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일(토) 귀국 그리고 에필로그


정재웅 박사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역 앞에서 작별을 고했다캐리어를 찾아 스키폴 공항으로 다시 출발했다목이 말라 EAA 행사참가자들에게 준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던 여자 분이 EAA 다녀 오는 거냐고 물어본다그렇다고 했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 본다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고고학자냐고 물어본다고고학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라고 했더니 반갑다고 하면서자기도 EAA 행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세상이 참 좁구나” 싶다.

 

그녀는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도 거기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고 한다고대 로마사가 전공이라고 한다우리는 처음 왔지만 앞으로 계속 올 생각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참가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참 먼 곳에 왔다고 하면서자기는 오늘 집에 들어가는데 당신들은 내일이나 되어야 집에 들어가겠다고 농담을 한다그러고 보니 그러네아빠와 딸이 같이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하며 즐겁게 여행 마치라고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 해링(haring)도 먹어보고, I amsterdam 표지 기념사진도 찍고 면세점에서 기념품도 샀다준기가 네덜란드 치즈를 먹어 보고 싶다고 해서 한 덩어리를 샀다연우는 미피 인형을 샀다.

 

이제 떠날 때가 되니 정신적인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인가주변에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저렇게 도시락을 사서 다녔더라면 좀 더 많은 것을 보면서 더 여유있었겠군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 뒤로 스키폴 공항의 석양이 넘어가고 있었다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우리나라겠구나.

 

연우가 이번 여행에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과 자기 학문에 대한 흥미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시장이 좁아서 고고학 분야 역시 국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세계는 "미국 VS 미국 이외"로 양분 되는 상황인 것 같다. 연우 세대는 더 많이 더 자주 세계로 나갔으면 좋겠다.

 

딸아내년부터는 여기 관심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함께 가보는 것은 어떻겠니

아빠는 이제 체력이 예전과 달라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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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앱으로 탑승권을 발급받았는데,

편리하기는 커녕 보안구역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비행기 탑승할 때도

화면을 다시 불러내느라 몹시 번거롭고 쓸데없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 초창기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스키폴 공항에서 받은 탑승권은 카드결제 영수증처럼 얇은 전사지였다.

거기 인쇄된 QR코드에 흠집이 생길까 신경쓰였다.

이렇게 원가절감을 위해 종이가 점점 얇아지나보다.


결산을 해 보니 총 여행 경비가 5백여만원이 들었다.

이 가운데 교통비(2,856,000)와 숙박비(일부 조식 포함 1,126,000)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조금만 더 일찍 항공권을 끊었더라면 4백만원 정도로 2사람이 10일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발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암스테르담 공항에 착륙할 때는 귀가 몹시 아팠다.

이제 나이가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듯....


스키폴 공항은 해수면보다 4미터 낮은 것으로 나온다.

네덜란드는 고도가 낮은 나라라서 그런지 피로감은 훨씬 덜한 듯.

스카이라인도 매우 낮고.... 담배를 좀 덜 피웠으면 여행하기 더 좋은 나라가 될 듯.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고

관광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라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내년 24차 연례미팅은 바르셀로나에서 9월 4일~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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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스키폴 국제공항

떠날 때가 되니 도착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심리 상태가 큰 차이를 나타낸다.



바로 해링(Haring). 찾아다녀도 볼 수가 없더니 공항에 있었을 줄이야...


해양강국 네덜란드를 만드는데는 대구와 청어가 큰 역할을 했다.

대구와 청어가 없었다면 유럽의 대항해 시대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뭘 먹어야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젓갈류를 즐겨 먹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이 질색 한다는 해링이 아무렇지 않다.

이 나라에 도착했을 때 이 가게를 봤더라면 도시락을 싸서 암스테르담으로 들어갔을텐데...아쉽다.




해링 샌드위치를 주문한 뒤에 해링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 봤다.

인심 좋게 생긴 여직원이 아무 문제 없다며 찍으라고 한다.

그리고 청어를 좀 가리고 있던 안내배너도 치워 주었다.

마치 꽁치통조림 속에서 막 꺼내 놓은 듯 하다.



오이 초절임과 달콤한 양파를 넣어 만든 청어 샌드위치.

유럽의 식도락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도시마다 마을마다 특산물로 만든 이런 독특한 샌드위치를 꼽고 싶다.



예약한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공지를 받았기 때문에 여유가 더 생겼다.

공항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해바라기



면세점에는 이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치즈가게가 있다.

준기가 꼭 사오라고 해서 한 덩어리만 샀다. 5덩어리 4덩어리 세트도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후회 했다. 치즈가 정말 맛있었다.


참고로 포장된 치즈를 사 오는 것은 통관에 문제가 없지만, 

체험학습장에서 만든 치즈 같은 경우는 통관이 안된다고 한다.



여기도 네엔제 캐릭터 인형이 넘쳐난다.

여기서도 몇 개를 샀다.

공부하러 간 것이냐? 인형을 사러 간 것이냐?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수화물을 싣고 있다.

해발 -4m인 스키폴 공항에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Posted by 연우아빠.

92() 맑음

 

오늘은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어제와 완벽하게 똑 같은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에서 중앙역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18분 버스타면 13분으로 나온다. 1.4km. 숙소에서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비슷하게 나올 것 같다.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았으므로 걸어가기로 했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시내는 조용했다. Wilhelminabrug 다리를 건너다가 멋진 배경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사진 찍어 주시겠다고 하시며 부녀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서양 사람들은 배경을 넣지 않고 사람의 전신을 찍는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스트리히트 역에서 스키폴 공항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위트레흐트에서 환승하는 것인데, 혹시나 싶어서 물어 봤더니 이 표를 가지고 위트레흐트에서 내려 몇시간 머물다가 가더라도 아무 문제없다는 설명. 기계에 찍고 기차를 타고 찍고 내려서 기차역 게이트에도 찍고 드나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괜찮은 시스템이다. 지정된 열차가 아니라 표만 가지고 있으면 동급의 기차를 아무거나 타도된다는 점은.

 

청명한 하늘에 지평선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높이높이 올라 온다. 아주 높은 하늘에 새털구름, 중간 쯤에 수평형 구름, 그리고 지표에서 중간 쯤까지 올라가는 수직형 뭉게구름,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이다.

 

마스트리히트 출발하기 전에 페이스북 포스팅을 했더니, 위트레흐트에서 유학중인 페친 정재웅 박사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위트레흐트에 가게 되면 정 박사님께 점심 한 번 대접하고 싶었는데 정 박사는 점심은 사양했다. 대신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차나 한잔 하기로 했다.

 

기차역에 내려 코인라커를 찾았는데 넓고 넓은 현대적 역사에는 코인라커가 보이지 않았다. 인포메이션에 가서 물었더니 2층으로 올라가란다. 비행기 시간 맞추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려는 생각이 앞서 서둘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찾지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올라갔다. 기차표를 태그 하니 출입문이 열렸다.

 

코인라커 사용법을 몰라 한국 블로그를 검색했는데 역시나 여긴 한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 곳 같다. 나오는 것이 없다. 한참을 궁리하다가 방법을 연우가 깨달았다. 먼저 짐을 넣고 코인라커를 밀어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난 다음 카드를 꽂아 결제를 한다. 이곳 역시 핀 번호는 6자리. 네덜란드에서 쓰지 않았던 카드를 꺼내 비밀번호 네자리와 00을 입력하니 작동이 된다. 그리고 바코드가 찍힌 종이가 나왔다. 나중에 이 종이에 인쇄된 바코드를 출력 구멍에 갔다 대면 빨간 불빛이 나와 인식을 하고 코인라커 문이 열리는 구조. 24인치 캐리어 하나에 6유로. 꽤 비싸다.

 

무거운 캐리어를 넣고 나니 날아갈 듯 가볍다. 운하를 따라 미피 박물관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비슷한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600m 뜸 되어서 풍경 구경하면서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상쾌한 공기와 멋진 하늘, 그리고 운하. 이국적인 풍경이 걷기에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운하 근처 식당은 아무 곳이나 다 괜찮다는 정 박사님의 조언이 있어서 박물관 근처에서 본 파스타 집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간 집이었지만 꽤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었다. 홍합, , 바지락이 들어간 파스타와 샐러드에 가성비도 매우 좋은 음식이었다.

 

미피 박물관 맞은 편 위트레흐트 센트럴 박물관에서 표를 판다. 1인당 4유로. 온 세상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미피 박물관에는 네덜란드 사람을 비롯해 특히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동양인 대부분은 일본인 같다. 거대한 미피 조형물이 박물관 앞에 서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아이들이 달려와서 미피 조형물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다. 미피 박물관 안에는 미피를 창조한 딕 브루너의 아동용 책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 애들이 보고 자란 한글판도 있었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좋겠다. 딕 브루너가 있어서

 

박물관을 보고 나오는데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다. 출발시각이 1시간 연기됐다는 통지였다. 갑자기 여유가 더 생겼다. 정 박사님께 연락을 하고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느긋하게 운하길을 따라 수 백년은 된 듯한 가로수를 감상하며 중앙역으로 돌아 왔다.

 

정 박사님은 미피 신호등과 미피 기념동상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내심 그걸 못 보고 갈까 걱정했던 연우가 너무 좋아 한다. 정 박사님이 딕 브루너가 올해 2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시내에 있는 미피 동상에 꽃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고.

 

주말이라 역 광장에는 장이 섰다. 붉은 신호만 찍고 동상으로 가려고 했더니 정 박사님은 초록 신호등도 찍으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아온다고. 신호등에서 얼마 걷지 않은 곳에 미피 석상이 서 있었다. 사람들이 꾸며 놓은 듯 안경을 쓴 아저씨. 그리고 뒷면은 여자 미피로 만들어 놓았다.

 

마스트리히트 유스호스텔을 나와 시내버스 타러 가는 길

공원 남쪽 끝에 있는 피에르 켐프 석상.

이 곳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세익스피어"라는 칭송을 듣는 작가라고 한다.



구글맵핑으로 확인해 보니 중앙역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과 걸어가는 시간을 비교해 보니

걸어가는 시간이 1~2분 짧게 나온다. 어차피 오늘 시간도 많은데 그냥 걸어가자고 최단 코스를 선택해 걷는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한 마스트리히트.

중앙역은 큰 공사를 하고 있는 중




마스트리히트에서 스키폴 공항을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학생 할인이 된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다.

유럽 여행에서 기차 여행은 언제나 가장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위트레흐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맡기려고 코인라커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개찰구 앞 인포메이션에 물어 보니 저 오른쪽 2층으로 올라가면 끝에 있다고 한다.



캐리어와 배낭을 몽땅 코인라커에 넣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중앙역을 나와 구글신이 알려주는대로 미피박물관을 찾아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위트레흐트는 지도를 보면 네덜란드 국토의 가운데 쯤에 있어서 교통의 요지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국제열차는 위트레흐트를 지나간다고 한다.



이곳에 유명한 위트레흐트 대학이 있고, 페친 정재웅 박사가 유학 중이다.

그제 비가 온 뒤로는 세상에 다시 없는 멋진 날씨가 계속 이어진다.



높은 건물도 없고, 아기자기한 색감과 모양을 한 골목길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는 게 멋진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풍경이다.

이 곳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태도는 마스트리히트처럼 온화하기 그지 없다.

대체로 암스테르담을 제외한 도시들은 다 여유로운 듯하다.

물론 암스테르담은 서울이나 우리나라 도시에 비하면 천국이고...



