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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한반도 남해안 공룡을 찾아서

by 연우아빠. 2009. 5. 8.

한반도 남해안 공룡을 찾아서

2009.5.1~5.5 


5월 1일 전남 담양 한국대나무박물관 마당. 대나무로 만든 고리던지기 놀이



5월 1일 전남 담양 한국대나무박물관, 만들기 체험관에서 대나무 김밥말이를 만들고 있는 엄마를 방해하는 준기



5월 1일 전남 담양 한국대나무박물관, 만들기 체험관에서 단소 소리를 내 보려고 노력중인 연우



전남 해남 우항리공룡박물관, 박물관 벽을 깨고 나와 바다를 향해 가는 공룡모습이 인상적인 박물관



세계에서 제일 길게 남아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지. 대형 공룡관은 이 모습을 영구 보전하기 위해 건물을 지은 것.



우항리 이쿠누스 엔시스를 보려고 새벽 잠까지 설친 준기는 신이 났습니다.



5월2일. 떠밀려서 찾아간 전남 보성 제암산 자연휴양림의 훌륭한 소나무 야영데크. 소나무 조각들을 채워 넣어 푹신하고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6백미터만 올라가면 곰재 능선에 화려한 철쭉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유 경험자에 의하면 어린아이들도 올라가기 쉬운 코스라고 합니다.



전남 보성. 공룡알화석산지. 여기 안내문을 보니 목포부터 거제까지 남해안 거의 대부분이 공룡알, 공룡발자국 화석 등이
남아 있는 한반도 공룡의 집단 서식지 였던 모양입니다. 중생대에는 남해안 곳곳에 거대한 민물 호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1.7km를 더 가면 비봉공룡박물관(보성공룡박물관)이 있는데 그걸 못 찾아서 아쉽네요.



전남 보성, 공룡발자국과 공룡알 화석을 관찰할 수 있는 해변



5월 3일 팔영산 자연휴양림 야영장의 아침.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몹시 추웠습니다.
불을 피우니 조금 살만합니다. 



5월 3일 2년 반만에 다시 찾은 경남 고성 공룡박물관 야외 전시장의 전망대. 익룡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시설물입니다.



이곳도 새로 조성한 모양입니다. 어린이 놀이터를 겸한 공룡 조형물 전시장



상족암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 마침 요트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비가 떼를 지어 가는 것 같네요.



상족암 해변에서 공룡이 걸어가는 흉내를 내는 준기, 그리고 장난치는 연우



이 발자국보다 더 선명하고 큰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준기와 준기에게 끌려간 준기맘만 봤다는데....



상족암 해변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이면 어디는 가 보는 준기



해안에서 박물관 쪽을 올려다 본 모습



상족암 해변에 심한 일교차로 구름물결이 산을 타넘는 장관. 실제보다 영 아니네요.



5월4일 상족암 공룡테마파크 안에 있는 오토캠핑장의 새벽. 1백만원이 훨씬 넘는 값비싼 텐트들이 즐비해 우리가 놀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네요. ^^;;



충무김밥거리 앞 통영항에 묶어 둔 거북선 안에 들어가면 내부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무료로 조선 수군이나 장교가 되어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전시해 놓은 화포는 만지면 안된다고 해서 범생이 준기는 저런 자세로 폼을 잡고 있습니다.



동피랑 마을 언덕



앙! 무섭지?



준기야 나랑 놀자! 



안녕!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에 있는 귀여운 그림. 준기가 좋아하는 애벌레가 인사하는 그림도 있었는데 못찍었네요.



때려 부시고 새로 짓는 가치파괴적 건설문화,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합니다. 조금은 불편한 것이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30도 가까이 올라간 기온 덕분에 동피랑 마을 어귀에 있는 파고다 카페와 태인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파고다 카페에서 얼음과자를 사서 태인카페에 앉아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병사를 거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세병관. 정말 거대한 목조건물입니다.
아무리 더운 남쪽의 한여름도 여기 들어 앉아 있으면 너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세병관 천정에는 이런 문양이 있습니다.



