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에 가다(6/8)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6/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6) 2015.08.22.(토) : 이르쿠츠크~바이칼 알혼섬
이르쿠츠크에 가까이 갈수록 엘라 차장은 정신없이 바쁘다.
객실을 돌며 베갯닛과 매트리스 커버, 이불 커버를 회수하고 매트리스를 둥글게 말아 제자리에 정리했다.
바닥에 쓰레기를 처리하고 카펫도 정리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40명 승객이 동시에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혼자 처리하기 힘든 일일 듯하다.
예정시각 보다 10분쯤 늦은 현지시각 새벽 1시 20분(서울시각 02:20),
기차는 마침내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했다.
깊이 잠든 준기와 한결이를 깨워 7번 플랫폼에 내렸다.
마침내 75시간 28분에 걸친 TSR 기차여행이 끝이 났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 이렇게 섭섭할지 처음 탈 때는 예상치 못했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이대로 모스크바까지 가고 싶다고 했고
박 사장님은 "우리 그냥 모스크바로 가요?"하며 웃었다.
그동안 고생한 엘라 차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플랫폼은 아수라장이었다.
우리 일행이 내리는 9번~11번 객차에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표를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하느라
엘라 차장은 정신이 없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르쿠츠크 시내는 조용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매리어트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는 새벽시간인데도 손님을 환영하는 러시아 전통 호밀빵과 소금을 받쳐든 직원이 서 있었다.
다들 호밀빵 한조각을 떼서 소금이 찍어 먹으며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호텔 객실은 서유럽 호텔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길래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했다.
사무실에서 일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연우는 러시아 기념품을 사오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그런 패키지 관광 여행과 좀 다른데 어쩌나?
아침에 일어나서 관광을 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게 필요하다.
사흘간 제대로 씻지 않았으므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다.
준기가 “이 멋진 호텔에서 하룻밤도 제대로 자보지 못하다니!”라며 아쉬워한다.
재빨리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현지 기온은 24도 정도에 습도가 낮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시베리아가 서늘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침을 생각없이 뜨다보니 평소 식사량의 1.5배는 먹은 것 같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한다.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와 이르쿠츠크 관광을 시작했다.
이르쿠츠크는 "힘센 사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브리야트어라고 한다.
처음 간 곳은 이르쿠츠크 개척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대학 때 불온서적(?) 반열에 들었던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에서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
데카브리스트당의 기념관에 실제로 와 있다니.
강고한 소비에트 체제와 전두환 반란정권이 무너지고 이런 세상이 될 줄 꿈도 꾸기 어려웠던 시절인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되새겨본다.
여행에 동참한 내 또래 사람들은 전두환 정권과 싸우며 보낸 세대라 다들 감회가 새로운 듯.
도시를 가로지르는 앙가라 강 옆에 파스텔 톤의 건물. 러시아에 와서 처음 횡단보도를 보았다.
깐깐하게 생긴 엘레나 도브뤼니나 관장은
우리 일행을 위해‘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문화의 기원’에 대해 강의를 해 주었다.
우리 가이드 가운데 모스크바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가 순차 통역을 해 주었다.
강의실에는 멋진 샹들리에 3개가 있고, 역대 이르쿠츠크 총독의 초상이 벽에 걸려 있었다.
총독 가운데는 중국인 어머니를 둔 사람도 있었고 하이든 같은 외모와 패션을 갖춘 사람도 있었다.
변경 지역이라 그런지 무관 복장을 한 총독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1년중 6개월이 겨울이라고 한다.
겨울 추위 때문인지 건물 벽의 두께는 50cm를 넘어 보였다.
엘레나 여사는 데카브리스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이 박물관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전형적인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양식인 것 같다.
1804년에 처음 세운 이 건물은 1899년까지 이르쿠츠크 총독의 관저로 쓰다가
1970년 12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적 하향식 혁명이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다가 패주할 때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해 파리까지 진격한 젊은 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파리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변화된 유럽을 보았다.
