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 파리 : 오르세
□ 2010.7.1(목)
여행자의 긴장 때문일까? 가족을 다 챙겨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로일까?
생각보다 너무 일찍 잠이 깼다. 05:35.
런던에서 하지 못했던 밀린 빨래를 해야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더위에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가져간 여름옷이 너무 모자랐다.
1층(우리나라로 하면 2층) 빨래방에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세탁 한 번에 4.5유로, 건조하는데 3.5유로.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유럽은 빨래 말리는 것도 건조기에 하나보다.
하긴 마당이 없으면 널어놓을 곳이 좁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호텔 시설 관리를 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사용 방법을 배웠다.
동전을 넣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쓸 수 있는 코인을 뽑아서 사용하는 방식.
동전은 0층에 있는 프런트에서 바꿔와야 하고.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을 먹으로 0층 식당으로 갔다.
응접하는 여자 분은 세련된 사람이었는데,
서빙 하는 여자 분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듯 우리가 머무는 3일 동안 단 한번도 완벽한 식탁 세팅을 하는 것을 못 봤다.
포크나 나이프를 빼먹거나 잔을 빼먹거나 컵을 빼먹거나. 냅킨을 빼먹거나...
처음엔 우스웠고 3일 계속 그러니까 나중에는 안스러웠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퇴근하는 그 분을 우연히 호텔 앞에서 보게 되었는데
바쁘게 어디론가 가는 모습에서 여기도 이주민들이 사는 게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음식은 간결하면서도 맛있었다.
런던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우리가 만난 런던의 식사는 배고픔을 지우는 역할만 하는 음식이었다면 파리는 보고 먹는 즐거움을 주는 매력이 있다.
오늘은 시내로 나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시테섬, 에펠탑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내는 어제부터 가져간 여행안내 책자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시내버스를 타러 숙소 뒤편으로 나갔다.
어제 봐 둔 작은 공원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였지만 우린 관광하러 왔으니 시내를 보러 가야지?
가는 길에 프랑스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사방치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흔적을 발견했다.
잠시 연우와 준기가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폰을 가지고 앱을 찾다가 오르세로 나가는 64번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 오르세로 가는 노선이라 가는 길에 개선문을 보면서 지나가는 괜찮은 노선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으면 그 도시의 시민이 다 된거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 훌륭한 여행이지.
런던보다 넓은 도로지만 좀 더 시끄러운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길.
역시나 에어컨이 없는 시내버스는 이상 고온으로 따끈따끈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참을만한 더위.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 오르세 근처에 온 것 같은데 기사 아저씨의 잘못된 안내로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파리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을 잡아 곧 오르세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기온이 한참 더 올라갔나 보다.
오르세를 첫 번째로 선택한 이유는?
루브르는 내가 두 번이나 본데다 이미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봤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런던에서 아이들 성화에 내셔널 갤러리를 제대로 다 못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친숙한 작품이 많기도 해서.
어른 8유로, 어린이는 무료라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아직 없다.
유럽의 문화예술은 동양사람들이 유지시켜 주는 것 같다.
고건축물, 미술품의 수리와 복원 그리고 각국의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마저도 한중일 삼국이 경쟁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으니.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더러 손가락으로 저 앞쪽으로 가라는 시늉을 한다.
"왜 그러지?" 라고 생각하며 줄 옆으로 나와서 보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입장하는 문이 따로 있었다.
덕분에 땡볕에서 줄서지 않고 그냥 바로 들어갔다.
"아! 멋진 사회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주는 문화. 이런 게 프랑스의 역량인가 보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에어컨 시설은 전혀 없어 자연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만만치 않은 열기를 담고 있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아예 찍지 못하게 해서 그림 감상에만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
고갱, 고흐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중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화가 꾸르베의 작품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신
에게 바친 미술을 인간에게로 돌린 그의 명언은 미션 스쿨의 황당한 종교적 소아병에 넌덜머리를 내던 나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충격이었다.
그 꾸르베의 명작이 내 눈앞에 있다니.
광산에서 일해 거칠어진 손,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가을 걷이가 끝난 농장을 돌며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 아낙네들.
가장 힘들게 일하지만 구조적으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Working Poor 계층의 삶을 상세하게 묘사한 꾸르베와 밀레의 작품은
프랑스가 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림으로 잘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그림 앞에서 발길을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엄숙한 일이었다면 그림에 대한 문외한의 과장일까?
루브르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이었지만 인간의 모습을 다룬 친숙한 명작들이 너무 많아서 주마간산격으로 훓어 가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간신히 절반을 보고 다리도 쉴겸 점심을 먹으러 구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몇일동안 영국을 여행하면서 생긴 노하우.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레스토랑은 싸고 맛있다는 경험이 프랑스에서도 통할 것을 기대하고.
천정이 높고 창문을 통한 자연채광이 잘되어 밝은 분위기였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자리를 안내해준다.
자리를 잡고 앉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웨이터가 와서 메뉴판을 주고 사라졌다.
주문 준비를 하는 동안 연우와 준기가 웨이터 아저씨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서유럽의 웨이터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해 주었다.
전문적인 학교에서 3년 이상 교육을 받는 전문가들이고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모든 음식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손님들에게 자문을 해 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는 더 노련하고 세련된 전문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에 왔으니 음식에 맞는 포도주 한잔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아내에게 포도주를 주문해도 괜찮다고 했더니 한참을 들여다보다 모르겠다고 한다.
술을 한방울도 못하는 나도 당연히 모르는 분야.
웨이터가 전문가일테니 그 분에게 우리가 주문한 음식에 잘 어울리는 포도주를 추천해 줄 것으로 요청했고
그 분이 추천한 적포도주 한잔을 주문했다.
나는 포도주 전혀 모른다. 그냥 검붉은색과 맑은 색이 있다는 것 밖에는.
우아하게 비교적 비싼 점심(57.8유로/4인)을 먹었다.
음식에 따라 나오는 기본 후식은 어른은 아이스크림 3덩어리, 어린이는 2덩어리였다.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 그 후식 때문에 불친절한 프랑스는 조금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오른쪽에 전시돼있는 작품들을 계속 감상했다.
어차피 다 볼 수는 없는 일정. 3시가 넘어서야 루브르를 봐야 한다며 아내를 재촉해서 오르세를 나왔다.
바깥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
라데팡스 공터에서 발견한 아이들 놀이공간
우리나라의 사방치기와 비슷한 놀이가 아닌가 싶네요.
오르세를 가는 길.
센강은 여전히 잘 흐르고 있고 폭이 아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센 강변의 국회의사당.
프랑스는 공공기관에는 모두 국기가 걸려 있습니다.
아무리 멋진 작품이라도 배가 고프면 눈에 안들어오죠.
예술가는 배고플 때 멋진 작품을 만들지 모르지만
여행객은 배가 불러야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ㅎㅎ
오르세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요.
회화는 촬영을 못하게 하는데 조각품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것보다 같이 작품 감상하는게 더 재미있어서
오르세 내부에서는 사진을 이것 밖에 찍지 않았답니다.
너무 더운 날이라서 유람선을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햇살이 어찌나 따갑던지 오르세에 왔다 간 기념으로 인증사진을 찍었지요.
물론 방학 숙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인증사진은 정말 자연스러운 표정이 잘 안나오는데 준기는 유럽여행 내내 너무너무 즐거워해서 좀 걱정스러울 정도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