추억의 가위바위보 놀이. 여행은 보는 것도 좋지만 추억을 만들어가는 맛에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만남, 뜻하지 않았던 고생, 그리고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 있는 통영.



달아공원 한려해상공원 위로 노을이 집니다.



노란 꽃밭이 연두색 줄기와 함께 정말 예쁩니다.



이제 길고 긴 3박 4일 여행이 끝나갑니다. 달아공원의 붉은 해를 보니 내일은 더욱 덥겠군요.



학기 초에 아이들 학교에서 내 놓은 학사일정을 보니 5월4일은 교장선생님의 재량휴업일로 지정되어 있었다. 5월1일은 노동절, 4일날 휴가를 내면 닷새 연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회사에다가 3월달에 일지감치 5월4일날 휴가를 내겠노라고 공표를 해두었다. 봄에 EBS에서 ‘한반도의 공룡’이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우항리 이쿠누스 엔시스’라는 이름을 가진 익룡은 바로 해남 우항리에서 서식하던 공룡이다. 그 녀석도 보고, 보성, 고성 등등 한반도 남해안에 있는 공룡 박물관과 공룡 흔적을 섭렵하겠다는 준기의 야심찬 희망사항을 따라 여행계획을 거창하게 짰다. 연우는 준기계획만 따라 간다고 뭐라고 하고...해서 너도 가고 싶은 곳을 말해봐라고 했더니 별로 나오는 얘기가 없다. 몇 번 일정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하다가 연우가 원하는 담양과 준기맘이 원하는 통영을 집어 넣었다.

5월 1일은 아이들 운동회를 한단다.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 하는 일이 영 마뜩찮은데 아이들은 운동회를 위해 단체로 부채춤 같은 것을 준비한다고 한달 전부터 고생이란다. 해서 1일날 가정학습을 신청했다. 덕분에 둘 다 학교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 역시나 노동의 신성함과 휴식의 권리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머리 나쁜 사람들이 노동자인 나더러 대체휴무를 하면 안되냐고 한다. 작년에도 대체휴무 못하고 노동절에 쎄빠지게 일하는 바람에 아버지 칠순 가족여행도 엉망으로 틀어 놓고서리????

이 눈치 저 눈치 생까고 5월 1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안 일어나는 녀석들을 깨울 수가 없어서 냅뒀다가 결국 7시 정각에 출발했다. 어거지로 일을 해서 제대로 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삶이었는데 역시나 고난의 행군이 이어진다. 5일간 쉬는 직장이 많다고 하여 경기도 벗어나는데 시간 다 까먹을 까 노심초사 하였으나 다행해 많은 차량에도 불구하고 천안까지 잘 내려와서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냅다 달렸다. 다행히 10시 조금 지나 연우가 원하던 담양 대나무박물관에 도착했다. 담양은 5월 2일부터 대나무축제를 한다고 시가지 치장이 한창이었다. 회사일 한답시고 계획만 거창하게 짜 놓고 세부사항을 하나도 확인하지 않는 티가 첨부터 나기 시작했다. 대나무 박물관은 4월30일까지 내부 공사로 폐쇄했다가 이날 다시 문을 열었단다. 어쩐지 주변이 어수선한 공사판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체험 달인’ 연우가 박물관 옆에 있는 체험관을 그냥 못지나 간다. 단소 만들기 하겠다는데 체험관 시설은 아직 완공이 되지 않은 듯 공사판이다. 옆 건물에서 단소만들기를 하는 동안 준기맘은 김밥말이를, 준기는 활을 나는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단소 소리내는 법을 가르쳐 주시건만 좀체로 소리가 나질 않는다. 하긴 친구에게 선물받은 대금도 소리를 낼 줄 몰라 집 한 구석에 고이 잠자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돼지갈비로 유명한 승일식당을 찾았다. 떡갈비로 유명한 신식당과 같은 골목에 있는데 옛날 시장통이라 그런지 길이 정말 좁다. 먼저 가족들을 내려놓고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대고 들어가니 벌써 먹고 있다. 아 놀라워라! 아내의 말인즉 들어오면서 주문을 받더니 1분 뒤에 바로 나오더라나. 아닌게 아니라 다른 테이블도 마찬가지인데 자주 오는 사람들은 무덤덤하고 웃고 놀라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타지에서 온 사람. 표시가 팍 난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이 집은 돼지갈비에다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너무너무 맛있어서 연신 감탄을 하면서 먹는다. 엄청난 인파에 놀라운 갈비 생산시스템은 정말 대단했다. 식당을 나와 죽녹원을 찾아 나섰는데 이거 좁은 길에 자동차와 사람이 정말 많다. 아뿔사! 대나무 축제 시즌이라 정신이 없다. 죽녹원 입구에서 주차장에 차를 보고 걍 해남으로 뜨기로 했다. 어차피 죽녹원으로 드나드는 인파를 보니 저 속에서 조용한 구경은 애시당초 틀렸다고 생각했다.

