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여행

100번째 휴양림 여행

연우아빠. 2013. 8. 22. 23:17

100번째 휴양림 여행

 

2013. 8.12~8.15(3 4)

 

올해는 정말 운이 틔었나 보다

2011년 여름 정모 때 캠핑했던 용대 6야영장 앞에 있던 깊고 넓은 계곡에서 수영을 즐길 생각에 용대에 여름 휴가 추첨을 몽땅 넣었는데, 추첨 결과는 휴양관 1, 야영장 2개 당첨. 812~15일까지 3 4. 게다가 대기를 위해 들어갔던 사이트에서 810~14일까지 45일간 605번 데크까지 예약하는 대단한 행운이라고 희희낙락 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연우는 시청에서 보내주는 캐나다 어학연수를 떠나고, 준기는 백두대간 가겠다고 해서 오대산으로 보내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심심한 중딩 학부형이 되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백두대간에서 돌아오는 날, 아이들을 인솔하고 가신 대장님께서 연락을 했다. 준기가 철수하는 날 아침에 같은 조에 있던 아이랑 시비가 붙어서 싸우다가 넘어졌단다. 의사 선생님은 기브스를 한 뒤 2주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신다. 아내가 용대 가긴 다 틀렸다고 예약 취소하자고 하는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밍기적 거리다가 10일과 11일 오토캠핑장만 예약을 취소했다.

 

날씨가 너무 더운데도 사무실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국가전복(?) 음모를 꾸민 녀석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핵발전소 부품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나? 사무실은 그야말로 사우나 같았고 매일 더위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 더위에서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다. 사고 친 넘들은 그렇다치고 애꿎은 우리만 이렇게 습식사우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다니...

 

몇일 뒤, 용대 야영장을 쓸지 모르겠다고 하시던 지혜네는 대기를 걸어둔 곳에 취소분이 나와서 따로 야영장을 확보했다는 전갈을 보내왔고, 동생도 대기를 걸어 두었던 휴양관 방이 나와서 예약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해서 401, 501데크 예약도 취소. 너무 더워서 힘들 때는 휴양림 가고 싶고, 아들 녀석 팔을 보면 휴가 못가겠다는 생각이 들고 암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귀국한 딸 아이는 야영이면 절대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국 605번 데크는 모두 취소하고, 남은 것은 휴양관 1. 열흘 정도 지나는 동안 준기가 생각을 많이 했나 보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을 욕하는 그 녀석의 말을 참을 수 없어서 싸웠을 때는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 나타나니 참는 것이 더 좋았겠다라는 말을 한다.

, 그래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는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싸우게 되면 우리 편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라고 했더니 손자병법을 보고 싶다고 사달랜다. 앞으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좀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휴가기간 내내 휴양림 안에 틀어박혀 책이나 보고, 산책이나 하고, 계곡에서 수영이나 하면서 34일 보내면 큰 무리야 되겠냐 싶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12() 오전 휴양림으로 길을 나섰다. 휴양림을 99번이나 들락거렸으면서도 정작 휴양림 안에서 온전히 쉬다가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메일이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도록 얘기해 놓고 속으로는 연락이 없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이제 수십년 살아보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한다고 안 될 일이 되고, 탱자탱자 한다고 될 일이 안되는 일은 없다는 생각. 하긴 뭐 안되면 뭐 안 되는대로 다른 방법을 찾지. 이런 생각이 점점 커 진다.

 

사무실에서 맨 마지막으로 떠나는 휴가. 그런데 812일부터 8 16일까지 공공기관은 전등, 에어컨을 끄고 업무를 한다는 골 때리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런 무책임한 인간들 같으니라고...그런 환경에서 일이 되나? 그것도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휴가 끝물인데다 월요일이라 차는 별로 없어서 용대까지 시원하게 달려왔다. 입구에서 휴양관까지 올라가는 비포장 길에 차가 울렁거리니 아들 녀석 다친 팔이 몹시 신경 쓰였다.

 

올해가 정말 더운 것인지 휴양림 안에서도 예전처럼 시원한 느낌이 없다. 바다에 버린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 냉각수가 핵분열을 일으켜 바닷물이 더 뜨거워 진 것인가? 뉴스에서 아오는 날씨 소식에는 고개 넘어 속초는 밤에도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초 열대야 현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단다.

 

휴양림에 짐을 풀고 나니, 아내가 속초에 나가 보잔다.

더워서 싫소이다. 그리고 휴양림 안에서만 놀기로 했는데 무슨 소리

반찬꺼리도 좀 사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물회 정도는 먹으러 가야하지 않겠수?”

 

티격태격하다 저녁에 속초로 나갔다.

속초로 나갈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국가에서 공인해준 미시령 산적에게 통행세로 왕복 6,600원이나 뜯기는 것이 몹시 기분 나쁘다. 길은 국가가 관리해야지, 왜 왕조시대에도 하지 않던 사영도로란 말인가?

