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A 2017 참관여행(8) - 마스트리히트
9월1일(금) 오전에 비 오다가 낮에 갬
어젯밤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창 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다른 유럽 사람들처럼 비가 오건 말건 꿋꿋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한다. 캠핑용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버스를 타러 나섰다.
오전 세션을 마치고 구내에 임시로 만든 카페테리아로 갔다. 이탈리아 계로 보이는 여자분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제 오늘 자기가 들어간 세션에서 계속 우리 부녀를 봤노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고고학자냐고 물어본다. 딸은 유물보존과학과를 다니고 있고, 나는 아마추어 애호가일 뿐이라고 했더니 놀랍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네.
우리 세션이 좀 일찍 끝난 편이라 어제와는 달리 카페테리아에 여유가 있었다. 어제와 다른 다른 샌드위치로 주문해서 먹었다. 7.5유로짜리 샌드위치 하나가 보통 한국에서 먹던 것의 2배 이상으로 크다.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포스터를 보고 있다가 어디서 많이 본 서양 여자를 만났다. 이번에도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분이다. 연우가 7월에 다녀온 시베리아 극지연구소의 연구원인 나탈리아(Natalya Ryabogina).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시장에서 한국인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 셋을 보았다. “저 분이 친구가 말한 그 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물어보진 않았다. 오후 세션은 도심개발과 문화재 보전에 관한 주제를 들으려고 했는데, 정작 시작하고 보니 핀란드와 북유럽의 중세 철기문화에 관한 세션이었다. 중간에 나갈 수가 없어서 논문 3편과 토론까지 참관하고 커피 브레이크 때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갖고 있던 시간표는 5월에 게시된 시간표였고 7월달에 수정이 된 것을 몰랐던 것이다. 들으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북유럽의 철기문화에 대해 처음 들어본 세션이라 나름 재미는 있었다.
커피 브레이크가 끝나고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식곤증과 함께 졸음이 쏟아졌다. 딸래미도 좀 힘든 것 같았다. 하긴 영어로 진행된 발표를 이틀간 15편 정도 긴장하며 집중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다른 참석자들도 슬슬 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분위기. 먼길을 왔는지 담배 피우러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많아지고, 오후 세션 진행 중인데도 어제에 비해 세션룸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우리는 분위기를 보러 온 것이라 오후 4시쯤 강건너 중심가로 나왔다. 시청 광장에서 18~9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이 도시 출신인 요하네스 페트러스 민켈러스의 동상을 발견했다. 동상은 ‘영원한 불타는 불꽃’을 들고 있다.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줄 화장품을 고르러 쇼핑센터에 갔다. 색조 화장품은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줘도 의미가 없는 것이 고유번호를 모르면 스크린마다 색깔이 다르게 보여서 고를 수가 없다. 대충 번호를 확정하고 제품은 나중에 스키폴 공항 면세점에 가서 사기로 정했다. 거리에서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시인인 피에르 켐프(Pierre Kemp)의 작은 석상을 발견했다. 그 역시 이 도시 출신이라고 한다.
특별히 먹을 만한 음식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시 Tokyoto에 갔다. 식당 주인이 아는체를 한다. 그저께 우리에게 자기집 주문 시스템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기억 때문이 모양이다. 오늘은 17가지를 골라서 먹었는데, 이 집은 소스가 내 입맛에는 짠 편이라 조금 아쉬웠다.
딱히 더 볼만한 것이 떠오르는 도시가 아니라 골목골목 걸어다니며, 이 지역의 유명한 아이스크림 체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러나 역시 이탈리아 젤라또만한 것이 없는 듯 하다. 고색창연한 프로테스탄트 교회 앞에 내부를 아이스크림 가게로 꾸민 것이 독특해서 가게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내일은 논문 발표가 없기 때문에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위트레흐트를 둘러보고 공항으로 갈 계획이라 짐을 정리했다.
연우는 내일 미피(Miffy, 원명 Nijntje 니엔제) 박물관을 볼 생각에 흐뭇한 모양이다.
여행자에게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한 초가을 풍경
비 내리고 난 뒤 마스트리히트의 기온은 10도 가까이 떨어졌다.
하늘은 한국보다 더 없이 깨끗했는데, 비가 오고 나니 더욱더 티끌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이 되었다.
토기의 발전 상태를 보여주는 우리 세션...별로 인기없는 주제인지 10여명 남짓 듣고 있다.
노 대륙답게 학자들 역시 좀 느긋하고 느슨한 듯한 느낌
커피 브레이크 때마다 포스터를 보고 있는데, 하나 하나 많은 학자들의 땀이 스며든 작품들이다.
대개의 학문이 그러하지만 고고학과 역사학은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편 생활양식을 추적하는 과정인 듯 하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느슨해진 듯한 분위기이다.
이 행사는 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고고학 컨설턴트 회사가 관리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고고학과 연관된 학문적 성과를 알리고, 사업화하고 자신들의 연구주제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유럽 각지에서 고고학과 관련된 행사를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같은 유럽이지만 이동 거리는 역시 만만치 않은 장거리 여행일 것이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사람들의 느긋함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발표가 끝난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 한 듯...
전시장 풍경
전시장 풍경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에 점점이 구름이 떠 가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가끔씩 입구에 나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발표를 마친 사람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일행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EAA2017 총회 모습을 주최측 페이스북에서 가져 왔다.
유럽의 면적은 중국과 비슷한데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오후 세션을 듣던 중간에 너무 졸려서 커피 브레이크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뫼즈 강을 거너 서쪽 시가지로 넘어왔다.
시내 관광객을 태우고 도는 투어용 전기자동차
오래된 성당(성모마리아 성당 Basillica of Our Lady) 한 귀투이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천천히 시내를 걷는다.
마치 동네 한바퀴 도는 것 같이...
금방 강변으로 나왔다.
지름이 2km 남짓한 시가지.
수백년 전에 만든 다리와 현대 기술로 만든 다리가 뫼즈 강을 넘나든다.
강변에는 1659년에 세운 교회 건물이 있다.
골목이 있는 도시는 늘 평온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차가 없으니 걷기에도 너무 좋다.
누군가 세워 놓은 나무 자전거.
마스트리트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웅장한 교회 건물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에 잔디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오래된 성벽길로 올라왔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던 7년전과 달리 이 도시의 일부인 듯 조용히 천천히 돌아보는
그런 것이 편한 여행이 돼가고 있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나 귀국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좀 더 돌아다닐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언젠가 또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