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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며느리들을 위한 가을여행

by 연우아빠. 2007. 10. 2.

가을비 적시는 서정여행, 원주 백운산휴양림  


2007.9.29~30(1박2일)

♪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

이맘 때 쯤, 누구나 한번쯤 흥얼거리는 노래 한자락이 생각납니다.
부모님과 같은 지붕아래 살았던 기간이 짧았던 탓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실감도 크지 않았었는데 어머니를 떠나보낸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아내와 짧은 신혼도 끝나고 아이들에게 인생 절반이상 빼앗긴 것 같은 10여년을 살면서 ‘가을 서정’은 한동안 먼 이야기였다. 한가위 명절과 잇달아 어머니 기제사를 모시느라 저 먼 곳에서 두번 걸음을 해야 하는 동생네 가족, 그리고 별로 튼튼하지 못한 몸으로 맏며느리 역할 하느라 허덕대는 아내에게 여행을 핑계로 손에 물 묻히는 일을 잠시나마 해방시켜줄 구실..., 그게 이번 휴양림 여행이기도 하다.

한 달 전 주은아빠 글을 보고 필을 받아서 백운산휴양림을 잡았다. 아버지를 모시고부터 그 치열하던(?) 귀향길 귀경길에서 해방되었는데 편안한 느낌보다는 옆구리가 휑하니 뚫린 것 같으니 참 요상한 일이다. 한가위날 차례를 지내고 사흘 뒤, 어머니의 첫번째 기제사를 맞았다. 천륜도 천륜이지만 역시나 가족은 같은 지붕아래 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1때부터 대처로 나가 공부한 탓에 어머니와 같이 지냈던 기억들이 별로 갖지 못했고, 대부분 국민학교 입학전에 부모님과 같이 찍은 빛바랜 사진들이 되살려주는 기억뿐. 어쩌면 그런 기억들이 적어서 어머니를 여윈 슬픔이 그저 견딜만한 슬픔이 된지도 모르겠다.



도착하자마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뒤에 보이는 것은 가장 안쪽에 있는 C동

며느리들이 정성껏 장만한 제사음식에 어머니는 만족하셨을까? 우리가 사는 모습이 어머니에게 아름답게 보일까? 제사를 지내면서 눈물짓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엄숙할 뿐..... 제문을 읽으면서 잠시 낯간지러운 효자가 돼본다. 가족의 정은 서로 공유한 추억이 많을수록 쌓이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 슬하에서 떠난지 너무 오래된 나는 문득문득 어머니 생각을 할 때면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쌓을 시간이 너무도 짧았고 그런 것이 내 정서를 메마르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화도 슬몃 끼어든다. 어린 조카와 질녀들은 제사 중에도 재미있다. 세집 아이들이 모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게 어머니를 반추하며 회상에 잠길만한 여유란 애초부터 허락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명절과 기제사를 치르느라 고생한 며느리들을 위한 휴양림 여행이라는 주제는 첨부터 비토세력들(?)의 설마가 덤빈다. 아주마니들, 모두 속아만 살으셨남? 부산 사는 동생이 첫 번째 기제사 지내고 일요일에 어머니 산골처에 같이 가자고 해서 토요일은 휴양림에서 지내고 일요일 아침에 영주로 내려가기로 했다.

29일 토요일 아침, 연우 준기 학교에 보내고 준기맘이 시키는대로 고기사고 채소사고 김밥사고....자전거타고 동네방네 누비면서 착실하게 출발 준비했다. 최근에 칫솔 같은 소품을 두어번 빼먹고 갔더니 아예 아버지께서 챙기셨다고 웃는다. 애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실내화 씻어놓고 출발하자는 준기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애들 실내화 싸들고 출발했다. 휴양림에 가서 남는 시간에 씻으면 되지. 햇볕 잘드는 자동차 앞 대시보드에 올려 놓으면 금방 마를텐데...준기맘의 못된(?) 습관 가운데 하나는 꼭 출발 전에 청소, 설거지, 빨래 이런 것 다하고 출발하는 거다. 10분 늦게 출발하면 30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아직도 모르남? 하긴 갔다와서 나는 출근하고 집에 남은 준기맘의 일은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지..



동의하십니까? 임도 출발점에 서 있는 표지석
"죽을 힘을 다해 산길을 오르면 죽을 병이 낫는다"라는 격언만큼 머리 속에 쏙 들어오네요.


