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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유럽연수(200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몽마르뜨까지..

by 연우아빠. 2008. 1. 25.
2007.12.13 독일에서 프랑스로 옮겨갑니다.

독일은 소득세가 약 40%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한국인 민박을 하시는 분이 현금으로 결제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더군요.
3주간 쓸 돈을 동료들은 일인당 1,200유로 정도, 저는 850유로 정도 가져갔고 카드를 적절히 쓸 계획이었는데 
첫번째 나라부터 계획이 많이 틀어졌습니다. 

갑자기 현금이 궁해지는 분위기. 앞날이 좀 걱정스럽습니다.



2007.12.13 앞으로 남은 16일간 어떤 나라를 여행할 지 어젯밤까지 갑론을박을 했습니다.
독일 사무소에 근무하는 동기는 베를린을 보고 가라고 권했지만 
동쪽으로 더 들어가 버리면 베를린 다음에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 지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를 가는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에스빠냐(스페인)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이미 독일에서 너무 많은 날짜를 사용했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새벽밥을 먹고 나와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빠리 동역으로 가는 기차를 예약했습니다.
1인당 20유로씩 예약비용을 받습니다. 

빠리까지 약 5시간...독일 역무원은 참 친절했고 정확히 필요한 말을 알아듣기 쉽게 구사합니다.



1번 플랫폼 09:01분에 출발하는 빠리행 초고속 열차 이체에(ICE)
1993년인가? 서울-부산간 초고속 열차 도입을 위해 국제입찰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시 KOEX 전시장에 독일은 이 기차를 가져왔습니다.
정말 예술작품이었습니다. 기술(Art)을 예술(Art)로 승화시킨 나라, 독일.

기술적으로 TGV보다 뛰어났지만 당시 군사반란군 수괴 출신 정권담당자는 
국제관례를 깨는 엄청난 리베이트를 받고 TGV를 선택했지요.
그 당시 독일은 엄청나게 분개 했었다고 하더군요.
기술성이 우수한 제품을 선택한다고 천명해놓고 뇌물을 받아먹고 TGV를 택했다고 말입니다.

김영삼 정부 때 외규장각 도서 1권만 들고 왔던 미테랑에게 많은 매스컴에서 비방을 해 댔지만
사실은 엄청난 뇌물을 받아먹은 군사반란군 수괴 탓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지적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ICE와 TGV를 모두 타 보았지만 저는 ICE가 더 맘에 들더군요.
프랑스에서 타 본 TGV는 우리나라에 공급된 KTX 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앞선 기차였습니다.
도대체 우린 뭘 받았던 걸까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1번 플랫폼. 빠리 동역행 ICE 플랫폼.

거대한 역사 안으로 차가운 겨울 바람이 들어와 굉장히 춥습니다.
문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둘기가 역사 안으로 들어와 날아 다닙니다.
왜 문을 달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프랑크푸르트>만하임>그리고 파리 동역으로 가는 고속 열차 객실
객차마다 안내 판넬이 달려 있습니다.
ICE 9556호 27번 객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만하임을 거쳐 파리 동역으로 간다는 표시.
그리고 금연,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하라고 되어 있네요.



1등석을 타고 가는 때문인지, 예약을 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간식과 함께 이런 식사를 내 줍니다.

6인 1실로 된 1등칸 객차 내부. 6인용 탁자와 함께 노트북을 쓸 수 있는 전기 콘센트도 있고 팔걸이도 기능적으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탁월한 기차입니다. 겪을수록 독일은 세계에서 제일 맘이 드는 나라입니다.



라인강을 넘어서자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렇게 지겹던 겨울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살과 함께 파란하늘이 보입니다.



겨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초록벌판이 계속 나타납니다.



바깥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프랑스는 매우 따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만에 보는 햇살인지....

국경을 넘을 때 잠시 프랑스와 독일 경찰 2명이 같이 올라와 여권 검사를 했습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확인하더니 프랑스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바보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우린 아직 프랑스 땅에 내려본 적도 없는데...우리나라나 프랑스나 성질 되게 급하구나)

프랑스? 아름다운 나라지. 이렇게 말해 줬더니 프랑스 경찰이 되게 좋아하데요.



호수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빛납니다




한적한 시골길도 지나고



독일과 다른 느낌을 주는 풍경 때문에 프랑스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유럽은 겨울에 높은 습도와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잘 내려가지만 실제 기온은 빙점 이하로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인지 얼음은 거의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5시간 정도 걸려서 빠리 동역에 도착했습니다.

