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숲여행

영하 10도의 추위를 뚫고 혼자 주억봉에 오르다

by 연우아빠. 2007. 10. 23.

방태산 주억봉 등산기

2007.10.21



방태산 매봉령을 향하여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예정보다 늦은 6시 반쯤 일어났다. 대충 세수하고 아직도 따뜻한 구운 감자 3개,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 봉지커피 2개,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몰래 삥땅 쳐놓은 비스켓 5조각을 배낭에 넣고 가족들 깰세라 조용히 길을 나섰다. 늦게 일어난 것을 핑계로 아무도 없는 길을 차를 끌고 출발점 광장까지 올라갔다. 구운 감자 2개를 뜨거운 물과 함께 먹고 신발끈을 조여매고 길을 나섰다.




야영장을 지나면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이런 표지가 일정간격으로 마지막까지 잘 갖춰져있어 처음 올라가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아침 7시10분, 날씨는 상당히 차가웠지만 어제 하루 워밍업이 되었는지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700m쯤 올라가니 매봉령방향 표지판이 나왔다.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왼쪽 산길을 선택해 매봉령 → 구룡덕봉 → 삼거리 → 주억봉 → 삼거리 →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이 초보자들에게 좋다는 안내대로 왼쪽 길을 따라 매봉령으로 나섰다. 매봉령까지 3.1km, 깊은 산이라 그런지 하늘은 환했지만 계곡은 어두웠고 ASA400으로 조절했건만 삼각대없이 사진을 찍기에는 광량이 부족했다. 무게 때문에 삼각대는 포기했는데 해가 계곡 위로 올라올 때까지는 눈으로 감상만 해야겠다.



매봉령 올라가는 길은 조망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계곡길로 계속가다가 매봉령 거의 다 올라가서야 나무가지 사이로 능선을 볼 수 있습니다.


1.5km 지점쯤이었을까? 왼쪽 숲속에서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낙엽밟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조용한 산 속에서 얼마나 놀랬던지, 순간적으로 옆을 돌아보니 20~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 정도 크기는 됨직한 노루(고라니인가?)가 아침 식사를 하다가 사람 지나가는 소리에 놀랬는지 숲속으로 잽싸게 달아나는 소리였다. 가방에서 카메라 꺼낼 생각도 못했다. 순식간에 숲속으로 노루가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노루가 아니고 멧돼지 무리라도 만난다면??????



매봉령 바로 위에서 발견한 서릿발. 간밤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급강하했습니다.
해발 1,300미터가 넘는 매봉령은 칼바람이 붑니다.

이 시간이면 그래도 한두명쯤은 등산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방에 인기척이 전혀 없다. 그제서야 바스락 거리며 낙엽을 밟고 움직이는 작은 짐승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갑자기 개울음 비슷한 소리가 퍼졌다. 혹시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는 멧돼지 밀렵꾼인가? 머리가 쭈삣서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피하는 본성이 있다고 하니 서로 우연찮게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2km지점을 통과한 다음부터 평탄한 길은 끝나고 경사길이 나타났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과 심한 바람을 고려해 보온을 위해 겨울용 등산복, 내복 바지, 거기에 난생처음 모자까지 쓰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땀이 많이 났다. 내복바지를 벗을 수도 없고 윈드자켓을 벗고 웃옷 지퍼를 내려 체온을 조절하며 길을 재촉했다.


매봉령 위쪽에서 발견한 특이한 현상. 처음에는 누가 비닐 조각을 버린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키가 작은 나무나 풀이 모두 얼음치마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8시 20분쯤 3km 지점을 통과했다. 뱃살이 늘어난 탓인지 경사길을 올라가는 게 힘이 든다. 잠시 쉬며 뒤를 돌아보니 올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출발할 때 파랗게 맑았던 하늘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먹구름으로 덮여갔다. 꼭 눈이 올 것 같은 그런 날씨다. 땅은 완전히 얼어서 등산용 스틱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바위처럼 단단하다. 주변에 작은 나무들 뿌리근처에는 누가 버려 놓았는지 나무마다 하얀 비닐조각들이 붙어 있다(매봉령에 올라가서야 그게 비닐조각이 아닌 것을 알았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8시29분 매봉령에 도착했다. 출발지점에서 1시간 20분 경과.


매봉령에서 구룡덕봉까지


매봉령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람 그림자는 사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가 가득하다.