러시아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농노제 같은 중세적인 조국의 현실에 분노를 느꼈고
니콜라이 1세 황제 대관식에 맞춰 1825년 12월 무장봉기를 한다.
그러나 정부군에 진압되어 주동자 5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대부분 교수대 위에서 사면을 받아 이르쿠츠크 등지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유형을 당한 사람 가운데 18명만 기혼자였는데
정부는 이들의 부인에게 남편을 버리고 귀족 신분을 유지하던가
귀족의 특권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던가 선택을 요구한다.
주동자인 트루베츠코이 공작 부인, 발콘스키 공작 부인 등 11명은 동토의 땅으로 남편을 따라와 살게 됨으로써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진주가 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귀양을 간 사대부에 의해 지방의 유교 문화가 번성한 것처럼.
예전 같으면 여성들의 순애보라고 생각했겠지만, 현대 여성에게 이런 해석은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경험이 얕은 순진무구한 청춘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다시는 귀족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가시밭길을 간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러시아의 평가에 대해 질문을 받고
엘레나 관장은 소비에트 시대에는 최초의 러시아 혁명가로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은 변화를 지향한 지식인 그룹이며 러시아에 활력을 넣어준 혁명가로 평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덧붙여 한국과 이르쿠츠크는 관광을 비롯한 문화교류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모스크바나 상트 뻬쩨르부르크보다 한국과 더 밀접한 관계이며
많은 한국인의 방문과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19세기 중반의 시베리아 극동 탐험보고서 같은 귀중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사람의 삽화도 있었는데 시간이 제한적이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후에 다시 이르쿠츠크에 배낭여행을 오고 싶다.
이르쿠츠크는 깔끔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1879년 이르쿠츠크에 큰 불이 나서 나무로 된 당시 주택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 이르쿠츠크는 그때 이 후에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를 안내하는 여행사 가이드 청년들 대부분 이르쿠츠크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은 약 100여명 정도라고 한다.
오늘은 바이칼 호 안에 있는 알혼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르쿠츠크를 조금만 보고 가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에서 나와 길 건너 강변 공원으로 갔다.
러시아 도시에는 대개 광장만 있는데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으로 인해 공원이 있다고 한다.
공원 앞에는 바이칼 호에서 나오는 유일한 강인 앙가라 강이 흐른다.
앙가라는 브리야트 어로 '커다란 구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앙가라 강은 예니세이강과 합류하여 북극해로 올라간다.
예니세이강과 한반도는 선사시대에 동일한 문명벨트로 유서가 깊은 지역이다.
앙가라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강 정도로 폭이 큰 강인데 거대한 수중 분수가 있었다.
청둥오리와 개리 같은 철새들이 삼삼오오 물질을 하며 먹이를 찾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우리는 강으로 내려가 손을 담궜다.
물이 따뜻했고 정말 맑았다.
한강과 달리 호안에 시멘트를 바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직접 강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강에는 제트 스키가 일렬로 서서 달려간다.
공원에는 주말을 맞아 시민들이 놀러 나왔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나무그늘 아래에 젊은 남녀 한 무리가 춤을 추고 있다.
방송국에서 나온 것인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들도 있고
드론을 띄워 광장을 촬영하는 듯 하다.
광장 한 가운데는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TSR을 처음 착공한 사람이 바로 이 짜르이다.
이 동상은 이르쿠츠크 역 개통 10주년을 기념해 1908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트렘블린과 전기자동차도 있다.
비둘기가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러시아 꼬마가 달려가자 비둘기는 하늘로 날아 오른다.
재미를 붙였는지 이리저리 광장에 모인 비둘기 떼를 향해 계속 달려간다.
결혼신고를 마친 신랑신부와 하객들 모습도 보였다.
공원을 떠나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를 들어가다가 하얀 부조가 새겨진 비석을 보았다.
적백내전 당시 백군에게 포위되어 싸우다 전사한 적군병사 153명을 기리기 위해 레닌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나 피어린 역사를 품지 않은 경우가 없는 모양이다.
점심은 이르쿠츠크 시내 올드카페(Old Cafe)에서 먹었다.
