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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멀고 먼 남도 천리길

by 연우아빠. 2010. 3. 1.

2월20일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윗배 아랫배 모두 아프면서 설사증세가 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어지럽고, 눈을 감으면 계속 잠만 오더라구요.
21일날은 무려 17시간을 잠만 잤네요.

이상하게도 수영장 갔다 오면 씻은듯이 나았다가
사무실에만 나가면 그때부터 증세가 다시 반복됐습니다.

거의 일주일을 이 증세로 힘들었는데 제가 하고 있는 일을 6개월간 했던 동기가
제 증세를 전화로 듣고 나더니 전에 이 사무실에서 일했던 두 사람이 똑 같은 증세로
밥을 못먹을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요는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기녀석은 나중에 자면서 이를 갈게 되서 이가 많이 망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달 전에 잡아 놓은 남도 여행이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몸도 시원찮으니...
역시나 준비도 전혀 안하고 "그냥 멀리 떠나서 머리나 식히고 오자" 뭐 이런 생각으로 나섰습니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머리를 굴려보니 최소한 8시에는 출발해야 담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고
10시에 출발한다면 전주에서나 점심을 먹을 것 같았습니다.
굼벵이 가족은 8시에 일어나서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출발했습니다.

점심은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집이라고 했더니 연우엄마가 안된답니다.
모처럼 길 나섰는데 담양에 가서 먹자고 합니다.
승일식당을 찍고 예상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넘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기계의 대답.

중간에 간식 먹으며 담양까지 갔는데
이제 막 키크기 시작한 녀석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담양에 도착해 승일식당에 들어가니 역시나 앉자마자 바로 돼지갈비 3인분 내 오고
"그래 바로 이맛이야!" "도대체 돼지고기에다 무슨 짓을 한거야?!"를 반복하며
순식간에 식사를 마쳤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가격뿐. 맛은 여전히 좋습니다.
점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이 가게는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맛있게 먹었으니 구경가야지요.
담양에 몇번이나 가면서도 구경을 못해다는 연우엄마 희망사항을 해결해주러 소쇄원에 들렀습니다.
구름 낀 날씨가 약간 스산했습니다만, 연휴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7년만에 들여다 본 소쇄원은 분위기가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주차료에 입장료까지 받으시고...

 

 


제월당입니다. 날아가는 새 날개처럼 우아합니다.
17살 어린 나이에 정치에 신물이 나버린 양산보 선생이 고향에 지은 소쇄원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담양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송순이 지은 면앙정과 면앙정가, 그리고 사미인곡과 속미인곡도 정철이 담양에 머무를 때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보입니다.
세상이 보기 싫어 은거했지만 세상사람들과 완전히 담을 쌓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더 보지도 못하고 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송광사를 들러 보자고 하던 아내는 송광사를 지나 휴양림으로 가는 도중에 계속 잠만 잤습니다.
점심을 워낙 늦게 먹었더니 저녁은 그냥 대충..그래도 대보름이라고 아내가 오곡밥을 지었습니다. 



새벽에 준기가  토사곽란으로 고생했습니다.
아마도 너무 늦은 점심을 급하게 먹느라 체했던 것 같습니다.
28일 아침에 일어나긴 했는데 밤새 토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래도 외나로도 우주센터 간다고 옷을 입고는 좀 괜찮다고 가겠답니다.
그냥 휴양림에서 놀까 생각도 했지만 28일 밤부터 3월1일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 아니면 유람도 못할 것 같아 길을 나섭니다.

차 뒷좌석에 이불을 깔고 배게를 놓고 준기는 누워 자면서 갔습니다.
원래 계획은 팔영산 등산하고 우주센터 가보는 것이었는데 이 먼길을 와서는 그냥 가게 생겼네요.
인생 뭐, 계획대로 다 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너무 오랫만에 숲다운 숲을 만나니 아이들이 준비할 동안 산책을 나섰습니다.
휴양관 오른쪽에 있는 숲 속 산책로 입구에서 휴양관을 찍어 봅니다.
컨셉 참 난해한 건물입니다만 여러번 자꾸 보니까 또 그런대로 익숙해지네요.
이 지역 사람들은 참 조용하더군요.
2층 사람들이 쿵쾅 거리면 어쩌나 했는데 10시가 되니까 모두 조용한 분위기여서 잠자기 좋았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를 맞고 새 봄을 맞을 채비를 하는 나무 모습을 보며 상쾌한 숲을 즐깁니다.
하지만 이젠 낙안민속휴양림은 그만갈렵니다. 거리도 너무 멀고 숲도 주변 지자체 휴양림에 비해 빈약합니다.
앞으로 순천 근처에 숙박을 한다면 제암산이나 백운산 휴양림에서 야영을 할 생각입니다.
금년 5월 하순에 3일 연휴에는 백암산 휴양림에서 야영해 볼까 합니다.

