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김해 가야왕국 유적 답사

연우아빠. 2015. 5. 14. 18:38

김해 가야왕국 유적을 찾아서(2015. 5. 2)



복천동 고분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동래시장으로 내려갔다.

준기가 부산에 가면 동래파전과 밀면을 꼭 먹어 보겠다고 했었으나,

아쉽게도 동래시장 안에서 적당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동생의 제안으로 부산대학교 근처에 있는 가야밀면으로 갔다.

점심시간에서 한참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줄을 서 있었다.

다행히 잠깐 기다린 뒤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노르스름한 밀면 색깔, 시원한 국물, 그리고 아삭한 밑반찬이 이른 더위를 시키기에 더 없이 좋았다.

준기의 소원 가운데 하나를 해결하고 가야의 건국이야기가 전해오는 김해로 길을 나섰다.


국립김해박물관을 향해 가는 길에 조만강을 따라 경전철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2칸짜리 경전철은 돈 잡아 먹는 하마가 되었다지?

평야가 많은 도시라 외국의 사례도 보고 오랜기간 설계와 검토를 거쳐 했더라면 좋은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하나같이 4년짜리 임기 안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조급증으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니 한심스럽다.


조만강 천변을 따라 좌우로 몽골텐트가 빽빽히 줄지어 서 있는데

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과 함께 난장판이 벌어졌다.


박물관과 가야 고분은 그 사이에 갇혀 있었다.



국립김해박물관 모습


고대 나무배의 파편


마제석기로 만든 화살촉. 정교한 연마기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얼마나 오랫동안 돌을 갈았을까?



석기시대 유물전시실



뭐니 뭐니 해도 이 곳은 가야왕국의 중심지



김해에서 가까운 가덕도에서 고대 인골 수십기를 발굴했는데

그 가운데 특이하게도 고개를 외로 돌리고 다리를 구부려 묻은 유골이 여럿 있다고 한다.

발굴한 남녀 인골 50여구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가야 왕국의 토기는 매우 단단한 토기로 모양도 다양하다.

이 토기들을 보면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토기를 고안하고

유약과 굽는 기술을 개발하여 도기와 도자기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둥근고리칼(일명 환두대도). 경상남도 일대에서 발굴한 둥근고리칼은 일반 무사용과 

귀족 또는 왕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용봉문양 둥근고리칼이 있다.

가야는 철이 풍부한 강국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작살 모양 창.

아마도 물고기를 잡을 때 쓴 작살이었던 듯

끝머리는 고래나 단단한 동물뼈를 갈아서 만들었고 몸통은 매끈한 나무로 만들었다.

투겁창 같은 무기류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제작한 듯.



박물관을 나와서 뒷편에 있는 구지봉에 올랐다.

구지봉 한 가운데 이런 입석을 세워 놓았다.



고등학교 고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래.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네 머리를 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구워 먹으리라.



김해를 지배하고 있던 9명의 칸이 모여서

왕을 맞이하기 위해 불렀다는 서로 연결 안되는 이야기를 배우면서

이게 무슨 왕의 강림을 기원하는 노래인가? 하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무튼 저 노래에 응해서

하늘에서 알 여섯개가 내려왔고, 거기에서 남자아이 6명이 태어나 한달도 안돼서 어른으로 자라

사이좋게 6개로 나눠서 나라를 다스렸다는 가야 건국 이야기.


2천년전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얕으막한 구지봉 꼭대기에는 앉은뱅이 고인돌이 있는데

거기에 구지봉이라는 것을 알리는 글씨가 있다.



구지봉에서 허황옥 황후의 능을 찾아 내려가는 길은 시원한 숲길이다.



구지문을 지나 조금 걸으면 눈이 시원한 풍경이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2천여년전 배를 타고 주포로 들어와 가야왕국의 첫번째 왕비가 된 허황옥 황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허황옥 황후릉. 아쉽지만 가까이 접근을 할 수는 없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김수로왕 세력과 해양세력인 허황옥 황후 세력의 결합으로

가야는 5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번도 남부지방에서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신라에 편입되어 한반도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허황옥 황후릉 앞에 있는 파사탑.

 

이 탑은 허 황후가 아유타국에서 올 때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

파사는 페르시아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이 탑에 돌은 붉은 줄무늬를 갖고 있다.

아마도 철분이 많이 함유된 돌이라서 산화되어 보이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원래 호계사에 있었는데 1873년에 절이 없어져서 황후릉으로 옮겼다가 

1993년에 이 자리에 비각을 세우고 지금과 같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허 황후릉에서 수로왕릉 방향으로 걸어내려갔다.

자동차 길을 피해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700m쯤 걸어내려가니 이런 풍경도 볼 수 있다.

김해는 전체 도시계획을 새로 만들어 오밀조밀 잘 다듬으면 독일의 로텐부르크 같은 아름다운 동화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김수로왕릉 입구에 도착했다.

마침 숭선전대제를 드렸던 모양이다.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왕릉 주변에 가득하다.




중문격인 가락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허황옥 황후릉과 비슷하게 생긴 큰 무덤이 자리를 잡고 있다.

2천여년전 비옥한 김해와 낙동강 삼각주를 무대로 강력한 철기왕국을 세운 왕이 조용히 누워있다.


허황후릉에서 수로왕릉 근처로 내려오니 주변이 돗대기 시장처럼 시끌벅적하다.

오늘의 유적 답사 계획에만 몰두하느라 주변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축제로 인한 소음과 난전의 어지러움이 귀를 불편하게 했다.



이제 김해 대성동 고분을 찾아가는데 초여름에 난데없는 연날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언덕위에 바글바글했다.

저 언덕을 올라가면서 느낌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주변보다 조금 높은 둔덕에 수많은 가족들이 모여 연을 날리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몽골텐트는 모두 음식을 파는 사람들...그런데....



그들이 밟고 있는 곳은 이렇게 가야시대 고분이 있던 곳이다.



발굴을 마치고 이렇게 돌무더기로 덮어 놓은 곳인데

이 주변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

그러고 보니 축제는 김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을 둘러싸고 있었다.

역사유적에 심하게 편향되어 있는 내 입장에서는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상의 묘터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신라 왕릉 위에서 눈썰매를 타면 문화재 당국이나 시청에서 가만이 있을까?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하고 있지?



가야 고분이 집중되어 있는 대성동 언덕에는 복천동 노천박물관 같이 발굴한 고분에 박물관을 지어 보호전시하고 있었지만

저 잔치판을 뚫고 들어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다시 700m를 거슬러 주차장이 있는 김해박물관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 장방형 역사지구를 문화관광 구역으로 유럽처럼 잘 다듬을 수 있을텐데 왜 이런 투자를 하지 못할까?

2천년 장엄한 역사의 끈이 지금 나에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줄 멋진 야이기.

9명의 칸, 가야 6부국의 왕, 김수로와 허황옥의 신비한 결혼 이야기, 

석탈해를 물리치고 가야왕위를 지키는 이야기는

어떤 신화보다 많은 컨텐츠를 담고 있는데, 

이런 유산을 이렇게 값싸게 낭비하고 있는 지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게 우리의 수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