“아래에서 보면 이건 구름이겠지?” 산죽나무 몇 포기만 초록색이고 사방은 온통 흰비닐을 감고 있는 나무들 천지다. 바람을 피해 30미터 쯤 아래로 내려와 커피를 타서 마시며 구운감자 1톨을 마저 먹었다. 맛있다. 정상에서 라면 먹었다는 화니네 후기가 생각난다. “그래, 이런 날씨에는 컵라면 먹고 싶다. 뜨끈한 오뎅국물도 좋겠다. ^^”



구룡덕봉 정상에서 밤새 오토캠핑을 하던 사람들이 철수준비를 합니다.


10여분을 쉰 다음 준기맘에게 전화를 하고 8시50분 구룡덕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산용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손끝이 시리다. 귀가 시려서 자켓에 달린 모자를 썼다.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으니 사진 찍을 때마다 아주 성가시다. 안개가 덮고 있어서 주변 경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려고 나섰을 때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선배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날씨가 워낙 춥고 바람이 강해서 내복바지 입은 덕을 제대로 봤다. 등산용 스틱을 짚고 가다가 언덕 부분의 땅이 하얗게 보이는지라 이게 뭔가 싶어서 쪼그려서 보니 얼음이다. 땅속에 있는 습기가 완전히 얼어서 흙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작은 나무들 밑둥치에 보였던 그 비닐이 사실은 비닐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름과 안개가 일으키는 습기가 나무에 부딪혀 얇은 비닐처럼 엉겨 붙은 얼음 덩어리였던 것이다. 오! 자연의 신비여....




구룡덕봉 정상의 모습. 수백년은 됨직한 주목



베짱이 같기도 하고 여치 같기도 한 고사목(구룡덕봉 정상)


이렇게 높은 산에 이렇게 넓은 길이 있다는 게 신기한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구룡덕봉 근처에 오니 군인들이 동계 훈련을 하는지 텐트를 치고 있고, 앞쪽에는 홍천쪽 비포장 길로 올라왔는지 갤로퍼 2대를 끌고 온 세 사람이 야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 일찍 올라온 사람에게 경탄을... 이 추운날 밤새 야영을 한 매니아들에게 경탄을... 서로 감탄의 인사를 나누고 구룡덕봉(해발 1,388m)에 올랐다. 9시 27분. 화니맘님이 설명하신대로 무쟈게 썰렁한 곳이다. 군대에서 주로 보던 얼룩무늬 컨테이너 박스하나 뒹굴고 있는....

삼거리를 지나 주억봉 정상을 향하여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머물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구름과 안개가 언뜻언뜻 방태산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할 뿐 파란 하늘과 시원한 시야가 아쉽다. 비스켓 4개 먹고 물 마시고 준기맘에게 중간보고 하고 잠깐씩 보이는 풍경을 찾아 사진을 찍으며 주억봉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이 높은 곳을 혼자 독점한다는 것도 괜찮긴 하네.... 강한 비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하늘을 떠받치는 강인한 근육을 자랑하는 주목, 수백년 삶을 마감하고 고사목으로 자리를 지키다 허리마저 부러진채 서 있는 나무, 과연 천연림으로는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는 방태산의 위용은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에게 부족하지 않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액정화면으로 보이는 풍경사진은 제대로 노출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뷰파인더에 살이 닿기만 하면 김이 서리는 추운 날씨에 심한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멀리 방태산 제일봉(주억봉)이 구름속에서 모습을 보입니다.


출발할 때, 포인트 마다 기록을 남기고 사진을 찍어 다유네 사람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맘먹고 올라왔는데 이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똑딱이 카메라였다면 한결 쉬웠을텐데...그래도 틈만 나면 사진을 찍으며 한걸음 한걸음 삼거리를 향해 걸었다. 10시 9분, 출발한지 세시간 만에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제 500m 정도만 올라가면 방태산 제일봉인 주억봉(1443.7m) 꼭대기다. 휴양림에서 이쪽 길로 올라오는 사람도 제법 있을 법 한데 인기척이 전혀 없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가?

삼거리를 찍고 곧바로 주억봉을 향했다. 갑자기 주억봉 꼭대기 부분의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정상의 경치를 볼 수 있을까? 사진을 찍으며 급하게 길을 재촉해 주억봉에 도착했다. 10시20분, 주억봉 정상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배달은 돌(배달은석), 깃대봉 방향은 아예 구름 속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매봉령과 구룡덕봉 쪽은 간간히 능선이 보였다.



매봉령에서 구룡덕봉으로 이어진 능선 모습


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없고... 주억봉 표지 앞에 있는 바위 위에 사진기를 걸치고 셀프카메라를 해서 기록 사진을 찍었다. 깃대봉 방향 거리표지판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거기서 30미터쯤 더 올라가니 지도상에 표시된 해발고도(1443.7m)인 듯한 지점이 있다. 바람은 한결 견딜만 했고,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햇볕을 받아 빛나는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저 발 아래 자작나무 군락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계곡과 능선이 시원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작나무로 뒤덮힌 백두산을 옛사람들이 경이롭게 생각했다는 말을 조금은 실감할 만한 풍경이다. 너무 강한 바람 탓인지 단풍은 별로였다. 나뭇잎이 제대로 붙어 있는 나무가 거의 없고 기습한파에 미처 단풍이 들지도 못 한 채 오그라들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대부분이었다.




