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26년

연우아빠. 2012. 12. 3. 08:50



프랑스 혁명 때문에 프랑스 정치인은 진심으로 국민을 무서워한다.

전제군주의 목을 잘라버린 역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침략자에게 협력했던 프랑스 사람은 진심으로 국민을 두려워한다.

나찌에 협력했던 페탕 수상에게 사면을 베풀지 않고

95살이 넘은 나이에도 감옥에서 홀로 죽음을 맞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탕에게는 1차 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이라는 업적도 있었고, 

현직 대통령인 드골을 가르친 육군사관학교 은사라는 이유도 있었고,

그의 부인이 늙은 죄수가 마지막은 가족이 보는 곳에서 죽을 수 있도록 

눈물로 자비를 호소했지만

프랑스 사람은 진심으로 사죄한 페탕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서양사를 배울 때 가장 부러운 것은 이런 <역사정리> 절차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원칙을 수립하면서 '저항권'이라는 개념을 세웠다.

최선을 다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노력했지만, 침해당한 기본권이 복구되지 않을 때, 

자유민은 누구든지 기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저항할 권리가 있으며.

저항권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건, 명시되어 있지 않건 관계없이 신에게 부여받은

인간 본래의 기본권이라는 사상이다.


반면 유교 문화권에서는 그런 역사가 없다.

기득권과 기득권의 선수교체로만 이어져 온 역사.

그나마도 제대로된 <역사정리>도 없이 켜켜히 쌓여있는 묵은 먼지처럼

털 때마다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한국 정치인들은 결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침략자에게 협력하고서도 기세가 등등하다.


실제로 <26년>처럼 공공의 적을 응징(복수 아니다!)하려는 피해자들이 있다면

"그런 방법은 옳지 않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다"라는 

교리문답 같은 소리를 할 사람들이 드글드글 할 것이다.




쏴!!!

영화 26년을 보던 관람객 중에 누군가가 외쳤다.

현실이 아닌,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그를 제대로 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들.

1만 5천여명의 사람들이 제작비를 내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검은 화면에 별처럼 흐르는 사람들의 이름 때문에

영화가 끝났음에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가 없다.

답답하다.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1980년 광주민중항쟁.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 같은 사건.


나는 1983년 5월 광주항쟁의 참상을 동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들어갔던 학생회관에서

독일 공영방송 ARD 방송 기자였던 위르겐 힌즈 페터가 촬영한 

광주민중항쟁 다큐를 보았다.

대학에 들어와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광주 출신 동기들에게 말로 전해 듣기는 했지만 

실제 촬영 화면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알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지옥 같은 광경

그 지옥을 만든 인간을 진심으로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어떤 논리와 이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지 32년이 지났다.

사형 판결을 받았던 그 수괴는 어떤 밝히지 못할 이유가 있는 지

사면이 되어 지금도 천수를 누리고 있다.


역사는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부채처럼 남아 있다.

저 부채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나는 광주시민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인이 국민을 두렵게 생각하게 만들려면

역사를 정리하고 부채를 청산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