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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유럽연수(2007년)

폼페이 (2)

by 연우아빠. 2008. 2. 27.
2007.12.27 폼페이 유적(2)


폼페이 항구에서 불과 2k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폼페이 유적

오후가 되자 기온은 더욱 내려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 근처에 있는 보관 장소.
여기에는 유적 발굴 과정에서 수습한 생활용품과, 용암에 타버린 공간을 석고를 채워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동물들의 모습을 본 뜬
유물들이 들어 있다. 백년이 넘는 기간동안 발굴을 하고 있고, 계속해서 수습한 유물들이 쌓여간다.



폼페이 시장이 있던 곳의 건물 기둥

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든 해시계가 아닐까 싶은 유적이 시장 한 가운데에 있다.



목욕하는 모습이 남아 있는 프레스코 기법의 벽화


공중 목욕탕인 듯 한 유적에 남아 있는 남녀 석상





고대의 도로는 마차가 달리는 가운데 길과 사람들의 통핼로로 구성되어 있다.
비가 오면 마차가 다니는 길은 경사를 따라 물이 흘러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고, 마차 바퀴 폭에 맞춘 횡단 징검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마차는 쇠테를 두른 바퀴를 사용했던 것 같다. 마차 폭 너비로 오랜 시간 바퀴를 굴린 자욱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길 끝에는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은 지역이라 통행 금지 표시가 있다.


빨간벽돌은 현대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마차도로, 보행로, 건물이 매우 효율적으로 배치된 느낌을 준다.



귀족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하는 건물의 내부 벽화



보통사람들은 공공우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집 안에 우물을 갖춘 집은 당시의 귀족들 소요 저택이라고 한다.


화산재의 영향으로 사라졌지만 채색의 흔적이 벽마다 잘 남아 있다.


폼페이의 방앗간 유적.
저 돌은 노예들이 밀가루를 빻던 돌절구라고 한다. 구멍에 나무를 끼워 걸어가면서 돌리는 연자방아 같은 도구


규격화된 도시 같은 느낌을 주는 건축물들


시내 도로를 이렇게 균일하게 포장할 수 있었던 당시 수준이 매우 놀랍다.


로마시대. 상업도시였던 폼페이에는 외식업체들이 제법 있었는데
여기는 아궁이에 솥을 걸고 음식을 팔던 곳이라고 한다.
손님들은 여기에서 서서 음식을 먹었다고...












신전 유적






2천년 전에 새긴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시멘트, 콘크리트, 전돌을 건축에 사용한 기술이 놀랍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는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의학의 신 헤르메스 상.
이곳은 고대 공공우물이 있던 곳이다.
헤르메스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식수를 받아 가정에서 사용했다.
석회석이 섞인 유럽의 물은 장기간 음용하면 사람 몸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섬세한 대리석 조각에는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유리로 보호장치를 만들어 씌워 놓았다.
대리석은 세공하기 좋은 부드러운(?) 석재로 정교한 묘사가 가능한 재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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