목적지를 400m 정도 남겨 놓고 음식점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정 박사님이 운하 주변 식당은 다 괜찮은 편이라고 알려줘서 운하 주변을 찾았다.


연우가 좋아하는 파스타...12유로. 

홍합을 비롯한 여러가지 조개류를 넣어 만든 파스타는 맛도 좋았다.

다만 이 나라 사람들은 해감을 우리보다 조금 덜 하는 듯, 가끔씩 모래가 덜 빠진 조개가 있다.




점심을 마치고 연우가 좋아라 하는 미피박물관으로 "가자!"



미피박물관 골목길

왼쪽에 미피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이 위트레흐트 중앙박물관이다.



골목 끝에서도 보이는 미피 인형

여길 찾는 아이들이 멀리서 쏜살같이 달려와 미피 조형물에 매달린다.

한참을 기다려 아무도 없는 조형물 사진을 찍었다.



미피상 옆에 자그마한 박물관 입구가 있다.

표는 어디에서???




골목길 건너 편에 위트레흐트 중앙박물관에서 표를 사야한다.

중앙박물관 기념품 가게는 미피 캐릭터 제품이 한가득이다.



표를 사서 다시 입장



난 미피가 아니라고. 난 네엔제(Nijntje)라고...




미피 박물관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오는 지 일본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네엔제의 창조자 딕 브루너의 동화책이 있다.

딕 브루너가 누군가 했더니 이 책을 만든 사람이었군.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바로 그 책.

 


우리도 아이들 어렸을 때 이렇게 체험학습을 하며 엄청 많은 곳을 다녔었지...하는 생각이 난다.

아이들 정면을 안찍으려고 타이밍에 신경을 썼는데, 한 분이 하필 이쪽을 보고 계시네.



천정에 매달린 브루너의 작품들



아이들 키울 때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들



아프거나 귀찮으면 누워서 따뜻하게 있는게 최고야.






유럽인들에게 감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정교한 마무리 처리다.




아이들 사물함이 너무 깜찍하다.

역시 한명 한명 소중한 아이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며 커야 한다.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남을 사랑할 줄 아니까.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된 안내문. 어렸을 때 데리고 왔으면 더 좋았겠지?

어른이 와서 봐도 좋구나.



마스트리히트에서는 파란색이었던 시내버스. 여기는 노란색이다.

모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라서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탈 수 있다.

일부러라도 한 번 타보고 싶구나.



정 박사님 만날 겸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 오는 길




백년은 넘은 듯한 나무. 마치 해리포터 영화에 나왔던 그 나무인 듯.

론과 함께 하늘을 나는 차를 타고 호그와트에 도착한 해리 일행이 불시착한 고목처럼 생겼다.




자전거와 사람만 다니는 길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은 그야말로 풍경화



작은 유람선이 운하를 천천히 미끄러져 간다.



도시의 건물 높이, 배치, 색깔, 조경 모두 조화롭다.

편안하고 깔끔한 도시를 만들면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도 좋지 않을까?




바닥에 글씨가 새겨진 보도블록



방향 표시인 듯



자전거 우선인 네덜란드의 자전거 신호등



나무 보다 높은 키를 가진 건물이 거의 없다.



거대한 나무는 도시의 안정적 성장을 상징하는 지표가 아닐까?

문득 3~4년전 우리 동네에서 인도를 넓힌다고 20년이 넘게 자란 나무들을 몽땅 없애버린 일이 생각났다.




한국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정 박사를 위트레흐트에서 만났다.

정 박사는 우리를 위해 네엔제 신호등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초록신호등도 찍으셔야죠. ^^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한 딕 브루너는 2017년 2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수많은 팬들이 몰려와 여기에 꽃을 놓고 갔다고...



네엔제 뒷편에는 야누스 상처럼 이렇게 여성형이 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정 박사님과 헤어져 다시 위트레흐트 역으로 돌아왔다.

라커에서 캐리어를 찾고 내려가려다 네덜란드의 상징 나막신 조형물을 발견했다.

Posted by 연우아빠.

91() 오전에 비 오다가 낮에 갬

 

어젯밤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창 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다른 유럽 사람들처럼 비가 오건 말건 꿋꿋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한다. 캠핑용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버스를 타러 나섰다.

 

오전 세션을 마치고 구내에 임시로 만든 카페테리아로 갔다. 이탈리아 계로 보이는 여자분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제 오늘 자기가 들어간 세션에서 계속 우리 부녀를 봤노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고고학자냐고 물어본다. 딸은 유물보존과학과를 다니고 있고, 나는 아마추어 애호가일 뿐이라고 했더니 놀랍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네.

 

우리 세션이 좀 일찍 끝난 편이라 어제와는 달리 카페테리아에 여유가 있었다. 어제와 다른 다른 샌드위치로 주문해서 먹었다. 7.5유로짜리 샌드위치 하나가 보통 한국에서 먹던 것의 2배 이상으로 크다.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포스터를 보고 있다가 어디서 많이 본 서양 여자를 만났다. 이번에도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분이다. 연우가 7월에 다녀온 시베리아 극지연구소의 연구원인 나탈리아(Natalya Ryabogina).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시장에서 한국인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 셋을 보았다. “저 분이 친구가 말한 그 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물어보진 않았다. 오후 세션은 도심개발과 문화재 보전에 관한 주제를 들으려고 했는데, 정작 시작하고 보니 핀란드와 북유럽의 중세 철기문화에 관한 세션이었다. 중간에 나갈 수가 없어서 논문 3편과 토론까지 참관하고 커피 브레이크 때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갖고 있던 시간표는 5월에 게시된 시간표였고 7월달에 수정이 된 것을 몰랐던 것이다. 들으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북유럽의 철기문화에 대해 처음 들어본 세션이라 나름 재미는 있었다.

 

커피 브레이크가 끝나고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식곤증과 함께 졸음이 쏟아졌다. 딸래미도 좀 힘든 것 같았다. 하긴 영어로 진행된 발표를 이틀간 15편 정도 긴장하며 집중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다른 참석자들도 슬슬 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분위기. 먼길을 왔는지 담배 피우러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많아지고, 오후 세션 진행 중인데도 어제에 비해 세션룸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우리는 분위기를 보러 온 것이라 오후 4시쯤 강건너 중심가로 나왔다. 시청 광장에서 18~9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이 도시 출신인 요하네스 페트러스 민켈러스의 동상을 발견했다. 동상은 영원한 불타는 불꽃을 들고 있다.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줄 화장품을 고르러 쇼핑센터에 갔다. 색조 화장품은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줘도 의미가 없는 것이 고유번호를 모르면 스크린마다 색깔이 다르게 보여서 고를 수가 없다. 대충 번호를 확정하고 제품은 나중에 스키폴 공항 면세점에 가서 사기로 정했다. 거리에서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시인인 피에르 켐프(Pierre Kemp)의 작은 석상을 발견했다. 그 역시 이 도시 출신이라고 한다.

 

특별히 먹을 만한 음식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시 Tokyoto에 갔다. 식당 주인이 아는체를 한다. 그저께 우리에게 자기집 주문 시스템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기억 때문이 모양이다. 오늘은 17가지를 골라서 먹었는데, 이 집은 소스가 내 입맛에는 짠 편이라 조금 아쉬웠다.

 

딱히 더 볼만한 것이 떠오르는 도시가 아니라 골목골목 걸어다니며, 이 지역의 유명한 아이스크림 체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러나 역시 이탈리아 젤라또만한 것이 없는 듯 하다. 고색창연한 프로테스탄트 교회 앞에 내부를 아이스크림 가게로 꾸민 것이 독특해서 가게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내일은 논문 발표가 없기 때문에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위트레흐트를 둘러보고 공항으로 갈 계획이라 짐을 정리했다

연우는 내일 미피(Miffy, 원명 Nijntje 니엔제) 박물관을 볼 생각에 흐뭇한 모양이다.


여행자에게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한 초가을 풍경

비 내리고 난 뒤 마스트리히트의 기온은 10도 가까이 떨어졌다.




하늘은 한국보다 더 없이 깨끗했는데, 비가 오고 나니 더욱더 티끌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이 되었다.



토기의 발전 상태를 보여주는 우리 세션...별로 인기없는 주제인지 10여명 남짓 듣고 있다.

노 대륙답게 학자들 역시 좀 느긋하고 느슨한 듯한 느낌



커피 브레이크 때마다 포스터를 보고 있는데, 하나 하나 많은 학자들의 땀이 스며든 작품들이다.

대개의 학문이 그러하지만 고고학과 역사학은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편 생활양식을 추적하는 과정인 듯 하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느슨해진 듯한 분위기이다.

이 행사는 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고고학 컨설턴트 회사가 관리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고고학과 연관된 학문적 성과를 알리고, 사업화하고 자신들의 연구주제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유럽 각지에서 고고학과 관련된 행사를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같은 유럽이지만 이동 거리는 역시 만만치 않은 장거리 여행일 것이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사람들의 느긋함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발표가 끝난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 한 듯...



전시장 풍경


전시장 풍경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에 점점이 구름이 떠 가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가끔씩 입구에 나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발표를 마친 사람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일행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EAA2017 총회 모습을 주최측 페이스북에서 가져 왔다.

유럽의 면적은 중국과 비슷한데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오후 세션을 듣던 중간에 너무 졸려서 커피 브레이크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뫼즈 강을 거너 서쪽 시가지로 넘어왔다.



시내 관광객을 태우고 도는 투어용 전기자동차



오래된 성당(성모마리아 성당 Basillica of Our Lady) 한 귀투이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천천히 시내를 걷는다.

마치 동네 한바퀴 도는 것 같이...



금방 강변으로 나왔다.

지름이 2km 남짓한 시가지.

수백년 전에 만든 다리와 현대 기술로 만든 다리가 뫼즈 강을 넘나든다.



강변에는 1659년에 세운 교회 건물이 있다.



골목이 있는 도시는 늘 평온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차가 없으니 걷기에도 너무 좋다.



누군가 세워 놓은 나무 자전거.



마스트리트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웅장한 교회 건물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에 잔디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오래된 성벽길로 올라왔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던 7년전과 달리 이 도시의 일부인 듯 조용히 천천히 돌아보는

그런 것이 편한 여행이 돼가고 있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나 귀국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좀 더 돌아다닐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언젠가 또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연우아빠.

831() 비 온 뒤에 구름이 끼었다가 갬


어젯밤에 강한 비가 온 탓인지 새벽에 너무 추워서 잠이 깼다

제일 높은 곳에 들창이 있어서 그리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문을 닫고 싶었지만 너무 높았다. 다른 이불로 연우를 더 덮어주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뒤에야 커튼 뒤에 가려진 여닫이 장치를 발견했다. 문을 닫자 자동차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런...

 

기운을 되찾은 연우와 아침을 먹고 학회장소로 출발했다. 정류장까지 10분 가까이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행사장에 갔다. 3정거장. 연우 전공과 가급적 가까운 주제를 선택해 112호실에서 오전 세션으로 논문 5편 발표를 참관했다. 시베리아와 동유럽 지역 중세시대 원주민들의 복식과 헤어스타일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댕기머리 땋는 것과 비슷해서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 우리는 읽기 위주로 외국어를 배웠는지...행사장에서 나의 얕은 영어능력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 학자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국어의 독특한 억양과 발음이 섞인 영어를 구사했다. 말을 잘해도 강의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발표 자료를 그냥 읽는 발표자도 여럿 있었다.

 

오전 세션이 끝나고 발표 포스터를 전시해 놓은 리셉션 장소에서 커다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먹었다. 수백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계단과 바닥에 앉아서, 또는 같이 온 사람들끼리 서서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었다.

