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아빠. 2010. 9. 9. 08:50

□ 2010.7.15(금)

 

이탈리아에 와서 로마만 보고 돌아가는 것은 좀 아쉬운 일. 
오늘은 베네치아를 가보기로 했다.
아내는 어제 돌아본 로마가 볼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니 로마만 보고 가자고 했지만 그래도 로마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운 일.
연우는 피사사탑을 보러 피사에 가자하고,
피렌체-피사를 묶어서 보는 것도 괜찮다 싶긴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바닷가에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단순한 생각에 베네치아를 가자고 했다.

 

떼르미니 역에 나와 표를 예약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유레일패스를 좌석만 무료이고 예약비는 꼭 따로 받는 불편한 시스템이다.
4인가족 베네치아까지 예약비가 12유로 밖에 하지 않아서 웬일인가 했더니 환불, 변경 불가인 저속 열차.
할 수없이 고속열차를 다시 왕복으로 끊었다.
4인가족 80유로. 아내는 100유로 가까운 돈을 낭비해 가며 베네치아를 갈 필요가 뭐있냐고 하지만 아이들이 아빠 편을 든다.
이번 여행 내내 아이들이 계속 아빠편만 들어서 아내가 많이 섭섭했을 듯.
작은 구멍에서 돈이 새듯 이번 여행에 조금 불필요한 낭비가 이런 곳에서 있었다.

 

기계에서 예약을 할 때 좌석표가 분명히 마주보는 4자리였는데
막상 기차에서는 뒤로 끌려가는 2열로 분리가 되어 있고 그나마 한 자리는 다른 곳에 떨어져 있다.
빈 자리라 우선 같이 앉았는데 피렌체 역에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한쌍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탔다.
유레일패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럽 사람들은 아니라서 미국사람들이 아닐까 짐작해 보는데
자리 번호를 보고 우리를 보더니 눈웃음으로 자리 바꾸는 것을 해결해 버린다.
두 사람도 서로 떨어져 우리와 자리가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도 감사할 일.
여자 쪽에서 유레일패스 지도를 꺼내더니 로마에서 베네치아로 사인펜을 긋는다.
호기심에 슬쩍 지도를 들여다 보니 헬싱키에서 시작해 스칸디나비아 3국을 지나 독일북부와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들어온 모양이다.
대단한 여정을 헤쳐 온 듯.

 

베네치아 역까지는 3시간 50분이 걸렸다.
겨울에 멋있었던 베네치아는 그저 후덥지근하기만 하다.
사람도 많고 습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수천마리가 넘었던 산 마르꼬 광장의 비둘기는 다 어디가고 수십마리만 보인다.
아내는 이런 곳에 뭘 힘들게 왔냐고 불평이다.
로마 시내를 보던지 피사를 가든지 하지.
산 마르꼬 광장으로 오기 전에 리알토 다리를 봐야 했는데 옆길로 샜던 모양이다.
리알토 다리를 보러 가자고 해서 길을 되돌아갔다.
거기에서 힘이 든 아내가 수상버스를 타고 바로 돌아가자고 한다.
외해로 나가는 수상버스를 타야 시원한데 내륙 운하를 운행하는 수상버스는 배 타는 맛도 나지 않고 덥기만 하다.
아이들도 베네치아가 정말 허접하다고 실망이란다.

 

역으로 돌아와 로마에서 예매한 표를 1시간 일찍 출발하는 표로 바꾸었다.
기계로 처리하니 생각보다 쉽다.
“이번 여행 와서 당신이 제일 잘한 일”이라는 아내의 말에 피곤이 쌓였다.
해가 넘어간 뒤에야 로마에 도착했다.
차라리 피렌체나 갔으면 했지만 오늘 같은 더위에 그건 초죽음이 될 일이었을 것 같다.
차라리 연우 말대로 피사나 보고 피렌체를 갔으면 힘은 좀 덜 들었을라나.
아까운 하루를 기찻길 위에서 다 보낸 것 같아 미련이 많이 남는다.

 

떼르미니 역에 도착할 무렵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처음과 달리 이탈리아가 점점 맘에 들지 않니?”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이들 먼저 내리라고 길을 비켜 준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역시 남다른 사람들.
이웃에 대해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의 여유가 부럽다.

