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5박 6일(1) - 내원 야영장
지리산 내원야영장 캠핑
2014.8.9~8.11(2박3일)
6월에 신청한 국립자연휴양림 추첨에서 지리산 휴양림 3박4일이 당첨되는 행운을 누린 것을 기뻐하며,
이왕 먼길을 가는 김에 아주 뿌리를 뽑자(?)는 생각에 지리산 내원 야영장 2박3일을 추가로 예약했다.
무려 1시간 40분 동안 서버가 먹통에 가깝게 버벅거렸지만 내원야영장 2박 3일 데크예약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하늘을 날을 듯한 즐거움으로 들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지리산휴양림에 들어가는 11일 월요일에는 부서장 회의가 잡혔다.
게다가 8월 첫주에는 12호 태풍이 쓸고 지나가 지리산 야영장이 폐쇄되었는데, 우리가 가는 2번째 주말에도
11호 태풍 하롱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휴가를 가야하나 말아아 하나, 매일 걱정하며 아침에 눈을 뜨면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 태풍의 진로를 확인하고
미국 태풍통제소 사이트에도 들어가 태풍의 예상진로를 살폈다.
준기와 함께 화요일 저녁부터 "태풍아! 동쪽으로 밀려가라!" 라며 주문을 외웠다.
바람이 심할 수도 있어서 야영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안가면 언제 저 멀리 있는 지리산 야영장에서 야영을 해 보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에 밤늦게 퇴근한 탓에 토요일 오전 내내 출발준비를 했다.
5박6일을 지내는 휴가이니 서둘 필요도 없었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간 다음이라 그런지 별 어려움 없이
내원야영장에 도착했다.
사이트에 도착해 보니 우리 사이트 출입구를 가로막고 타프를 친 옆 데크 야영객이 있었다.
그냥 넘어가려다 다가가서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
우리 데크의 출입통로에 타프를 치시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빈 터에 타프를 쳤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시다가 우리가 드나드는 길을 설명하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셨다.
자신들은 내일 철수하니 좀 참아 달라고 하신다.
그 분들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설치해 놓은 타프와 장비들을 철거하지 못하니
우리는 먼 길을 돌아다니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고기를 구워먹고 남은 숯불 화로대를 우리 사이트 옆에 옮겨 놓으니 열기가 바람을 타고 우리 데크로 밀려 왔다.
열기가 우리 쪽으로 밀려오니 반대쪽 공터에 갔다 두시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미안해 하시며 반대쪽으로 옮기는데, 그 자리가 커다란 나무의 뿌리 위였다.
다시 지적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숯불의 열기를 쐬는 나무는 기분이 어떨까?
바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타프를 설치하는데 데크 바로 옆에 큰 나무가 가로 막고 있어서
옹색하게 얼기설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앞서 야영한 사람들이 남겨 놓은 흔적을 발견했다.
나무에 줄을 묶었으면 철수 할 때 줄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데 귀찮았던지 그냥 나무를 묶어 놓은 채 가버린 것.
이런 줄은 나무의 성장을 방해한다. 주머니 칼을 꺼내 일일이 제거했다.
너무 많은 땀을 흘려서 이대로 자기 힘들 것 같아 아들과 함께 샤워장으로 갔다.
가면서 보니 여기도 다녀본 다른 국립공원 야영장과 같이 여름철에는 휴가나 힐링은 힘든 구조였다.
구획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난민촌 같은 분위기였고
사방에서 피워대는 장작과 숯불 열기, 그리고 연기가 야영장 안을 가득채웠다.
무더운 여름철에 샤워장은 오전(10:00~11:00)과 오후(14:00~15:00)에만 운영할 뿐
오후에 도착해 사이트 구축하느라 땀을 흘린 사람들은 샤워장을 쓸 수가 없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오수처리능력을 넘어서는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샤워장 사용시간을 제한한다고 설명하는 관리사무소 직원.
친철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지만 이 무더운 여름에 샤워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야영장이라니...
계곡에서 등목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아들과 함께 등목을 하러 갔다.
어둠이 내린 계곡은 구조를 알지 못해 물살이 급한 널찍한 바위 위에서 등목을 했다.
더위가 싹 날아가는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달까지 거리가 3만km 정도 가까워져서 더 크게 보인다는 슈퍼문(Super Moon) 시기라서 그런지
달이 참 탐스럽게 떠 올라서 아름다웠다.
그러나 국립공원의 이런 운영 시스템은 여름에는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캠핑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무리 자연환경이 훌륭한들 이런 운영시스템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자연휴양림만 다녀야 할 것 같다.
텐트 구획은 한 칸의 여유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비수기 때는 여유롭겠지만, 무더운 한여름 휴가철에는 지나치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유는 없는 구조.
지금까지 가 봤던 국립공원 야영장은 모두 이런 구조였다.
야영장의 운영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계곡은 정말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일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자 흙탕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일요일 밤에는 그나마 등목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내원 야영장 옆 계곡은 물놀이 하기에 정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잊고 그냥 물 속에 누워 있고 싶은 그런 계곡.
개수대 옆에는 나무 그늘은 없지만 시야가 탁 트인 사이트가 있어서 봄 가을에는 아주 좋을 것 같다.
일요일 낮에 의령을 다녀왔더니, 앞 데크 야영객은 철수 하시고 다른 가족이 들어와 있었다.
새로 들어온 분들은 우리 출입구를 막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기예보보다 3시간 일찍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계곡에 등목을 하러 갔지만 계곡물은 내린 비 때문에 이미 흙탕물이 되었다.
결국 등목을 포기하고 세수와 다리 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화장실 세면장에서 머리를 감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니 국립공원 야영장은 저절로 야생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관리직원들이 열심히 다니며 청소하고 있었지만
개수대에 음식물 찌꺼기 마구 버리는 야영객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설거지를 하러 갔다가 개수대가 막혀 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
나무 꼬챙이를 구해 막힌 개수대를 뚫어 물을 빼고,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했다.
그리고, 다녀본 국립공원 야영장 3곳은 여름철 야영목록에서 지우기로 했다.
밀도가 너무 높아 여름철 여가를 즐기는 용도로는 맞지 않는 듯 하다.
거기다 내원야영장은 지리산이라는 큰 산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끓여 먹어야 했다.
끓인 물은 맛도 이상하고 깨끗하지 않았다.
몸은 땀에 쩔어 끈적끈적 한데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2박3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