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10.10 잘 만든 영화 <안시성> 감상문 (1)
  2. 2018.10.04 천왕봉(1,915m) 등산 (1)

잘 만든 영화 <안시성>

2018.10.09


 

잘 만든 전쟁 영화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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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고증오류 ... 역사를 영화로 만들거나 드라마로 만들면 빠지지 않는 비판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그랬다. 그래도 비판을 하면서도 가급적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다음에 더 멋진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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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안시성 전투(645년) 이후 23년 뒤에 망했고, 안시성은 26년 뒤인 671년에 함락됐다. 해서 남아 있는 기록은 적이 남긴 기록이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진정 역사의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각을 빌려와서 자기 역사를 기록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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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중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둘 담고 있는데, 하나는 추모성왕의 활과 화살이 요동성을 지키는 신물이었다는 것과 양만춘이 화살로 이세민을 쏘아 한쪽 눈을 다치게 했다는 전설이다. 하긴 양만춘이라는 이름도 당시 사서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기록하며 이점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구당서 열전에는 이세민이 패배한 뒤 안시성을 떠나면서 비단 백필을 선물로 주었다고 하는데, 누군지 적장의 이름도 모르고 주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해서, 영화의 설정처럼 고구려 군이 퇴로를 처단하러 나오자 정신없이 도주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요택의 진창길을 지나 임유관까지 가는 길은 이세민의 수명을 무척 단축시킨 고생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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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공방전만 안시성 전투로 생각하지만, 당시 사서의 기록에는 주필산 전투가 안시성 전투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시성에서 발진한 고구려군이 당군과 주필산에서 싸운 것이 안시성 전투의 시작이다. 주필산 전투 개전은 음력 6월20일, 이로부터 9월18일 당군이 후퇴할 때까지 석달 정도 전투가 있었고 그 가운데 안시성 공방전이 60여일 이상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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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은 주필산 전투부터 다뤘는데 이는 제목에 부합되는 장면이다. 안악 3호분 대행렬도의 보무당당한 고구려의 개마부대(갑주를 입힌 말을 탄 창병)를 3차원 공간에 재현한 것은 압권이다. 말과 병사 모두 찰갑옷을 장착해 고증에도 매우 충실한 장면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고구려 기병의 압도적 돌파력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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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옥에 티라면 전투가 음력 6월 중순, 한여름이었는데 벌판의 배경이 늦가을이며 당나라 수뇌부의 야외 회의장면에서 입김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살아남은 태학생도가 안시성까지 달려가는 사이 계절이 늦가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전투를 기록한 사료에는 두 지점까지 거리는 멀어야 40리(16km) 가까우면 8리(3.2km)다. 사전 제작을 하면서 계절을 간과한 것은 안타깝다. 또 태학생도는 차라리 경당생도로 그리는 편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태학은 유교경전을 가르치는 귀족 대상 행정관료 양성 대학이고, 경당은 송경습사(경전을 읽고 활쏘기 같은 무예를 가르침)를 하는 고구려에 널리 퍼진 일반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화랑 비슷한 무사집단인 조의선인(皂衣先人)이 있었다. 고구려는 기마민족이 아니라 농경민족이었다. 해서 말을 타는 무사집단은 어렸을 때부터 다르게 훈련을 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파르티안 샷(수렵총 벽화에 나오는 몸을 반대로 돌려 활을 쏘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유교 경전 읽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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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무기와 방어무기 모두 지금까지 어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장쾌한 장면이었다. 감독의 말처럼 고대 전투의 모든 병장기를 동원했다 할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줬다. 예전 <불멸의 이순신> 해전 장면에서 맛봤던 것 이상으로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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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공성무기인 운제를 격파하는 장면을 양만춘의 원맨쇼로 그린 부분은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설현의 단기돌파 역시 잘 만든 영화에서 뜬금없는 씬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남친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삭이며 석궁부대를 잘 지휘해 승리한 뒤 무덤에 가서 우는 장면을 만들던지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 이하 기계처럼 팀웍을 딱딱 맞춰 전투하는 고구려 군에게 성주의 명령도 없이 개인적 분노를 풀기 위해 단기필마로 당태종을 향해 질주하는 석궁부대장은 뜬금없지 않은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헬름협곡 전투나 펠렌노르 평원 전투를 생각해보면, 이 장면 때문에 안시성 전투는 성주의 군대 장악능력과 전투지휘 능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군령도 제대로 못 세우는 ‘이웃집 아저씨’로 만든 게 몹시 아쉽다. 