 

이제 로마를 아니 유럽을 떠나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마지막날 비행기 타러 가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두었었는데 아이들에게 판테온을 보여주기로 했다.
아침 일찍 가서 보고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가야 하니 일찍일어나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일찍 재우려고 했다.
아이들은 여행을 끝내고 로마를 떠나는 게 몹시 섭섭한데 집으로 가는 것은 좋다고 아쉬움 반, 기쁨 반인 반응을 보였다.

 

“언제 다시 여기로 여행 올 건데요?” 준기가 묻는다.
“에휴, 니네 엄마 때문에 힘들어서 다시 가족여행 오긴 힘들겠다.”

 

“그럼 엄마 빼고 준기랑 저랑 아빠 이렇게 셋만 와요.” 연우가 이렇게 말한다.
“또 오고 싶니?”
“응, 못 본 게 얼마나 많은데. 베르사이유도 RER선이 고장나서 못가봤고, 자전거도 못타봤고, 피사의 사탑도 그리고, 지오반니 파시의 젤라또도 못 먹었고.”
“그래, 그래. 아빠 엄마도 스페인을 꼭 가보고 싶은데 그곳도 가보지 못했구나”


연우가 세 번째 이빨이 빠졌다고 건네준다.
잃어버리지 않게 주머니에 따로 넣었다. 떠나기 전 로마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인연을 하나 더 엮어 놓기 위해 공항 근처에 두고 가기로 정했다.





베네치아 가는 길에서 이탈리아의 자연환경이 우리나라와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마스트레에서 베네치아 들어가는 기찻길은 마치 바다위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라는 말에 걸맞게 바다위에 건물을 지은 듯이 보입니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은 바닷물로 이어진 길입니다.
3년전에 베네치아에 갔을 때는 시 재정이 파탄이 나서 관광안내지도도 주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는데
세계유산이라서 함부로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건물 외벽이 몹시 지저분하고 낡았습니다.



베네치아는 전성기 때 좁은 땅에 15만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이와 유리가면 같은 작지만 값비싼 제품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종이, 유리, 유리가면 제품은 베네치아 특산물로 유명합니다.



참 예쁜 인형이죠? 베네치아 사람들의 솜씨를 보여주는 물건들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자 메디치 가문이 저 두칼레 궁전에서 천년 공화국을 지중해 제일의 해상강국으로 키웠습니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소아시아와 동유럽을 장악하면서 동서무역을 차단했는데 서유럽 국가들은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으로 진출했습니다. 인도로 가는 길을 발견한 뒤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은 급격히 쇠퇴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상징 날개달린 사자.
겨우 한줌 밖에 안되는 작은 산호섬을 개척해 천년동안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베네치아.
전성기 때 인구는 15만이었지만 용병만 30만명을 고용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모든 서유럽 군주들이 베네치아에 빚을 지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니 영토가 작아도 강국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지요.



베네치아의 중심에 있는 산 마르꼬 광장. 성 마르꼬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산 마르꼬 성당입니다.



산 마르꼬 광장 앞에는 외해로 나가는 바닷길이 있습니다. 마치 옻칠을 해 놓은 듯 곤돌라가 반짝입니다.



여기에서 유람선이나 수상버스를 타면 외해를 돌아 산타루치아 역까지 가는 1시간짜리 수상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탄식의 다리. 마침 대대적인 수리 보수중인 모양입니다.
1년 내내 해가 들어오지 않는 골목이라 이 안쪽에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면 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죄수들이 이 길을 지나며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 죄수 가운데는 유명한 카사노바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마르꼬 광장을 지나서 리알토 다리로 갑니다.
3년전에는 비둘기가 수천마리나 되었는데 이번에는 사람만 바글바글 했습니다.


정교한 세공품이 참 아름답습니다. 갖고 싶지 않나요?



리알토 다리 위에서 본 중심운하. 곤돌리노들이 곤돌라를 저어서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습니다.
새하얀 리알토 다리 위에는 가게만 수십개가 있습니다. 좁은 도시를 알뜰하게 사용한 상인들의 도시 답습니다.

 

* 3년전 겨울에 본 베네치아의 모습은 여기를 보세요.
http://foresttour.tistory.com/87
http://foresttour.tistory.com/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