3시 반을 조금 넘어 우항리 공룡박물관에 도착했다. 아니 공룡 테마파크라고 부르는게 낫겠다 싶다. 공룡이 박물관 건물을 깨고 나오는 범상치 않은 컨셉디자인이 다른 박물관 건물과 차별성이 있다. 내부 촬영불가라 카메라 접고 구경 열심히 했다. 준기는 자기가 알고 있는 공룡에 대한 모든 지식을 쏟아 낸다. 저 머리 속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지식이 들어가 있는고? 신기한 녀석. 박물관을 나와 야외 전시물을 구경하다가 대형 공룡관으로 가서 공룡 발자국을 구경했다. 약 22m 거리를 걸어간 공룡의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아있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건물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발굴하여 ‘우항리 이쿠누스 엔시스’라는 학명을 가진 익룡이 날개를 접고 걸어간 발자국 화석을 보전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잘 전시해 놓았는데 가끔 잘못된 안내판이 있어서 준기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다. 사람이 한 가지에 몰두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군.

원래 땅끝마을 야영장 캠핑카에서 한번 자 볼려고 했으나 2달전에 이미 예약 만땅인데다 그 동안 한사람도 예약 취소한 사람이 없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거리 단축을 위해 천관산 휴양림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6시 반쯤 천관산 휴양림에 도착했더니 야영장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녹음이 짙푸른데 산불예방을 위해서 그런다고 한다. 천관산 야영장은 몽땅 자갈 깔아 놓은 곳인데 무슨 산불걱정? 게다가 휴양림 게시판에서 그런 공지도 못봤는데 어찌 이럴 수가? 관리자는 지자체 휴양림은 야영장을 운영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유치 휴양림으로 전화를 했는데 거기서도 야영장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히 보성에 있는 제암산 휴양림은 야영장을 개방한다고 했다. 저녁도 못 먹었는데 계획 초장부터 비딱선을 타고나니 맥이 빠진다. 길바닥에서 내 버린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은 늘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 법, 새로운 상황을 즐겁게 맞이하자고 아이들에게 얘기하고 제암산으로 향했다. 50km가 넘는 산길을 따라 제암산에 도착하니 이미 사방이 캄캄한 밤이다. 나무 데크도 있었는데 언덕이라 아래쪽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거기 딱 한 가족이 야영을 하고 있었다. 아래쪽은 4각 나무틀 안에 소나무 조각을 채워 넣은 독특한 데크였다. 소나무 향기가 아주 좋았고 푹신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바닥이 따뜻한 느낌이다. 무려 8개월 만에 텐트를 다시 치려고 하려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게다가 작년 오서산 야영 이후 야영장비를 정리를 해 놓지 않은 탓에 손에 제대로 잡히는 것이 없다. 일단 텐트를 치고 짐을 넣은 다음 타프를 치는데 배는 고프고 긴 여정에 지쳐서 힘은 드는데 내색을 하지 못하고 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두 녀석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고 아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장거리를 온 탓인지 계속 힘들어한다.

