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여행

언제 완성할 지 모르는 지리산 여행기(공사중)

연우아빠. 2014. 5. 23. 20:00

지리산 휴양림 여행기

2014. 5.3~5.6(3박4일)



연휴인 것을 진작 확인한지라 

부서 직원들에게도 5월 연휴와 6월 연휴에 대비해 가족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두라고 권유해 두었다. 


오서산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들 녀석이 연휴 때 어디 안가냐고 물어본 한마디에 용수철 반응하듯이 지리산 휴양림을 예약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매일 매일이 멘붕이었다.

우울한 하루하루가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야 내 주변의 부조리를 바꿀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 먹으며

눈 부릅뜨고 역사의 증인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출발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가 왜 저렇게 먼 곳을 예약했던가?"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영주 사는 동생과 부산 사는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여행을 갈 수가 없다는 대답. 9인실인데 어떻게 하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지만 아이들은 중간고사 공부하느라 바쁘고, 어디를 돌아볼 지 계획도 못 세운 채 날짜만 다가온다.

먼 여행은 힘들어서 못가신다고 손사래를 치셨던 아버지는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으셔서 그런지 가 보자고 하셨다.

"지리산 가면 휴양림 안에 콕 틀어박혀 뒹굴거리다가 올테다!"는 나의 야심찬 계획은 하나 둘 깨졌다.


냉면에 필이 꽂힌 준기는 서울에 있는 유명한 냉면집을 종류별로 다 섭렵했는데 

풍기에 있는 서부냉면집까지 다녀온 뒤에는 냉면의 양대산맥인 진주냉면을 꼭 맛보러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내도 주변에 돌아보지 못한 곳을 가 봐야 하지 않겠냐고 거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준기는 몇군데 다녀올 곳을 더 점찍었고, 연우는 사촌들이 오지 않는다는 말에 별로 관심도 없다.


출발 이틀 전 부산에 사는 동생이 일정이 바뀌었다고 4일날 지리산 휴양림으로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5월 2일 밤,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어수선한 가운데 가져갈 준비물을 챙겼다.

오랜만에 소고기나 궈 먹자고 대형 전기그릴을 챙겼다.


진주중앙시장에 가서 장을 봐서 들어가기로 하고 우리는 5월3일 아침 9시 반에 집을 나섰다.

안산에 있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들렀다 가려고 했지만, 길이 만만치 않을 듯 하여

올라오는 날 들르기로 하고 39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길은 예상치도 못한 채

"진주에 가서 하연옥 냉면을 점심으로 먹자"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동네를 빠져 나왔다.


동네를 빠져 나오자마자 39번 국도와 영동고속도로 진입로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뭐, 연휴니까 그동안 우울했던 느낌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가까운 곳으로 다들 길을 나섰겠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12시가 넘어서 겨우 30km 정도 갔다는 사실에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휴대폰으로 계속 검색해 봤지만 뚫린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몇 달 만에 나선 길이라 그리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진도 앞 바다에서 목놓아 울고 있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떠올리며 괜히 죄스럽기도 했다.


자동차 주유등이 켜지면서 "연료가 부족합니다"를 계속 알린다.

1차 목표인 청북 IC에도 가보지 못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 가 안동한우국밥집.

여유있게 먹고 12시 46분 다시 그 긴 꼬리를 다시 물었다. 


오늘의 목표는 저녁 먹기 전까지 지리산휴양림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시 반쯤 드디어 청북 IC에 올랐다. 


역시나 모든 방향이 다 주차장이었다.

그 때, 연료를 보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뿔사!


다음 주유소까지 거리는 5km 남짓이었지만, 얼마나 더 걸릴 지 알 수가 없었다.

안성 쪽이 너무 막혀서 당진으로 가서 막히지 않는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탈 계획이었지만

차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비상등을 켜고 갓길을 1km쯤 달려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했다.

남쪽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서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4시간 걸려 내려간 길을 단 10분만에 되짚어 올라와 연료를 가득 채우고 

오후 3시에 다시 39번 도로에 꼬리를 물었다.

집에서 출발한 지 5시간 반 동안 결국 아무런 성과가 없는 셈.


결국 무려 14시간 만에 지리산휴양림 입구에 도착했다. 

밤 11시 30분, 미리 전화를 해 놓긴 했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매우 미안했다.

게다가, 우리가 예약한 방에 들어가보니 세면장 하수구가 막혔는지 수채구멍으로 역류한 오물이

세면장 넓은 바닥을 가득 채우고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사람들을 불러서 조치를 요구했지만, 해결 불가.

내일 사람들이 출근하면 장비를 가지고 와서 뚫어 주겠다고 미안해 한다.

정말 최악의 날, 씻지도 못하고 야영장에 있는 화장실로 올라가야 했다.

오우! 정말 지긋지긋한 하루.


그래도 밤12시에 휴양림 전체 등불을 꺼서 하늘을 가득채운 별무리는 기분을 위로해 주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