하늘에 구름이 잔뜩끼긴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아서 떠나는 마음은 상쾌했다. 동생 둘을 먼저 휴양림으로 보내고 우리는 정은맘께서 가르쳐준 치악참숯으로 가서 백탄(15kg, 15천원) 한상자를 사서 휴양림으로 들어갔다. 정말 간만에 휴양림에서 바베큐 해 먹게 되나보다. 막히는 길 없이 죽죽 잘도 달려서 백운산 입구에 도착하니 산세 웅장하고 계곡 무쟈게 깊고 등산객도 많았다. 등산객 사이로 차를 몰아 휴양관으로 올라가려니 미안했지만 어쩌겠나...

휴양관 마당에 도착하니 ABC 세 동이 좌우로 나란히 건너편 능선을 바라보며 서 있다.(근데 ABC동이 뭐냐고요. 참나리동, 하늘나리동, 금강초롱동....뭐 이런 이름 붙여주면 안돼남유?) 짐 내리는 동안에 애들은 벌써 바위솔, 풀솜대 두 집 모두 둘러보고 몽땅 바위솔 다락으로 몰려 올라가 버렸다. 가족별로 재우려던 계획은 가자마자 실패...


잣나무가 많은 걸까요? 다람쥐가 참 많았습니다.
이 녀석은 사진을 두장 찍는 동안 이러구 가만 있더군요.
정작 제 손이 떨려서 두장 다 초점이 흔들렸습니다. OTL


짐을 내려놓자마다 모두를 재촉해 임도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임도는 11km나 되는데 해넘어 갈 시간까지는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준기가 전망대 가보자고 해서 현지아빠 후기에 전망대 전망 별로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뭐 갈 수 있는 길이 전망대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애들 데리고 올라가자니 속도가 만고강산이라 1시간쯤 올라가다 계획대로 중도 하산 할 수 밖에 없었다. 휴양관에 돌아와 며느리 모두를 열중쉬어를 시키고 삼형제가 각자 역할분담을 해서 저녁준비를 했다. 마누라와 제수씨들은 싫지 않은 표정이지만 바로 아랫동생 제수씨는 안절부절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쌀을 씻고, 파와 마늘을 까고 동생들에게 상추와 깻잎을 씻으라고 하고 밖에 나와 숯에 불을 붙였다. 갑자기 반가운 얼굴들이 달려온다. 상린이와 채린이다.


붉나무, 열매가 소금처럼 짭니다.
옛날에서 소금대신 쓰기도 했다네요.


미천골, 오서산, 백운산까지 거의 2주 간격으로 계속 만나서 그런지 금방 잘들 어울려논다. 수많은 여자아이들 속에 유일한 남자아이 준기는 자기만 빼고 논다고 휴양림 갈 때마다 불만이었다. 상린 채린 두 누나를 만나면 오서산에서 자기를 왕따시킨 분을(?) 풀겠다고 앙앙 거렸다. 하지만 1학년짜리 준기야 4학년 상린이 말 한마디에 금방 어울려서 상린이네가 묵는 A동 쪽으로 우르르 사라졌다.

불을 붙이다 보니 불똥이 튀기도 하고 튀지 않기도 하는데 종잡을 수가 없다. 누구 말로는 참나무가 아니고 물참나무라서 그렇다는데 아버지 말씀으로는 숯을 구운 다음 흙이나 모래를 덮어 불을 끄지 않고 물을 부어 불을 끄거나 보관 중에 비를 맞으면 불똥이 튄다고 한다. 숯가마 창고에서 꺼내온 숯인데 아마도 최근에 자주 내린 비 때문에 습기가 차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덕분에 돼지목살 굽기 전에 내 목에 불총 2대 맞았다. 지금도 쓰라리다. ㅜ.ㅜ


벌개미취인지 아니면 구절초인지..
국화과는 틀림없습니다만..
단체로 찍어보니 그것도 괜찮은 모습이네요.


불 열심히 붙이는 중에 상린이와 채린이가 삽겹살 한접시랑 소시지 구운 것을 가져왔다. 준기에게 소시지 구워주겠다고 해놓고 냉장고에 그냥 놓고 온터라 소시지 구운게 무지 반갑다. 답례로 어제 동생과 자형이 소래포구에 가서 사 온 새우를 구워 드시라고 좀 드렸다. 숯에 제대로 불이 붙자 밥을 안치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역시 삽겹살보다는 목살이 덜 타는 것 같다. 삽겹살 몇판 굽고, 목살 몇판 굽고, 새우도 구웠다. 남편들에게 저녁식사 대접을 받는 것에 익숙치 못한 마음 착한 우리 각시와 제수씨들은 고기 굽는 동안 열심히 쌈을 싸서 각자 신랑들 입에 넣어주느라 바쁘다.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는 결국 기상청 예보를 무시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밤 휴양림 몽골텐트 안에서 해먹는 저녁, 좋기도 했는데 준기맘이 춥다고 등산용 자켓을 더 입는다.(추위에 관한한 준기맘과 나는 너무 대조가 심해 이른 봄과 가을 야영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상쾌하고 맛있는 저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지난번 오서산 갔을 때 상린이네랑 같이 주워온 밤을 왕창 넣어 구웠다. 밤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남은 숯불이 제대로 힘을 못쓰고 피시시꺼져 버려 반은 구웠는데 반은 익다가 말았다.(주은아빠, 군밤 못 드려서 미안허요. 다른 좋은데 가버리셔서리....) 그 사이에 술 못 마시는 막내동생은 형수들을 위해 술을 사왔다.