 

그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금발의 서양여자가 웃으며 다가온다. “으잉? 누구지,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랬다. 그녀는 지난 7월 연우가 3주간 갔었던 러시아의 극지연구소 시베리아 분소에 있는 연구원 아나스타샤였다. 페이스북에서 자주 봐서 얼굴이 익었던 것.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연구소 사람들과 함께 학회에 논문 발표차 참가 한 것이라고 한다. 반가워 하는 정서가 참 한국사람을 닮았다. 세상 어디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오후 세션은 214호실에서 기후변화가 고고학과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 논문 7편을 참관했다. 3~4개 논문 발표를 마치면 자유토론을 하고 커피 브레이크를 가진 다음 다시 나머지 발표와 토론을 한다. 먼 길을 온 사람들이 많았는지 발표자 중에는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식곤증 때문에 조는 사람도 있었고,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제법 있다. 다들 진지하게 집중했고, 충분히 이해를 못했지만 더 알아들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64개국에서 400편이 넘는 논문을 가지고 참가했고, 전시실에는 포스터가 빽빽하게 붙어 있는데, 학자들 모임이라 그런지 시끌벅적함은 전혀 없다. 서울로 돌아간 친구가 한국인은 서울대학교 교수 1명과 우리 부녀 단 3명만 참가한 것 같다고 메신저로 알려준다. 하긴 2학기 개학인데다 이 먼 곳에 누가 일부러 찾아오겠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저녁 8시에 환영만찬이 있다고 참석하라는 안내멘트가 전해졌다. 4시가 좀 넘어서 우리가 참관한 오후 세션의 발표는 끝났고, 저녁을 먹을 겸 다시 시내로 나왔다.

 

옛날 수도원을 서점으로 개조했다는 Boekhandel Dominicanen을 찾아갔다. 도미니크 교단의 교회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한 큰 건물인데 입구는 아주 조그만 해서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어려울 듯 하다. 3~4층 정도로 개조해 놓은 서점은 유럽의 고민을 재치있게 해결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우리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고대 유적 유물들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좋은 사례였다. 건물 주변은 현대적인 상업 건물이 가득 차 있었다.

 

서점을 나와 마아스트리트 대학을 찾아 걸었다. 1975년에 창설한 역사가 짧은 종합대학인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역사가 오래된 듯 하다. 중세 자유도시나 성곽도시가 중심이 되어 발달된 때문인지 대부분 도시가 지름 2km 내외로 아담했다.

 

구 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 본 뒤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 파스타를 주문해 먹었다. 마치 우리나라 쟁반짜장처럼 널찍한 접시에 담아 놓은 파스타가 세 사람은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이다. 홍합을 넣어서 만든 파스타가 무척 맛있었고, 암스테르담에 비해 가성비가 매우 좋았다.

 

석양으로 물드는 뫼즈강변을 따라 숙소로 들어 갔다. 그런데, 우리 방에는 처음 보는 여성이 짐을 풀고 책을 보고 있다가 우릴 보고 인사를 한다. “으잉? 이건 무슨 일이지?” 나는 예약 시트를 들고 프론트에 가서 따졌다. 2인실 프라이빗 룸을 예약했는데 저기 들어온 사람은 누구인가? 체크인할 때 있었던 매니저는 자리에 없고 데스크를 지키던 다른 직원이 예약 내용을 전산확인해 보더니 우리 방으로 왔다. 예약의 착오가 있어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한 뒤, 그 분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안내해 갔다. “영어만 유창했어도 심하게 따졌을 텐데. 분명 2인실 프라이빗 룸을 예약했는데, 어제 체크인 할 때 매니저가 아무 문제없다며, 당신들 방에는 다른 사람 숙박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니...”

 

한바탕 해프닝이 있은 뒤에 커튼을 걷으니 우리 방 바깥에 누군가 자전거를 주차해 둔 것이 보였다. 자전거 바구니와 핸들이 온통 꽃장식이다. 커튼을 열어 놓고 있었는데 여자 분이 오더니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장난스런 몸짓과 웃음으로 관심을 끈다. 우리도 짐짓 장난스런 표정과 행동으로 응답을 하자 자전거를 잠시 세워둬서 미안하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답을 해 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참 우울한 구석이 없어서 좋다.


TV가 없어서 그런지 저녁 시간이 무척 긴 느낌이다.

어제 비가 온 뒤로 신기하게도 완전히 가을 날씨로 바뀌었다.


행사장인 MECC Forum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와 걸어가는 길.

하룻밤 사이에 기온이 완전히 가을로 돌아섰고, 거리에는 조금씩 낙엽이 굴러 다닌다.



숙소에서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거기서 3정류장을 가는 버스는 7분

숙소에서 행사장까지 바로 걸어가면 20분...참 애매한 위치라 자전거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긴 암스테르담과 달리 대부분 사람들이 정말 점잖고 조용하게 자전거를 탄다.



행사장에는 각 세션별로 논문발표가 진행 중이었다.

1층은 외벽이 유리인지라 밖에서 방해하지 않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2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부터 60여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큰 방까지 공간크기가 다양했다.




미리 점찍어 둔 세션을 찾아 걸어가면서 분위기를 간직하기 위해 유리문 밖에서 촬영을 했다.

우리나라 휴대폰에 요란한 촬영음은 좀 없애야 한다. 외국에 나가면 정말 창피하고 민폐다.

범죄자 하나를 잡기 위해서 우리나라 모든 사람에게 이런 족쇄를 채우는 것은 지나친 오버라고 생각한다.

라이브 사진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나와 달리 딸래미 휴대폰은 라이브 사진 기능이 없어서

기억과 기록에 필요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우리가 참관하는 세션에서 논문 4편 발표가 끝나고 토론시간을 갖은 뒤 20분간 커피 브레이크 시간.

전시장으로 나와 둘러 보았다. 고고학과 관련된 산업이 출판, 기념품 이런 것 말고도 꽤 여러가지가 있었다.

전시장 바깥 마당에는 트럭을 개조한 VR 체험장도 있었고, 출

출판, 전시, 컨설팅, 박물관, 연관기술산업 분야 등 다양한 분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세션도 비슷하게 커피 브레이크 시간이 겹친다.

1개 논문당 15~20분으로 발표시간을 관리하고, 5~7개 논문으로 구성하며

토론 시간도 일정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서 학문도 표준화된 산업 같은 느낌을 준다.




참가한 회원들에게는 음료수, 커피 등을 제공해주고 간단한 과자 같은 것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두었다.

물론 다리 힘이 좋은(?) 사람들이라 거의 대부분 서서 해결한다.

의자에 앉아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다리 길이는 특별히 더 긴 것같은 느낌을 준다.



다시 시작한 세션에 들어갔다.

우리 세션의 진행자인 줄 알았던 분이 다섯번째 발표자였다.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가이드라인에 적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시작할 때 여러 사람들이 찍길래 나도 한장 찍었다.

참석자들은 이름표(Name Tag)를 목에 걸고 있는데 발견한 것은 모두 3종류다.

나처럼 희고 굵은 끈, 붉고 굵은 끈, 그리고 붉고 가는 끈...그 차이를 모르겠다.



전시장 안에는 간이 카페티리아가 2개 있다.

주최측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커다른 샌드위치 1개와 음료수 세트를 7.5유로에 팔았다.

유럽이 전투적이라고 느끼는 대목이 바로 이런 형태의 식사시간.


샌드위치를 들고 빈 자리를 찾아 가면서 전시장에 게시된 포스터를 둘러 보았다.

이 행사를 가보라고 추천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런 포스터 하나에도 연구비가 2~3천만원 들어간다고 한다.



포스터는 EAA에서 정해놓은 규격이 있고,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평가를 받는다.

여기 걸어 놓은 포스터는 학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있는 연구실적이라는 얘기.

학생들의 경우에는 별로도 발표 경연대회를 하고 거기에서 1등을 하면 1,000유로를 상금으로 받는다.

그리고 정식으로 세션에서 발표할 기회를 준다.

학문의 세계에도 레벨이 있다.




고고학은 물론 세상 어떤 학문도 혼자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지리학, 기상학, 문헌학, 의학 .... 인간이 살았던 흔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데는 관련학문의 협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고 있다.

구석에 빈 공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그들을 바라 보았다.




전시장에는 일본에서 설치한 부스도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그나마 일본이 대접 받는 수준일까?

하긴 지리적으로 먼 유럽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하지만 인간의 삶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겉모습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문의 교류가 필요한 것이고....




이 넓은 전시장에 학자들이 가득 가득 하다.




폴란드 엘블라그(Elblag) 지역의 중세 칼 장식에 관한 포스터

이런 칼 장식도 지역별로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건 영화 산업에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토기를 다룬 포스터



1시간 45분간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니 아침에 내리던 비는 깨끗이 그쳤고, 한국의 가을하늘이 생각날만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오른쪽에 보이는 트럭은 VR체험관. 그리고 붉은 건물은 호텔이다.

담배 피우는 것이 좀 자유로운 것이 비흡연자인 나에겐 아주 흠이었다.

멋진 풍경에 고약한 담배냄새는 좀.....




오후 세션으로 논문 발표 5편이 더 있었다.

오후 세션이 끝나고 나서 시내버스를 타고 뫼즈 강을 넘어 도시 서쪽으로 넘어 왔다.




넓은 광장에 웅장한 시청건물.

차가 다니는 공간과 사람이 다니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정신적으로 매우 쾌적하다.




시청광장 북쪽에 있는 요하네스 민켈러스(Johannes Petrus Minckelers)

18~19세기의 위대한 네덜란드 화학자. 그의 동상은 "영원의 불"을 들고 있다.



옛날 수도원을 서점으로 개조했다는 Boekhandel Dominicanen.

입구가 작은 철문으로 되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인구 12만에 불과한 마스트리히트 중심가에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나라는 책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하는 나라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초판 1쇄는 5,000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줄고 줄어 이제는 800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마저도 다 팔지 못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아무리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깊이 있는 지식과 생각은 한권으로 만든 단행본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발달하는 시기에 대학입시에 몰입하며 책을 잃지 않는 문화는

결국 세월이 갈수록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를 만들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

올해 들어 <1주 1책>을 하고 있는데, 37주가 지난 지금까지 29권 밖에 읽지 못했다.


야근을 줄이면 업무효율이 높아지고, 가족을 돌 볼 시간이 늘어나고, 책을 읽을 시간도 늘어난다.

그런 사회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인구 12만인 마스트리히트에 4층 높이의 오프라인 성당 서점이라니...부럽다.




마스트리히트 대학을 찾아 가는 길에 있는 성 세리바티우스 성당(Basiliek van Sint Servaas)




길에 무지개 무늬 페인팅이 인상적이다.




성당 주변 광장에는 한가한 오후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조용한 나라다.



골목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마스트리트 대학이 있다.

1975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유럽에 이렇게 젊은 대학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찾아가 본 것이다.



대학 구내를 관통해 걷다보면 이렇게 생긴 후문으로 나온다.

마스트리트 대학은 유럽의 대학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우리처럼 캠퍼스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스트리트 대학교 앞 거리 모습

가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보일 뿐 학교 앞이 정말 조용했다.



4~5살쯤 된 어린아이도 두발 자전거를 야무지게 잘 탄다.

사진으로 찍은 건 이것 뿐인 것 같은데, 아이들을 정말 독립적으로 강하게 키우는 것 같다.



짙은 구름 아래 서 있는 석조건물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태리 식당에 와서 홍합이 들어간 파스타요리를 시켰다.