 


몸이 괜찮아졌다고 했던 준기는 80km나 되는 거리를 달려 외나로도 우주센터에 도착했습니다만
걸을 힘도 없나 봅니다. 전시물 구경하는 동안 앉아서 있습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엄마 등에 업혀서 다녔습니다. 물론 점심도 굶고 결국 다시 차 안에 들어가 혼자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수도권에서 여기까지 올 만한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우주센터는 전시관을 제외하면 국가중요시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가 볼 수 없는 곳입니다.
전시관에서 바닷가를 보면 아름답네요. 몽돌해변 같이 예쁜 자갈로 가득한 해변입니다.


완전히 봄 날씨 입니다. 기온이 15도 정도 됐습니다.
준기는 차 안에서 자고 있고 연우는 지구에서 거리별로 우리 은하의 모습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계속 단계별로 옮겨가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타지마할 생각이 나서 연우에게 시켜 봤습니다.
로켓 한 손으로 들어올리기
그리고 나서...................

준기 상태가 계속 안 좋아서 순천 시내로 돌아와 문을 연 약국을 찾았습니다.
사혈침을 사서 급체를 치료할 곳에 피를 살짝 냈습니다. 덕분에 금방 재잘 거립니다만
아침, 점심 계속 못먹은지라 비실비실합니다.
배운 지식을 제쳐놓고 사혈침 매뉴얼에 있는 대로 했더니 뭔가 2% 부족한 것 같습니다.



기운을 좀 찾은 녀석을 데리고 늘 가보려고 별렀던 송광사를 갔습니다.
주차비와 입장료를 따로 받더군요. 그것도 현금으로, 게다가 현금 영수증 안된다는 경고문과 함께...
루프트한자 항공권 예약하는 바람에 카드 한도가 꽉 차서 현금으로만 들고 다니며 결제를 한 때문에
돈도 궁하고, 주유소 할인도 안되고...현금을 쓰면서 다니니 여행 한번 할 때마다 꽤 큰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앞으로 호남 지역과 경상도 지역은 왠만하면 야영 입니다.


해가 넘어갈 때가 다 됐는데 노출 조정을 하니까 마치 대낮같네요.
머릿속 근심 걱정을 한방에 다 날려 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편백나무 숲길입니다.
김천 직지사, 고창 선운사, 내소사, 밀양 표충사 모두 이런 숲길을 갖추고 있어서 좋습니다.
게다가 여긴 황토길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 사진은 저녁 분위기가 나네요.
비림이 이 절의 오랜 역사를 말없이 보여 줍니다.



저녁 법회 시간을 되서 그런지 대웅전에 도착했을 때는 법고, 범종, 목어를 차례로 치고 있었습니다.
스님 세분이 나오셔서 잇달아 두드리는데 촬영 금지라서 대웅전 왼쪽에 있는 이 건물을 찍고 있었습니다.  



범종각에서 스님들이 법고를 치는 동안 사람들이 경건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합장을 하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엄숙한 분위기에 동참하는데
저 같은 중생은 살살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억수로 쑥스럽데요.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지장전입니다.


대웅전. 조계종을 대표하는 3대 거찰 답게 화려한 단층과 웅장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조계산은 도립공원이던데 송광사에서 선암사까지 산길 6.8km를 한번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요.


휴양림으로 돌아가던 중, 낙안민속마을에서 분명히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할 것 같아서 가 봤습니다.
7시가 넘어서 그런지 입장료 받는 분들도 모두 철수해서 주차장에 차 대놓고 설렁설렁 걸어 들어갔습니다.


낙민루 옆에 소방차와 경찰차가 와 있고 거기에서 달집 태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달무리 속에 커다란 정월 대보름달이 떠 있습니다.
아빠의 강요(?)로 연우와 준기는 각자 소원을 빌고 달집 태우는 장면을 제대로 구경했습니다.
그 옆에는 굴렁쇠랑 투호, 씨름장도 있어서 낮에 왔다면 재미있었을 겝니다.


이리하여 아픈 아들 데리고 허겁지겁 남도 여행을 마쳤습니다.
숙소에 들어와서 다시 사혈침으로 제가 알고 있는 급체 치료점을 땄습니다.
그제서야 준기는 시원해진 모양입니다.


2월27일 역사스페셜에서 1908년 항일전쟁에 참전했던 호남지역 의병장과 의병들이
일제 14연대의 토끼몰이 토벌전에 당해서 1만3천여명이 죽었다고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그때 사로잡힌 의병장과 의병 3천여명에게 일제는 남도를 횡단하는 국도 2호선을 만드는 노역을 시켰다고 합니다.

동백꽃이 점점이 핀 국도 2호선은 지금까지 봤던 국도2호선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분들의 영전에 머리를 숙여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3월1일 아침 빗소리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산 아래를 내다보며 그냥 우리집이 여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암사, 운주사, 화엄사...우산을 가져갔다면 들러 보려고 했을텐데
우산을 핑계대고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멀고 먼 남도라서 그런지 장장 6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다음에는 야영이 가능한 시기에 남도를 가야겠습니다.

자동차 계기판을 보니 1,300km나 운전을 했네요.
오랫만에 길을 나섰더니 준비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냥 길고 긴 드라이브 길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