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에 가다(5/8)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5/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기간 : 2015.08.17~2015.08.25
참가인원 : 73명
(5) 2015.08.21.(금) : 꾸엔가~슬류지얀까(17개 역)
기차 여행은 요람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다.
시속 50~60km로 달리는 광궤 열차가 일으키는 진동은 우리와 너무 잘 맞았다.
아침에도 햇살과 함께 잠이 깼고 상쾌한 공기를 맛보기 위해 세수를 하러 갔다.
세수를 하고 나서 차장을 내다보며 해뜨는 평원을 감상했다.
블라디보스톡 방향으로 가는 화물열차에 탱크와 장갑차 같은 군용물자가 한참 지나간다.
고등학교 때 밀덕 생활을 조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대로 러시아 탱크는 높이가 낮은 것이 아주 다부지게 보였다.
조금 뒤에는 대형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화물을 실은 열차가 한참동안 지나갔다.
예정 보다 조금 빠른 오전 7시 40분경 치타 역에 정차했다.
엘라 차장은 부지런히 복장을 갖추고 모자를 쓰더니 깃발을 들고 기차 아래로 내려갔다.
근무 교대자는 커다란 쓰레기 수거 봉투를 들어 플랫폼에 내려 놓았다.
내가 탄 10호차는 엘라 차장과 검은머리를 가진 젊은 여자 차장 2명이 교대로 근무를 한다.
치타역에서 박대일 사장님이 우리에게 잠시 도움을 요청했다.
가이드 가운데 한 청년이 어젯밤 여행객들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시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겨 도시락과 물 배달에 사람 손이 부족하단다.
장거리 여행에 이미 한 식구처럼 된 일행은 기꺼이 그 일에 동참했다.
치타 역에 고려인 3세인 반씨와 그의 아들이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과 물을 한가득 가지고 들어왔다.
우리는 잽싸게 73인분의 물병과 도시락을 기차에 실었다.
여행사에서 매일 주는 물 한병은 그대로 객실에 쌓였다.
이러다가 이르쿠츠크에 내릴 때 물을 모두 버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마시는 물보다 공급하는 물이 너무 많다.
중국 쪽 TCR 열차와 갈라지는 기차역이라 그런지 러시아와 영어 그리고 한자 표기 안내판이 보였다.
치타역 바깥에 하늘색 벽과 금빛 찬란한 돔을 가진 정교회당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기를 요청했지만
이 나라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관광 수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서유럽 국가와 다른 점이다.
치타 시내 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은 20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 같은 느낌이다.
저 아래 쪽 차량부터 옛날에 많이 본 듯한 트럭이 올라오더니 우리가 타고 온 객차 아래에 호스를 연결한다.
오! 우리는 그 차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렸다. 분뇨를 수거하는 차였다.
예전에는 역에 도착하기 30분 전, 출발한 뒤 30분 이내에는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었다는데
아마도 용변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그대로 배출 하는 시스템이었던 모양이다.
가이드의 안내와 달리 화장실 사용에 전혀 제한이 없어서 가이드들이 잘못 알려준 것이 아닌가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분뇨 수거차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시간 제한이 없어진 모양이다.
여행 중에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술을 테이블 위에 몇 병 올려 놓고 마시는 사람들을 제지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산 캔 맥주가 제범 용량이 큰 것이었는데 3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4사람이 마시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쌓아놓고 마시면 안된다고 제지를 했단다.
차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차장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다음 정차 역에서 바로 경찰서로 가야 하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있기에 얌전하게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제도에 대해 동참한 여성분들이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환영했다.
예정된 25분보다 조금 더 치타에 머문 기차는 곧 힐록을 향해 달렸다.
힐록까지 거리는 4시간 반 정도.
가는 도중에 번듯한 건물도 있지만 오래된 나무집으로 된 마을도 지나갔다.
멀리 화력 발전소인지 공장의 굴뚝인지 커다란 굴뚝이 줄지어 선 것이 보였고
지금까지 달라온 지역과 다르게 작은 마을이 자주 보였다.
타이가 삼림지대를 넓게 가진 나라 답게 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마을들이 자주 보인다.
빛나지는 않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모습을 가진 마을이었다.
아침은 지금까지와 똑같이 혼자서 만들어 대느라 도시락 2개가 30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도착했다.
아침을 잘 먹고 난 아이들은 객실 안에서 지루함을 느낄새도 없이 잘 논다.
점심때 쯤 힐록에 도착했다. 힐록부터는 한국표준시각보다 1시간 느리게 간다.
힐록에 내려 작고 아담한 역을 배경으로 기록사진을 찍었다.
치타역에서 받은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과일과 채소, 삶은 달걀, 그리고 빵이 들어 있는 도시락이었다.
2시 35분쯤 역 앞에 벽화와 동상이 서 있는 뻬뜨로자보트 역에 도착해 잠깐 머물렀다.