옆 텐트에 있던 학생이 소시지와 함께 아이들 간식거리를 준다. 아버지 되시는 분이 타프 치는 것을 도와주셨다. 전북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학생인 줄 알았던 아들이 군대를 막 제대했다는 얘기에 무척 놀랐다. 힘들이지 않고 설렁설렁 하는 듯 하시는데 결과는 아주 야무진 것을 보고 탄복했다. 각을 잡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 힘들게 타프를 치니 이미 9시가 넘었다. 숯불 바비큐 하는 것은 포기하고 라면을 두개 끓여 저녁으로 때웠다.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아뿔사 수세미와 세제를 가져오지 않았다. 사방이 조용하니 좋다. 제암산은 아이들과 함께 철쭉 구경하는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내일 등산을 할 수 있을까? 만사가 다 귀찮아 자리를 깔고 누웠다. 아내가 “계획은 멋진데 실천은 엉망이네”라고 웃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나무 향은 그 어떤 침상보다도 훌륭하다. 바닥 느낌도 좋고 따뜻하고 습기도 차지 않으니 지자체 휴양림이 세삼 다시 느껴진다. 아이들이 요즘 푹 빠져있는 해리포터를 함께 보다가 11시가 돼서 잠을 청했다.

 

2일 아침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다시 잠을 청했다. 늦잠을 자고 싶다. 소쩍새를 비롯해 새 소리가 참 다양하다. 7시가 되니 사방이 환해지고 사람들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은 어제 먹지 못한 목살구이를 하기로 했다. 더 놔두면 상할 것 같다. 이상하게 숯에 불이 붙지 않는다. 30분 이상 고생해 간신히 불을 붙였지만 상태가 영 아니다. 다들 배고파 쓰러질 것 같아 대충 굽기로 했는데 불씨가 죽어간다. 다행히 식사 끝날 때 까지 불이 버텨줘서 고기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밤 사이에 야영객이 두 팀이 더 들어왔다. 서울서 온 중년 부부 한팀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4명. 그리고 아침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철쭉관광버스가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 놓는다. 곰재로 올라가 제암산 철쭉을 보고 싶었지만 점심 무렵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옆 텐트에 도움을 주셨던 가족은 텐트를 두고 등산을 가셨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철수를 해서 참 미안하다. 보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공룡알 화석지에 도착하니 바람도 아주 강하고 파도도 높은 편이다. 준기는 제 세상을 만난 듯 너무 좋아했다. 공룡 발자국 화석과 알 화석을 돌아보고 나서 아직 개관을 하지 않은 보성공룡박물관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네비게이션으로는 검색이 안된다. 해안을 따라 죽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는데 해안을 따라 가면서도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차 안에서 간식으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 고흥으로 길을 잡았다. 저녁을 먹을 곳과 팔영산휴양림 사이에 거리가 제법된다. 일단 늦어서 저녁은 먹어야겠기에 고흥군청 쪽으로 갔지만 유명하다는 한정식 집은 전화도 안받고 주소지에도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찾은 집은 행사 예약 손님이 있어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 이번 여행에서 남도 쪽 한정식 집은 웬만하면 찾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굳혔다. 작년 여름 강진의 한정식 집에서도 그러더니...