이르쿠츠크 시내는 다른 도시와 달리 영어 간판이 드문드문 보였다.
대화재 때 살아남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러시아는 창문을 보면 부유한 집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부유한 집은 창문 모양도 아름다운데 가난한 집은 창문 모양이 사각형이라고 한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알혼 섬을 향해 출발했다.
도시를 가로질러 나가는 동안 말을 탄 사람, 쌍봉낙타를 탄 사람들이 드문 드문 보였다.
그 가운데 10살 조금 넘은 듯한 여자 아이가 말을 타고 낙타를 끌고 가는 모습도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다시 끝없이 평원이 이어졌다. 지평선과 숲 그리고 초원.
박대일 사장님은 바이칼 호수 주변 지역은 스텝지역으로 매우 건조한데다
최근 2~3개월 사이에 건조한 날씨 때문에 동시다발로 초원에 불이 일어났다고 한다.
마찰열로 인한 자연발화인데 러시아 정부에서 한 달 전에 평원의 불을 끄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했으나
더 많은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봤던 자작나무 숲의 나무가 어려보였던 이유 대부분이 이런 산불 때문에
숲이 타버리고 새로 자라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튼, 그래서 알혼섬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준다.
사람들이 실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약 4시간 동안 달려야 알혼섬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길 가에는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숲을 배경으로 작은 마을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도 보이고, 말을 키우는 곳도 드문드문 보였다.
1시간 반쯤 달렸을 때 브리야트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우스찌아르다> 성황당에 도착했다.
마침 결혼신고를 마친 부리야트 신혼부부가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들 부부를 축하하는 기념사진의 배경도 되어 주고 악수도 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낼 것을 축원해 주었다.
러시아에서는 결혼식이 따로 없단다.
먼저 결혼등록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 뒤 친구와 친척,
가족들이 모여 다니며 여기저기서 하루종일 즐겁게 논다고 한다.
음주 운전이 걱정스러울만큼 술도 많이 마신다고 한다.
하긴 도로가 넓고 끝없는 평원인데다 다니는 차도 없어서 특별한 사고를 내기는 힘들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성황당에는 자손의 번성을 비는 곡식과 재물의 풍요를 비는 동전이 어지러이 쌓여있다.
성황당에 있는 재물은 손을 대면 천벌을 받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
여행이 무사하기를 텡그리에게 축원했다.
다시 출발한 길에서 좁은 지역에만 울타리가 쳐져 있고
가축은 돌보는 이 없이 떼지어 다니며 풀을 뜯고 있다.
워낙 목초지가 넓다 보니 주인은 재배해서 먹는 채소와 곡식이 있는 곳만 가축이 손을 댈 수 없도록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그 외 바깥 쪽은 맘대로 뜯어먹게 놔둔다고 한다.
시간이 되면 동물들은 알아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너무 넓은 나라에서 상식이 반대로 움직이나 보다.
러시아는 화장실이 정말 열악했는데
푸세식인 것도 그렇지만 사람 숫자와 전혀 맞지 않게 화장실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알혼섬에 들어가기 전 2번 화장실 때문에 정차를 했는데
박 사장님은 1사람이 1분씩만 사용해도 70분이니 2번이면 140분 약 2시간 반이 지체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로 화장실은 여성들이 줄을 서 있고,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 볼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땅을 사서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웃었다.
두 번째 정차한 곳에서 커다란 변전소 시설을 보았다.
알혼섬에 작년말부터 전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러시아 부자들이 알혼섬에 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전기공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혼섬을 향해 가는 동안 러시아에서 인기를 많이 얻은 유행가를 보여주었는데
<모래시계>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이
2차대전, 적백내전 중에 죽은 병사의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들이나
2차대전 중에 승리를 이끈 소비에트 병사들을 기리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 같지않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내 초원지대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가 맞는지
"처음부터 길인 곳이 어디 있느냐? 한 사람, 두 사람 다니다가 보니 길이 된 것이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자동차가 다니는 곳은 곧 길이 되었고 황량한 스텝지역 가운데로 어지럽게 많은 길이 나 있다.
