지”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러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 내 활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여기에서 활은 활(弓)이기도 하고 활(活)이기도 하다. 

남이의 활은 적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 

막다른 협곡을 건너 뛰어 달아나는 남이를 쫓는 쥬신타의 정예 병사들. 

남이는 한 순간 협곡에 매달린 쥬신타를 사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남이는 협곡을 건너 뛰던 쥬신타의 부하를 활로 쏘아 떨어뜨린다.

바위에 매달려 있던 쥬신타는 활에 맞아 추락하는 자기 부하를 살리기 위해 한쪽 팔을 뻗어 잡는다.

그 순간 쥬신타를 겨눴던 남이는 쥬신타를 쏘지 않고 다시 달아난다.

 쥬신타와 남이는 적이지만 멋진 사람들이었던 셈.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 기와 기가 부딪치는 대결이었던 셈

 

 

* 나라와 백성을 버린 임금이야말로 제일 큰 역적이다


병자호란 때 홍타이지는 인조의 항복을 받았다. 조선 백성 수십만명을 심양으로 끌고 갔는데 돈을 들고 와서 속량해 갈 수 있다고 조건을 걸었다. 또한 도망친 조선 백성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달아나면 조선 관리들은 그들을 잡아 청나라로 돌려보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다시 조선을 치겠노라고 공언했다. 조선 관리들은 탈출해 오는 조선 백성을 다시 청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탈출해 오는 조선 백성은 역적으로 간주하겠다고 한다. 남이가 자인을 구하려 압록강을 넘으려는 것을 동료들이 말리자 남이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사람이 굶주리면 시야가 흐려져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적과 싸울 수 없다.
내 아버지가 가르쳐 준 사람이 음식을 먹는 이유는 배불리 먹고 적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도르곤에게 끌려간 자인은 도르곤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한다. 화가난 도르곤은 살려달라고 할 때까지 막사 앞에 묶어 세워둔다. 얼마 뒤 탈진한 자인이 도르곤에게 음식을 청하고 도르곤은 열심히 먹는 자인을 보고 한마디 한다. “우리 아버지는 노예들을 다스리려면 먹을 것을 가지고 통제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하자 자인은 도르곤을 노려보며 이 말을 하고 나서 음식을 꿰었던 꼬치로 도르곤을 공격해 죽이려한다.

 

 

*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


마침내 허허벌판에서 추격해 온 쥬신타와 맞선 남이. 공교롭게도 남이를 구하기 위해 칼을 들고 달려 온 자인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된 남이와 쥬신타. 남이에게 남은 것은 화살 한 개 뿐. 한 방에 쥬신타를 사살하지 못하면 자인이 죽는다. 남이는 곡사기술로 자인을 피해 쥬신타를 사살하려 하나 바람 때문에 화살을 날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자 쥬신타는 “바람을 계산하고 있는가? 바람도 결국 네 편이 아니구나”라고 한다. 남이가 날린 화살은 순간 멈춰버린 바람 때문에 빗나가고 쥬신타가 쏜 화살은 남이의 가슴에 명중한다. 자인을 사로잡은 쥬신타는 자인의 목에 칼을 댄다. 남이에게 남은 것은 자기 몸에 박힌 쥬신타가 쏜 화살 하나. 자인은 자기를 구하기 위해 오빠가 그 화살을 뽑을 것을 알고 화살을 뽑지 말라고 절규한다. 심장 위쪽에 박힌 화살을 뽑으면 동맥이 터져 오빠가 죽는 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동생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남이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는다. 터진 동맥에서 솟는 선혈. 남이는 침착하게 쥬신타를 겨냥하고 짧은 순간 자인이 만들어준 아주 작은 틈으로 쥬신타의 목을 꿰뚫는데 성공한다. 쓰러진 쥬신타를 향해 남이는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쉬운 점]


* 어린 남이와 자인을 추격하던 조선병사들이 개를 사용하는데 삽살개나 진돗개, 풍산개가 아닌 셰퍼드(?)

 

* 영화에서 사용한 말은 우리나라와 만주가 원산지인 과하마가 아니라 서양말이었음. 서양말은 단거리에는 강하고 키가 커서 멋있어 보이지만 체력이 약해 장거리를 달릴 수 없어 유목민들은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음

 

* 역시나 전통(화살통) 착용 방법이 조선이나 만주족 방식이 아니라 서양식으로 찬 모습. 일부 칼 찬 모습도 허리에 차는 패도가 어깨 뒤로 보이는 점. 화면의 비주얼 때문일까?