다시 돌아 나가기는 늦었고 팔영산 휴양림을 향해 갔다. 야영장을 하기는 한다는데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가는 길에 밥먹을 곳이 있나 찾아봤지만 계속 산골로 난 길이다. 멀리 팔영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장관이다.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기 시작하는데 큰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가까이 갈수록 팔영산은 생각 이상으로 웅장하고 큰 산이다. 6시 거의 다 돼서 매표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니 끝없는 산길이 나 있는데 계속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기만 한다. 산의 규모에 압도되고 울창한 밀림 같은 숲에 점점 불안감만 커진다. 4km 정도 들어간 것 같은데 드디어 사진으로 본 휴양관 건물이 보인다. 헌데 매표소도 관리소도 보이지 않는다. 휴양관 앞으로 올라가니 일하시는 아주머니인 듯, 두 명이 있다. 매표소와 관리소를 물었더니 우리가 지나온 빈 건물이 매표소란다. 6시면 퇴근한다는데 우리가 들어올 때는 한참을 찾아 봤지만 사람이 전혀 없었다. 이 곳 야영장은 비바람이 많이 불어 거의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입구와 숙박시설이 너무 멀어 오가는게 쉽지 않다고 한다. 아마 매표소 사람들이 퇴근하면 이 안에 관리소에서 상주하는 이 분들이 관리를 하는 모양이다. 야영비용을 물어봤더니 “아따, 그 먼데서 오셨는데 비용이 대수간디. 일단 야영을 할 수 있을지 가보고 정하시고 비용은 신경 쓰지 말더라고 이” 하신다. 바람이 장난 아니게 심하다. 온 숲이 날아갈 듯 바람이 분다. 게다가 야영장은 바람의 통로인 듯 더 심하다. 머릿속이 송곳으로 찌를 것 같이 바람이 차갑다.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입히고 야영장으로 올라가보니 관리를 안한 듯 데크가 부서진 곳이 많다. 날씨도 을씨년스러워 귀곡산장 같은 분위기. 다행히 안쪽과 아래쪽에 숲속의 집 두 채가 있어 오싹하지는 않다. 마루바닥이 부서지긴 했지만 텐트 2개를 칠 만한 크기의 데크에 지붕이 있는 곳이 있었다. 오늘 밤 폭우가 쏟아져도 괜찮을 것 같다. 거기에 텐트를 치고 은박 돗자리로 바람막이 벽을 쳤다. 바람을 막으니 한결 낫다. 준비를 끝내고 나니 저녁 9시다. 집에서 준비해 간 포장 설렁탕을 끓여 저녁을 먹었다 압력밥솥의 압력이 샌다. 아마 고무패킹 수명이 다 됐나 보다. 밥이 설었다. 아이들에게 해리포터 영화를 보여주고 설거지를 했다. 비가 온다.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정도다. 이 야영장은 식수대만 있고 취사장과 세면장이 없다. 이틀만에 발을 닦고 잠을 청했다. 40분만 해리포터에 보고 자라고 해 놨더니 11시가 됐는데도 계속 보고 있다. 내일을 위해 강제로 재웠다. 내일 외나로도 우주센터를 갈지말지 고민이다. 월요일에 박물관이 문을 닫으니 고성 공룡박물관을 내일 보지 못하면 일정을 맞출 수가 없는데....

 