 

맛있는 집 좋아하는 마나님은 선영이네 물회집이 맛있다더라면서 거길 찾아 가자는데 속초 중앙시장 가까운 곳에 선영이네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은 채 였다. 해서 예전에 갔던 아바이순대집을 찾아 어렵게 어렵게 갔는데 물회는 준비된 것이 다 팔려서 없다는 얘기. 아바이 순대와 순대국밥으로 저녁은 대충 때우고 속초 중앙시장으로 나가서 찬거리를 몇 개 샀다. 이번에는 만석 닭강정을 사겠단다. 다행히 문을 닫는 늦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줄 선 사람이 거의 없어 10분만에 만석 닭강정을 사서 나왔다. 닭전 입구에는2년 사이에 씨앗호떡 집이 생겨서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줄이 길게 서 있다. 주차장에 있는 사인보드에는 지금 속초 시내 기온이 31.5도라고 나온다. 숫자만 봐도 덥다. 날씨가 미쳤나 봐.

 

휴양림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밤이 되었어도 예전에 서늘했던 기온은 온데간데 없다. 발코니 문 한쪽을 열어 놓은 채 꿈나라로 갔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나갔다.

제일 위쪽에 있는 4야영장까지 올라갔다가 안내소까지 내려갔다. 제법 긴 길이라 그런지 배가 고프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6야영장이 있는 계곡으로 수영을 하러 갔다. 솔직한 말이지만 휴양림을 100번이나 다녔으면서 야영데크에서 낮잠 한번 자보지 못했고, 휴양림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지 못했다. 휴양림을 거점으로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철저히 휴양림 안에서 지내리라 다짐하며 6야영장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오리발도 미리 챙겨갔었다. 깊은 물이라 접영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수영을 오래 배웠지만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검푸른 물 속은 역시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수경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밖에선 잘 보이지 않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하게 보였다. 예년 같으면 물이 너무 차가워서5분도 견디기 힘들었겠지만, 웬일인지 다른 계곡보다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 뿐 강원도 특유의 뼈가 시린 느낌은 없다. 캠핑 온 휴양객들이 열심히 고무보트를 타는 동안 혼자서 물속에서 1시간을 왕복했다. 팔이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 있는 준기는 더운 날씨에 아빠 혼자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삐쳤는지 그만 숙소로 가자고 한다.

 

오후 늦게 막내 동생 가족이 예약해 둔 숙소로 들어왔다. 숯불구이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막내 동생이 숯불구이를 기대하고 있어서 현지 아빠께서 물려주신 바베피아를 꺼내 야외에서 숯불구이를 시작했다. 휴양관 한쪽 켠에 데크 교체작업을 하고 남은 것인지 데크가 여럿 이리저리 자리잡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텐트를 가지고 와서 밤하늘에 누워 별이나 볼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싫다는 연우는 방에 놔두고 아내와 준기 이렇게 셋이서 휴양림 산책을 나섰다. 다섯 살 때 처음 용대에서 놀았던 준기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단다. 산책이 끝나고 다시 6야영장으로 수영하러 갔다. 어제 수십번 들락날락 했던 경험 덕분에 깊은 물에 대해서도 좀 익숙해졌지만 몸이 여전히 오그라든다. 오리발을 꺼내 신고 오랜만에 접영까지 하며 계곡의 찬물을 즐겼다. 아들에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쩌랴.

 

동생네가 점심을 먹으러 속초에 나가잔다.

이래서 또 속초를 나간다. 이번에는 고성쪽에 있는 선영이네 횟집으로 갔다. 유명한 맛집인데도 이날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물회와 오미자 물회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시원하게 점심을 먹은 뒤 또 속초 중앙시장으로 행차.

시장 안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연근해산 명태를 기억하게 만든 명태박물관을 발견했다. 개인 박물관인데도 제법 오밀조밀하게 잘 구성해 놓았는데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 이후 누출된 엄청난 방사능 오염수 탓에 다시 명태를 먹을 수 있을까 싶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미시령 옛날 길로 올라왔다. 미시령 정상에 차를 세우고 속초바다를 바라다 보는 맛, 그리고 온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쾌적한 산골의 바람이 감탄을 자아낸다. 옛날 미시령 휴게소는 닫혀 있었다. 문득 스위스에서 본 작은 호텔들이 생각났다. “여기에 콘크리트 사각형 덩어리 말고 스위스 산골 같은 아름다운 호텔을 지었으면 좋겠다. 캠핑장도 함께 있는 그런 곳이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림청에서 자연생태탐방 연수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주차장까지 모두 폐쇄시켜 놓은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 쾌적한 바람을 맞으며 700미터가 넘는 미시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에게 멋진 추억을 하나 남겨 준 것 같다.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용대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15일 아침

이제는 돌아갈 시간, 짐을 챙기는 짧은 동안에도 땀이 쏟아진다. “이거 빨리 남북 통일이라도 하던지 해야지, 강원도 최북단도 이렇게 더워서야 이제 여름 피서를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열쇠를 안내소에 반납하고 다시 6야영장 계곡으로 뛰어 들었다. 오늘은 햇살이 강하게 계곡을 비춰서 그런지 2m가 넘는 깊은 계속 바닥도 환하게 보인다. 점심 때까지 차가운 계곡을 맘껏 즐기다 아쉬움을 남긴채 휴양림을 떠났다. 들어올 때 고속도로를 이용하느라 먹지 못했던 막국수 집을 찾아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더위가 한참을 남은 듯 하다.



용대 휴양림 산책길


넓은 계곡의 자연 수영장은 한 여름 더위를 씻기에 제일 좋은 곳


미시령 옛길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속초와 동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