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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유럽연수(2007년)

영원한 도시 로마 (2)

by 연우아빠. 2008. 2. 16.
2007.12.23

성 지오반니 성당에서 콜로세움까지 로마시내 관광



지오반니 성당 건너편에 있는 아씨씨의 성 프란체스코 상

맨발의 성자인 그는 평생 금욕과 절제로 수도생활을 했으며, 
물욕과 부정에 물든 카톨릭 지도자들에게 뼈아픈 경고를 준 인물이기도 하다.
교황은 그의 맨발을 씻기고 입을 맞추는 사죄의 행동을 하였으나 여전히 재물과 권력 그리고 여자에 대한 탐욕을 그치지 않았다.
다만,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양심의 일말이 남아 있었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프란체스코 상 건너편에 보이는 라테란 궁전과 성 지오반니 성당.
프란체스코가 죽은 지 100년이 되지 않아 교황은 프랑스 왕의 포로로 아비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70여년간 포로생활을 했으며
로마 교황과 아비뇽 교황이 갈려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절대권력을 쥔 교황들과 금욕적인 수도자 프란체스코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리....



아피아 가도 출발점 주변의 모습


로마 이 외의 도시에서 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로마시는 75유로의 출입료를 물린다고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로마는 경차나 오토바이를 제외한 일반차량에 대해서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한다.
로마에 <모닝>처럼 작은 차와 오토바이가 많이 이유는 바로 이런 세금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라테란 궁전 동쪽 길 건너에 있는 교황 베네딕트 14세(재위 1740년~1758년)의 기념물



성스러운 계단 성당(Scala Santa, Holy Steps).


십자군 침략 때, 예루살렘을 침략한 십자군이 뜯어와서 이곳에 설치하고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골고다 언덕 계단이라고도 하고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 받으러 밟고 올라갔던 계단이라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지만(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는 예수가 죽고 천년도 더 지난 시기였다)
이 성당은 십자군 침략을 계속해야 할 사회적 명분을 제공하는 좋은 시청각 교재가 되었을 것이다.
십자군 침략시기에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도 나타나는데
젇치인들은 전설도 현재화 하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무릎을 꿇고 한 계단 한 계단 기도하며 기어올라가고 있으며 
우리가 갔을 때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울며 불며 저 계단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온 카톨릭 신자였을까?


아무튼 바이블의 10계명에 따라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는 동로마 황제의 우상파괴령에 로마 주교는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성당안에 종교적 형상을 성상이라고 주장하며 그게 없으면 무지한 게르만 족에게 포교를 할 수 없다고 반항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톨릭은 그리스 정교와 로마 카톨릭으로 두 조각이 났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교리를 가진 한 종교가 우상을 두고 다투다 두 파로 갈라진 역사적 사건이다.


이 길는 늘 이렇게 순례자들로 막혀 있기 때문에 옆에 작은 계단으로 그냥 걸어올라 갈 수도 있게 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고색 창연한 장궤와 조명이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고 28 계단을 이렇게 올라 온다.
 


예배당 안쪽에 굵은 쇠창살로 막아 놓아 접근이 금지된 곳에 이런 유물이 있다.
저건 도대체 뭘까? 성인의 무덤일까?



성스러운 계단 성당을 나와 서쪽으로 라테라노 거리를 따라 1km쯤 걸어 올라가면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 나온다.



버스가 다니는 길은 라비카나 거리
라테라노 거리와 라비카나 거리가 나란히 가는 사이에 옛날 로마시대 유적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장대한 콜로세움이 서 있다.



입장료도 비싸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콜로세움 근처에서 본 도로 파손 흔적
그들이 어떤 형태로 도로 포장을 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쐐기형 돌을 다듬에 땅에 박아 넣는 도로 포장법


원래는 30cm 정도 되는 긴 돌로 만들어 박아 놓은 관계로

세월이 지나 윗부분이 닳아도 그대로 모자이크 모양을 유지하는 도로였다고 한다.

현대 로마의 부실함 ?



콜로세움 옆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콜로세움에 왔다는 기념으로 콜로세움의 벽을 손으로 한번 만져 보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는 동안 보수한 흔적도 많고 사람들 손때도 많이 묻었다.
헐리웃 영화 때문에 여긴 검투사들이 사자들과 싸우는 곳이거나 크리스트 교도들을 죽이는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종합예술공연장이었다.

TV와 영화가 없던 시대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연극 공연, 서커스 공연 같은 문화행사가 주로 열렸고
가까운 곳에 전차경주장도 있는 스포츠 콤플렉스 같은 문화공간이었다.



불을 모시던 베스타 신전 유적
로마 외항인 오이스타 항구에서 포로로마노로 가는 길 가운데 있는 신전으로 

이 신전을 지키는 여자는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다.

콜로세움 옆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나 계속 걸아가며 구경을 한다.



걷다 보니 티베르 강까지 왔다.
일부러 강벽 아래까지 내려가 봤다.
배 앞머리를 새겨 놓은 조형물이 있다.



고대 국가 로마는 이 티베르 강에 기대에 발전했고
이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 영토를 넓혔으며,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막대한 밀 덕분에 죽 대신 빵을 먹게 되었다.



마르셀로 극장(Teatro di Marcello)

로마시대에 건축한 극장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카에살 시대에 착공해 기원전17년에 완성했다.
100년마다 한번 여는 루디 세콜라리(Ludi secolrai) 행사 때 사용하였으며 기원전 11년 옥타비아누스 황제는
조카 마르켈루스가 19살 어린 나이에 죽자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극장을 마르켈루스 극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카피톨리노 언덕(Capitolino) 콘도라타 Cordonata, 저 뒤 쪽이 로마 정치의 중심이었던 포로 로마노가 있다.



카피톨리노 언덕(Capitolino), 수도(Capital)의 어원이 된 곳.
가운데 서 있는 청동 기마상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동상이다.
동상 다리 쪽에 걸게 그림이 있는데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연금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얼굴이다.




비가 오는 밤이라 그런지 카피톨리노 언덕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이렇게 허접한 구석에 로마의 건국 설화인 로물루스와 레물루스 형제의 늑대상이 있다.
캄캄한 포로 로마노는 밝은 날 보기로 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보이는 통일 이탈리아를 이룩한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과 기념관
타이프라이터 처럼 보인다고 해서 저 건물의 별명은 타이프라이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수리중이어서 흰 장막을 쳐 놓았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원기둥(오른쪽)과 성당 건물
트라야누스는 로마 황제 중에 처음으로 본토 이탈리아 출신 아닌 속주 스페인 출신의 황제.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 정복에 성공하여 로마 영토를 최대로 넓힌 황제로 저 원기둥에는 다키아 원정기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포룸. 포로 로마노가 종로라면 이 곳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새로 조성한 신도시.


SPQR(로마 원로원과 시민) 이라는 상투적인 글자와 함께 역대 로마 황제들의 청동상이 서 있다.
16세기 베를리니가 그 가운데 아주 많은 동상을 거둬서 녹였다고 한다.
베드로 성당 공사하는데 자재가 모자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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