 

* 만주족은 기마민족인데 말을 버리고 달리기로 적을 추격하는 장면. 마상재의 백미는 말을 탄 채 몸을 반대로 틀어 활을 쏘는 것인데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할 장면에서 보여주지 못한 점. 이런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전문연기자가 부족하고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그런 전문 연기자들이 먹고 살만한 수준까지 성장하지 못했다는 반증. 언젠가 해결되기를 기대함

 

* 호랑이를 그래픽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우리나라 영화시장 크기가 문제

 

 

[잘된 점]

 

* 지금은 죽은 말이 된 만주어를 사용했다


만주족은 현재 1천만 정도가 있지만 만주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중국에도 4~5명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 만주어를 영화에서 사용해 실감을 높였다.

 

* 전투장면의 실감도가 다른 사극에 비해 높았던 점

 

- 한방에 훅 가는 적도 오버하는 아군도 없어 지극히 리얼리티가 높았다는 점

- 적군이나 아군이나 멋있어서 적과 아군이 모두 빛났다는 점

- 비분강개나 우국충정 따위의 허접한 감정오버가 거의 없었다는 점. 다만 역관이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인간사냥을 하려던 청나라 장수의 의도를 포로로 잡힌 조선백성들에게 정확하게 알려 주었으나 불안했던 몇십명이 결국 달아나 화를 키우는 장면. 당시 역관들 가운데 조국에서 당했던 멸시를 앙갚음한 사람들도 있었고 멸시를 당했으면서도 조선을 돕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도 있었음

 

* 설명을 생략하면서도 세부 사항의 전개를 치밀하게 구성했음

 

남이가 명궁이 된 과정, 남이가 청의 왕자 도르곤의 막사에 잠입해 들어가 여동생(자인)을 구출하는 장면에서 적은 숫자로 압도적인 청나라 병사를 제압하기 위해 도르곤의 몸에 기름을 부어 놓는 장면, 적이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몸이 느린 사람을 미리 도주시키고 추격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전부 쫓아내고 탈출하는 장면 등

 

* 여성들이 찌질하게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

 

- 특히 남이의 동생 자인(문채원)이 무장 집안의 여성답게 활쏘기와 칼쓰기를 적절할 때마다 제대로 소화해 낸 점

- 남편(김무열)이 남이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쥬신타(류승룡)를 저격하려고 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팔을 베인 탓에 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하자 대신 시위를 잡음. 너무 먼 거리에 있어 자기 팔 힘으로는 쥬신타를 사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빠가 타고 달리는 말을 활로 쏘아 쓰러뜨려 쥬신타의 화살을 빗나가게 만들고 오빠를 구하는 장면

- 자인을 인질로 잡고 남이를 죽이려 하는 쥬신타. 자인의 몸을 방패 삼고 있어 빈 틈이 없었으나 겨냥하고 있는 남이의 화살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 목을 살짝 움직여 쥬신타의 목을 드러나게 만들어 남이가 화살을 명중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장면

 

- 자인의 시어머니가 역적의 딸인 남이의 남매에게 차갑게 대하지만 혼인날 청나라 병사에게 잡혀갈 때 “안된다 이놈들아”라고 외치며 며느리를 구하려고 뛰어든 점

* 이거 옛날에는 “이놈들아, 날 죽여라”라고 외치며 버마재미 달려들 듯이 달려들다가 어이없이 죽는 모습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러웠음

 

- 자인의 남편 서군이 무장의 아들답게 냉철한 판단력으로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맞춰 적절한 행동을 하며 포로로 끌려가던 도중에 탈출해 조선백성을 구하고, 청군을 제압하는 장면들. 감정과잉이나 행동과잉이 전혀 없이 자연스러웠음

 

 

결론적으로 영화상영시간 내내 한 순간도 빠짐없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 멋진 영화.