3일 새벽, 빗소리가 난다. 큰 산인데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겨울침낭인데도 침낭 지퍼 있는 쪽은 차갑다. 얼굴의 반을 가리지 않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다. 시계를 보니 역시 새벽 5시. 발효식 화장실에 다녀와서 쌀을 씻어 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지금 일어난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꿀 맛 같은 아침잠을 자고 7시에 다시 일어났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어 기온은 계속 낮은 상태.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차에서 숯을 꺼내와 불을 피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기 전에 잔가지들을 모아 놓을 것을....오늘은 불과 2~3분만에 숯에 불을 제대로 붙였다. 불을 피워 놓으니 한결 낫다. 아내가 일어나더니 벌겋게 제대로 불붙은 숯을 보더니 고구마나 감자 구워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단다. 두 사람 다 오랜만에 휴양림 길을 나선 때문에 필수품 준비 곳곳이 구멍이다. 아이들도 일어나더니 고기를 굽던지 고구마를 굽던지 하자고 아우성이다. 드디어는 은주아빠까지 찾는다. 흐흠. 이번 여행은 첨부터 계속 아귀가 맞질 않는다. 아침은 준비해 간 섬진강 재첩국을 끓여서 때우고 나로우주센터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40km가 넘는 거리다. 이 비바람 속에 거길 갔다가는 언제 고성공룡박물관을 갈지 기약이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11시에 출발해 순천에 도착하니 12시. 비는 그쳤다. 국이준이아빠께서 추천해 놓은 벽오동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맛있고 값싼 단일 메뉴가 경쟁력이 있다. 야영을 하면 식욕은 암튼 무지 왕성해진다. 한끼에 밥 3~4공기는 뚝딱인데 벽오동에서도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다 비웠다. 점심을 먹고 고성 상족암을 향해 길을 떠났다. 연우가 이왕이면 남해편백휴양림에서 야영하자고 해서 남해편백에 전화를 걸었더니 야영하는 사람들이 없는 모양이다. 운영은 하는데 비가 와서 권하고 싶지는 않다는 관리소측 이야기. 상족암에 도착해서 정하기로 하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낯익은 박물관 근처에 도착했다. 휴일인데다 공룡엑스포 행사를 하는 기간이라 그런지 주차장 들어가는 길이 거북이 걸음이다. 한참만에 차를 대고 박물관에 들어가니 벌써 3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외부는 좀 바뀌었다. 내부 전시물 가운데 준기가 어렸을 때 무섭다고 도망가서 보지 못했던 곳도 샅샅이 다 구경했다. 세월이 갔고 아이가 자랐다는 느낌이 든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바닷가 쪽으로 공룡 발자국을 보러 갔다. 많은 사람들이 안내 데크를 따라 바닷가에 있는 공룡의 흔적을 구경한다. 저 멀리 해안 쪽으로 요트 세일링하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지나간다. 6시가 거의 다 돼서 해 지기 전에 잠자리를 결정하자고 하는데 준기가 계획대로 상족암 오토캠핑장에서 야영을 하잔다. 일교차가 너무 큰 날씨의 연속이라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해 다들 지칠대로 지쳤다. 그동안 야영장에 세면장이나 샤워장이 없어서 땀을 씻지 못해 오늘은 샤워를 하고 싶다. 상족암 공원 샤워장은 여름 해수욕 시즌에만 문을 연단다. 남해 편백을 들어가면 40km를 들어갔다가 다시 통영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체력낭비일 것 같았다. 지친 준기맘의 짜증도 더해가고....상족암에서 야영하기로 하고 고성공룡테마파크로 내려갔다. 허걱! 보이는 곳은 모두 이미 텐트족들이 점령하고 있다. 6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30분 정도 탐색한 끝에 오토캠핑장에 빈 공간을 하나 발견해 텐트를 쳤다. 사실 텐트 치고 싶진 않았다. 우리 텐트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 미국, 독일산 고급 텐트나 비싼 국산 리빙쉘 같은 “음메, 기죽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최고급 텐트들이다. 거의 다 발매 1년이 채 안된 신형들이고 부대장비하며, 거기다 최근 2~3개월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인디언 텐트까지. 우리 텐트와 타프는 그야말로 봉황이 노는 골에 참새 한 마리 꼴이다. 다들 여러가족 또는 동호회에서 온 모양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봐왔던 유명한 카페 표시가 들어간 텐트와 타프가 즐비하다. 오랜만에 치는 텐트와 타프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로도가 훨씬 심했다. 결심했다. 다음에는 꼭 휴양림에서 야영할 것이며, 최소한 두 가족 이상이 함께 해야겠다고. 혼자 치는 일은 함께 칠 때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들었다.