책에서나 읽던 프랑스,  
그 프랑스에 정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어떨떨 합니다만 생각과 달리 정말 지저분한 도시였습니다.
동역에 도착할 무렵부터 보이는 지저분한 건물, 독일에 비해 공기도 탁하고, 역 광장에는 비둘기 똥이 사방에 널려 있어서 실망이었습니다.
1995년 프랑스를 여행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며 <세계여행 프랑스편>을 샀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했습니다.
 


100년이나 된 프랑스 지하철. 거미줄 처럼 잘 건설해 놓았습니다.
들어갈 때는 표를 체크하지만 나올 때는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
핸드캐리어를 끌고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구조.
사람을 신뢰하는 시스템. 신뢰를 어기면 가혹한 제재방식.
오래된 표시가 나지만 관리를 깨끗하게 잘 하고 있는 모습.
서울 같은 화려한 대도시의 분위기는 전혀 없는 파리 동역.
하긴 우리나라도 역 근처는 별로이니 이 나라도 비슷한 모양입니다.



동역 지하철입니다. 내부는 몹시 우중충하고 통로도 좁았습니다.
계단밖에 없어서 환승할 때는 짐을 끌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몹시 힘든 구조...
100년전에 이런 지하철을 계획하고 만들었다는게 존경스럽습니다.
복잡하지만 수도권 전철을 늘 이용하는 사람에겐 금방 익숙해지는 구조였다.

예약해 둔 달타냥 호스텔을 찾아가는데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 사람에게 프랑스 어를 못하는 한국사람이 길을 물으니 서로 난처합니다.

착하게 생긴 프랑스 청년이 열심히 열심히 설명을 해 주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답답했던지 다가와서 길을 가르쳐 주더군요. 
마지막에는 연세 지긋하신 여자분이 호스텔 앞까지 데려다 줍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친절한 마음에 프랑스의 지저분한 인상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3일치를 먼저 지불하고 짐을 도미토리에 넣어놓은 다음 몽마르뜨로 갔습니다.


오랜 역사 때문인지 차량도 가지가지였고 손으로 문의 레버를 젖혀야 문이 열리는 그런 차량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정거장에 도착하고도 멍하니 서있다가 못내릴 뻔 했는데 레버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자동문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역마다 서로 열어보려고 하면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시대가 바뀐다고 몽땅 바꾸는 것 보다 불편한 옛날 것을 그냥 놔두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빠리 동북쪽에 있는 달타냥호스텔에 짐을 내려 놓고 파리에 처음 온 사람들이 가보는 곳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곳
몽마르뜨에 가 봤습니다. 여긴 화가들과 함께 소매치기로 유명한 동네라고 합니다.
우리가 간 날은 자동소총을 매고 베레모를 쓴 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샤크레쾨르가 있는 언덕을 오르며 빠리 시내을 봅니다만, 역시 스모그와 안개 때문에 별로였습니다.
오전에 머물렀던 독일과 어찌나 비교가 되던지....



샤크뢰쾨르 바로 앞에 섰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무장경찰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꽤 조용했습니다.



샤크레쾨르 성당. 성당 안 장궤에 무릎을 꿇고서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성당 앞에는 잔다르크와 사를마뉴 동상이 있습니다.


샤크레쾨르 성당과 뤼데스하임에 있는 게르마니아 여신상은 역사적 인연이 있습니다.
1871년 통일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베르사이유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고 그 자리에서 독일통일제국(제2제국) 탄생을 선포합니다.
기쁨에 찬 독일사람들은 국민성금을 모아 뤼데스하임 근처 라인강변에 프랑스를 바라보는 36m짜리 게르마니아 여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치욕에 절치부심하던 프랑스 인들은 그 복수를 다짐하며 국민성금을 모아 이 샤크레쾨르 성당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완성을 한 뒤에도 몇년동안 준공식을 하지 않고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1919년 베르사이유에서 항복선언서에 사인을 한 때에
맞춰 이 성당 준공식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날 독일 제2제국은 무너졌습니다.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두 나라는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지요. 역사 교과서도 공통으로 사용하고요.



1980년 6월에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다녀간 모양입니다.
성당에서 내려와 에펠탑을 향해 계속 걸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