고르혼과 자이그라예보 역을 통과한 뒤에 오후 4시 50분경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울란우데는 바이칼 호수에서 가까운 부리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이다.
울란우데가 자치공화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7세기 후반 부리야트족이 카자흐 기병에게 강력하게 저항을 해서
러시아가 이 지역을 장악하는데 큰 곤욕을 치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리야트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친 러시아는 부리야트 사람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부리야트 사람들 외모는 한국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입 다물고 있으면 한국사람과 부리야트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울란우데는 몽골횡단철도(TM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울란우데 역에는 우리에게 너무 친근한 곰 동상이 있다.
마치 곰나루성 전설과 같은 브리야트 사람들의 곰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동질성 때문에 부리야트가 부여족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울란우데를 떠난 기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렸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개성에서 본 한반도 평화경제>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협의회 부회장을 지낸 신한용 선생님이 하셨다.
남북 경제협력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사장님의 체험담은 기업지원을 담당하는 나에게는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실제로 통일비용보다는 분단비용이 월씬 큰데도 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Korea Discount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동행한 배 선생님도 도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블라디보스톡을 벗어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가는 동안
기차에서 본 러시아의 SOC 상태는 형편없었다.
포장된 도로는 보이지 않았고, 길은 진창이 많았다.
고압 송전탑도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적인 전봇대에 연결된 가는 전선 뿐 이었다.
러시아는 인구가 희박한 이 극동 땅에 아직 손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동해안과 연해주를 비롯한 동부 시베리아에 상호이익이 될 경제진출을
할 수 있는 국가전략이 조속히 실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기대가 컸다.
울란우데를 떠난 기차는 이전과 달리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바다 같은 곳이 나타났다.
현지시각 저녁 7시 25분경 우리가 탄 기차는 마침내 바이칼 호수 남쪽 호안을 따라 달라기 시작했다.
기차 방향에 따라 저녁해는 황금색으로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며 출렁이는 호수를 따라 다양한 빛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객실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동안 저녁노을이 빛나는 장관이 계속되었다.
차장인 엘라는 각 칸마다 다니면서 "바이칼! 바이칼! 선셋! 선셋!" 하면서 우리에게 바이칼의 노을을 보라고 알려준다.
기차는 약 200km정도 바이칼호 남쪽을 따라 달려 바이칼스크에 도착했다.
바이칼스크에서 4시간 정도만 더 가면 우리가 하차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이대로 모스크바까지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길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3일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이드는 도착 1시간 전까지 짐을 모두 챙기고, 베갯닛과 매트리스 깔개 등을 거둬 차장에게 반납해야 한다고 준비를 부탁했다.
현지시각 새벽 1시10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지라 미리 짐을 챙기고 잠깐 눈을 붙였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까림스카야 역에서 치타를 향해 가는 길
부서진 건물도 있고 짓다만 다리와 건물도 있어서 뭔가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
탱크와 장갑차를 실은 화물차가 지나가더니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것을 실은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치타역에 도착. 정교회 예배당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내고 있다.
치타 역 광장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뒤 처음 만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건물
치타 역에는 구름 다리가 있어서 조금 멀리 조망할 수 있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쓰던 옛날에 시골에서 자주 보던 수거차량.
왼쪽에 내가 탄 10호차 엘라 차장, 오른쪽에는 무뚝뚝한 9호차 차장
차장들은 큰 역에서는 이렇게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점호를 받는 것처럼 도열한다.
어제 한결이 열심히 만든 블랙베리 주스
물병에다 넣고 설탕을 풀었다.
공장 굴뚝인지 화력발전소 굴뚝인지....치타를 출발해서 힐록으로 가는 길
나무가 많은 나라답게 나무 울타리를 친 마을이 보였다.
겉보기에 아주 오래되고 낡은 듯한 나무집
습지를 끼고 있는 마을
기찻길에 제일 가깝게 붙어 있는 마을. 마을마다 색깔이 통일되어 있는 듯 지붕 색깔이 비슷한 집이 모여 있다.
꼭 제재소 같은 풍경
산이 아닌 평지에 침엽수림 같은 숲이 너무 흔하게 많은 러시아
점심 때 도착한 힐록 역
힐록을 떠난 지 3시간 뒤에 도착한 빼뜨로자보트 역
저 인물상과 벽화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메모를 까먹었다.
브리야트 자치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갑자기 우리일행과 닮은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한국 관광객이 중국 쪽에서 온 줄 알았는데
우리와 구분이 안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브리야트 사람들이었다.
브리야트 전설에는 곰과 관련된 것이 매우 많다고 한다.
브리야트는 카자흐스탄 용병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덕에
러시아의 직접 지배를 당하지 않고 자치 공화국으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바이칼 호수. 울란우데를 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빛으로 물든 바이칼 호수의 노을을 보게 되었다.
200km 가까운 길을 바이칼 호수를 따라 달린다.
거대한 바이칼 호수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