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벌초

연우아빠. 2013. 9. 14. 20:20

사촌 형과 함께 벌초....

 

2013. 9.8

 

무릎연골 수술하고 처음 벌초를 하고 왔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냥 잘 오르내렸는데

무릎 연골을 수술하고 운동을 못한 상태에서

산을 타려니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참고로 제 아버지께서는 벌초하러 가시기 한달 전부터

달리기를 따로 하시면서 체력을 기르셨죠. ^^

 

어제는 신병 훈련소에서 한여름에 선착순 뺑뺑이 돌 때 느꼈던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경험을 아주 오랫만에 한번 했습니다.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묘가 있는 곳을 올라가려면 45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를 타고 가야 하는데

길가에 전에는 없던 배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놓았다.

 

 

명당길지를 찾아 산 꼭대기에 무거운 널을 지고 올라가 묘지를 쓰신

조상님들이 무척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임금이나 대통령 만들 일도 없는데....

(하긴 회문산 꼭대기에 무덤을 쓴 사람들에 비해면 약과지만...)

 

반면에 중턱에 쓰신 조상님은 매우 감사했지만,

그나마 고향 땅에 살고 계신 분들이 거의 없어

중턱에 있는 묘지도 평소에 사람이 다니질 않으니

길을 만들어 가며 접근해야 하는지리 예초기 들고 가기도 너무 힘이 듭니다.

 

60도 경사정도 되는 너덜지대를 오르내리려니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고

예초기를 가지고 올라갈 수 없는 곳에서는 그냥 초죽음입니다.

 

손이 끊어진 분들 묘지까지 벌초하며 5군데 11상구를 손보는데

예전과 달리 체력이 떨여져서 오후 3시 반에도 다 끝내지 못하고

결국 할아버지 산소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촌 형에게 맡기고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명절 때 음식 한다고 타박하는 아줌마들에게

우리는 미리 산을 헤매면서 벌초를 하니 쌤쌤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시댁 조상이니 생색내지 말라"고 하면 할 말이 없을 듯...

 

이젠 힘들어서 벌초하러 다니는 것을 제 아이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네요.

벌초해야 할 묘지는 변함이 없는데

자손들(사내녀석)은 숫자가 너무 적고, 예초기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있는 묘지는 한숨만 나오고

그나마 군부대에 접수되버린 산은 40여년간 출입불가가 되어 사라져버렸을 듯 하고...

 

해마다 묵은 묘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이 짓을 왜 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300여년 집성촌도 외지로 다들 떠나고 고부랑 할아버지가 된 5촌 아제들만 몇분 계시니

벌초하고 제사지내는 풍습도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아버지께서 "살아 생전에 얼굴을 직접 뵌 조상들만 모시거라"라고 하시며

이제부터 모두 화장을 하고 유골을 산골하라고 하셨는데

그런 말씀이 아니었으면 벌초해야 할 묘지가 12상구가 되었겠네요.

 

벌초 할 때 아니면 언제 너희들 오가는 거라도 보겠냐는 백발 성성한 아제들 말씀은

이제 제 대에서나 듣겠지요.

 

봉화에는 귀농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어제 하룻동안 산 3개를 오르 내리며 익숙치 않은 낫질을 했더니

오늘도 온 몸이 욱신거리는군요.


메빌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