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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가는해 오는해 ...청태산자연휴양림

by 연우아빠. 2009. 1. 3.

청태산에서 새해를 맞으며(2008.12.31~2009.01.01)


눈 속에 덮힌 청태산휴양림 숲속의 집


등산로 풍경


나는 왜 눈 쌓인 청태산을 혼자 올라가고 있는 건지....


서리 꽃이 핀 나무


햇빛을 받아 녹은 서리들이 눈처럼 쏟아지는 것을 찍어보려고 했는데 사진에는 전혀 잡히지 않았네요.


헬기장 앞에서


표지판만 없었으면 그림이 더 좋았겠죠?


눈꽃인지 상고대인지 티없이 맑은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룬 겨울 나무


정상에 서니 멀리 스키장이 보입니다. 성우리조트 같네요.


촌마을 경작지들이 눈이불을 덮은 채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청태산 정상 표지


재미있어 보이지요? 승환이가 사방으로 돌아가는 비닐포대 썰매를 타면서 팽이처럼 돕니다.


은주도 비닐포대 썰매를 타고 날아갑니다. 안경에 김이 서려서 제대로 찍지 못한게 아쉽네요.


너무 느긋하게 썰매를 타고 있는 준기



2008년 12월, 갈수록 힘든 상황이다. 12월 29일, 배가 아프다고 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 권유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올라왔던 연우 외숙모는 검진결과가 청천벽력과 같은 췌장암 4기, 이미 CT 촬영만으로도 대장과 간에 전이가 되버린 것이 뚜렸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 2010년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의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47살인데 이럴수가....은주아빠가 잡아놓은 연말 청태산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슬픔과 눈물에 젖어있는 아내를 그냥 놔두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모진 마음을 먹었다. 설령 운명을 달리한다 해도 그 뒤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터. 아내에게 청태산에 계획대로 그냥 간다고 통보했다. 잔인하게 생각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직계가족이 슬픔과 고통에 젖어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마냥 무너질 수 있으니 우리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 뒤에 남을 큰처남과 대학 다니는 처조카 둘의 학업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것이며, 얼마나 나올지 모를 치료비를 생각한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아내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2008년 12월은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강행군이 이어진다.

31일 여의도에 있는 회사들은 다들 오전 10시에 종무식을 끝내고 퇴근해버렸는지 점심시간은 전에 없이 휑하다. 우리회사는 작년에는 10시에 종무식을 끝내고도 계속 근무하는 분위기로 몰고가더니 금년에는 아무런 얘기도 없이 종무식을 스리슬쩍 오후 3시로 옮겨버렸다. 상린아빠와 은주아빠께서는 이미 청태산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오늘 얼마나 막히려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걱정이 앞선다. 종무식과 간단한 다과회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15분. 아내는 웬만큼 정리해 차에 짐을 실어 놓았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출발했다. 오후 6:50. 미리 확인한 정보대로 용인-마성 구간과 여주-강천 구간이 좀 밀린다. 함께 가기로 한 막내동생네는 청태산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도 다행히 9시30분에 청태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주아빠와 인사를 나누고 부르스타를 빌려서 주목나무 집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했는지 많이 깔끔해졌다. 저녁은 동생이 준비해 둔 것으로 간단하게 먹고 내일 새벽 등산을 생각하며 11시에 잠을 청했다. 리모델링을 했지만 역시 우풍이 상당히 있다. 우풍 때문에 두어번 깼는데 만일을 대비해 가져간 겨울 침낭을 뒤집어쓰니 따뜻해서 좋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시가 넘었다. 숲속의 집은 휴양림 서쪽 사면에 있어서 그런지 해가 들지 않는다. 결국 일출등산은 불발로 끝났고 뒤늦게 혼자 올라가보려고 했더니 아내가 브레이크를 건다. 몸도 몹시 피곤해서 아침을 먹고 올라가기로 변경했다. 새조개와 동생이 사온 채끝살로 맛있는 샤브샤브를 해 먹었다. 고기가 부담스러워 채소만 열심히 먹었다. 31일날 새벽 3시에 찬바람을 맞으며 퇴근한 때문인지 배가 계속 아프고 따뜻한 방에서 지지고 싶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눈썰매 타라고 얘기하고 혼자 등산준비를 해서 1등산로 쪽으로 갔다. 여러 등산로를 봤는데 오늘이 이번 겨울들어 가장 추운날이라고 해서 햇볕을 받으며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좋을 듯 해서 능선을 타는 1등산로를 택했다. 잠시 사진을 찍는데 두 사람이 등산을 시작한다. 부부인가 보다. 보기에 참 좋다. 설렁설렁 올라가는데 두 사람이 금방 쉬는 듯. 두 사람을 앞질러 길을 올라갔다. 예상대로 많이 쌓인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눈이 상당히 건조하다. 등산용 지팡이를 이용해서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맨땅을 밟고 오르는 길보다는 체력소모가 상당히 크다. 금방 땀이 맺히고 숨이 거칠어진다. 50분쯤 지나자 정상 전방 600미터 갈림길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먼 길 같다. 올라오는 동안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간간히 노루 발자국 같은 것만 보인다. 다행히 멧돼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산 속에 사는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기척이 없다. 아침에 새해맞이 등산을 한 사람들 발자욱을 제외하곤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와 달리 바람도 전혀없고 밝은 햇살이 내리 쬐니 밤새 나무에 열렸던 상고대와 눈꽃이 하늘하늘 날아 내린다. 은비늘 같기도 한 고운 은가루가 마치 신선세계 같다. 이런 모습에 취해 얼어죽는 사람도 생기겠다는 객쩍은 생각이 스쳐간다.

