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군산 - 전북서북부여행(3)

연우아빠. 2013. 3. 17. 22:36

3.2() 군산

 

토요일도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부는 추운 날씨.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군산을 다녀오는 날이다.

군산에서 돌아볼만한 역사유적지는 군산항을 중심으로 반경 1.5km 안쪽에 있다.

금강 하구둑을 건너 진포대첩비가 있다고 하여 네비로 검색해 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지도상으로는 채만식 문학관과 인접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먼저 채만식 문학관을 들러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휴양림에서 금강하구둑만 건너면 바로 채만식 문학관이었다.

 

채만식 문학관

 

학교 교육의 맹점을 또 다시 느끼게 만드는 채만식 선생

대표적인 소설 탁류는 이름만 시험치느라 열심히 외웠을 뿐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문학관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이 땅을 침략했을 때 수탈을 위해 만든 군산항으로 가는 철도가

남아 있었다.

만경평야 넓은 땅에서 거둬들인 쌀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정작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겐 만주에서 들여온 콩과 비지로 연명하게 만드는 기막힌 사실.

뜬다리 부두를 만들어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쌀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두고 작가가 썼다는 소설 탁류는 박제가 된 역사 속에 등장하는 글이 되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골간으로 그 당시 사회상을 잘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문학관은

문학관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채만식 문학관 전경


채만식문학관 내부. 채만식 선생의 인생


문학관 내부에는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채만식 선생의 작품


2층으로 올라가는 길. 벽면에 빼곡히 아이들의 작품이 붙어 있다.


2층 전망대에서 본 모습. 금강과 금강너머 서천 땅이 보이고, 오르쪽에는 금강 하구둑이 있다.


채만식문학관 경내에 있는 옛날 철도 유적. 이 철길을 이용해 군산항으로 쌀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탁류에 등장하는 정주사 집



 

□ 진포대첩비


문학관에서 500m쯤 올라가면 진포대첩비가 있다.

고려말 1380.

왜구는 명나라 해안과 고려 해안 전역을 약탈하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원나라 상인에게 화약 만든 기술을 배운 최무선을 지휘관으로 한 고려군은

이곳 진포에 상륙해 약탈을 자행하던 왜구의 전선 500여척을 화포로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이 전투는 세계 해전사에 기념비적인 전투였으니,

바로 세계 최초로 함포가 등장한 전투였던 것이다.

 

바다로 탈출할 길을 잃어버린 왜구들은 이후 내륙으로 들어가 지금의 남원 운봉 일대인

황산에 집결했다가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게 섬멸되었고이후 왜구는 힘을 잃었다.

공원 한 가운데에 진포대첩비가 서 있는데 왜구의 침략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진포대첩기념비. 근대적인 함포전이 처음 등장한 기념비적인 장소이다.


 

군산횟집

 

늦게 출발해서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이성당에 들러 빵을 사고 점심 먹으러 복성루 가자는 아들의 바램과 달리

엄청난 이성당 인파에 질려서 먼저 군산횟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10여년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군산횟집은 성업 중이다.

예전에는 한층 전체를 완전히 터놓은 구조였는데 지금은 방으로 만들어 놓은 독립구조였다.



 


군산근대박물관

 

군산은 제국주의 침략이 활발해지면서 개발된 도시였다.

그래서 군산항을 중심으로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도시가 형성되었고 그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지금은 새만금의 일부가 된 선유도를 군산이라 불렀는데

군산진을 지금의 군산항(진포) 쪽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해서 옛날 군산은 고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군산은 옛날 서해안의 중요한 뱃길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침몰선 유물이 나오고 있다.

한번 발굴할 때마다 청자 수만점씩 나오는 엄청난 물량에 대량생산 흔적이 확연하게 남아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닷가라서 용왕님을 모시는 다양한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풍부한 물산 탓에 제국주의자들에게 수탈도 많이 당했다.

근대적 상공업이 일찍 발달했고, 은행과 세관도 일찍 설치되었다.

침략자들이 주로 거주하던 번화가와 신석기 시대같은 토막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식민지 배성들의 거주지가 확연히 구별되던 곳이기도 하다.

