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6일째) 루체른 풍경

연우아빠. 2010. 8. 29. 13:01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 루체른. 
스페인 국기를 두른 사람들과 네덜란드 국기를 든 사람들이 거리를 반으로 나누었다.
오늘이 결승전인가? 월요일이 아니었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한국시간 기준이었고 유럽시간으로는 오늘이 맞았다.

 

기차역에 내리자 정작 루체른을 제대로 못봤다는 아내의 말에
Coop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루체른 시내를 가로질러 빈사의 사자상에 도착했다.
내 나름대로는 루체른과 스위스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빈사의 사자상.
이 사자상을 보자고 졸랐던 준기는 막상 어둠이 내린 텅빈 빙하 공원이 무서웠던 듯 겁을 냈다.
빈사의 사자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광량 부족으로 찍히지 않았다.
플래시를 터트리니 얼굴만 환하게 나왔다. 이 사자상의 유래를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해 2백년간 싸워 독립을 쟁취한 루체른과 그 동맹도시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스위스 봉쇄. 외부와 단절되면 먹고 살 방법이 없는 스위스 사람들의 고충.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젊은이들의 용병생활.
16세기에 있었던 독일군대의 로마 약탈과 교황의 도피. 그 와중에 교황을 지키는 15개국 근위대 중 오직 스위스 근위대만은
본국 가족들의 생활비를 댈 수 있는 신용을 지키기 위해 교황을 사수했고 16명을 제외한 전원이 죽은 처절한 사건.
그 댓가로 지금까지 교황청의 유일한 근위대가 된 스위스 용병.

그리고 프랑스혁명 때 똑같은 이유로 부르봉 왕가를 사수하려다 768명 전원이 죽은 비극적인 스위스 용병들.
그들의 희생으로 스위스 용병의 신용을 유럽전체에서 인정을 받게되어 생활비를 구해 목숨을 연명한 본국의 가족들.
나폴레옹 몰락 후 스위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죽은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덴마크 조각가를 초빙해
이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을 형상화해 줄 것을 주문해 오늘 저 빈사의 사자상이 선 것이라고.

아까 무섭다던 준기는 무서움을 잊었고 스위스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이 아름다운 이 나라가 사실은 그런 처절한 노력 끝에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
준기는 특히 너무 감동을 받은 듯,

 

돌아오는 길에 문을 닫은 가게 진열장에서 본 스위스 도자기가 너무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은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루체른 호수의 야경,
그리고 온 도시를 덮듯이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대형 스크린이 있고 거기에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머문 호스텔의 공용주방 앞에도 사람들이 TV로 축구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밤 10시 이후에는 주방을 이용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기지 않으려고 얼른 주방으로 내려가 Coop에서 산 재료로 음식을 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오늘은 축구를 보고 있는 듯하다. 주방 앞 미팅룸에서는 유스호스텔 투숙객들이 조용히 TV중계를 보고 있었다.



베른에서 루체른으로 돌아가는 길
보고 있으면 저절로 평화를 사랑하게 되는 정말 목가적인 풍경.



루체른을 제대로 못봤다고 해서 우선 카펠교부터 다시 밟아 올라갑니다.



호수 건너에 호프교회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루체른 호수의 노을 속에 고니가 유유히 헤엄을 치는 모습
"평화"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용병생활을 하며 목숨을 잃은 스위스의 청년들을 위해
빙하공원 안에 빈사의 사자상을 세웠습니다.



루체른 역에서 카펠교와 나란히 호수를 건너가는 현대식 다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돌아 두개의 탑이 있는 루체른 호프 교회(Luzern Hofkirche) 방향으로 300m 쯤 직진하면 Löwenstrasse 거리를 만납니다.
왼쪽으로 꺽어 Löwenstrasse를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빙하공원이 있고 그 공원 안에 이 조각상이 있지요.

합스부르크가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한 스위스는 열악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사방이 모두 적국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었죠. 
이에 젊은이들은 유럽각국에 용병으로 팔려가 급료를 받아 그것을 본국에 가족에게 송금해서 먹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16세기, 독일 황제가 로마를 약탈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황청을 지키던 근위대는 15개국 군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밀통로를 통해 산탄젤로 성으로 대피한 교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던 그들 가운데
오직 스위스 근위병만이 남아서 교황의 도피로를 지켰습니다. 16명만 살고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다시는 스위스 사람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서 그랬다고 하네요.
그 뒤 교황은 스위스 청년들만 근위대로 고용을 하게 되었고 지금껏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 퇼리르 궁에 유폐되어 있던 루이16세와 왕비 마리앙투아네트가 바렌으로 도망을 쳤다가 다시 잡혀왔는데
1792년 성난 군중들은 왕과 왕비를 내 놓으라고 몰려왔습니다,
역시 계약을 지키기 위해 스위스 근위병들은 시민들과 맞섰고 지휘관 이하 768명 전원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이 스위스에 전해지자 모두 자기 일처럼 슬퍼했으나 표현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훗날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나서 스위스 사람들은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발트젠에게 이 사건을 기념물로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빙하공원의 거대한 바위에 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러진 창에 찔려 숨을 헐떡이면서 방패에 얼굴을 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듯한 사자를 조각했지요. 

사자의 모습은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리얼한 표정과 힘, 그리고 애잔함을 느끼게합니다.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처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을 물으면 루체른 시민은 거의 모두가 이 사자상 앞까지 사람들을 안내해 줍니다.





문을 닫은 가게안에 정말 아름다운 식기세트가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루체른 호수에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곳.
그 앞에 이런 재미있는 간판이 보입니다." 타볼라고?"




루체른 호수의 밤풍경. 삼각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