2인분씩 주문받는 음식인데 맛도 엄청 좋았지만 양이 많아서 최선을 다했지만 1/3 정도 남기고 말았다.




성당 옆에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조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숙소로 걸어갔다. 

뫼즈 강을 건너 도시의 동서를 잊는 다리는 모두 3개가 있는데 이 다리는 자전거를 싣고 올라갈 수 있게 엘리베이터가 있다.



왼쪽부터 공원, 자전거도로, 차도, 그리고 강변이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뭐든 건강한 상태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뫼즈 강변을 끼고 남쪽으로 강변 길이 있다. 어디를 걷건 정말 상쾌한 도시다.



우리가 묵고 있는 스테이오케이 마스트리트 유스호스텔(Stayokay Maastricht).

공식유스호스텔 답게 정말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네덜란드 자전거는 투박하게 생겼지만 주인의 취향에 따라 이렇게 장식을 한 자전거도 있다.

달리는 자전거를 찍을 수가 없어서 눈으로만 봤었는데, 누군가 우리 숙소 옆 공터에 이렇게 세워 놓아길래

사진을 찍었다. 1시간쯤 뒤에 나타난 자전거 주인은 3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장난기가 가득했다.


Posted by 연우아빠.

8월30일(수) 브뤼셀은 비온 뒤 맑음 > 마스트리히트 맑음


오늘은 드디어 EAA2017의 도시 마스트리히트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시원한 빗줄기가 비로서 다니기에 편안한 온도를 만들어 주었다. 브뤼셀에 언제 다시 올까? 싶은 마음이 든다. 아침식사 비용 3인분을 치르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어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우비는 쓰지 않아도 됐다.


평일날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도시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했다. 마스트리히트 가는 표는 어른(19.8유로)과 학생(7.9유로)이 큰 차이가 났다. 접이식 브롬슨 자전거를 가지고 기차를 타는 회사원들이 제법 여럿 보인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소개했던 리에주 시내를 지나 교외에 있는 리에주 역에 도착했다. 나가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리에주는 아름다웠다. 우리가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면,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리에주에 도착할 무렵 같은 칸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환승하는 것을 물어봤었는데, 여자 분은 이 기차가 마스트리히트까지 간다고 알려주었지만, 리에주에서 기차를 타는 남자 분은 바로 내려서 다른 플랫폼에서 환승해야 한다고 큰 소리로 알려 주었다. 황급히 내려 환승 플랫폼을 찾아 갔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여기도 누구에게 물어보냐에 따라 정보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세상은 비슷한 것이 진리. 그러고 보니 구글맵이 환승정보도 정확하게 알려준 것이었는데 처음이라 읽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구글맵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환승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는 겉모습이 아주 지저분했다. 지난 15년간 많은 유럽국가를 여행하며 기차를 타 봤지만 이렇게 지저분한 모습은 처음이다. 30분도 안돼 마아스트리히트 역에 도착했다. 역 앞은 몽땅 공사 중. 구글맵을 검색해보니 걸어가는 시간이나 시내버스 타고 가는 시간이나 소요시간이 비슷하게 나온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보기로 했다. 뫼즈 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시가지, 서쪽은 구시가지인 듯하다.


올해는 유럽연합 탄생의 핵심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 25주년이자 유럽고고학회 탄생을 견인한 발레타 조약 체결 25주년이다. 그래서 마스트리히트에서 유럽고고학회를 개최하였고, 대회 슬로건도 ‘Building Bridge(가교 건설)’이다. 대회 슬로건의 상징인 Wilhelminabrug를 건너 수백년 된 나무가 줄지어 선 Stads park를 지나 예약한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뫼즈 강에 바로 붙어 있는 그림 같은 호스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유쾌한 메니저가 우리를 반겨 주고 입실을 허락해 주었다. 캐리어를 내려 놓고 행사장인 MECC Forum을 찾아 걸어갔다. 여긴 암스테르담과 달리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아주 점잖다. 자전거 생각이 굴뚝 같다. 시내버스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거의 똑같이 나와서 걸어갔지만 연우가 좀 힘든 듯하다.


친절한 데스크의 안내를 받아 등록확인을 마치고 책자와 명찰을 받았다. 포럼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중심가에 나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24시간 이용권이 1인당 6유로. Tokyoto라는 스시 뷔페 체인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들어갔다. 주인은 중국인인데, 우리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던 모양이다. 독특한 메뉴 선택법과 계산법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1인당 1번에 5개씩 총 5번을 시킬 수 있고, 점심은 오후 4시까지 요금이 적용된다고 한다. 18.5유로. 오후 4시가 지나면 23.5유로로 올라가고 메뉴도 저녁 선택메뉴가 추가된다. 네덜란드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스시 뷔페라니..네덜란드는 고유한 대표 음식이 없는 대신 그리스,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등 다양한 식당이 있어서 골라먹는 재미는 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식당이 많지 않고 한 군데 몰려 있는데다 맥주를 끼워서 파는 세트메뉴가 대부분이라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매끼 메뉴선택 때마다 고역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7시부터 EAA 개막식을 한다고 하는데 평소보다 많이 걸었던 연우가 힘들다고 가기 싫다고 한다. “그래, 푹 쉬자!”


7시가 넘은 시각, 유스호스텔에 미리 예약해 둔 저녁을 먹으로 뫼즈강이 보이는 카페테리아로 나갔다. 에피타이저만 먹고도 배가 부른데, 1인당 각각 피자 한판씩이 추가로 나왔다. 두 조각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카페테리아 매니저가 맛이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먹을 수가 없다고 하자 웃으면서 식탁을 걷어 갔다.


한여름 장마비처럼 폭포 같은 비가 쏟아졌다. 비가 내려 시원해진 기온은 모처럼 맘 편한 여유를 선물했다. 비 내리는 강변의 테라스는 평화로웠다.


브뤼셀 중앙역..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내린 비 때문에 모처럼 시원한 날씨였다.



기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브뤼셀은 왠지 시골 같은 고요한 느낌을 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리에주.

기차를 타고 가느라 숲에 가려 리에주의 그림 같은 경치는 눈에만 담았지만,

환승역인 리에주 역에서 본 풍경은 현대와 중세가 잘 조화된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를 마스트리히트로 태우고 갈 기차는 지금까지 유럽에서 본 최악의 외관이었다.

유럽도 우리랑 비슷하게 닮아가는 듯...



리에주를 떠난 지 20여분 쯤 지났을까? 우리는 마스트리히트에 도착했다.

벨기에,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 마스트리히트.

인구 12만의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였다.


시내를 관통하는 뫼즈(뮤즈)강.

유럽의 도시를 관통하는 강 중에는 제법 큰 편에 속한다.



평화롭고 한산한 풍경이 여행자의 지친 마음을 아늑하게 품어준다.



숙소인 마스트리히트 유스호스텔은 이렇게 멋진 공원을 끼고 뫼즈 강변에 있다.

걸어서 가느라 땀이 좀 나긴 했지만 가을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는 공원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2인실 프라이빗 룸을 예약했었는데, 5인실을 쓰라고 준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이 세개 나라는 공식유스호스텔의 수준이 늘 만족스럽다.



니엔제(일명 미피)의 나라답게 곳곳에 미피 캐릭터가 넘친다.



유스호스텔에 짐을 맡겨 놓고 유럽고고학회 2017년 행사장을 찾아 참가자 등록을 마쳤다.



등록을 마치고 행사장 바로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건너왔다.



강변을 따라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리스 국기가 있는 저 식당은 맛집으로 소개된 음식점 가운데 하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와 길을 걷다가 발견한 간판.

맥주를 너무나 좋아하는 네덜란드 사람다운 발상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점심이건 저녁이건 모든 메뉴+맥주가 기본 옵션인 듯 하다.



구 시가지를 설렁설렁 산책했다.

7년전 온 가족이 함께 배낭여행을 할 때는 한 가지라도 더 보고 보여주려고 분주히 다녔는데,

이렇게 빈둥거리며 돌아 다니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있다.



시내 노천까페는 나무에 둘러 쌓여있어 쾌적하다.

그들은 늘 맥주 한잔과 간단한 음식을 앞에 놓고 여유 있는 하루를 즐기고 있다.



마스트리히트는 룀버그 주의 주도. 붉은 별은 룀버그 주의 상징이다.



우리가 묵는 호스텔을 둘러싼 커다란 공원에는 수백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과 옛 성이 남아 있다.


유스호스텔 앞 뫼즈 강변은 고요하고 심심한 풍경을 선사한다.

멍 때리기 좋은 풍경



오후 5시쯤 비가 쏟아졌다.

마치 여우비처럼 하늘은 파란데 비가 내린다.

우리가 배정 받은 방은 0층으로 창 밖 풍경이 이렇다.

공원과 큰 나무들이 많아서 공기가 정말 좋다.



EAA에서 개최하는 개막행사는 강을 다시 건너가기가 귀찮아 생략하고 유스호스텔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유스호스텔 카페테리아 모습



먼저 스프와 빵, 그리고 향긋한 치즈가 나왔다.

이것만 먹었는데도 배가 불러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친절한 웨이터가 와서 "배가 많이 부르죠? 다음 식사는 천천히 하실까요?" 하고 묻는다.

"우리 때문에 퇴근 못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한 시간 쯤 뒤에 미리 예약을 해 둔 피자가 나왔다.

작은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한국에서 3명 정도가 먹을 크기.



그것도 한 판이 아니라 두 판....평소 같으면 혼자서라도 다 먹겠는데 점심도 늦은데다가 이미 푸짐하게 먹은터라

맛있는 피자를 앞에 놓고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놀멍 쉬멍 비오는 뫼즈강변을 바라보며 바깥 바람을 쐬러 들락날락 하면서 피자를 먹었다. 



게다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한 개씩 안겨준다.




2~3시간 가까이 천천히 천천히 먹었지만 피자는 각각 1/3 정도도 못먹고 포기했다.

세찬 비가 내린 뒤 구름이 몰려오자 갑자기 강변이 컴컴해졌다.

유스호스텔 발코니에 전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연우아빠.

829() 맑음, 한밤중에 비

 

새벽에 연우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토했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참 걱정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그랑플라스와 중앙역에서 가까워서 위치는 좋은데, 옛날 집이라 그런지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것 같다. 중동 사람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새벽에 시끄럽게 와글와글한다. “벨기에도 허술한 구석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우에게 지압을 좀 해 주고 다시 재웠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은 딸을 보니 앞으로 남은 여정이 좀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난 연우는 그냥 굶는 게 좋겠다고 식사를 하지 않고 자겠다고 한다. 혼자서 아침을 먹고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10시쯤 연우는 스머프박물관과 만화박물관을 꼭 가야 한다고 일어났다. 어이구야!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녀석을 위해 요거트 하나를 먹였다. 의사인 친구가 메신저로 단 것을 먹이는게 체력 유지에 좋다고 초콜릿 같은 것을 사주라고 조언했다. 밖으러 나서니 호텔 보다 시원했다. 그랑플라스를 한 바퀴 돌아보고 600m쯤 떨어진 스머프 박물관에 도착했다. 거대한 스머프 조상이 박물관 앞 마당에 서 있다. 작은 건물 지하에 스머프 박물관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들어가보니 매우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스머프 뿐만 아니라, 탱탱, 아스테릭스 같은 우리가 잘 아는 만화는 물론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만화 주인공까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박물관이다. 물론 어렸을 때 이걸 보고 자란 나 같은 어른도 좋아하는 곳이지만.

