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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6일째) 파리 : 루브르와 에펠탑

by 연우아빠. 2010. 8. 12.

센강 건너 루브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는 4시쯤 들어갔는데 오늘은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입구 1층에서 나눠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이번에도 동이 나서 구할 수 없었고, 직원들 불친절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유럽이 원래 일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문화지만 특히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불친절하다.
오르세처럼 자기들 작품도 아닌 약탈품과 도적질한 유물을 비싼 값을 받고 보여주는 것도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항상 불진철한 안내 데스크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외부 문화나 사람들에게 겁을 상당히 많이 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디오 가이드 안내 데스크 근무자 가운데 자그마한 동양인은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참 친절하고 열심히 대응을 하는데
프랑스 본토인 같은 사람은 영어도 안되고 말도 무지 짧다.

 

문 닫을 시간이 2시간 밖에 남지 않아서 가족들에겐 미안했지만 팜플렛을 들고 족집게 과외하듯 돌 수밖에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관을 열심히 돌면서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찬란한 유산을 훓어갔다.
그 다음에는 문화재복원 전문가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니케 여신상,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를 찾았다.

2시간 만에 넓은 미술관의 겉만 핥고 난 다음,
"다음에 너희들이 대학생 쯤 되면 스스로 여길 찾아와 찬찬히 보라"고 얘기해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문을 닫는 시간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루브르는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브리티시 뮤지움을 보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은 없었다.
남의 유산을 훔쳐와서 장사하는 것도 내 좁은 눈에는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반성이란 것이 관념상으로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저런 보물을 돌려주고 싶진 않겠지.
저걸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만도 1년에 수천만명은 될텐데.

아이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관을 보고 나서는 브리티시 뮤지움과 너무 비슷하다고 했다.
하긴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와 중동에서 차례로 훔쳐온 것이니 비슷할 수 밖에.
루브르를 나와 센 강을 따라 동쪽으로 노틀담 성당을 찾아갔다.

 

시간에 쫒겨 아이폰에 담긴 지도를 믿고 파리 지도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가이드 북을 보며 감으로 대충 가다보니 이번에도 예상과 달랐다.
내 기억보다 시테섬까지 거리가 제법 멀었다.
라데팡스와 달리 시내에서는 아이폰으로 지도 검색도 잘 안된다.

이런 도시라면 공공 WiFi 망을 구축해서 유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지친 아내의 짜증 소리가 높아질 즈음 시테섬에 도착해 노틀담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저녁 미사를 집전 중이었는데 이 큰 성당에 미사 참례자가 겨우 20여명 남짓. 유럽의 탈 종교화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를 찬찬히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아빠가 졸업한 카톨릭의 간단한 교리,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고 아내는 빅톨위고가 쓴 노틀담의 꼽추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잠시 앉아서 아이나 아내는 처음 구경하는 미사 광경을 보도록 했다.
미사가 끝나고 벽면에 있는 성모 마리아 앞에서 봉헌초를 사서 불을 밝혀 봉헌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 작고 귀여운 초가 불을 밝힌다.
이번 여행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성당을 나왔다.

 

짧은 이야기님이 자세하게 소개해준 보주광장과 빅톨위고의 집을 찾아갈 계획도 있었지만
이미 시간도 늦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성당 길 건너편에 있는 간이카페에서 팬케익과 음료수를 사서 노틀담 건너편 건물 난간에 앉아서 요기를 했다.
이것도 재미있다는 아이들.

지친 몸을 어느 정도 추스린 뒤 강 건너편 RER선을 타는 전철역으로 갔다.
어린이용 까르네를 사고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서. 하지만 어린이용 까르네를 파는 기계가 없다.
다시 지하철역을 찾다가 또 길을 헤맸다.
눈에 익은 성 미셀광장이었지만 이번에도 헤맨 것. 역시 지도가 필요한데...

지친 아내의 잔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나도 당황스럽다.
이상 고온 때문인지 아내의 체력과 인내심이 예상했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
30분을 더 헤맨 끝에 다행히 절반 가격인 어린이용 까르네를 파는 역을 찾아서 RER선을 타고 에펠탑으로 갔다.
왜 어린이용 까르네를 이렇게 어렵게 사게 만들어 놨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하긴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이 그들 사정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에 에펠탑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줌이 몹시 마려워 공중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에펠탑 앞에 무료 화장실을 설치해 놓은 게 보였다.
3명이 먼저 줄을 서 있다. 헌데 완전 자동 시스템이라 한사람이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세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은 넘어 걸리는 것 같다.
급한 사람은 숨 넘어 갈 것 같은 시스템. 그래도 있는 게 정말 다행이다.

