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숲 향기가 있다
그 곳에 숲 향기가 있다(방태산의 가을단풍)
2012.10.13~10.14
멧돼지방(주은네, 우리가족, 유진아빠/맘, 상린채린아빠, 채린, 은주아빠 : 12명)
“아빠! 시험공부해야 되니까 나보고 방태산 가자고 하지마.”
영원히 아빠랑 같이 여행을 할 것 같았던
아들이 드디어 휴양림 여행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워서 자율적으로 공부하기를 바랬던 딸 아이가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습관을 가진 것에 대해 잔소리를 자주 하는데
그 여파가 아들에게 미쳤다.
“초등학생은 시험공부에 그렇게 목 매달지 않아도 돼.”
“흥, 아빠 엄마도 등수 높은 아이들을 원한다며?”
“그건 네 누나가 좀 관심을 가지고 사냥 기술을 배우라는 뜻이었지. 넌 아직 아니야.”
“싫어, 그래도 난 안 갈래.”
“그럼, 공부할 자료를 챙겨가지고 가면 되지.
방이 4개니까 넌 방에서 목표만큼 공부를 하면 되잖아?”
이렇게 겨우 설득을 해서 방태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빠, 멧돼지 방 앞에 전에 놀았던 그 통나무가 그대로 있을까?”
“글쎄? 이미 치우지 않았을까?”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는데...”
방태산 멧돼지방 테라스
금요일 밤, 집에 도착해 발표자료 만들어야 한다는 아들을 지켜보았다.
‘귀뚜라미 키우기’를 주제로 한 자료인데 초등학생이 만든 것 치곤 제법이다.
다 만든 것을 봐주고 자료를 조금 보완시켰다.
같은 내용에 대한 전달효과를 높이기 위한 자료 배치, 표현 방법 등을 이야기해 주고
완성한 자료를 메일함에 담는 것으로 끝.
내일을 위해 얼른 자라고 재촉했다.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자랄수록 여러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에 장애가 많아진다.
이번 모임 역시 한달동안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토요일 아침에 상린아빠께서 동참하기로 약속했던 친구들이
모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와서 자기도 가기 어렵다고 한다.
멋진 폭포지만 이름이 없다는 슬픈 폭포. 그냥 2단 폭포(이 폭포, 저 폭포)
‘채린이가 안오면 연우도 안간다고 할텐데...’
채린이랑 과천 쪽으로 내려 오시면 우리가 픽업하면 된다고 하니 가겠다고 하셨다.
10시에 과천 청사 역에서 상린아빠와 상린이를 만났다.
외곽순환을 탄다는 것이 잠시 착각으로 네비를 따라 그만 서울 시내로 들어가고 말았다.
상당히 막히긴 했지만 올림픽대로와 경춘고속도로는 그런대로 주말치곤 괜찮았다.
막국수를 먹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재촉했다.
언제봐도 넉넉한 마당바위.
상린아빠께서 민물고기 매운탕을 하시겠다고 하여
상남의 수퍼에 미리 전화를 해서 알아보고 왔는데
가게를 찾아 갔더니 얼마 전에 포획이 금지된 어류가 포함되어
이 지역 판매처들이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팔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해 준다.
결국 현리 읍내까지 올라가서 샀는데
한번 단속을 받으면 일반 민물고기도 팔지 않는 상인들의 몸조심이 대단하다.
일요일 아침, 햇살과 함께 방태산 트래킹을 나서다.
저녁에 구워먹을 돼지고기도 현리 시장에서 구하고
방동막국수(033-461-0419)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막국수 먹고 싶다는 생각에 점심이 너무 늦었지만 아이들이 잘 참아 주었다.
하긴 녀석들 차 안에서 잠들어서 그닥 보채진 않았지만...
점심으로는 한참 늦은 시간인데도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와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10분쯤 지났을까?
주은이네 가족도 점심을 먹으로 들어왔다.
방태산 들어가는 진입로는 맞은 편에서 관광버스가 나올까봐 가슴을 졸인다.
다행히 버스를 만나지는 않았다.
사람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방태산 단풍길
방태산 입구부터 방태산 만이 풍기는 좋은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세월은 정말 빨리도 흐른다.
꼭 3년 만에 다시 방태산을 오다니...
멧돼지방 열쇠를 받았는데 4가족이 들어가는 방도
스탬프는 달랑 1개 밖에 찍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준기가 실망을 했다.
관리사무소에서 멧돼지 방까지도 마주오는 버스를 만날까 걱정스러웠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12대나 있더라고 주은아빠가 말했다.
너무 많아서 일부러 헤아려보았단다.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강한 바람에 상단부가 심하게 흔들리며 쏴~아~아 하는 소리를 낸다.
낙엽 흔들리는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은주아빠의 말처럼 방태산의 가을 풍경은 공감각적으로도 멋있었다.
멧돼지 방에 도착했는데 주변이 좀 어수선하다.
너무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와서 화장실이고 집안이고 마구 들어오고
주변에 차도 많이 세워 놓아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 다닌다.
길 아래 쪽에 새로 화장실을 만들고 있었다.
동홍천까지 고속도로로 접근을 할 수 있게 돼서 그런지
방태산도 점점 유원지처럼 변해간다.
