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7일째) 영원한 도시 로마를 향하여

연우아빠. 2010. 9. 1. 08:30

□ 2010.7.12(월)

 

체크아웃을 한 뒤 루체른 역까지 열심히 걸었다.
어제 너무 늦게 잔 탓에 기차 시간에 맞춰 Arth-Goldau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체력이 제일 약한 아내가 겨우겨우 따라오는데 늦으면 다음 열차를 타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출발 1분전에 Arth-Goldau행 09:06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타고 보니 급행열차가 아닌 지역열차. 정거장 마다 다 선다.
그래도 09:22분에 루체른을 출발하는 급행열차보다 10분 정도 일찍 Arth-Goldau 역에 도착했다.
환승시간에 쫒기지 않으려고 서둘러 탄 기차라서 여유시간은 조금 더 생겼지만 숙소에서 루체른 역까지 서둘렀던 것에 비하면 조금 허탈한 결과.
쫒아오느라 힘들었던 아내가 씰데없는 힘을 뺏노라고 잔소리 한마디를 날린다.

 

3년전에 이탈리아를 갔을 때 제 시간에 움직이는 열차를 거의 보지 못한지라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이탈리아행 기차는 연착한다고 신호가 뜬다.
시간을 지체했지만 밀라노행 기차는 3년전에 탔던 품질 떨어지는 기차는 아니었다.
꾀제제했던 3년전 기차와 달리 아주 고급스러운 차림새를 한 기차가 들어온다.
오웃! 이탈리아 기차가 이런 변신을!!

먼 길이라 1등칸을 예약했었는데 기차 내부도 전체적으로 다 3년전과 너무 달랐다.
겨울에도 야자수가 있는 북부 이탈리아 풍경은 여름에는 더 아름다웠다.
터널을 몇 개 지나서 이탈리아 경내로 들어섰나보다.
이탈리아 분위기가 나는 마을들이 계속 이어지더니 낯익은 꼬모 호수가 보였다.
3년전 브릭(Brig)을 경유해 밀라노로 가는 길보다는 풍경이 떨어진다.
이탈리아 북부의 3대 호수인 마찌오레 호수의 풍경이 여기보다 월등히 낫다.
다음에 스위스를 경유해 이탈리아로 간다면 마찌오레 호수를 끼고 내려오는 길을 택해야겠다.
밀라노에 연착하는 바람에 로마행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열심히 달음박질을 해야 했다.

 

오웃!
이번에도 예상과 달리 트랜이탈리아의 유로스타 고속열차는 밀라노행 기차처럼 아주 고급스러웠다.
“이건 이탈리아가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3년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갖게 된 이탈리아에 대한 편견 가운데 하나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다.
불친절한 국경검문도 없었고 안내방송도 없이 마냥 기다리게 하던 그런 기차가 아니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친절한 1등칸 서비스(간식과 차를 제공하는 1등칸 서비스). 3년 전에는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

서빙을 하던 청년이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어린이들에게는 따로 줄 것이 있다고 하면서
아래칸에서 맛있는 과자를 꺼내 준다.
함께 서빙하는 여자분이 자기 애인이라고 예쁘지 않냐고 자랑한다. 여자분이 살짝 눈을 흘긴다.
쾌활하고 밝은 커플. 이탈리아의 쾌활함에 여행객들도 기분도 좋아진다.

 

“어때? 이탈리아가 생각보다는 괜찮지?” 준기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끄덕끄덕.
로마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바깥풍경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워보였다.
기차 내부는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쾌적하다.
아침에 너무 서둘러 뛴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어느덧 로마근처에 도착한 모양이다.
안내 방송도 나오지 않았는데 내릴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통로에 줄을 섰다.
“어때, 이탈리아 사람들 우리나라랑 정말 비슷하지 않니?”
아이들이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아요!”

 

밀라노에서 예정보다 10분 늦게 출발했던 우리 기차는 10분 늦게 떼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3년 전에 비해서 놀랍도록 변했다. 이탈리아 기차가 이렇게 시간을 잘 지키다니.
놀라운 이탈리아!

떼르미니 역에 내려 숙소를 찾기 위해 아이폰 지도 검색을 해 봤지만 무선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떼르미니 역 북쪽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지도를 출력해오지 않는 탓에 고생이 늘었다.
주소가 인쇄된 숙소 바우처를 들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로만 가르쳐 주니 대충 감으로 잡고 가다가 서너번을 물어물어 가느라 상당히 돌아가게 되었다.

길 옆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더니 아주 친절하게 위치를 가르쳐 준다.
다시 조금 걸어올라가다가 마지막에 만난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 분이 아주 간결한 영어로 가르쳐 준다.
2블럭 지나 왼쪽으로 돌면 바로 입구란다. 정확하다.
예약한 호텔에서 투숙객에게 주는 지도를 봤더니 우린 꽤 돌아온 셈이다.
체크인을 하는데 우리 여권을 달란다. 출입할 때마다 키를 맡기고 여권을 찾고 해야 한다고 하면서.
좀 이상한데?

 

호텔 방에 들어간 순간 우린 환성을 질렀다.
운동장 같이 넓은 방, 그리고 트윈베드와 소파를 침대로 변형해 만든 널찍한 침대 2개.
그리고 우리집 세면장보다 4배는 넓은 목욕탕과 세면장.
TV와 인터넷 포트. 런던 피카딜리 호스텔과 거의 비슷한 가격에 훌륭한 아침까지 주는 호텔.
나라마다 이렇게 가격대비 품질 차이가 크다니.

짐은 대충 침대에 던져놓고 욕조에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들어가 몸을 식혔다.
아쉬운 것은 셀프세탁실이 없고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데 그 가격이 우리나라 세탁소랑 비슷했다.
속옷이나 양말도 그렇게 계산하니 이건 어마어마한 돈이다.
호텔에는 미안했지만 욕탕 안에서 속옷과 양말 빨래를 했다.
샤워를 하며 빨래를 하니 여행의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

내일 바티칸 투어를 위해 가까운 간이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우리가 런던에 도착한 것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마지막 목적지인 이탈리아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바깥 경치는 관심이 없고 오직 아이폰에만 매달린 연우.
이탈리아 기차는 3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3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알프스를 내려가면 독일스러운 마을이 점점 이탈리아스러운 마을로 바뀐다.
아직은 독일스러운 느낌이 나는 곳.



이탈리아로 들어왔지만, 어쩐일인지 3년전에는 그렇게 엄격하게 하던 국경검문도 없다.



꼬모호수.
겨울에는 코발트 빛이었는데 여름에는 비취색이 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명성을 날렸던 곳.



여행사에 근무하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멋진 숙소. 산 마르꼬 호텔 객실.
가격대비 너무 훌륭하고 안락한 곳이라서 8월에 여행을 가는 처조카도 로마 숙소는 여기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