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운현궁

연우아빠. 2015. 5. 25. 00:01

운현궁(2015. 5.24.)


조선역사 518년을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었던 임금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그는 세도정치로 망가진 조선의 왕권을 다시 세우려고 노력했던 중농주의자였다.


<천하장안>으로 불렸던 심복 4사람을 이용해 세도정치를 무너뜨렸지만

뿌리 깊은 조선왕조의 고질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민황후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수운회관 길 건너편에 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가 살았던 운현궁이 남아 있다.

고종황제는 여기에서 태어났다.



운현궁의 건물배치는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건물이름이 매우 이상하다.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



출입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수직사 건물이 있다.

현직 임금의 부모가 거처하는 집을 지키는 일이 어찌 소홀했겠는가?

수직사에는 많은 병사들과 사람들이 거처했던 듯, 옷과 베개, 화로, 등잔, 장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락당. 여기에서 고종과 민황후가 대례를 올렸다고 한다.

우연인지 여기에서 진짜 결혼식이 있었다. 한국인 신랑과 일본인 신부.

조선시대의 차일을 치고 옛날 방식의 혼례였다.



이로당을 따라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노락당 북행각에서 전통염색 체험을 하는 모양이다.



북행각을 뒤로 돌아 이로당 뒷편까지 가 보았다.

원래 있던 추녀 끝에 나무판을 덧댄 지붕이 보인다.

댓돌 아래에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공간을 띄어 놓은 것이 보인다.

여름에 앞 뒷문을 열어 놓으면 맛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이로당 앞 마당.



파노라마로 찍은 이로당



마지막으로 제일 앞에 있는 노안당으로 왔다.

여기 처마에 올라서 비로서 드나드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노안당 서행각을 통해 들어오는 문은 솟을대문이다.

남자가 드나드는 문. 즉 이 노안당은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이다.



그리고 노안당에서 노락당으로 드나드는 문은 여자가 드나드는 문이었다.

담 바깥쪽에는 남자가 드나드는 솟을대문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이로(二老)는 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를 지칭하는 용어이며,

논어 가운데 '노자를 안지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왠지 민황후와 고종이 두 노친네가 여기서 즐겁게 지내는데 만족하고, 이제 정사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다.


지척에 있는 경복궁과 대원군의 사저.

그리고 주변에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들이 이제는 햇살 따뜻한 도심이 고요한 정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