텐트를 치고 나니 저녁 8시 가까이 되었다. 일찍 텐트치고 고기랑 횟감을 사와서 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도루묵이 되고 안되겠다 싶어 머리에 떠오르는 삼천포 회센터를 찾아 낮에 온 길을 되짚어 갔다. 삼천포 수협 근처에 있는 회센터에서 준기는 물고기 구경 실컷하고 횟감을 떠서 먹고 오는 길에 봐 둔 사우나로 갔다. 이번 여행 내내 음식점이나 원하는 곳은 네비게이션으로 검색이 되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조금전에 본 사우나도 굉장히 큰 건물인데도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걍 육감으로 짚어 갔는데 다행히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았다. 이미 밤 10시. 각자 한 녀석씩 데리고 사우나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몸무게를 달아 보니 3kg이 줄었다. 준기는 2kg이 늘었고. 아내와 연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준기에게 해리포터를 보여주다가 12시가 거의 다 돼서 야영장으로 되돌아 왔다. 그 시간까지 수많은 야영객들이 저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린 조용히 텐트 속으로 들어갔지만 잠자기가 힘들다. 역시 우리는 호젓한 휴양림 체질이다.

 

선잠을 잔 듯 한데 눈을 뜨니 새벽 5시. 남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바닥이 차갑지 않았다. 습기도 생각보다는 덜 찬 편이었는데 바깥에 나와보니 사방은 온통 안개에 싸였고 타프에는 물방울이 엄청나게 맺혔다. 마치 비가 온 듯한 바닷가의 새벽. 카메라를 들고 나가 야영장과 바닷가를 한바퀴 돌고 다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오늘은 통영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최소한 밤 12시는 돼야 할 것 같아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닷가는 해가 뜨지마자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텐트 안이 따끈따끈 하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자동차 오가는 소리도 잠을 방해하지만 8시 가까이 되도록 침낭속에서 뒹굴었다. 쓰레기 집하장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타프 방향을 틀어 놓았는데 아침에 보니 실책이다. 해가 떠도 한쪽만 마르고 반대쪽은 물방울이 그대로다. 솥을 걸어놓고 빨랫줄을 걸어 손에 잡히는 모든 섬유제품을 널었다. 우산도 펴 놓으니 정말 잘도 마른다. 햇살이 따갑다. 집에서 준비해 간 김치찌개를 데워 아침을 먹고 나서 준기는 어제 확인하지 못한 곳을 꼭 봐야 한다고 엄마를 끌고 공룡발자국을 보러 갔다. 2시간 넘게 걸려 돌아온 아내에게 들으니 박물관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왔다고 한다. 준기와 아내가 구경간 사이에 짐을 싸고 철수 준비를 했다.