 

벨기에 유명 만화는 물론 미국 마블코믹스 작품까지는 으응하고 봤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 최근에 유명한 웹툰작품까지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어서 뜻밖이었다. 태블릿으로 직접 연재물을 볼 수 있게 해 놓은 작품도 있었다. 놀라운 만화의 세계.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두툼한 방명록에 왔다 갔음을 알리는 흔적을 남겨 두었다. 우리도 방명록을 남겼다. 건물 1층에는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귀여운 스머퍼 캐릭터들이 가득한 기념품점이 있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수백개가 넘는 스머프, 아즈라엘, 가가멜 등의 인형과 피규어가 가득차 있었다.

 

돈만 있다면 통째로 갖고 싶구나!”

아쉽지만 몇 개 밖에 살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집에 있는 가족과 메신저를 주고 받으며 어떤 기념품이 갖고 싶은지 상의하고 연우와 준기가 갖고 싶은 캐릭터 인형과 피규어를 사 가지고 박물관을 나왔다.

 

그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만화박물관이 있다. 꽤 더운 길을 1km 쯤 걸어서 만화박물관에 도착했다. 아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물만 마시는 연우를 걱정하며 나만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입구가 작아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두 바퀴를 헛돌고 나서 건물 안에 있는 분에게 물었더니 입구처럼 생기지 않은 곳 - 길 건너편- 이 박물관 입구라고 한다. 2층반으로 만든 건물 안에는 우리가 아는 만화와 모르는 만화가 널려 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참 여유롭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부천 만화박물관과 비슷한 모티브를 가진 전시물도 꽤 있었다. 옛날 교실 같은 전시물은 일본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듯하다. 일본 관람객도 여럿 보인다.

 

브뤼셀에 와서 꼭 보겠다고 하던 두 군데를 답사했으니 일단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연우는 좀 더 자면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침보다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고 한다. 숙소에서 잠든 딸을 보고 있다가 혼자서 브뤼셀에 와서 해야 할 쓸데없는 짓을 하러 나갔다. 오줌싸개 동상과 그 남매인 여자 오줌싸개 동상을 찍고 오는 것.

 

숙소에서 600m쯤 내려가니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와글와글하다. 다들 정말 허무한 동상 앞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햇살이 너무 강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동상 정면에 쏟아진다. 돌아오는 길에 성 니콜라스 성당에 들러 초를 봉헌하고 기도를 올렸다. “연우가 회복해서 이 여행을 재미있게 마칠 수 있게 도와 주세요

 

가게에 들러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 왔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연우가 밥을 먹으러 가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좋을 것 같아 연우는 빠에야를 시키고, 나는 홍합찜을 시켰다. 마요네즈 찍어 먹는다는 벨기에 감자튀김이 같이 나왔다. 거의 두 시간에 걸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연우는 이틀만에 저녁을 먹었다. 빠에야 1/3 정도를. 기도의 효험인가?

 

기운을 조금 차린 연우를 데리고 아케이드를 구경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벨기에 초콜릿 가게들을 섭렵하며 눈으로 구경하고 가게에 들어가 몇 개 샀다. 친구들이 초콜릿 사 가지고 오라고 카톡으로 난리라고 한다. 얼마나 한국사람이 많이 오는 지 가게 앞에는 여기 최저 가격이라고 한글로 써 놓은 입간판도 있다.

 

연우 역시 그랑플라스를 거쳐 브뤼셀에서 꼭 확인해야 하는 싱거운 동상들을 확인했다. 그랑플라스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구경하겠다는 연우를 데리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그랑플라스에 다시 돌아왔다. 시청과 주변 건물들이 하나씩 불을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 주었다. 마트에 들러 물과 과자를 사고 유명한 초콜릿을 챙겼다. 초콜릿 가격은 역시 만만치 않다.

 

만화건 초콜릿이건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어야 시장이 생길게 아닌가? 일에만 매달려 미친 듯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여유시간이 생기면 거기에 맞는 산업이 또 생기는 것인데, 왜 밤낮없이 야근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 가슴이 좀 답답해 졌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12시 가까이 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호텔 창문은 비스듬히 열리긴 하는데 방충망이 없다. 늘 열어 놓는 창문 탓인지, 밤새 앵앵거리는 모기를 여러 마리 잡았다.


TV 속에서만 보던 스머프.

그 스머프를 기억하는 스머프 박물관에 드디어 왔다.



스머프 박물관에는 만화왕국 벨기에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박물관



40년이 넘은 오래 전에 봤던 만화들



우리나라에 소개된 만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만화들도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캐릭터들.



중학생 때 처음 보았던 스머프



악당 캐릭터인 가가멜이 없었다면 스머프는 그저 밋밋한 애니메이션이 되었을 지도 ...



3D 영화에서 스머프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들



스머프 동상



스머프 마을



갈리아 원정으로 프랑스 북부 골 지방을 점령한 로마군과 케사르를 괴롭힌

상상속의 이야기로 유명했던 아스테릭스 캐릭터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판한 만화와 만화 주인공을 활용한 체스



땡땡과 그의 친구들..틴틴과 그의 친구들



중국 도자기 속에 들어간 땡땡



놀랍게도 전시관 한 코너에는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도 전시해 두었다.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웹툰도 전시되어 있어서 상당히 놀라웠다.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이 방명록에 서명을 남겼다.

우리도 서명을 남기고 왔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스머프 캐릭터를 파는 가게



솔직히 50살이 훨씬 넘은 나도 스머프 캐릭터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다.



엄선한 스머프 캐릭터 인형과 소형 피규어



스머프 박물관에서 만화박물관을 찾아 가는 길



만화박물관을 알리는 길거리 대형 캐릭터 조형물



저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입구를 찾는 것은 상당히 피곤했다.

두 바퀴를 돈 다음에야 겨우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캐릭터들이 우리를 반긴다.



한국어판 책자도 있고 다양한 캐릭터 할용 상품들도 있다.



2층에는 벨기에의 유명 캐릭터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관람객과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스머프 마을 조형물



아이들이 들어가서 좋아라 하던 스머프의 버섯모양 집




악당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멍청한 악당 가가멜과 스머프들



어쩐지 부천 만화박물관 같은 삘이 진하게 묻어나는 전시물



유명하지만 허무한 명소로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에는 이 허무함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브뤼셀 증권거래소



성 니콜라스 성당



오줌싸개 동상의 남매 버전, 오줌싸개 소녀상. 무슨 이유인지 자물쇠를 채운 창살 속에 갇혀 있다.



벨기에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홍합찜 요리와 벨기에 감자튀김, 그리고 빠에야.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것이 특이하다.




100여년 정도 된 역사를 자랑하는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한 아케이드 진열장



초콜릿 가게에는 이름과 창립연도가 새겨진 표시들이 있다.



그랑플라스 브뤼셀 시립 박물관



노을이 번지는 그랑플라스. 광장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왼쪽에는 브뤼셀 시청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은 이 간판이 보여 준다.

벨기에의 특산 와플을 맛보았다. 정말 달콤한 맛.



그랑플라스에 어둠이 내리면 광장을 둘러 싼 건물은 불빛을 하나둘 켜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광장이 테러와 분쟁의 위협없이 언제나 평화로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남아 있기를...


Posted by 연우아빠.

828() : 암스테르담 > Den Haag > 브뤼셀


어김없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추석 무렵처럼 아주 상쾌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 하늘은 여전히 맑고 어제보다는 2~3도 정도 낮은 기온. 본델파크(Vondelpark)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일찍 출근을 하는 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도 많고 운동하는 사람도 많다. 공원 한 가운데서 공원 이름의 유래가 된 본델(Vondel)의 동상을 발견했다. 연못이 커서 큰 새들도 날아든다.


사흘간 똑 같은 아침을 먹고 유스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남녀 혼숙 도미토리룸이었지만 다행히 조용한 사람들만 들어와서 아늑하게 지낼 수 있었다. 흡연에 대해 너무 관대한 이 나라 관습 때문에 기침이 자주 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출발 전에 병원에서 하룻밤을 잔 때문에 목이 칼칼하더니 건조한 비행기 안에서 더 안 좋아졌고, 차고 건조한 암스테르담의 새벽공기와 담배 연기 때문에 가래가 자주 끓는다. 연우의 말로는 이틀 동안 잠잘 때 내가 계속 코를 골았다고 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경험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낯선 외국 여행은 저절로 긴장도를 높이는 것 같다.

 

Den Haag행 기차는 12.5. 인터시티 급이라 생각보다 아주 쌌다. 그래서인지 학생 할인은 없다. 2~3분 차이로 다음 기차를 타야 했으나 기다리는 동안 30분 뒤에 출발하기로 한 기차는 취소되었다고 전광판에 뜬다. 결국 1분 차이가 1시간이 되어 버렸다.

 

유럽에 왔으니 2층 기차를 타 봐야겠지

초등 6학년 때 짤츠부르크 행 빨간 2층 기차를 탄 기억은 녀석에게 가물가물한 것 같다. 마치 첨 타보는 것처럼 2층으로 가는 연우.

 

기차는 세차를 한 지 오래된 듯 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으나, 내부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닮은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차창 밖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꽃 재배 농가들, 운하들, 해상주택들을 보며 1시간쯤 달려 Den Haag 중앙역에 도착했다

너무나 현대적으로 깔끔한 덴 하그 중앙역. 구글맵을 따라 1km쯤 걸어서 이준열사 기념관에 도착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담에 일본제국의 침략을 막아 줄 것으로 호소하기 위해 고종황제의 조칙을 받아 떠난 사절단. 검사 이준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과 합류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통역을 담당할 이위종(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과 합류한 뒤 Den Haag HS역에 도착해 이 곳에 투숙했다.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절단은 유럽 각국의 언론사와 인터뷰하고 기고를 하여 일본제국의 침략을 알리고 대한제국을 구해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먹힐 리가 없는 상황. 이준 검사는 병을 얻어 이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위종과 이상설은 러시아에 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하다 숨을 거두었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중앙역으로 가지 않고 일부러 헤이그 사절단이 들어온 HS역으로 걸어가 브뤼셀 행 기차를 탔다. 묘하게도 이 기차는 학생 할인을 해 주었다. 완행 열차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처지인가로테르담 진입 때부터 지연되기 시작하더니 2시간 30분이면 가도록 되어 있는 길을 무려 50분이나 지연되어 브뤼셀 중앙역에 도착했다. 정차하는 역마다 기관사는 10분 지연 죄송, 20분 지연 죄송, 30분 지연 죄송....이러면서 계속 죄송하다는 안내 방송을 한다.

 

기차가 벨기에 국경을 넘자 외교부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 왔다. 브뤼셀은 여행자제 지역이며 다른 벨기에 지역은 여행 유의 지역이라는 알림. 공공장소와 다중 밀집장소를 방문하지 말고 신변 안전에 유의해 달라는 문자가 계속 날아 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브뤼셀 그랑플라스에서 어제 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일명 외로운 늑대형 테러범이 그랑플라스를 순찰중인 벨기에 군인을 칼로 공격했다고 한다. 어쩔, 우리 숙소가 그랑플라스 옆에 있는 것을.

 

어제 토한 뒤로 아침, 점심을 계속 굶은 연우는 저녁까지 굶겠다고 드러누웠다. 역에서 숙소까지 오는 길에는 온갖 맛있는 식당과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 매장이 줄을 지어 있는데, 아까워서 어쩔거나. 할 수 없이 혼자 식당으로 가서 빠에야를 먹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식당은 어디든 호객 행위를 하는 특징이 있나보다. 모든 식당이 죄다 메뉴 입간판을 세워 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카드 안 받는다. 오직 현금만. 그래도 맛없는 네덜란드 식당에 비하면 가격은 1/3정도 낮고 맛은 월등하게 좋았다. 역시 유럽 음식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세 나라가 꽉 잡고 있는 것 같다.