우측 통행, 좌측 통행 개념 따위는 필요없다.
대도무문이라더니 끝없이 넓은 평원은 차가 몇 번 다니면 길이 되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와 김리, 아라곤이 오크 군대에게 잡혀간 메리와 피핀을 구출하기 위해
추적하는 길처럼 황량한 스텝지역이 계속이어졌다.
바다와 가장 먼 내륙 깊은 이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있는 소금호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소금호수들이 보였다.
이 황량한 땅을 다니다가 죽는 사람도 있나보다.
길 가에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와 죽은 이를 기리는 사진과 꽃다발이 가득 놓인 장소가 드문 드문 보인다.
두터운 연기 때문인지 나무가 거의 서 있지 않는 스텝지역에 들어서자 하늘이 어둡다.
황사가 낀 것처럼 공기도 누렇게 보인다.
4시간 조금 더 걸려서 마침내 바이칼 호수에 있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태양은 붉은 색을 띤 채 마치 달처럼 동그랗게 보였다.
알혼섬은 포장도로도 없고, 대형 버스가 들어가기엔 배가 작다.
해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이 곳에 머물고,
알혼섬 안에서는 옛날 소비에트 시절에 개발한 쇳덩어리 같은 미니버스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선착장에는 대형 기중기가 호안 공사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침내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는 느낌도 잠시,
바이칼 호수는 어릴 때 사진으로 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깨끗하지 않은 탁한 색이었고 물 이끼도 끼어 있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호수를 건너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배 위에서 본 알혼섬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초목도 보이지 않고 갈색 흙덩어리만 보인다.
알혼 쪽으로 들어와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궜다.
물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니버스 10대. 전자장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튼튼하고 정비도 쉽기 때문에 알혼섬 안에서는 이 차가 제일 좋단다.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던 바로 그 자동차였다.
알혼섬의 어부들이 운전을 하는데 우리가 머물 숙소인 바이칼 뷰 호텔까지
비포장 도로 70km를 2시간 가까이 걸려서 달렸다.
로울링과 피칭이 심했지만 우리 차를 몰던 노련한 운전자는
흙으로만 된 도로를 찾아 달려준 덕분에 충격이 덜했다.
"야! 마치 매드맥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현지시각 오후 8시 40분쯤 바이칼의 유일한 호텔인 바이칼 뷰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공기 속에 나무가 타는 냄새가 섞여 있고 하늘은 연무가 낀 것처럼 뿌연상태였다.
숙소와 식당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시설이었다.
바이칼은 빠른 속도로 원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지만....
저녁을 먹고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졌다.
준기와 한결이를 데리고 반야(러시아식 사우나)를 하러 갔다.
샤워를 하고 반야에 들어가니 무척 뜨겁다.
5분도 되지 않아 땀이 쏟아졌다.
일단 야외 수영장으로 달려가서 시원하게 물에 뛰어 들었다.
물안경을 가져가지 않아서 아쉬웠다. 생각보다 넓은 수영장이었다.
반대쪽 벽에 도착해 바닥에 발을 대고 서려고 했더니, 헐! 내 키보다 더 깊은 물이었다.
다시 위로 올라와 대각선 건너편으로 헤엄을 쳤다.
물은 매우 깨끗하고 시원했는데 24시간 내내 수중 청소 로봇이 돌아다니며 물을 청소하고 있었다.
수영장 구조는 두 변만 130cm 깊이였고 전체의 2/3는 180cm 깊이였다.
두어바퀴 돌고 나서 다시 반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땀을 낼 수 있었다.
젊은 러시아 부부가 물을 뿌려 습도를 조절하다가 한국사람만 잔뜩 들어오자 자작나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남녀 혼욕을 하지만 옷을 벗지 않아도 되니 별로 거리낄 것은 없었다.
땀을 충분히 흘린 뒤 다시 수영장으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한결이는 수영을 배우지 못해서 수영장에 들어가기를 사양했다.
물안경이 없어서 오래 수영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다.