억새, 산속이라 가을이 일찍오네요.
날씨가 흐리지 않았으면 역광으로 찍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텐데..


저녁을 마치고 상린이랑 채린이가 다시 놀러왔다. 이럴 때 아님 언제 맘편히 모여 놀겠는가? 어른들은 풀솜대로 옮기고 애들에게 바위솔 방에 들어가 놀게 했다. 두편으로 나눠서 상린이가 가르쳐 준 양말던지기 놀이를 하느라 다락방과 아래 거실에서 아이들 7명이 제 세상 만난 듯 신이나서 논다. 다행히 옆방 사람들은 모두 10시 넘어서까지 밖에서 바비큐를 안주삼아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집을 비웠고 그 옆은 산림문화경영관(?)인가 뭣인가 해서 예약을 안 받는 방이라 우리 애들에겐 제대로 놀이터가 되었다.


저녁먹고 비가 오는 휴양림의 밤을 사진에 담아 봤습니다.
꼭 UFO 같습니다.


9시쯤 상린아빠께서 전화를 해서 걱정을 하시길래 내려가봤더니 아이들 모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열심히 놀고 있다. 상린채린 두 아이도 물론이지만 우리 애들도 놀이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없다. 아이들에게 15분만 더 놀고 이제 집으로 가야한다고 얘기하고 15분쯤 지나 데리러 갔다. 상린 채린이에게 우산을 씌우고 A동으로 데리고 가는데 땀을 너무 흘려 감기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이 선선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배드민턴이라도 칠텐데...족구장도 텅비어 있고...아이들을 바위솔에 재우고 풀솜대 2층 베란다에서 비오는 휴양림을 구경하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멋진 숲을 자랑하는 휴양림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게 아쉽다.


일요일 아침 내린 비 때문에 숲해설은 몽골텐트 안에서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7시다. 휴양림 다니면서 제일 늦게 일어난 것 같다. 비는 그쳤다. 남자들만 일어나 전망대까지 가보기로 했는데 휴양림 안내도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제1등산로 옆 산책로 도는 것으로 싱겁게 끝났다. 휴양림 안내도를 찾다가 아이들 실내화 주머니가 눈에 띄어 얼른 �었는데 날씨가 흐려 잘 마를지 모르겠다. 아이 7명과 어른 7명이 함께 먹는 아침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10시에 시작하는 숲해설에 참석하려고 상린이와 채린이가 나왔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하니 아무도 숲해설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 연우, 준기 그리고 연우와 동갑인 사촌 이렇게 몇몇만 참가하여 몽골텐트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그림카드로 시작하는 숲해설을 듣는다. 기억력 테스트, 나무이름 맞추기, 곤충의 눈으로 본 세상 등등 숲해설사 두 분은 아이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숲 이야기를 엮어갔다.


곤충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모두들 돌아가면서 한번씩 들여다 봅니다.
저는 물론 못봤고요.^^ 


비는 더 심하게 오고 높은 산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그 길을 오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어머니 산골처에 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영주에 있는 인척들 만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출발준비를 끝내고 나니 11시 반쯤, 상린채린아빠께 미리 나선다고 전화를 드리고 아쉬운 휴양림을 뒤로한 채 남쪽으로 달렸다. 비오는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역시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휴양림들이라 숙박시설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우리 가족은 휴양림을 제법 많이 다녔고 숲을 보러 휴양림에 가지만, 처음 휴양림을 접하는 사람들은 숙소가 제일 눈에 들어오나 보다. 막내 제수씨는 신혼 초에 우리랑 같이 갔던 통고산휴양림 숲속의 집 시설이 영 아니어서 휴양림에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너무 좋았단다. 다른 사람들을 휴양림에 데리고 갈 때는 숙박시설을 고려해서 초빙해야겠다.


숲해설 마지막에 해설사 선생님이 학교에서 쓰려고 준비해 온
비장의 카드를 내놓습니다.
바로 목공예로 목걸이 만들기.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