12시 30분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통영으로 출발했다. 굽이굽이 해안으로 난 산길을 돌아가니 청자빛 맑은 바다에는 하얀 양식부표가 점점이 떠 있다. 통영 근처에 다다르자 박경리 선생 1주기 추모제를 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통영시내는 언덕인데다 길이 좁아 애를 먹었다. 주차장이 없어서 두바퀴나 돌 다 중앙시장 뒤편에 공영 주차장에서 간신히 차를 댈 수 있었다. 금년 3월 1일부터 유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단 현지아빠가 맛있다고 하신 뚱보할매김밥집에 들러 4인분 + 2인분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나서 남해에서 타보지 못한 거북선을 타 볼 수 있었다. 준기는 너무 좋단다. 중앙시장과 활어시장을 구경하고 동피랑 마을로 올라갔다. 우리 어렸을 때 흔하게 봤던 정겨운 골목길이다. 겨울에 여기까지 연탄 배달하려면 참 애먹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 마을을 찾았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들이 곳곳에 있어 분위기도 따뜻하다. 준기와 연우는 이번 여행 중에 여기가 제일 좋단다. 꼭대기에 올라가 통영항을 바라보았다. 저 언덕에 집들을 모두 하얀 벽과 파란 지붕으로 칠하면 여기가 바로 그리스 산토리 해변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규격화된 아파트는 표준말을 강요하는 것만큼 제국주의 전체주의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이런 모습으로도 살 수 있고 저런 모습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을 허용해 주는 그런 세상을 잠시 꿈꿔본다. 5시쯤 세병관 앞 통영민속박물관에 들러 나름 알차게 전시해 놓은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누가 기획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도시의 박물관답지 않게 아기자기한 게 보기 좋았다. 월요일에 문을 연 박물관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박물관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세병관을 갔다. 통제영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다. 통영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위해 주차장 시설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중심가가 넓지 않은 만큼 아예 통영 중심가에 외부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셔틀교통수단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망일루를 지나 입장료를 내고 지과문(止戈門)을 지나 거대한 세병관에 들어섰다. 밀양의 영남루에 필적할 만큼 큰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처음 설치한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소인 통제영의 핵심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주변이 모두 민가가 들어서서 복원작업 중이라고 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해야 할 가장 큰 책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창칼을 내려놓고(止戈), 군대를 물리는(洗兵) 일이야 말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했던 유학자들의 높은 철학적 세계관이었다. 이런 철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장수들이 있었기에 문약하게만 보이는 조선이 5백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를 찾아 부산에서 해남까지 다시 한번 길을 나설지도 모르겠다.

전혁림 미술관 가는 길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달아공원에 가 보기로 했다. 중앙시장에 들러 오랫동안 시장에서 동그란 도너츠와 팥빵을 만들어 팔아왔다는 집에서 3가지 종류를 샀다. 지금와서 후회스럽다. 몇 만원어치 사올 것을...6천원어치를 샀는데 너무 맛있었다. 집에 가서 함께 먹을 횟감도 떠서 도너츠를 먹으며 달아공원으로 향했다. 6시 반을 조금 넘어 달아공원 근처에 도착했는데 지리산 노고단 주차장 근처마냥 좁은 언덕길에 차들이 줄을 섰다. 버스가 겨우겨우 지나갈 정도만 남은 길을 비집고 반대쪽으로 넘어가 길가에 최대한 붙여 차를 댔다. 공원은 작았는데 저녁 노을과 해넘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붉은 빛을 뿜으며 구름 속으로 해가 사라졌다. 아래로 내려오니 유채꽃은 아닌 것 같은데 노란 꽃들이 참 예쁘다. 그 덕에 사람들이 자꾸 내려가 사진을 찍으니 사람발에 밟혀서 그 꽃들이 남아 날 것 같지가 않다. 그 때 구름 아래로 다시 붉은 해가 얼굴을 드러냈다. 실제로 보는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사진이지만 계속 찍어댄다. 마침내 해가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다 아래로 사라졌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공원 건너편에 국립수산과학관이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여행이 끝나가자 아이들은 너무너무 아쉽단다. 여행에 맛을 제대로 들인 것인가 아니면 엄마아빠 고생하는 줄 모르고 너무 편한 여행을 한 것인가? 도남 관광지 쪽으로 길을 잡아 횟집촌에 들러 남들 모두 회를 떠서 먹는데 우린 굴국밥과 굴밥을 시켜서 먹었다. 9시를 조금 넘어 우리 집으로 길을 잡으니 373km라고 나온다. 아이들에게 얼른 자라고 당부하고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올라 죽어라고 달렸다. 5일 새벽 1시에 마침내 우리 집에 도착했다. 1,302km. 계획은 거창했으나 첨부터 어긋난 길은 여행기간 내내 힘들게 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 주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야영 준비물을 다시 정비해 이번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고, 또 한정식으로 유명한 집보다는 모범식당 중심으로 점심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거리 여행 때는 도중에 사우나에 들러 피로를 푸는 일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