술잔을 기울이며 맘 놓고 밤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호텔에 투숙해 있었다.
새벽에 내린 이르쿠츠크역(사진-한겨레통일문화재단)
한밤중인데 이르쿠츠크 메리어트 호텔 로비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빵을 들고 직원이 서 있었다.(사진-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르쿠츠크 앙가라 강변에 있는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관장이 우리를 위해 강연을 하고 있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극동지방에 대한 탐험기록과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한 데카브리스트 사람들이 사용했던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
앙가라 강의 맑은 물. 얘네들도 밤 늦게 여기서 술을 마시고 병을 깨는 짓을 하는 모양이다.
깨끗한 강물 안에 깨진 유리병 조각이 보였다.
강변에서 젊은이들이 단체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배우고 출 수 있는 문화가 정말 좋아 보였다.
결혼등록소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가 가족, 친구들과 앙가라 강변으로 놀러 나왔다.
이르쿠츠크 철도역 개통 1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알렉산드르 3세 짜르 동상
그는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횡단철도 건설 사업을 처음 시작한 짜르이다.
앙가라 강에는 공원이 있다.
러시아에는 광장은 있어도 공원은 거의 없다는데 이르쿠츠크는 파리의 영향을 받아 공원이 있단다.
작은 아이가 비둘기 쫒아 다니는 놀이에 신이 났다.
1918~1922년 사이에 있었던 소비에트 적군과 짜르 왕당파 백군 사이의 내전 기간 중
이르쿠츠크에서 전사한 적군 병사 153명을 기리기 위해 레닌의 지시로 세웠다는 기념비.
이르쿠츠크 대화재에도 살아 남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이르쿠츠크 시청사인 듯...
시내에 말이나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찍었는데 달리는 버스 안이라 흔들렸다.
12~3세 정도 돼 보이는 소녀가 말을 탄 채 쌍봉낙타를 끌고 가고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
브리야트족의 성지 우스찌아르다 오보
우스찌아르다 오보에 놓인 동전과 곡식.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며 동전을 올려 놓았다.
아들은 여행의 무사함과 러시아에 다시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우스찌아르다 오보에 마침 브리야트 신혼부부가 친구들 수십명을 이끌고 왔다.
이 친구들의 요청을 받고 나를 포함해 우리 일행 수십명이 기념사진 찍히는데 동참했다.
그냥 지평선, 끝없는 초록 평원
드문 드문 마을과 인가가 보인다.
울타리 안에는 사람이 먹을 채소를 경작하는데, 가축들이 뜯어먹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고
울타리 바깥 쪽은 방목하는 가축의 천국이었다.
트랙터로 밭을 가는 모습
잠시 들린 휴게소에는 누가 특별히 돌보지도 않는 듯한 개가 몇마리 있었다.
이 녀석은 익숙한 듯 포즈를 취해주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바이칼 호수에 도착하기 2시간 전 쯤에 잠시 쉰 곳에는 변전소가 있었다.
작년말부터 알혼섬에도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캠핑을 다니는 삶인지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
여기서도 보이는 자동차는 대개 혼다나 토요다가 있었고 가끔 독일제 차들이 보였다.
반지의 제왕 2편에 에 나오는 풍경 같았던 자연지형.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한 기후라서 땅 속에 있는 바위가 이렇게 무덤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부서진다고 한다.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인 이 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소금호수가 있어서라고 한다.
사람과 가축의 생존에 필수인 소금이 바이칼 호 가까이 갔을 때 호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몇달째 불타는 초원 때문에 초목을 태운 연기가 하늘을 가렸다.
맑은 날이지만 흐린 날처럼 보이는 하늘
드디어 알혼섬으로 건너가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지금도 선착장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를 알혼섬으로 태우고 갈 배가 다가 온다.
알혼섬 입구에는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10분도 안돼서 알혼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아들과 한결이는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궈보았다.
알혼섬 안에 있는 유일한 호텔, 바이칼 뷰 호텔. 올해 초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외부는 컨테이너처럼 생겼고 내부는 이렇게 나무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