문득 광장 같은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아마도 헬기장인가 보다. 정상까지 300m. 넓은 눈밭에 아무도 없고 햇살이 강렬해 선글라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눈에 반사된 햇빛이 눈물날만큼 아프다. 하늘은 티없이 맑은 깊은 파란색이다. 오늘 대부분 지역이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없을만큼 구름이 많았다는데 청태산의 하늘은 그야말로 파랗고 크다. 산이 밋밋하니 등산도 심심하다. 돌아봐도 시야가 확 트인 산이 아니라서 걸어 올라가는 일 말고 달리 할 일이 없다. 등산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쯤 돼서 정상 표지석 앞에 도착했다. 높은 산 답지않게 바람 한 점 없다. 상린아빠께서 전화를 하셨다. 행사가 끝나서 바로 서울로 간다고 하신다. 한 휴양림에 1박2일 머물면서 얼굴도 뵙지 못하니 많이 아쉽다. 다음을 기약하며 새해 인사를 드리고 주변 풍경을 찍고 셀프카메라를 찍었다. 정상에 있는 벤치는 여름에 올라오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간식먹기에 좋겠다. 10여분 쯤 지나서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 넣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갈 때는 제2등산로를 택했다. 계곡길이라 아이젠을 꺼내 신발위에 채우고 내려오는데 2등산로에서 남자 두명이 올라온다. 이어서 1등산로 쪽으로 아까 봤던 부부가 올라오고 있다. 넓은 눈밭을 보더니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2등산로는 경사가 급한 대신 휴양림까지 거리가 1등산로보다 많이 짧은 것 같다. 아이젠과 스틱이 있으니 하산 속도를 내기에 좋다. 40분만에 내려와 눈썰매장에서 은주네와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은주네와 같이 온 분들도 함께 나와 눈썰매를 즐기고 있다. 비료푸대에 짚을 넣어 방석처럼 만든 눈썰매가 아주 재미있어 보인다. 아이들의 쾌활한 목소리와 표정이 참 좋다. 날씨가 너무 차가워서 그런지 카메라에 김이 서려서 제대로 찍기가 어렵다. 야근하면서 무리한 탓인지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방에 드러누워 몸을 지지고 싶은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은 오지 않는다. 점심은 강림순대집에 가서 먹을까 했는데 서울에 병문안 갈 길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 동생이 가져온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출발하기로 했다. 주목나무 집 앞은 아직 햇빛 한자락 들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유니맘님네처럼 어부바 차에 실려 내려오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7번 시도 끝에 시동걸기에 성공했다.

막내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영주로 내려가고 우리는 은주네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은주네 일행은 일요일까지 여행을 한단다. 1박 2일간 얼굴 겨우 한번 보고 31일 밤에 있었던 제야음악회도 못보고 잠만 자다 온 것 같아 허전하다. 돌아오는 길은 다행히 많이 막히지 않아서 6시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아이들 저녁 챙겨주는 틈을 이용해 10분간 눈을 붙였다. 조금 살 것 같다. 속이 좋지 않은데다가 라면까지 먹어서 더욱 좋지 않아 저녁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준기맘 잔소리 때문에 호박죽으로 때우고 7시에 병문안을 위해 서울대 병원으로 출발했다. 큰처남댁의 암 진단이 한바탕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긍정적인 생각과 병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로 기적을 만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