일을 마치고 에펠탑 매표소로 갔다.
하나둘씩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광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묘기 축구 내기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는 무려 한시간이 걸렸다.
1층에서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은 지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없이 시간이 늘어진다. 이미 밤 10시.
에펠탑 구경을 끝내고 유람선을 타고 센강 야경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었다.
까르네 사려고 헤맨 것이 아깝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지 아내는 바닥을 보며 무섭다고 울상이다.

줄을 지어 탑승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앞뒤로 한가족으로 보이는 중동계 사람들이 있어서 노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했는데
우리 뒤에 서 있는 아줌마인 듯한 사람이 계속 밀고 들어온다.
안 그래도 몹시 더워서 짜증나는데 계속 눈짓을 하며 경고를 했건만 효과가 없다.
30분을 참다가 조금 인상을 썼더니 미안하다며 얼른 물러선다.
짜증이 밀려온다. 살과 살이 맞닿으니 안그래도 더운데 짜증이 밀려온다.
그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이 가족의 태도.

 

생각없이 사람들을 올려 보낸 것일까?
적정 인원을 훨씬 넘은 것 같은 인파에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40분 넘게 걸려 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완전히 지쳤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는 없었지만 파리의 은은한 야경은 한번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일몰에 맞춰 올라가서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몽파르나스 타워를 제외하면 균일한 밀도로 낮은 건물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파리는 아름답다.
20분쯤 구경을 하다 전망대로 내려와 세계각국의 주요 도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시해 놓은 표지판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내려왔다.

숙소로 가는 가장 빠른 지하철 역을 찾아보니 700m나 떨어진 Bir-Hakeim역. 여긴 어린이 까르네를 팔지 않았다.
라데팡스 역에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주변이 너무 넓어서 찾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똘똘한 준기와 연우가
숙소로 가는 엄지손가락 동상을 기억해 헤매지 않고 제대로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12시가 거의 다 됐다.
내일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간단한 빨래를 하고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씻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너무 더운 파리.
강렬한 햇살에 인증 사진을 찍는 아들의 눈이 반은 감겼다.
개선문과 사륜전차. 로마가 남긴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3번째 찾는 루브르. 가족들에겐 처음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다음에 파리를 간다면 루브르 근처에 숙소를 정하리라.

강변에 이런 건물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파리는 문화의 도시다.
백제 정도 2,000년, 조선 정도 600년을 자랑하는 서울이지만 근현대의 식민지 침탈로
문화기반이 무너진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파리여행이었다.


 

약탈과 침탈,
우리도 광복이 늦어졌더라면 조선왕궁 전체가 일본으로 반출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이집트의 성벽. 이 거대한 유적이 파리에 와 있다니...그들의 침략은 깊고도 넓었다.




오디오 가이드도 없으니 무슨 유물인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겠다.
유물이 제 자리에 없으면 골동품 전시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앗시리아 왕궁 약탈의 선두주자 프랑스.
그들에게 오리엔트의 찬란한 문명은 경이로움이었을까? 졸부가 된 사람들이 느끼는 성취감이었을까?
강화도 외규장각을 불지르던 문화수준을 가졌던 프랑스. 이 박물관을 보며 현대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성문 흠정법전 함무라비 법전.




수백개 파편으로 출토된 유물을 복원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하나씩 붙여 지금 모습으로 재현해 냈다는 니케 여신상
계단 위에 설치해 놓아 힘찬 모습이 더 멋진 여신상이다.




아이구 힘들다.
루브르에 처음 갔을 때 제일 멋져 보였던 장면은 저 의자에 앉아 어떤 젊은이가 하루종일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던 장면이었다.
다리가 아프면 편안한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멋진 회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루브르의 여유가 좋다.
우리나라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이런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완벽한 사람의 몸을 조각해 낸 그리스의  비너스상




파리를 유명하게 만든 노틀담 성당
성당 내부에서 미사를 참관중이랍니다.
관광객만 가득한 성당에서 종교가 세상의 으뜸이었던 시절의 잔영을 봅니다.
노틀담의 꼽추 같은 명작은 귀로 전해들은 얘기만 많지 읽었던 기억은 초등학교 때 가물가물한 기억뿐.




방학숙제용 인증샷.
언제든 틈만나면 누나의 인증샷 찍기를 방해하는 준기.




너, 이리와!
싫어 싫어. 힘든 여행에도 지치지 않는 두 남매는 성당앞 공터에서 쫒고 쫒기는 장난을....




에펠탑 올라가는 길고도 긴 탑승객 행렬.
황금색으로 빛나는 탑의 설계자 구스타프 에펠의 흉상이 보입니다.




공 하나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축구.
에펠탑 공터에서 묘기 축구를 보이는 아이.




에펠탑을 올라가면서 본 파리시내.
지구가 둥글다는 느낌이 납니다.
낮고 넓게 퍼져있는 도시는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저 멀리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이네요.
에펠탑 동남쪽으로 보이는 모습. 삼각대가 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