 

근대적 문물의 세례와 함께 수탈이 가혹했던 지역이었던 만큼

의식도 일찍 발전해 3.1항쟁과 임병찬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의병항쟁도 있었던 곳이었다.

임병찬 선생은 고종의 칙명을 받고 1912년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항일전쟁을 계속하던 중

일본 침략자들에게 체포되어 1914년 거문도에 갇혀있다가 1916년 숨을 거두었다.

 

1927년에는 옥구에서 수확량의 75%를 소작료로 뜯어가려는 일제에 저항한 농민항쟁이 있었고

이 항쟁에 가담했던 37분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화교들의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박물관 내부


지붕이 있는 연은 아무나 탈 수 없었다고.


고군산 바다는 청동기시대부터 중요한 무역로였다.

지금도 수시로 수만점의 청자유물을 실은 무역선과 조운선이 발견되는 곳이기도 하다.

청사 사발 안쪽에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첩첩이 쌓아 올려 제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근대 유물이 많아서 깨알같은 재미가 있는 전시관


군산을 방어하던 오식도 섬에서 발견된 대포.

조사결과 1880년대에 조선에서 제작하여 오식도에 배치한 대포로 밝혀졌다.


해양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답게 바다에 대한 제사나 금기도 많은 이곳은 다양한 해양무속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개항과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군산항의 모습은 급속히 근대도시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땅과 쌀을 빼앗긴 농민들은 도시 외곽에 신석기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런 토막집을 짓고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부두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이 망하고 난 2년 뒤 고종황제는 비밀리에 이지역 임병찬 선생에게 칙명을 내렸다.

임병찬 선생은 항일투쟁을 조직해 일본에 맞서 싸우다가 1914년 사로잡혀 1916년 거문도에서 죽음을 맞았다.

임병찬 선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고종황제의 칙명에는 조선개국 521년 12월이라는 표시가 있다.


 

백년거리

 

박물관 주변에는 근대 백년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일제가 만든 군산세관,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무역회사(현재 미즈카페), 일본은행,

미두장(일본 오사카 미곡시세를 놓고 사고 팔던 증권시장과 같은 도박장) 같은

1900년대 초 분위기가 나는 건물들이 모여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옆에는 조선의 쌀을 수탈해갔던 군산세관 건물이 남아 있다.


지금은 카페로 사용하고 있는 제국주의 침략시대의 건물


일본의 조선은행 지점


20세기 초반 군산항 거리에 있던 근대식 건물 복원 작업을 통해 당시 건물들을 새로 단장하고 있었다.


지금은 화랑으로 쓰고 있는 20세기 초 건축양식의 건물


 

이성당

 

백년거리 남쪽으로 500m 쯤 내려가면 오래된 명물 제과점 이성당이 있다.

1945년에 문을 열었다는 이 가게는 일제 때부터 있던 가게를 이어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명물인 단팥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40여분 쯤 서서 기다리면

1인당 3개씩만 파는 단팥빵을 맛볼 수 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한달은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대단한 가게.

가게 안쪽에서는 계속해서 빵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점심 때도 인산인해더니 4시가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인산인해다.

 

빵은 정말 맛있었다.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었다.

빵맛이나 단팥 모두 줄서서 기다려 살 만큼 맛있었다.

 

 

볼만큼 돌아봤는데 바람도 너무 차갑고 추워서 아쉽다.

저녁에는 따뜻한 것을 먹고 싶어서

금강 건너편에 있는 서천 해물칼국수단지를 찾았다.

휴양림을 예약하지 않았다면 그냥 집으로 올라가도 될 듯한 일정이었다.


아들 말처럼 이번 여행은 사흘동안 하루에 금강을 두번씩 건넌 여행이 되었다.

오랫만에 여행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흘이 되니 지친다.

이럭저럭 전북 지역은 임실만 빼곤 모두 다녀온 것 같다.

 

다음에 희리산에 오면 한산모시전시관을 한번 가 봐야겠다.



1945년 문을 연 이성당 제과점

일본인이 운영하던 것을 인수하여 단팥빵을 비롯한 명물들을 만들었다.

자극적인 맛이 전혀 없는 맛있는 빵은 전국에 소문이 날 만한 집이었다.


두시간 뒤에 찾아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단팥빵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다.

1인당 3개씩 파는 이 단팥빵을 사려면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