 

밥을 먹고 그랑플라스에 나가 보았다. 올해 여기에서 테러가 3번이나 발생했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조용하다. 뉴스에는 2020년까지 현역 군인들을 투입해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나온다. 마트에 들러 물과 과자를 사서 숙소로 들어왔더니 연우가 자고 있었다. TV를 보지 않으니 저녁 시간이 정말 길다. 호텔은 동남향인데 무척 더웠다. 이상 고온이 한 주간 내내 이 지역을 휘감고 있다. 에어컨 없이 살던 동네인지라 요 몇일 간은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날씨.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날 아침, 본델파크 산책길에서 만난 길을 건너는 토끼.

인구 85만이나 되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야생 토끼라니......



월요일 아침, 고요한 본델파크 안에 있는 가장 작은 습지



공원은 장축 2km, 단축 0.3~0.4km 정도로 매우 크다.



짙은 회색을 띤 왜가리인가? 큰 새가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다.

공원에 많은 저수지가 있어서 서식하는 새 종류가 다양하다.



이 공원은 바로 이 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네덜란드의 세익스피어라는 별칭이 있는 본델의 석상이 공원에서 약간 언덕진 곳에 있다.




역사가 오래된 공원인 듯 우람한 나무들이 제법 많이 서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나왔다.

여기에서 약 1시간 정도 완행 열차를 타고 덴하그(Den Haag)를 갈 계획이다.

우리에게 헤이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 도시.



기차가 30분마다 있는데 승객이 적으면 취소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전광판에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취소되었다고 떠서 무려 1시간이나 기라렸다.



네덜란드 국영철도의 상징색 가운데 하나인 파란색 의자.

2층 열차를 7년만에 타 본다. 월요일 11시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로마시대 '저지 게르마니아'라고 불렸던 지역인 네덜란드.

화훼산업 대국답게 지평선과 꽃밭이 이어진다.



하우스 재배 단지와 함께 가끔씩 노천 재배지도 지나간다.



아빠, 네덜란드는 시력검사 할 때 "자, 화면 가운데 초원 위에 빨간집 보이시죠? 거기 촛점을 맞추세요." 라고 하잖아?

꼭 그 기계 속에 보이는 그런 지평선 위에 집들이 많이 보여. 라고 딸이 말했다.

그런 집들과 수로에 떠 있는 배 위의 집들이 많이 보였다.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덴 하그 중앙역

굳이 이 곳에 온 이유는 고종 황제가 파견한 헤이그 특사를 만나러 가려는 것이다.



덴 하그 중앙역에서 900m, 덴 하그 HS 역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이준 열사 기념관.

1907년 이곳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일본제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을 구하기 위해

열강들에게 호소하고자 젊은 검사 이준은 황제의 밀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블라디보스톡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상설, 이위종과 합류한 그는 이곳에 도착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이 숙소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일본제국은 궐석재판에서 세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러시아로 돌아간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조국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고

이상설 선생은 우수리스크에서 서거했다.

가장 젊었던 이위종은 러시아군 장교로, 소비에트 혁명군 장교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는 분이 되고 말았다.


이 곳은 네덜란드 동포가 구입해 당시 유물을 정리해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덴하그에서 출발해 로테르담을 거쳐 거의 세시간 만에 도착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중앙역

기차를 타고 여기를 지나친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도시에 내려 숙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는 세계적인 명품인 벨기에 초콜릿의 명가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아케이드가 있다.



그 아케이드를 지나면 그랑플라스 부근에 이렇게 맛있는 식당가가 있다.



브뤼셀이 음식을 즐기는 문화라면 암스테르담은 활동 에너지를 얻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상린아빠께서 11년 전에 처음 맛을 보여준 빠에야.

배탈이 난 딸을 두고 혼자 먹는 저녁 식사였지만 맛있는 음식의 유혹은 어쩔수가 없다.



저녁을 먹고 테러경계령이 내려진 그랑플라스를 들렀다.

이 근처에 물과 과자를 파는 슈퍼마켓이 있기 때문이다.

그랑플라스는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고색 창연하다.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이런 건축물에 이젠 그다지 감흥이 없을 지경이다.



하루 전에 이 광장을 순찰하던 무장 군인을 칼로 공격하는 테러가 발생해 우리 외교부에서는 출입 경계령을 문자로 보내왔다.

외국인들은 호들갑을 떨지만 우리가 북한에 무딘 것처럼 이 나라 역시 그러한 듯.

Posted by 연우아빠.

827() 맑음, 암스테르담 > 잔세스칸스 > 해양박물관


새 소리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어제와 정말 똑같은 메뉴로 구성된 아침을 먹었다. 여기 사과는 아주 작은 편인데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먹던 사과보다 단단하고 맛이 있다. 과일이 섞인 요플레가 입맛을 돋운다.


오늘은 잔세스칸스의 풍차마을을 구경한 뒤 해양박물관을 다녀오는 것이 목표다.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갔다. 1주일전에 먼저 왔던 친구가 알려준대로 트램 운전기사에게 24시간권을 7.5유로를 주고 끊었다. 트램에서는 현금과 카드 둘 다 결제가 가능하다. 버스에서는 오직 현금만. 공항에서 시내 들어올 때 197번 버스 요금으로 5유로를 낸 것이 무척 아깝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무조건 GVB카드를 끊어서 무제한으로 트램과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절감과 함께 가장 효율적이다.


중앙역은 여러 층으로 이뤄진 복층 구조인 역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출입할 때는 반드시 교통카드나 기차표를 센서에 터치해야 문이 열린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른 조금은 독특한 구조. 기계에서 카드로 발권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핀번호 6자리를 요구하는 옛날식 기계라 실패(이틀 뒤에 알았다. 여섯자리를 요구하는 기계에는 원래 핀번호 4개에다가 00을 붙이면 된다는 것을). 


할 수 없이 창구에 가서 표를 끊었다. 다들 기계를 이용해 발권을 하기 때문에 창구는 대기시간없이 바로 발권을 할 수 있다. 명함처럼 얇은 종이로 된 기차표는 신기하게 전자센서에 감응을 한다. 잔디크 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잔센스칸스에 도착한다는 친절한 창구 직원의 말을 듣고 왕복표를 끊어서 출발. 어른 7.2유로, 학생할인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외선 같은 스프린트(sprint) 철도를 타고 17분 뒤에 잔디크 역에 도착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며 걸었다. 날씨 좋고 풍경 좋고 사람이 적어서 좋고 아무튼 그냥 눌러 살고 싶은 그림 같은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풍차는 스넥바처럼 개조해 놓은 곳도 있고 입장료 4유로 받고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도 여럿 있었다.

 

교외로 나오니 시내와 달리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얌전하다. 암스테르담 시내는 사이클 경주하듯이 스쿠터를 추월해 갈 정도로 정신없이 달리는 자전거가 많았는데, 여긴 그런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오리, 고니, 갈매기가 한가롭게 자맥질을 하고 파란 물길 위에는 보트가 점점이 떠 다닌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그닥 많지 않아서 한가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아내에게 줄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 모양의 실내화를 샀다. 사진을 찍어 텔레그램으로 공유하면서 실시간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의논하며 선택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여기는 4~5살 된 어린아이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하고, 리컴번트 자전거를 탄 사람, 장애인용 자전거를 타고서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진정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기념품을 사고 점심을 간단하게 과자와 음료수로 해결하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며 다시 암스테르담 행 기차를 탔다. 왕복티켓을 끊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이 역에서는 기계로 카드를 이용해 티켓을 끊을 수 있는데, 암스테르담 역에서 이미 핀번호 오류횟수 초과로 사용할 수 업게 되었다. 이 나라의 기차역에 설치된 기계는 옛날 기계라 pin 번호가 모두 6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비밀번호 4자리에 00이라고 입력해야 하는 것을 몰라서 계속 오류가 난 것이다. 직불카드로 기계에서 기차표를 발권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차를 타기 전에 카드를 찍고 내릴 때 카드를 알아서 찍으면 되도록 되어 있다. 불필요한 곳에 사람을 배치하지 않으니 그만큼 사람을 값있게 쓴다고 해야 하나?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는 GVB카드(1~4일 무제한 교통카드)가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 걸어서 500m 정도라도 트램을 타는 것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으니 좋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거미줄 같이 연결된 트램을 타고 다음 목적지인 국립해양박물관으로 갔다. 고맙게도 무슨 행사기간인지 오늘은 17.5유로인 입장료가 무료였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 여행하다가 만나는 뜻밖의 행운에 흐뭇한 미소를 날리며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오디오 가이드 사용법도 간단해서 간단한 설명 한 번으로 알아 들었다.

 

해양박물관에서 본 네덜란드는 진정 해상왕국이었다. 박물관은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발트해로 나가는 곳에 배 모양으로 건축해 놓았고, 그 옆에 대항해 시대에 사용하던 배를 이용해 보조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후발 국가인 네덜란드에게 바다는 생명이었고, 유일한 탈출구였다. 잉글랜드, 스페인 같은 강국과 처절한 해상전투를 치르며 바다의 영역을 확장했고, 모든 것을 바다에 의지한 역사를 만들었다.

 

전시실 안에는 수십척이 넘는 다양한 모양의 실물 축소 모형 선박을 전시해 놓았다. 유리벽에 장착된 기계를 위 아래, 좌우로 움직여 관심있는 선박에 고정시키면 그 선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뜨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선박 각 부분의 구성품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고, 육분의, 경위도 측정 장치, 해도, 별자리 지도 등 원양항해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들을 갖추고 있다. 

 

벽에 걸린 옛날 그림은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해상화가 주류를 이뤘다. 바다의 전투, 고기잡이, 폭풍을 뚫고 항해하는 네덜란드인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파는 어시장... 그림 속에서 네덜란드가 얼마나 힘차게 자신의 역사를 개척해 왔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 지구를 반바퀴 돌아 조선과 일본에 온 네덜란드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 앞 바다에 정박해 놓은 실물선박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좁디 좁은 배 안에서 2만km가 넘는 먼 바다를 항해해야 했던 그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결핍은 욕망을 부르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한 사람들이 결국 세계의 주도권을 쥔 것은 아닐까? 우린 120여년 전에 은자의 나라에서 얼마나 탈출했는가?


해양박물관 옆 광장에는 축제를 위해 노점을 설치했는데, 축제에서 보는 모습은 국경을 넘어 공통점이 많은 듯 하다. 천막 안에는 음식과 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외 다른 많은 것들도 팔고 있었고, 박물관 중정에서는 기념 공연도 한번 열었다.

 

박물관을 나와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 가려고 트램 정류장으로 걸어 갔다. 두 달 전에 예약해도 입장하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는 안네프랑크 기념관. 트램을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한 분이 같이 기다리다가 우리에게 네덜란드 말로 뭔가 물어 보았다. 네덜란드 말을 모른다고 했더니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아주 조금 밖에 모른다고 하자 독일어는? 중국어는? 하고 묻는다. 독일어는 제2외국어로 배운 것 조금 밖에 모르고 한국인이라고 하자 영어로 계속 물어 보셨다. 구글 번역기로 보여 드렸으나, 노안인 할머니가 읽을 수가 없는 건 당연지사. 4개 국어를 구사하는 80세 정도 돼 보이는 할머니에게서 네덜란드의 외국어 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 간다고 하자 자기도 거기 근처에 산다고 트램을 같이 타고는 내리는 역을 알려 주었다. 여행 잘 하라는 말과 함께 바이바이를 하고 할머니의 길을 걸어 갔다.