설현 혼자 띄워주려고 씬을 만들었다면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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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성곽 역시 아쉽다. 특히 감독이 만주에 남아 있는 고구려 산성들을 답사했었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좀 의아하다. 중국의 사서들에는 “고구려는 성을 쌓고 방어하는 기술이 탁월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성에 의지해 싸우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번에 나오는 성곽에는 세계유일의 고구려성이 갖춘 특징이 생략됐다. 고구려 성의 특징이자 강점은 치와 옹성이 그것인데 적이 일렬로 서서 돌격해 오지 못하게 돌출된 치성 구조가 있고, 성문을 충차로 격파하지 못하게 옹성으로 성문을 둘러싸고 있으며 옹성 안으로 충차를 끌고 오면 포위가 되어 고슴도치를 만들 수 있는구조물이다. 고구려를 침략했던 적들은 이런 구조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영화 속에는 허술한 목책 방어장치를 동원해 많이 아쉬웠다. 목책 방어장치는 적의 발석거 공격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장치였다는 기록이 명백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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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오호!라고 감탄한 장면이 있었는데, 토산이 무너졌을 때 고구려군에 잽싸게 성밖으로 튀어 나가 토산을 점령해 버린 부분이었다. 사서에는 토산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데, 영화는 “아, 저랬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토산이 무너졌을 때 당군은 당황했는데 고구려군은 예상하고 있었던 듯 준비하고 있다가 바로 기병을 동원해 토산을 점령하고 참호를 파버렸다. 이는 충분히 영화처럼 고구려의 굴자군이 토산을 무너뜨렸을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기둥을 불태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정하더라도 굳이 사람을 희생시키는 장면을 만든 것은 한국 영화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아쉬웠다. 사서의 기록을 보면 토산과 성벽은 매우 가까웠다. 그랬다면 기둥마다 동앗줄을 묶어 말과 소를 이용해 충분히 기둥을 쓰러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비장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비장한 희생을 설정하는 것은 여전한 과거 파시스트 시대의 국가관이나 희생정신의 잔영인 것 같아 다음 영화에는 이런 부분들이 사라졌으면 한다. 사람 한명 한명이 매우 필요한 고대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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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의 고구려 군은 하루 2~3천명의 적을 살상하며 석달간 버텼고 당군이 60일 동안 쌓은 토성을 점령한 뒤에도 사흘간 적 3만을 살상했다고 한다. 단순 계산으로 석달간 전투에서 무려 20만명 정도를 살상한 것이다. 중국 역사서들의 평가처럼 고구려는 성곽 방어전투에서는 가히 세계 최강이라 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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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중국 왕조들이 제압하지 못했던 북방 유목민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들에게 천가한(天可汗)의 칭호를 받은 이세민을 상대로, 3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적을 궤멸시킨 안시성 전투는 가히 중국 왕조들과 30년 동안 치른 동아시아 세계대전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일 것이다. 특히 주필산의 엄청난 피해를 목격하고서 치른 전투에서 이긴 것은 자랑할만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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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은 한국 제작진이 만든 역대 고대 전쟁 영화 가운데 최고라고 꼽아주고 싶다. 영화가 끝난 뒤에 나올 때 어린아이와 청년 세대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걸 보니 스토리도 재미있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개선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주인공들도 투구를 쓰라는 것이다. 투구를 쓰지 않은 장수가 장수인가? 배우의 얼굴은 영화가 유명해지면 저절로 널리 알려지는데, 투구를 쓰지 않은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장수들이 입은 갑주는 고구려의 갑주가 아니다. 화살도 튕겨 나가고 칼도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고구려 찰갑옷인데, 주필산 전투 때 찰갑옷을 입은 고구려군이 왜 갑자기 안시성에선 시대불명한 애매한 갑주를 입고 나오는지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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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 고대 전투 영화나 드라마 중 국내에서는 가장 잘 만든 것으로 칭찬해 주고 싶다. 환두대도 허리걸이, 궁시 착용법, 말타는 법, 등장무기 등등 장족의 발전을 이룬 영화로 평가해 주고 싶다. 앞으로 더욱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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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용 자체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스포일러 아닌가?
“고구려가 이겨!” ㅋㅋ


