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담양 슬로시티

연우아빠. 2013. 5. 29. 19:10

□ 담양 가는 길

 

부처님 오신날과 주말이 이어진 연휴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광주를 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83년 학생회관에서 우연히 끔찍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1980년 5.18 당시 외신기자들이 현장을 찍은 영상과 사진으로 만든 5.18항쟁 비디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의 실상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 전에 광주 출신 동기들에게 간간히 들었던 이야기는 영상으로 본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권력과 돈에 미친 인간이 얼마나 악랄해 질 수 있는 지를 확인한 그 영상은 지금도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흘 연휴라 그런지 숙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휴양림 예약에 실패하고 담양에 있는 한옥에서 민박을 해 볼 생각이었지만 그마저 모두 예약이 다 찼다는 것. 


다행히 연수원에서 숙소를 제공해 준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근무하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해 즐거워하고, 

아내는 사흘 내내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만세를 부른다.


 

5월17일 아침,

도로가 막힌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동작 느린 우리 가족은 10시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자동차 엔진룸 바닥 덮개가 떨어져서 수리를 하느라 30분간 더 지체가 되었다. 


연수원까지 290km쯤. 5월에 사흘 연휴는 사람들을 집에 붙들어 두기에는 너무 큰 유혹이겠지? 

남도로 내려가는 길은 명절보다 심해 100km를 내려가는데 무려 다섯시간이 걸렸다. 

휴게소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을만큼 복잡해 쉬지도 못하고 점심도 4시가 다 돼서야 간신히 때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떠난 장거리 나들이에 차 안에는 아무런 간식꺼리도 없었다.

 

원래 계획은 담양 창평 슬로시티와 그간 둘러보지 못했던 곳을 보고 우아한 남도 한정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무려 8시간이나 걸려 담양 슬로시티에 도착했다. 

해가 넘어가려고 해서 슬로시티를 급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2006년에 처음 조성한 모양인데 관리상태가 많이 허술해진 듯 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걷는 시골마을 골목길은 먼 여행의 피로를 걷어내는데 충분했다.

 

맛있는 한정식을 먹으려고 조범님 블로그에서 미리 알아둔 ‘담양애꽃’을 찾았다. 

8시쯤이었는데 너무 많은 손님으로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어쩔 수없이 숙소 쪽으로 가다가 우연히 예전에 들렀던 창평고서 국밥집을 발견했다. 

아내는 떫은 표정이었으나 늦은 시간에 잘못하면 저녁도 굶을 판인데....

여행자에게 가장 저렴하고 가장 신속하고 맛도 좋은 맛있는 국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연수원에 도착했다. 

휴일의 연수원은 아이들이 ‘귀곡산장’이라고 할 만큼 너무 조용했다. 

원내에는 여러 가지 꽃향기가 가득했다. 


안내실에서 열쇠를 받아 지정된 방에 가 보니 아이들을 위해 과자를 준비해 둔 것이 보였다.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 동료들의 작은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아빠 회사는 더욱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인정. 샤워를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와 바로 잠에 떨어졌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담양 슬로시티에 어렵게 어렵게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2층 누각


슬로시티 안에 있는 기와집. 진정 이런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요즘 도시 아이들이 보기 힘든 파꽃.



현대적인 돌담과 옛날 골목이 이어져 있는 마을


봇도랑이 졸졸 흐르는 마을 골목길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으나 문은 떨어지고 창호지는 찟어지고...


여기가 슬로시티라고 알려주는 건물


수백년 나이를 먹은 나무. 세월의 숫자가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해가 거의 넘어가는 시점에 마을을 다시 나왔다



골목길은 어디를 가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차가 다니지 못하니 안전한 느낌도 함께, 인류는 수백만년 동안 차 없이 살았는데...


아름다운 꽃이 누군가의 대문을 넘어 골목으로 머리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