 

운하를 따라 조금 걸어가자 저기가 안네 프랑크 기념관이군 하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네 프랑크 기념관은 기절할 정도로 긴 줄이 서 있었다. 100m를 넘는 듯 여러개 블럭에 걸쳐 구비구비 이어져 있었다. 이런 곳인줄 알았더라면 몇달 전에 예약을 했을텐데....연우는 무척 들어가 보고 싶어 했으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 네덜란드 왕궁과 담광장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접고 저녁을 먹으러 연우가 검색해 둔 The Pantry로 갔다


음식도 괜찮았고, 우리 뒤를 이어 손님도 많이 들어왔다. 직원들도 유쾌했고. 맛도 좋았지만 양이 꽤 많았는데, 천천히 2/3정도 먹은 연우가 무리를 한 듯 그만 토하고 말았다. 식사량이 적고 아주 천천히 먹는 스타일인 연우는 너무 많이 걸어서 배가 고팠었나 보다. 아주 오랜시간 천천히 먹었는데도 사단이 나고 말았다.

 

소화도 시킬 겸 식당에서 숙소까지 1km쯤 되는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정말 작은 도시다. 체력 안배 때문에 트램을 타긴 하지만, 이 도시의 중심은 직경 2~3km 안에 밀집되어 있을 정도로 작다.


대도시인데도 공기는 상쾌하고, 건조한 시기라 일교차가 매우 컸다. 도시 내 건물 대부분이 3층 이하라 시야가 편한 그런 길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Den Haag(옛 헤이그)를 들렀다가 브뤼셀로 간다. 암스테르담에 머문 동안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에 낮에는 땀을 많이 흘렸다. 13~23도 정도 되는 기온이 17~30도 정도여서 오늘도 생각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짐을 싼 다음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그냥 눌러 살고 싶은 곳 잔세스칸스..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4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곳



사방 어디를 찍어도 예쁜 그림엽서 같은 사진이 나오는 곳.



평화로운 풍경. 투쟁심도 경쟁심도 사라지게 만드는 나른하고 아늑한 풍경



잔디크 역에 내려 풍차가 있는 길을 따라 걷거나(왼쪽),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오른쪽 길)

다만, 이 날처럼 햇살이 따가우면 걷기에 조금 힘든 길.



잔세스칸스는 어디를 돌아보아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들을 여유롭게 만든다.

이곳 저곳 마음이 내키는대로 발길이 가는대로 걸어다니면 마음 속에 평화가 찾아 오는 멋진 곳.




아이스크림을 파는 삼륜차.



길 바닥 곳곳에 이런 예쁜 문양도...



잔디크 역에 내리면 잔세스칸스 지역의 구경거리를 안내하는 지도를 그려 놓은 입간판이 있다.




암스테르담 국립 해양역사박물관(Amsterdam Maritime History Museum)

자전거 왕국 답게 주차장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전거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속도 중심의 날렵한 자전거는 거의 없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투박하고 튼튼하게 생긴 자전거가 대부분이다.




암스테르담 시내 해양박물관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뒤에 네덜란드는 바다로 진출해 해양강국을 실현했다.

영국의 올리버크롬웰이 <항해조례>를 선포하기 전까지 네덜란드는 유럽의 해양수송 화물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 영광스러운 시대를 간직하고 있는 해양박물관.

이날은 무슨 기념일이라고 해서 17유로가 넘는 비싼 관람료가 무료였다.

박물관 중정에서 기념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박물관 안, 바다에 떠 다니는 다양한 종류의 배 모형이 드글드글하다.



박물관 계단에서 보는 바깥 풍경.

광장에는 축제와 관련된 시장이 서서 다양한 먹을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왼쪽 화면에서 잘린 부분에 대항해시대 범선으로 만든 박물관이 바다에 떠 있다.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마스트 꼭대기 장식품



선박 후미를 장식하던 나무 장식 공예품들



항해에 필요한 나침반, 육분의, 경위도계, 지도 등 다양한 기구의 발달 과정을 보여 주는 유물들

그들은 아시아의 황금시장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마다하지 않았다.



땅이 좁고 인구는 많고 주변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왕국으로 둘러 싸인 네덜란드는 바다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거친 바다를 건너며 삶을 개척했다.



네덜란드의 역사적 운명을 가른 해전을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많다.

거대한 석조건물을 남긴 나라들과 달리 네덜란드는 그림을 많이 남겼고,

그 가운데 특히 바다와 관련된 그림이 많다.

스페인, 영국 등 네덜란드와 경쟁하던 유럽 강대국들과 끊임없는 패권전쟁을 치렀다.



해변에 접안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서 얕은 바다는 사람들이 물살을 헤치고 건너가 배에서 짐을 내리거나 실었던 모양이다.

차가운 북해의 바람과 파도을 헤치고 강인하게 삶을 개척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무척 공감할 것 같은 그림



육상 박물관 옆 바다에는 대항해시대 네덜란드의 범선을 통째로 박물관으로 만든 선박 박물관이 있다.




암스테르담 해양박물관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이다. 



상선으로 쓰던 배에는 함포가 3층에 걸쳐 90문 정도 장착되어 있다.

선박 박물관에 들어가면....



3층으로 된 좁디 좁은 배 안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층층이 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수백일 동안 항해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오갔다.



안네 프랑크의 집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앞에는 몇 블럭에 걸쳐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2달 전에 예약한 사람도 입장하는데 2~3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을 짐작할만 하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인종, 피부색, 민족, 국적 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고 죽이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어리석음과 독재자에게 열광한 바보 짓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훗날 네덜란드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꼭 들어가 보고 싶다.



안네 프랑크의 집은 운하 바로 옆에 있다.

암스테르담에 운하가 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지, 운하 위에 암스트르담이 있다고 해야 맞는 것인지 헷갈리는 풍경.




담(Dam) 광장 에 있는  암스테르담 왕궁

Posted by 연우아빠.

826() 맑음 :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국립 미술관

 

새소리에 눈을 떴다. 대도시인 암스테르담에서 새소리에 눈을 뜨다니???

하긴 숙소는 Vondelpark 공원 옆에 붙어 있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공원 구경겸 산책에 나섰다. 높은 양떼 구름이 떠 있고, 서늘하고 상쾌한 가을 공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암스테르담 시민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날렵한 자전거는 없고 짐 싣기 좋은 투박한 자전거가 대부분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말 엄청난 속도로 자전거를 몰고 있다. “체력들 참 좋다. 저렇게 자전거를 많이 타니 심폐기능이랑 다리가 튼튼해서 축구를 잘 하나?” 하는 아재스러운 상상을 해 본다.

 

잠시 공원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 딸을 깨웠다. 같은 숙소에 들어온 사람은 다들 조용한 사람들이라 도미토리 안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어젯밤에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놀던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다만, 담배에 너무 관대한 나라라서 유스호스텔 앞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가는데 괴롭다.


유스호스텔의 허름한(?) 아침을 먹고 가까운 곳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도착 첫 날이니 시차적응도 할겸 무리하지 않고 가까운 반 고흐 미술관과 국립 미술관 두 곳만 보기로 했다. 습도가 낮아서 서늘했던 아침은 해가 뜨자 금방 더워졌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고흐 미술관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금방 표를 사서 입장했다.


고흐 미술관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건물이었고, 초록 잔디가 넓게 깔린 마당을 갖고 있었다반 고흐의 수 많은 작품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은 한국어 가이드북과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내용에 늘 실망을 해서 이번에는 오디오 가이드는 생략했다. 전시관 안에는 현미경으로 유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현미경을 움직이면 커다란 모니터에 안료의 재질, 색깔, 붓의 움직임, 덧칠 횟수, 물감의 농도 등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이 나라는 진위를 가리는 기술이 이 정도로 과학적이다. 문외한이지만 놀랍다.

 

점심을 먹고 나머지 전시실을 돌아 본 뒤에 밖으로 나와 국립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암스테르담 랜드마크인 I amstredam 문자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고흐 미술관이 현대적 디자인을 한 건물이라면 국립 미술관은 중세 왕궁 건물처럼 생겼다. 미술관 안에는 역시나 좀 전에 봤던 고흐 자화상이 걸려 있다. 어느 게 진짜인가? 둘 다 똑같은 포즈의 자화상인데 여러 장을 그렸나?

 

국립 미술관에는 100여년간 독립전쟁을 통해 16세기 후반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벗어던진 네덜란드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전제군주제 국가의 귀족계급에게 착취당한 역사가 거의 없어서 그런 것인지 그들 문화재의 대부분은 거대한 조형물이 아니라 회화 작품이었다. 작은 신생국가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강국들과 처절한 투쟁을 치른 흔적을 거대한 화폭에 사실적으로 담은 해전 묘사가 다른 나라 미술작품들과 다른 독특함을 보여 주었다.


서유럽의 막강했던 제국들과 달리 웅장하고 거대한 조형물은 거의 없다. 그들이 치른 수많은 전투의 고단함을 기억하듯 많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은제품과 뒤늦게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든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미술관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작은 왕국의 검소하고 단단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미술관이었다


국립미술관 관람은 오후 5시가 마감이었다. 마지막 30분은 달릴 듯이 구경을 했다. 미리 정보를 파악했더라면 국립미술관(오후 5시 폐관)을 먼저 보고 고흐 미술관(오후 9시 폐관)을 보았을텐데 거꾸로 하는 바람에 둘 다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쉽다. 인생이 뭐 그렇지...

 

저녁 먹으러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미술관 앞에 있는 공원 분수대에 걸터 앉아 다른 사람들처럼 양말을 벗고 발을 담궜다. 미지근한 물이 마치 탁족 때처럼 기분이 좋다. 구조원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는 공을 던져서 받아오는 걸 시키고 있다. 잘 훈련받은 개인듯한 몸동작이 훌륭하다. 우리 옆에는 일본에서 온 젊은 부부인 듯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기가 물 속에 뛰어 들어가 텀벙텀벙 뛰어 논다. 둘은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마침 비스듬히 넘어가는 햇살이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 I amsterdam 로고 주변도 한산해졌다.

 

예전 같으면 유레일패스 끊어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을텐데 이젠 그런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네덜란드는 민중 항쟁으로 독립을 쟁취해서 그런 지 귀족 문화도 강하지 않고 음식 문화 역시 내 세울 것이 없는 듯하다. “네덜란드 고유 음식이 뭐가 있지?” 라는 물음에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청어절임(Haring) 정도가 떠오르는 음식인데, 저녁을 먹으러 나선 길에는 인도네시아 식당이 많이 보일 뿐 뚜렷한 식당이 없다. 그리고 중심가 반경 1km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주 현대적인 건물들 뿐이다. 


구글링을 통해 평판이 좋은 가까운 seafood 레스토랑을 찾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앞으로 1시간 정도 있어야 자리가 난다고 하는 대답이 계속 돌아 온다.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고 우리도 다른 가게를 찾아보러 돌아다니다 10분쯤 뒤에 갔더니 주방 앞에 있는 횡테이블에 앉겠냐고 해서 얼른 그러마고 대답해 자리에 앉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화번호 남기고 문자료 알려줄텐데 여긴 그런 건 안하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해 준 곳이었지만 메뉴는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고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다만 보기와 달리 기름기가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배가 부른 메뉴였다. 음식 사치와는 거리가 먼 나라 같은 그런 느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자전거 속도가 엄청나다. 마치 전투를 치르는 듯 사생결단 같은 분위기로 달린다.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투박한 자전거인데 앞 뒤로 짐 싣는 곳이 달려 있다. 그 투박한 자전거를 타고 스쿠터나 오토바이 같은 속도로 경쟁을 하며 질주한다. 신호등은 자전거 우선이고 차는 뒷전이다. 좁은 길이라 차가 질주할 수 있는 그런 곳은 보이지 않는다.