황제가 성 안에서 들리는 닭과 돼지의 소리를 듣고 세적에게 말했다성을 포위한지 오래되어, 성 안에는 밥짓는 연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데, 지금 닭과 돼지 소리가 요란하니, 이는 틀림없이 군사들을 잘 먹인 후에 야습하려는 것이다. 군사를 단속하여 이에 대비하라.” 이날 밤, 우리 군사 수백 명이 성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직접 성 밑에 와서 군사를 소집하여 재빨리 공격하였다. 우리 군사 중에 사망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사진은 영화 홈페이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저 기록을 바탕으로 엄태구가 분한 멋진 고구려 돌격대가 등장한다. 

투구를 쓰시라. 투구를....ㅋㅋ


황해도 안악 지방에서 발견한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

고구려 군의 무장과 편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벽화다.

문관과 함께, 장창수, 도부수, 개마무사, 궁수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의 요하 방어선 개념도.

안시성은 만리장성 출구인 임유관에서 요택을 지나 요하를 넘으면 당도한다.

중요한 성곽이었기에 고구려는 15만의 대군을 동원해 안시성 앞 주필산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 성은 고구려가 망한 668년보다 3년이나 더 당군과 싸우다가 671년에 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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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당대에 나라를 구했으니.....

(2018.10.03 개천절)


 

다시 지방근무를 하게 된 지 어언 100일이 다 돼간다.

10월 징검다리 휴일 때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무릎 수술한 뒤로 등산은 해도 하산은 하지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트래킹만 해 왔기에 솔직히 1915m 천왕봉을 오른다는 건 벅찬 느낌이었다.

 

천왕봉 등산 계획을 얘기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중산리 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해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를 알려 주었다. 계획을 미루지 않으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천왕봉 간다고 얘기하며 헛계획이 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다.

 

몇일간 지리산 정상의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바람도 강하고 기온도 최고 기온이 12도 내외로 서늘한 날씨. 배낭 무게 때문에 고민을 하게 만든다.

 

3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물, 사탕, 충무김밥식 김밥, 굵은 대추, 삶은 달걀, 치즈조각 등을 챙기고 중산리로 차를 몰았다. 새벽부터 안개가 너무 심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해가 뜨지 대부분 사라졌다. 중산리 안내소 근처에 다다랐을 때 로드킬 당한 고라니가 길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산을 계속 파고 들어가니 동물들의 이동로가 단절되어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내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국립공원 직원이 내려와서 주차장이 만차라 올라갈 수 없으니 도로에 바짝 붙여서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라고 안내해 준다.

 

여기 주민 가운데 한 분이 자기 집 담벼락 옆에 차를 대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셔서 차를 대고 고도를 재보니 497m. 중산리 안내소까지 걸어오르는데 30분이나 걸렸다. 해발 681m. 안내소에 있는 지도를 보고 장터목 대피소를 통해 올라가는 길 대신 법계사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 체력에 자신이 없어서 가까운 길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 좀더 완만한 장터목 대피소 길을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국립공원 앱을 이용해 네비게이터를 켜고 천천히 길을 올랐다. 지루하고 지리한 길의 연속이었다. 다만 하늘이 너무나 맑은 파란색이었고 1500m 이상 올랐을 때 드문드문 단풍이 보인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행과 같았다. 1,000미터 이상을 지나면서 서서히 힘이 든다는 느낌이 들어서 2~5분씩 짧게짧게 쉬면서 탈진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었다. 마치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경험한 고산지대 걷기 같은 느낌이었다.

