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 포로 로마노
□ 2010.7.14(수)
밤새 잠을 설쳤다.
어젯밤에 아내는 베네치아를 가보자고 했는데 피곤했던 때문인지 나는 꿈속에서 베네치아 보다 로마를 더 보라는 암시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잠을 설친 탓인지 컨디션이 별로였다.
아내에게 베네치아는 내일가고 오늘은 로마를 보자고 했다.
나는 3년전에 로마를 샅샅이 훓어봤지만 다른 가족들은 처음인데 이탈리아 여행의 핵심인 로마를 이렇게 가볍게 보고 가는 것은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아내도 어제 힘들었는지 멀리 가지말고 시내구경을 하자고 동의했다.
호텔 안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이탈리아 아저씨가 우리 아이들을 귀엽다고 볼을 쓰다듬는다.
그러고 보니 호텔에 아이들이 전혀 없고 우리가 다니던 거리에서도 아이들을 보기 힘들었다.
남부 유럽 사람들은 아이들을 신이 주신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 위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가족들간 유대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아침을 마치고 시내로 나가려고 로비로 내려오다가 방안에 팁을 놓지 않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준기가 얼른 뛰어가 팁을 놓고 내려왔다.
팁을 왜 머리맡에 남기는지에 대해 여러번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이젠 자연스럽게 잘 한다.
밖으로 나가면서 프런트에 카드키를 맡길 때 일부러 준기에게 들려서 보냈다.
프런트와 어떻게 대화를 할까? 궁금하기도 해서 슬쩍 들여다 보았다.
프런트 매니저는 웃으면서 준기에게 “땡큐!”라고 말하자 준기는 부끄러운 듯 어정쩡한 자세.
그래도 웃으면서 “그라찌에!”로 대답하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잘했다 아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방법을 경험으로 좀 느꼈을까?
지하철을 타고 먼저 콜로세움으로 갔다.
바깥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둘러보고 콜로세움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그늘과 뙤약볕 사이의 기온차가 무척 심하다.
로마군인 복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어 주는 일을 하며 돈을 받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저녁 때 콜로세움 내부를 들어가 보기로 하고 포로 로마노로 올라가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그제서야 알고 보니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카피톨리노, 그리고 이 구역 안에 있는 박물관 전시물 관람 모두를 포함한 쿠폰을 파는 것이었고
그 가격이 겨우 11유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군데 중 어느 곳에서 사건 마찬가지.
일단 입구 가까이 들어왔으니 포로 로마노를 다 돌아보고 다시 콜로세움으로 가기로 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종로와 명동거리에 해당되는 곳인데 넓고 많은 유적에 비해 설명용 팜플렛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역시 이탈리아다운 부실함을 느꼈다.
포로 로마노는 잔해만 남았지만 2천년전 로마의 역사기록이 아직까지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가능한 곳이다.
유물 외에 유명한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 오는 것이 없는 폼페이보다 로마의 유물이 나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집, 그리고 그의 왕비가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집. 카에살이 살해당한 원로원,
이런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어 포로 로마노는 지금도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포로 로마노 안에는 S.P.Q.R. 표시가 있는 공공 수도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가져간 식수가 다 떨어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공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병에 받아서 마시고 있었다.
석회석이 섞인 유럽의 물은 석회석 침전도 잘 되지 않아 역사 이래로 고민거리였다.
로마시대에는 부자나 귀족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안전한 식수를 발굴해 사회에 기증하는 일이 많았다.
유명한 트레비 분수도 원래 병사들을 위한 식수원이었다.
아직도 로마 시내 곳곳에는 S.P.Q.R.이라고 쓰인 공공수도를 만날 수 있다.
세나투스 포풀루스크 로마누스(Senatus Populusque Romanus)라는 라틴어의 머릿글자로
원로원과 로마시민(The Senate and The Citizen of Rom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로마제국과 시민 그리고 원로원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랫동안 계속 마시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여행자가 한 두 번 마시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우리도 그 물을 받아서 마셔봤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시원했다.
가지고 있던 병에 물을 가득 채웠다.
SPQR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준기는 원로원과 로마시민이 아주 훌륭했다고 평가를 한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로마 이야기와
연우와 준기가 여행준비공부를 하면서 읽은 로마역사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카피톨리노 언덕 입구까지 왔다.
카피톨리노 언덕 한 귀퉁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로물루스 레물루스 형제의 늑대동상이 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동상을 본 준기는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자세를 잡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을 보고 시원한 길을 따라 베네치아 광장으로 내려왔다.
3년전에 전면 보수를 위해 출입을 금지하던 엠마누엘레 2세의 기념관은 수리가 완전히 끝난 모양이다.
더운 날씨에 배도 살짝 고프고 해서 베네치아 광장 길가에서 파는 자칭 젤라또를 아이들에게 사 주었는데 2개에 8유로나 받는다.
하지만 그건 젤라또를 빙자한 아이스크림이었다.
급하게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아이들은 젤라또와 아이스크림의 차이를 확실히 느꼈다.
젤라또가 아니면 먹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흠!
팔란티노 언덕에 있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부인 리비아가 살았던 집의 유적
그녀에 대해서는 로마인이야기나 백과사전에 잘 나와 있음. 둘은 평생 존중하며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폼페이 유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귀족들은 집안에 화려한 색채와 그림으로 장식을 했던 모양이다.
같은 팔란티노 언덕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별장
포로 로마노 안에 있는 유적지를 활용해 박물관을 만들었다.
작은 박물관안에는 이 언덕에서 발굴한 인물상을 비롯한 각종 로마시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로마시대 어린 소년의 모습.
머리 모양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단 다르지 않았던 듯
안내지도를 보고 다녔는데 그 안내지도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 여기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도미티니아누스 스타디움인가?
공회당 건물 같은데 기둥 일부와 초석만 남아 있다.
우산 소나무가 로마의 뙤약볕을 가려주는 팔란티노 언덕길
공공 수도의 흔적. 지금도 이렇게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뙤약볕에 시달리는 여름 관광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다.
준기의 인증사진. 몰래 뒤에 다가와 방해하는 엄마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공회당(바실리카)
로마시재에 재판소와 공공시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베드로 성당 건축 당시에 이 바실리카의 천장을 떼내서 썼다고.
왼쪽 뒤에 보이는 건물은 산타 프란체스카 로마나.
로마시대의도로포장. 커다란 자연석의 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높이를 맞춰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쇠테를 두른 마차도
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 아마 무척 시끄러웠을 듯.
콜타르를 알고 있었던 로마인들이 콜타르로 도로 포장을 하지 않은 것은 40도가 넘는 로마의 기온 때문에 여름에는 콜타르가
녹아내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
티투스 개선문. 서기 81년에 세웠다.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티투스 황제가 세웠다고 한다.
로물루스 신전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카피톨리노 언덕 방향으로 본 모습
팔란티노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로물루스 레물루스 청동상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의 모습
트라야누스 황제의 포룸, 카피톨리노 언덕 아래 쪽에 있다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를 점령해 로마제국 최대 영토를 건설한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원정 전말을 상세히 기록한 원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