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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제주도를 떠나던 날

by 연우아빠. 2011. 5. 22.

□ 5월 9일

새벽부터 하늘이 요상스럽다. 구름도 없는 파란 하늘에 강한 바람을 타고 비가 날아온다. 이곳에 머무는 연세 지긋하신 여자들은 모두 나와 고사리를 따러 돌아다니고 있다. 금방 비바람이 몰아쳤다가 금방 그쳤다가 날씨가 5분 단위로 변덕을 부린다. 종아리와 무릎이 몹시 아프다. 무릎보호대를 차고 등산을 했었는데도 아픈 것을 보니 산이 높긴 높았나보다. 운동도 많이 부족했었고.

아침을 먹고 비행기 탈 때까지 남은 시간 뭘 할까 물었다. 준기가 그제 못간 감귤박물관과 만장굴을 가보자고 하는데 왕복해야 하는 시간과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제주시내 쪽 실내구경꺼리를 찾아 가기로 타협을 했다. 하지만 중산간을 벗어나 제주시내 가까이 오자 하늘이 깨끗하다. 삼양동 선사유적을 찾아가 구경을 하고 가까이 있는 검은모래 해안에서 바닷물을 만져보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자 여름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덥다. 얼음과자 사달라는 두 녀석에게 돈을 주고 길 건너편에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 얼음과자를 사오라고 시켰다. 두 녀석이 잘 찾아가서 사왔다. 삼양동 선사유적은 2천년전 유적으로 아담한 규모에 볼만하게 잘 다듬어 놓은 박물관이었다. 용천이 없는 곳에 마을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은 불문가지. 물 없는 곳에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삼양동 선사유적박물관


공동창고를 복원해 놓은 모습. 고구려의 부경과 비슷한 구조


육지에 반월형 돌칼이 있다면 제주도에는 반월형 조개칼이 있다


제주도 토기 맞추기



검은모래 해안에서 바닷물을 만지며 잠시 여유를 즐기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한라산이 먹구름 속에 갇혀있다. 아마도 저긴 비가 쏟아지고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편서풍 때문에 서귀포 쪽은 아침, 저녁으로 비가오거나 안개가 끼었는데 제주시 쪽은 맑은 편이다. 바닷가에서 잠시 물장난을 하다가 제주민속박물관에 들렀다. 30여년 넘게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인데 역시 박물관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 전시실 같은 쇠락한 모습에서 세월과 자본에 밀리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왔다. 4년 전에 찾았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다시 들렀다.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는 관광버스에서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번 징검다리 연휴에 9만명이 넘게 제주도에 들어왔다더니 그 인파를 여기서 좀 보는구나. 4년 전에 비해 바뀐 전시물이 많다. 바닷가인 제주의 문화를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좋은 박물관이다.


검은모래 해안 바위에 붙은 이 녀석들은 무엇일까?


한라산 쪽은 온통 구름 속이다


더운 날은 시원한 바다가 최고


아침을 숙소 뷔페에서 너무 잘 먹어서 그런지 점심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점심을 공항에서 먹을 수는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박물관 주차장 길 건너편에 삼대국수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알아주는 맛있는 집 가운데 하나. 첫날 먹었던 국수마당을 가려다가 날씨도 덥고 시간 쓰지 말자고 생각해 삼대국수회관으로 갔다. 고기국수, 멸치국수, 비빔국수를 하나씩 시켜먹었는데 국수마당보다는 맛이 덜하다. 우리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제주도에서는 알아주는 집이라는데 돼지고기 맛은 국수마당이 월등히 좋다.


너, 이리와! 누나에게 까불다 헤드록 당하는 준기.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옛날 테우 모습


빌렸던 자동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오긴 왔나보다. 비행기에 타고서도 이륙대기 하는데 30분 정도 더 걸렸다. 비행기가 이륙대기를 하며 천천히 줄지어 활주로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건너편 활주로에는 거의 2~3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계속 내린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는 왁자지껄한 유명 관광지를 다녔고 두 번째 왔을 때는 숲을 돌아보았는데 세 번째 와서야 겨우 제주도 문화를 조금 맛보는 것 같다. 세 번 봐도 시간은 모자라고 봐야 할 것이 많다는 게 공통점이긴 하지만...여행은 지역에 대해 알면 알수록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지나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제주의 역사를 몰랐을 때는 이 활주로는 그냥 활주로였지만 이 활주로 아래에 수천명의 억울한 죽음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죄스럽다. 1901년 천주교인과 관의 수탈에 항거해 일어났던 이재수의 난, 그리고 맥아더 사령부가 한국 땅으로 돌아가는 제주도민들에게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해방 후 귀국한 사람들이 급증해 인플레와 궁핍함이 더 심했던 제주도. 그 사이에 벌어진 4.3항쟁과 애꿎은 사람들의 죽음. 이름도 짓지 못 한 채 죽은 아기, 태어나지도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세상을 떠난 태아들...그리고 이념이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제노사이드를 피해 숨어 지내다 학살당한 수많은 제주도민들. 200개가 넘는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되어 무덤으로 변해버린 불타는 제주도 사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제주도 위에 오버랩 되는 오키나와. 1876년 일본 영토가 되었다가 2차대전 말에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옥쇄를 강요당해 죽음을 맞았고 이제까지 일본의 죗값을 대신해 미군기지로 수탈을 당한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 제주도민이 최근 100년간 겪은 비극은 오키나와와 닮았다. 그들이 겪은 비극을 진심으로 함께 공감해주고 위로의 말과 함께 이제 누워있는 백비를 일으킬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고 싶다. 오늘 이 순간에도 강정마을에서 제주도민들은 싸우고 있다. 육지사람들의 눈으로 제주도의 비극을 바라보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들과 우리에게 평화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