 

, 내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서두르지 않고 쉬고 쉬면서 힘을 비축해 한 단계 한 단계 계단 구간을 통과했다. 땀을 식히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고 고도가 계속 높아지는 것에 한 걸음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면서....

 

1800미터 지점에서 다시 마지막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1200미터 지점부터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파른 계단이 하늘 높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마지막 기운을 비축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 정도야 못 오를까?

멀리서 봤을 때는 너무 가팔라서 한숨이 나왔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오를만한 계단이었다. 인생은 역시 포기하면 안되는 것이다. 정상에 도착해서 계산해보니 중산리 탐방안내소에서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안내도에는 3시간 50분이 적혀 있었는데 내 체력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렸다.

 

힘들게 올라온 정상에는 수십명이 모여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차례로 줄을 서서 찍으면 좋으련만 꼭 줄을 하나 더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자기만 급하지 절대 남에 대해서는 배려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절은 넘는다. 해서 기다리면서 매너 없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일수록 머릿수를 믿고 그러는지 더욱 배려심이라고는 없다. 정상석 앞 뒤를 배경으로 찍고 배너들고 찍고 누구랑 같이 찍고 ... 찍고 찍고 또 찍는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죄송할 짓을 계속한다. 그리고는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정상도착의 기쁨을 만끽한다. 추가적인 인증샷은 밥 다 먹고 해도 되겠구만 매너가 그 모양이다.

 

줄서서 겨우 인증샷 찍고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천왕봉의 탁트인 하늘과 풍경을 감상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맑은 날씨는 당대에 나라를 구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풍경이라 자위하며 천천히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티 하나 없이 맑은 가을하늘에 상승기류를 타고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 3명이 보인다. 풍경이 너무 광활해서 내려갈 생각을 잊고 사진을 찍다보니 40분이나 지나버렸다.

 

240분 장터목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죄다 화강암 덩어리로 된 산길이다. 무릎보호대와 마운틴폴을 양쪽에 들고 하산을 시작했으나 고행은 시간이 갈수록 가중됐다. 1시간 만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마치 5시간은 걸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질 시간을 고려해 보니 쉴 틈이 없을 것 같다. 걸어가면서 사탕을 물고 물을 마셨다. 무릎의 고통은 발목에서 엉덩이 그리고 허리까지 올라왔다. 등산하기에는 최악의 바윗길이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산 그림자가 깊어져 해가 진 것처럼 어두워진다. 발바닥에 불이 날 것처럼 화끈 거렸고 무릎도 아팠다. 연골파열이 걱정스러워 등산로 옆 개울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궜다. 얼마나 차가운지 발을 집어넣고 열을 세기도 전에 꺼내야 했다. 그래도 물집이 생기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물에 담그기를 여러 번 하고 등산 수건을 물에 적셔 양쪽 무릎의 열을 식혔다. 새벽 일찍 등산을 시작했더라면 이렇게 고통을 참으며 하산을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려오던 사람들 가운에 청년 3명이 있었는데, 예전에 1100미터 부근에서 곰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 해 준다. 곰을 보고 먼저 피했는데 곰이 따라와서 바위 위에서 뛰어내린 아찔한 경험을 들으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게다가 그 청년이 얘기한 바위에 곰을 주의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니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칼바위 근처에 와서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마운틴폴 두 개를 쓰고 있으니 배낭에 있는 플래시를 꺼내 들 수도 없는데, 뒤에 내려오던 젊은 친구가 일부러 등을 비춰주며 내 보조에 맞춰 천천히 내려와 주었다. 감사를 표하는데 한참 뒤에서 일행인 듯한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혼자 가냐고 등을 비춰주던 젊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등을 비춰주던 젊은이가 대꾸를 하지 않자 , 여자랑 가는 거구나!” 이러더니 뽀뽀 해! 뽀뽀 해!”를 연발한다.