삼거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주억봉 모습. 심한 바람으로 구름과 안개가 모였다 흩어졌다 합니다.


마지막 남은 비스켓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구름과 안개가 걷히는 틈을 타서 사진을 찍으며 20여분 이상 기다렸지만 파란 하늘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내려가기로 했다. 그제서야 삼거리 쪽 방향에서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등산객 10여명이 올라오고 그들과 엇갈려 삼거리에 도착하니 나처럼 혼자 등산 온 사람이 있었다. 서로 기록사진을 찍어주고 인사를 하고 방동리 길을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0시52분.


방태산 주억봉 정상 표시. 하지만 여기보다 조금 더 높은 지점이 바로 옆에 있습니다.

방태산 등산 안내에는 대부분 이 길을 하산 길로 추천했지만 직접 답사를 해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가파른 길인데다가 햇볕을 받아 따뜻했기 때문에 얼음이 녹아 매우 미끄러웠다.매봉령-구룡덕봉-정상을 거쳐 내려온 사람이라면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부상 위험이 클 것 같다. 여러번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 했는데 등산용 스틱이 아니었으면 무릎에 많은 무리가 있겠다. 체력이 충분할 때 이 길을 올라와서 삼거리에서 좀 쉬다가 주억봉에 올라가고 구룡덕봉, 매봉령 길로 내려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주억봉 정상에서 본 하늘. 저 나무가 있는 언덕이 제일 높은 곳입니다.

내려오는 길에도 산과 하늘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자연현상은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삼거리에서 1km쯤 내려오니 울긋불긋한 낙엽과 초록색 산죽나무가 비탈을 덮었다. 작년에는 가물어서 단풍색깔이 별로더니 금년에는 잦은 비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역시 별로다. 가까이 가서 본 단풍잎들은 모두 오그라들어 있고 단풍이 들다 만 모습이다.


주억봉 최정상에서 내려다 본 계곡,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아 자작나무가 반짝입니다.


등산로를 따라 삼삼오오 올라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니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본다. 다들 심한 경사에 힘이 드나 보다.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 거대한 나무로 자란 생명의 힘을 보여주기도 하고.... 계곡을 적시는 풍부한 물은 숲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에게 생명을 선사하고 참나무 활엽수로 가득 찬 극상림을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12시쯤 드디어 평탄한 지역에 도착했다. 방태산에서 본 단풍 가운데 여기부터 등산로 입구까지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금빛 단풍, 빨간 단풍, 그리고 아직 초록이 남아 있는 나뭇잎이 뒤섞여 단풍이 더욱 빛난다. 이제 남은 거리는 1.5km 남짓, 낙엽이 떠 있는 계곡물은 수정처럼 맑아 모래알갱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제법 등산객들이 모여 올라온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커플에게 내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해서 기록사진으로 남겼다. 집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것이 등산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하산길, 경사가 아주 급해 주억봉까지 올라가느라 시달린 무릎에 많은 충격을 줍니다.

계곡 가운데로 햇살이 퍼지면서 단풍이 빛나기 시작했다. 12시40분 드디어 출발점에 도착했다. 5시간 30분 걸렸다. 마당바위 근처에서 마침내 아이들을 만났다. 늦게 일어난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엄마랑 같이 탐방로 산책을 하면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놀았나 보다. 준기는 왜 자기를 데려가지 않았냐고 투정을 한다. 다음에 오면 꼭 너를 데리고 올라가리라.


하산길의 단풍계곡, 하산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이 지리하게 이어집니다.

------------------

* 이번 등산에서 사진을 무려 300장이 넘게 찍었습니다. 대충 계산해보니 사진 찍는데만 30분~50분쯤 걸린 것 같습니다.
다음에 아이들 데리고 올라갈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햇볕이 없는 단풍은 단풍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방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은 휴양관 뒷편과 탐방로 입구에서 1km 정도 부분인 것 같습니다. 파랑새를 열심히 찾아 다녔는데 파랑새는 자기 집에 있더라는 얘기가 되나요? ^^



하산 길에서 만난 커플에게 사진을 찍어 주고 저도 한 컷 받았습니다.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단풍잎



마당바위에 도착해서



산책길에 나선 가족들을 다시 만납니다.




방태산자연휴양림 휴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