살아서는 불행했던 사람, 죽어서 영광을 누리는 인상파의 거장 반 고흐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현미경 관찰 체험 장소

그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안료의 성분, 재질, 붓질 방향, 횟수, 덧칠 등 세밀한 구조를 볼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은 내부 촬영을 금지한다.

전시기간을 알리는 대형 걸게 그림



반 고흐 미술관에서 밖을 내다 보면 아름다운 잔디밭이 보인다.

이 곳은 본델파크에서 가까운 박물관 거리 구역에 있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관람객이 점점 많이 들어온다.




현대 건물과 옛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울린 반 고흐 미술관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저 멀리 국립 미술관이 보인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300m쯤 떨어진 곳이다.



암스테르담(Amsterdam)의 스펠링을 이용해 "나는 암스테르담에 있다"라는 연상을 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로고.

암스테르담 시내 여러 곳에 이런 랜드마크가 있다.




국립 미술관은 옛 왕궁 건물을 이용해 만든다.



반 고흐 미술관과 달리 국립미술관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작품을 촬영할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에도 이와 똑같이 생긴 반 고흐의 자화상이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일까? 둘 다 진품일까?




작품명 : Two Mothers

빈 바구니와 어린 아이, 그리고 강아지를 안고 걸어 가는 어부의 아내, 

그리고 옆에는 강아지의 어미가 새끼를 올려다 보며 주인을 따라 걷고 있는 모습



17세기, 일본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게 장식한 도자기가 네덜란드에 유행했다.



영국, 에스파냐, 프랑스와 같은 유럽 강대국들과 치열한 해상권 다툼을 벌였던 네덜란드의 흔적

다양한 화포를 진열해 놓은 곳



동인도 회사를 이용해 인도네시아를 침략했던 네덜란드에 맞서 싸운 저항군들이 들었던 각종 창

창에는 화려한 그림과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네덜란드와 싸웠던 인도네시아 현지 주민들의 모습

네덜란드인 15,000명에 맞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200,000명이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자바 전쟁(1825~1830년)



일본 도쿠카와 막부가 쇄국정책을 써서 나가사키에 건설한 데지마 섬.

일본은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제한적으로 유럽과 교역을 계속했다.



일본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을 재현한 모형



네덜란드 왕실의 화려한 그릇



네덜란드 왕실에서 사용한 화려한 은제 그릇



네덜란드 왕실의 금제 그릇



국립미술관 복도에 있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17세기 일본이 수출한 도자기는 네덜란드 도자기 산업과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청화백자



아시아 무역과 제국주의 침략에 뛰어들었떤 네덜란드 상선들

유럽 상선들은 이슬람이나 아시아의 상선들과 달리 40~100여문에 달하는 엄청난 화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국립미술관 출입문

자전거로 통행 할 수 있는 도로로 사용한다.



국립미술관 앞 정원에서 바라본 국립미술관



국립미술관 앞 뜰에는 시원한 분수가 아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하늘은 그지 없이 맑고 아름다웠다.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은 어디를 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일주일 전에 비해 5~6도 정도 높은 기온 때문에 여행자들은 자연스럽게 탁족을 한다.

우리도 양말을 벗고 발을 담궜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자전거를 정말 무섭게 탄다.

엄청난 속도로 스쿠터와 경쟁을 할 정도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속도 경쟁을 하는 것 같이 보일 정도다.

도로는 분리선, 자동차길 한 차선, 자전거길 한 차선, 그리고 보행자 도로다.

신호는 자전거, 사람, 그리고 자동차 순서로 표시하는 것 같다.

자전거를 빌려 탈 생각을 했던 나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속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네덜란드 전통 식단 따위는 없는 것 같다.

유명한 seafood bar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 값이 우리 보다 비싸긴 한데 신기하게 저렇게 적은 양인데도 배가 부르다.



잠깐 잠깐 쉬는 틈에 물에 레몬즙을 타서 마시며, 웨이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많은 손님 때문이다. 샐러드 가운데 유럽 오이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오이에 가끔 섞여 나오는 쓴 맛이 없다.



딸이 시킨 새우 요리. 중간 크기가 제일 맛있다고 추천해 줘서 선택했는데 올리브유를 뿌려 맛있었다.

Posted by 연우아빠.

EAA 2017 : 23th European Association of archaeologist(유럽고고학회) Annual Meeting

 

딸이 문화재보존과학과에 진학한 뒤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한국은 어차피 시장이 좁아서 학문을 하려면 나라 밖으로 나가 네트웍을 구축하지 않으면 세계 조류를 따라갈 수 없다는 그의 조언에 크게 공감을 했다. 어차피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나라 밖으로 많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는 고맙게도 외국 연구소와 공동작업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연구보조자로 함깨 갈 생각이 있냐는 제안을 했다. 문화재재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던 딸에게 아내와 내가 적극적으로 권유해 7월 한달간 해외 연구소에 동행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 왔다. 친구는 유럽고고학회(EAA)를 비롯한 해외 학회 참관을 권했다. 세계의 흐름을 알고 인류보편적 입장에서 학문을 바라볼 기회라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에 오랜기간 공감해 왔던지라, 학사일정과 겹치는 미국고고학회는 포기하고 유럽고고학회를 한번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올해는 유럽연합 체결 25주년이자 유럽고고학회 창설을 위한 발레타 협약 체결 25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EAA2017은 유럽협약을 체결한 곳인 네덜란드 Maastricht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먼저 연간 회비를 내고 유럽고고학회 회원에 가입한 뒤에, 4월말 경에 얼리버드 혜택을 받으러 일찍 참가신청을 했다여권을 급히 갱신하고 할인판매하는 직항로를 예약했다여권이 5월 중순에 나오는 바람에 50만원의 비용이 더 들어갔지만 직항이라 충분히 매력이 있는 가격이었다. 마침 네덜란드는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라서 휴가 겸해서 일정을 810일로 잡았다가족이 모두 가면 좋았을텐데 고2인 아들은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면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

 

참가 준비를 계속 하는 동안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나를 짓눌렀다. 7년만에 유럽을 다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걱정이 큰 것이었을까? 7년전에 비해 몰라보게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예약을 하면서 뭔가 꺼림칙한 것이 계속 마음을 짓눌렀다. 


아니나 다를까출발 나흘 전에 아들에게 갑자기 기흉이 생겨 입원을 했다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보았지만아버지로서 길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혼자 남아서 아들을 돌봐야 할 아내를 조금 편하게 해 줄 목적으로 목요일 밤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아들의 옆을 지켰다..

 

직장 다니며 학회 일정을 찾아보고듣고 싶은 세션을 고르고여행 일정을 짜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가 않았다결국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무엇보다 언어가 큰 문제였지만늘 접하던 학문이라 그림만 봐도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자위하며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공항 면세점에서 아들이 수능을 칠 때 쓸 수 있는 시계를 하나 샀다.

 

EAA 참가를 권했던 친구는 자신의 학회 일정 때문에 네덜란드에 일주일 먼저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친구는 네덜란드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전해 주었다. 로밍없이 현지 유심칩을 살까 생각했는데네덜란드 유심의 조건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아 한국에서 데이터를 로밍해서 갔다


이번 여행은 7년전과 달리 디지털에 의존한 여행이다. Google Map과 Translate가 여행의 도구가 될 것이다.


 

825(맑음

 

탑승을 완료한 뒤에도 중국 영공 진입허가가 1시간 지연되어 출발이 늦어졌다.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을 설마 이런 식으로 소심하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게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시각으로 25일 오후 늦게 스키폴 국제공항에 내렸다


딸이 인터넷 서칭을 해 봤는지, 이 나라 입국심사가 영국만큼 깐깐하다고 걱정을 한다. 우리차례가 되자 무슨 목적으로 왔냐고 묻는다. 휴가 여행이라고 했더니 둘은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 아버지와 딸이라고 했더니, 약간 장난기를 띤 심사관이 "Where is your wife?" 라고 묻는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그는 기분 좋게 입국 스탬프를 힘차게 찍었다. 그러다가 그만 내 여권이 책상 밖으로 날아갔다. 옆에 있던 심사관이 깜짝 놀라 크게 웃으며 줏어 준다. "Your stamping is very powerful!" 이라고 농을 건냈더니 거구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여행 재미있게 잘 하라고 하며 손을 흔들었다.


7년 만에 유럽 여행이라 그런지 현지에 내리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나 보다공항 구조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고경찰관이 알려준 버스 타는 곳을 지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갈 뻔 했다경찰관이 거기 아니라고 소리쳐서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트램을 타고 들어가면서 24시간 티켓을 끊으리라 생각했으나저녁시간이 지난 때라 숙소 근처까지 한번에 가는 197번 버스를 냉큼 타고 말았다. 24시간 티켓이 7.5유로인데 197번 버스 1회 이용권이 5유로라서 돈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었다게다가 카드도 안 되고 오직 현금만 된다고 한다돈이 아까웠지만 할 수 없지.

 

공항에서 40여분 정도 걸려 숙소 근처 Leidseplein 정류장에 내렸다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구글맵핑 덕분에 길을 잘못드는 일은 없었다. 명성은 듣고 있었지만, 외국에서 직접 체험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어둑어둑해 진 시간숙소에 예약을 확인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최종 목적지인 마스트리히트 숙소 예약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암스테르담은 좀 늦게 예약을 해서 선택할 수 있는 숙소는 혼숙 도미토리 10인실 뿐이었다사물함에 자물쇠가 없어서 유스호스텔에서 샀다작지만 엄청 묵직한 자물쇠.

 

상당히 서늘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우리나라 저녁 날씨와 비슷한 기온이었다. Vondelpark의 나무 향기가 기분 좋게 숙소를 감싸고 있다.




7년만의 유럽여행 출발을 위해 인천공항에 나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버스 정류장



행선지를 알려주는 스키폴 공항의 전광판



"네덜란드의 세익스피어"라는 칭송을 듣는 본델의 이름을 딴 본델파크 유스호스텔

자전거 왕국 답게 빌려주는 자전거가 한 가득이다.



아침, 저녁 식사를 하는 유스호스텔 A동 건물



우리가 숙소로 배정 받은 C동 건물.

어딜 가든 네덜란드에서 제일 유명한 반 고흐의 그림이 있다는...



본델파크 유스호스텔 전경



3일동안 계속 먹었던 유스호스텔의 아침식사.

똑 같은 메뉴가 메일 나온다.

토스터 기계에 구워서 먹으면 맛있는데, 토스터 기계를 발견 못해서 이틀간 그냥 먹었당 ㅠㅠ

사과는 작고 단단한 것이 맛이 좋은 편.



유스호스텔 담 옆에는 거대한 본델파크가 펼쳐져 있다.



본델파크에는 무궁화가 있다.

무궁화는 원래 중앙아시아가 원산이고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7년전 몽트뢰에서 봤던 무궁화를 네덜란드에서 또 보다니...




본델파크의 작은 습지




쥐죽은 듯이 고요한 토요일 아침 암스테르담 박물관 거리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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