 

청년과 나는 피시시 웃었다. 마침내 칼바위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바로 중산리 탐방안내소를 향해 내처 걸었다. 무릎은 말할 수 없이 아팠고, 마운틴폴에 의지해 겨우 겨우 걷는 상태였다. 하산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 정도 걸려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비로소 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얼굴에 흐르는 물에서 짠맛이 났다. 군복무 중에 20km 행군할 때가 생각났다. 다행히 중간중간 고열량 간식을 섭취한 덕분인지 아니면 기초체력이 아직 쓸만해서인지 탈진하지 않고 잘 내려온 셈이다.

 

너무 어두워져서 빨리 자동차에 가고 싶은 맘에 쉴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동차까지 가는 길은 왜 이렇게 먼 것인지, 산 모퉁이를 몇 개를 돌아도 차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산 짐승들 움직이는 소리 같아서 길 바깥쪽으로 멀리 피해 걸었다. 깜깜한 길에 걸어가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다.

 

하늘에는 토성과 화성이 뚜렷하게 보였다. 탐방안내소에서 거진 30분 가까이 걸려 자동차에 도착했을 때는 만사가 귀찮을 지경이었다. 저녁 7, 이 장소에서 등산을 시작한 것이 아침 845분이었으니 10시간 15분을 걸은 셈이다.

 

등산화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은 뒤 병에 남아 있는 물을 마음껏 마셨다. 세상 어떤 맛보다도 훌륭했다. 차에 올라 진주로 돌아오는 길은 시원한 가을 저녁 공기 덕분에 상쾌했다.


8시 30분경 중산리 안내소 아래 쪽 마을에 도착해 고도를 측정



중산리 안내소까지 2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주차장은 이미 가득찬 상태라 20분 이상을 걸어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안내판을 보고 코스를 가늠해 본다.

아주 오랜만에 등산이라 다른 사람들이 권유해 준 중산리>장터목>천왕봉 방향을 생각했으나

같은 길을 왕복하는 건 싫고, 힘이 남아 있을 때 오르는 길이 좋을 것 같아 중산리 > 로타리 > 천왕봉 방향을 선택했다.

이 안내판은 탐방지원센터 근처에도 있고 중턱인 법계사 근처에도 있는데 중턱에서 찍은 사진.

소요시간은 적어도 주말마다 산을 다니는 사람 기준으로 작성된 것.



통천길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갈수록 고도계를 자주 쳐다보게 되고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으나 

실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을 느끼며 올라간다.



삼릉석처럼 생긴 칼바위

이 곳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장터목 대피소 방향으로 해서 천왕봉에 오르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가장 가파르지만 짧은 길로 오르게 된다.



중산리 탐방센터에서 1.1km 오르는데 42분 소요.



예상과 달리 바람한점 없이 쾌청하고 따뜻한 날씨여서 준비해 간 옷이 오히려 짐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나무 그늘이 짙어서 햇빛으로 인한 고통은 없었으나 전망이라 할 것도 없다.




해발 1177미터 망바위 통과. 탐방 안내소에서 1시간 33분.

쉬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해발 1,200미터 정도에 오르자 조금씩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여름 풍경 그대로다.

몇일간 일기예보를 봤는데 이날도 최저 1도에서 최고 14도까지 바람은 초속 4미터로 예보되었으나

남쪽 사면이라 그런지 바람한점 없이 등산하기 좋은 서늘한 기온이었다.



국립공원 산행 앱을 다운 받으면 이렇게 등산 네비게이션으로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체력 안배를 해 가며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으니 더더욱 좋다.

다만 이 걸음은 자주 등산을 다니는 사람의 페이스일 거다.

덕유산 향적봉 등산을 마지막으로 3년 반이나 지났으니

10분 걷고 1~2분 휴식하는 형태로 올라갔다.



해발 1,200m쯤 오르자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은 정말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그런 하늘이다.

안내소에서 여기까지 소요시간 2시간 20분 정도





5분뒤 로타리대피소에 들러 화장실에 다녀왔다.