 

 

<시대적 배경과 만주족>

 

만주족의 조상은 고구려인이었던 말갈사람이라고 한다(말갈은 부족이름이 아니고, 수도 이외의 지역에 사는 '촌놈'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구려사람에는 거란의 조상인 비려족도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말갈족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발해를 세웠고 일부는 신라의 중앙군대인 9서당 가운데 하나인 흑금서당을 구성했다. 발해가 망하고 만주는 통일된 세력이 없이 거란, 여진 부족들이 흩어져서 살았다. 거란보다 여진은 고려에 더 친근감을 가졌던 것 같다. 10세기 초 야율아보기가 거란을 통일하여 요나라를 세웠는데 그들이 조만간 고려를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여진족이 고려조정에 수시로 알려준다. 군대 이동상황, 규모, 무장상황 등등...그러나 고려 조정은 여진족을 오랑캐라 하여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진족은 계속 고려에 우호적으로 대했고 고려에 귀부해와서 벼슬을 얻기도 했다.

 

때로 식량이 부족하면 고려의 동북면을 침략해 약탈을 하기도 해서 윤관은 별무반을 동원해 여진족을 제아합고 동북 9성을 쌓기도 했다. 여진족의 탄원과 멀어서 지키기 힘들다는 대신들의 오판으로 9성을 여진족에게 돌려주며 고려 접경을 침략하지 말 것을 약조했는데 여진족들은 이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그 이유를 나중에 이들이 금나라를 세워 만주와 화북 지방을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한 뒤에 그들의 역사책에 남겼다. 1115년 금나라를 세운 태조 아쿠타는 역사편찬을 지시했는데 금사 태조본기에 그들 조상의 내력을 남겼다. 태조본기에 따르면 아쿠타의 시조는 6대조인 김함보인데 그는 고려사람으로 고려에서 여진땅으로 넘어와 여진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아쿠타의 부족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김함보에게 형이 있었는데 김아고내로 불교를 좋아해서 고려 땅에 남아서 살았다고 한다. 고려 조정은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멸시했는데 정작 여진족은 고려가 자기들 뿌리라고 생각해 공격하지 않았고,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가 된 뒤에도 고려에게 신하의 예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몽골에게 금나라가 망한 뒤, 1616년 후금을 세울 때까지 여진족은 명나라와 조선 양쪽의 공격을 받아 통일된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선조임금 무렵 건주위를 중심으로 누르하치라는 영웅이 나타나 부족을 통일하고 8기군을 창설한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때 의주에 도피한 선조에게 글을 올려 조선에서 원한다면 2만 대군을 보내 왜군을 바다 바깥으로 몰아내겠다고 제의하지만 명나라의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한 조선 조정은 이를 거부하고 명나라에 알린다. 건주여진과 조선이 협력하여 명에게 위협을 가할까 두려워한 명나라는 즉시 군대를 파견해 조선을 돕는다.

 

명나라 군대의 패악질과 문란한 상황을 목격한 광해군은 건주여진과 명나라 사이의 등거리 외교로 건주여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덕분에 광해군 시대에는 건주여진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광해군은 박엽과 같은 뛰어난 무장들을 전방에 수령으로 부임시켜 군사적인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외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던 광해군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서인들은 결국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옹립해 조선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박엽은 반정 즉시 서인들이 보낸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했는데 서인들이 남긴 광해군일기에 잔악한 탐관오리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탁월한 능력을 기록에서 모두 없애지는 못했다. 남이의 아버지는 이런 분이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닐까?


입만 살았던 서인 벼슬아치들에게 광해군은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대들의 주둥이가 창과 칼이 되어 야인들을 막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역사는 환란에 잘 대비해 미리 예방한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시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제대로 대비를 못해 큰 환란을 초래하여 백성들이 어육이 된 상황에서 이를 잘 수습한 사람들은 위인으로 추앙한다. 위인전으로 이름을 남긴 이들의 대부분이 바로 환란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환란을 초래한 자들이라는 사실이 당대에 살았던 백성들에게 참 슬픈 일이다.


또한 1,300여년 전에는 한나라 한백성이었던 여진족이 1,000여년 전에는 오랑캐 취급을 당하다가 500여년 전에는 야인으로 토벌당하고 마침내 300여년 전에는 완전히 다른민족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 99개가 달라도 1가지가 같은게 있으면 한편으로 삼았던 중국과 99가지가 같아도 1가지가 다르면 오랑캐라 부르거나 적이라고 부르거나 사문난적이라 부르며 배척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