지금 공사하고 있는 고속도로가 양양까지 개통되면
방태산도 이제 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호젓한 길을 따라 짧게 돌았기에 이런 조용한 풍경도 찍어볼 수 있었다.
3년전에도 멧돼지 방에서 묵었는데 방 내부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방은 리모델링을 했는지 새 것 같다.
짐을 내리고 계방산 등산을 하고 들어온다는 유진네와 은주아빠가 올 때까지
산책을 하러 나갔다.
산 위쪽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려온다.
등산객, 사진애호가...
머리 위에는 자연이 만든 단풍이,
땅에는 단풍을 닮은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이 시장통 같다.
“다음 주에 SLR클럽에 방태산 2단폭포 사진이 드글드글 하겠군”
유진네와 은주아빠를 기다리다 주은아빠와 둘이서 숯불을 준비했다.
숯에 불을 반쯤 붙여놓고 배달은석님이 하던 대로 부채로 열심히 부쳤다.
30분쯤 지났을까? 숯불이 아름답게 피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숯을 보며
“은주아빠 없이 우리끼리 붙인 숯불 가운데 최고인데!”하며 서로 웃었다.
늦게 들어오는 유진네와 은주아빠에게 민물매운탕용 고춧가루를 사 오시라 부탁하고
술도 부탁하고 한참 지났는데 주은아빠가 난감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형님, 제가 훈제오리를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머스타트 소스가 있어야 한다는데요.”
“어, 그럼 은주아빠께 전화를 다시 하지?”
“아, 이거 참. 벌써 여러 번을 주문해서 전화걸기가 미안할 지경이예요”
“그럼 내가 해 줄게. 이렇게 계면쩍을 때는 문자로 하면 되지.”
하지만, 전화로 했어야 했다는...
문자를 뒤늦게 봐서 다시 되돌아 나가서 소스를 사왔다는 얘기를 해서 허거덕 했다는...
매운탕에 고춧가루를 빼먹고
훈제 오리에 머스타트 소스를 빼먹고
배추국에 된장을 빼먹고
숯불구이에 사용할 야외 조명, 라이터, 부탄가스 등등을 빼먹고 나온 우리 일행.
이번에 누가 오니까 ‘그걸 가지고 올거야’라는 굳은 믿음과 팀웍은
세월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렸다.
베란다 한 쪽 편에 만들어 놓은 야영물품 전용창고를 열어 놓고도
“뭘 가져가야 하지?”하는 단기 건망증을 일으킨다.
잘 익은 장맛처럼 깊은 맛이 나는 지금 모임도 좋지만
주은이 또래 아이들이 많아져서
야외에서 활기 넘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생겼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준기는 3년전 여기에서 놀았던 통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았던 그 통나무가 없어진 게 몹시 서운한 듯...
한밤중의 이바구는 늘 재미있는데 메모를 하지 않으니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느낌만 남고 세부내용은 다 날아 가버렸다.
아메리카노를 비롯해 각종 커피를 한잔씩 들고
신선노름 같은 대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물을 부어서 두 잔으로 만들어 마시는게 농도가 제일 적당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 덧 새벽 1시가 되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일요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사람들이 몰려 올라온다.
방태산 단풍과 폭포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이도 올라온다.
아침을 먹고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주은이네 가족이 먼저 곰배령 탐방을 떠났다.
대구 내려가는 것만 아니라면 곰배령에 같이 가고 싶었는데,
어제 서울에서 빠져 나오는 차량 숫자를 감안할 때
곰배령에 갔다가는 대구 내려갈 기차 시간에 대기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준기가 졸라 은주아빠가 단풍잎 물타기 경주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아저씨 은주아빠.
베이붐 세대 장년층이 은퇴를 시작하는 시기가 온 것일까?
쉼없이 들어오고 쉼없이 오르내리는 엄청난 등산객들은 이제 고즈넉하던 방태산이 아니다.
이제 휴양림 여행도 등산객이 찾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점점 축소될 것 같다.
9시 즈음 아침을 마친 우리는 짧은 구간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좁은 계곡에서 순간 순간 부는 돌풍은 오색 찬란한 단풍을 하늘로 날렸다.
“아,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등산로 입구에서 짧게 도는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등산객과 최대한 중첩되지 않게 5km 정도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니 2시간이 지났다.
짐을 챙겨 휴양림을 체크아웃하고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로 평촌으로 갔다.
휴양림을 빠져나올 때 들어오는 버스가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결국 좁은 길에서 버스 한 대와 마주치고 말았다.
버스와 내 차 사이에 간격은 10cm도 안될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교행을 하고 입구까지 버스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달렸다.
다행이 정오 무렵이라 고속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아서 3시간 정도 걸려 평촌에 도착했다.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채린이네 두 식구와 은주아빠는 지하철로 귀가 길에 오르고
우리는 유진네를 따라 주말 농장으로 가서 자색 고구마를 얻어 왔다.
나무다리의 단풍나무는 언제나 아름답다.
세상이 변하는데 아름다웠던 숲이라고 변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방태산 가는 길에 있는 깊고 높은 산도 서울-양양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숲 냄새가 나는 방태산이 점점 유원지처럼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쉽다.
숲의 복원력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런 바램 역시 나의 욕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