여기 통과 제한시간은 오후 1시, 1시가 지나면 정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하산시간 때문에 한라산처럼 시간 제한을 하는 듯.




5분 정도 쉬고 천왕봉을 향해 다시 길을 오른다.

여기는 샘물이 있기 때문에 물병은 하나만 준비해도 당일치기 등산객은 충분할 듯.

1g이라도 무게를 줄이려고 행동식은 사탕, 깐 밤, 작은 덩어리 치즈 이렇게 준비했다.



1,500미터를 넘어서자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은 정말이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쉬는 시간은 늘어나고 능선 사진을 의미없이 찍어 둔다.




산악 네비게이션은 남은 거리와 시간을 알려주는데,

정상으로 갈수록 소요시간은 앱이 알려주는 시간보다

2배는 늘어나는 느낌이다.





탐방안내소부터 벌써 3시간 30분이 지났다.

기온은 여전히 10도 아래쪽이라 생각보다 땀도 덜나고

걷기에 좋은 날씨



심장마비를 조심하라는 경고문구가 곳곳에 나 붙어 있다.

심장마비로 사망자가 발생한 지점이라는 경고문과 함께.

마치 고산병이 생겨서 걷지 못하는 것처럼

계단 구단을 통과할 때마다 3~7계단 오르고 숨을 한번 고르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국립공원 안내도라면 이미 천왕봉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도 단풍과 능선의 모습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법계사에서 1시간 10분을 걸어왔는데 겨우 1.3km를 걸었을 뿐이라니!!!!!




개선문을 통과하고....



하늘은 새털구름으로 곧 가을이 온 세상을 덮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바닥은 죄다 바윗돌.

쉬면서 무릎보호대를 착용해 부상을 예방한다.




이제 저 까마득히 보이는 계단만 통과하면 천왕봉 정상이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아득해 보인다.

예상보다 많이 늦어져 점심시간도 꽤 지체가 되었다.

중간 중간 열량을 보충했기 때문에 3년반만에 오르는 산인데도 잘 올라왔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주 급한 경사로에 설치한 계단을 타고 천천히 천천히 천왕봉을 향해 올라갔다.

음, 생각해보니 나이가 드니까 고소공포증 같은 것도 둔감해 지는 것 같다.



중산리 안내소에서 무려 5시간만에 정상에 올라왔다.

이제 한반도 대륙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온 셈.



인증 사진을 몇장 찍고 장터목 방향으로 내려가는 쪽에 앉아 

김밥, 삶은 달걀, 치즈, 사탕을 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행글라이더 타는 사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시야는 정말 좋은 날씨였다.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은 이런 날씨일까?




생각해보니 짧은 가을 해가 지기 전에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장터목까지 1.7km는 온통 바위로 길을 만들어 놓아서 그런 것인지 원래 바윗길이었는지

무릎, 발목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마치 등대처럼 바위가 우뚝 솟았는데 무릎관절이 염려가 되어

출발 30분만에 다시 쉰다.



이런 길은 두터운 등산화를 신더라도 고통을 참기 어렵다.

차가울 것을 대비해 가져온 옷은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았지만

쇠퇴해진 체력을 더 소진하게 만든다.



오래전 사진으로 보았던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를 통과.

도벌꾼의 탐욕으로 불탄 사진속의 고사목은 30년 넘는 세월동안 많이 사라졌다.



겨우 흔적만 남았고 산림청에서 식생 복원작업을 하느라 심어 놓은 나무들이 다시 자라고 있다.



하산길의 제석봉은 황량하고 힘든 돌길이었지만 좌우에 식생 복원용 나무들 덕에 미래의 희망을 본다.




하산 1시간만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하산 한계시간을 넘긴 시각.

쉴 틈 없이 다시 남은 길을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이 후에는 사진 찍을 시간도 아껴가며 하산을 서둘렀다.

무려 3시간이나 더 지나서 중산리 안내소에 도착했다.


다녀본 산 가운데 이 길을 최악의 등산길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래도 한반도 대륙 남쪽의 최고봉을 다녀 온 것에 의의를 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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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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